원전이 안보 자산?… 워게임서 드론공격에 취약 드러나 [뉴스]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4호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핵발전은 기후 위기에 따른 재난 상황이나 전쟁과 맞닥뜨렸을 때 다른 발전원이나 에너지에 비해 더 취약하고, 훨씬 더 큰 위험을 야기한다. 그런데도 역대 한국 정부들은 대개 원자력 발전을 안보 자산이라고 치켜세워 왔다. 원전은 기저 전력으로서 발전 용량만큼의 전기를 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전쟁과 재난의 전개 상황은 이런 가정에 흠집을 냈다.
올해 초여름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냉각수로 사용할 강물이 말라붙어서 헝가리, 루마니아, 프랑스 등의 원자력 발전소들이 가동을 멈추거나 발전량을 크게 줄여야 했다. 원전은 냉각수 공급이 차단되거나 외부 전력의 공급이 중단되면 가동을 멈추게 된다. 이런 상태가 12시간 이상 지속되면 원자로 내부 온도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 핵연료가 녹아내릴 수도 있다. 후쿠시마 재앙도 그렇게 시작됐다. 다행히도 당시 가뭄과 함께 태양광의 출력이 크게 늘면서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은 나라들도 전력 부족 사태를 면할 수 있었다.
국내 원전은 모두 바닷물을 냉각수로 쓰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해수 온도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다른 기상이변과 마찬가지로 가뭄도, 해수 온도 상승도 앞으로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게 당연하다. 핵발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 덕분에 에너지 포트폴리오에 비중 있는 역할로 다시 소환됐는데 정작 기후변화에는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러-우 전쟁, 미-이란전 등서 원전 표적 공격 잦아져
원전으로 잠재적인 핵 억지력을 갖게 된다는 주장도 은근히 뿌리 깊다. 핵발전이 핵무기의 탄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외교에서 최고위급 의제로 제시한 것도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와 안보 체계를 연계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그러나 핵발전소 자체는 전시에 오히려 위험을 더 높이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미국-이란전에서도 핵시설은 가장 먼저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군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 체르노빌 원전부터 점거했다. 같은 해 3월 4일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했다. 그 후 두 곳 원전에는 반복적으로 드론 등에 의한 공격이 가해지고 있는데 그때마다 핵연료 냉각 시스템이 계속 작동하고 있는지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자포리자 원전은 최근까지도 외부 전력 공급이 일주일 이상 끊긴 채 비상 디젤 발전기에 의존해야 했고, 지난 5일에야 국지적 휴전이 선언됨으로써 송전선 복구에 나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달 29일 자포리자 원전이 블랙아웃 (대정전)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었다. 지난 7월 중순에는 자포리자 원전의 수석 엔지니어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는 러시아 측 발표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전경. 2023.3.3 타스 연합뉴스
미-이란전도 마찬가지다. 전쟁 발발 후 지난 4월 초까지 이란의 부셰르 원전은 네 차례 미국과 이스라엘의 표적이 됐다. IAEA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 가운데 한 차례 공습이 가동 중인 부셰르 원전 경계선에서 불과 75m 떨어진 지점을 강타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건설된 부셰르 원전은 현재 이란에서 가동 중인 유일한 원전이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원자력 안전에 실질적 위험이 초래되고 있으며 이는 이란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에게도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고 경고하며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이란은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 원전을 공격 목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지난 5월 17일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3호기가 이라크 쪽에서 날아 온 드론 공격을 받아 외부 전력이 하루 동안 차단됐다.
제네바 협약은 원자력발전소 공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설 중인 원전과 가동 중인 원전마저도 이렇게 끊임없이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1984년부터 1988년 사이에는 이라크 전투기가 이란 부셰르 원자로를 일곱 차례 폭격해 노동자 10명이 숨졌다. 2007년에는 시리아에서 비밀리에 건설 중이던 원자로를 이스라엘이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전쟁 때 핵발전소에 대한 위협은 반드시 원자로에 대한 공격만으로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원전 밖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송전선을 끊거나 바닷물을 끌어오는 취수구를 막기만 해도 최악의 경우 핵연료가 녹아내리게 만들 수 있다. 원전 시설을 공격하는 쪽에서는 두꺼운 콘크리트 격납 건물 안에 있는 원자로보다 전력과 냉각수를 차단하는 게 훨씬 더 쉽다.
사용후핵연료 수조 취약…냉각수·전력 끊기면 방사능 누출 위험
원자로와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수조가 있는 격납 건물이 드론 공격을 받는 경우를 상정해 보자. 원자로 내에 있는 핵연료는 압력용기, 격납용기로 방어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는 그런 것 없이 같은 건물 안에서 노출돼 있다. 드론 공격 등으로 냉각수나 전력 공급이 끊기면 사용후핵연료는 비록 핵분열은 멈췄지만 내부 핵분열 생성물들이 계속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며 붕괴열을 발생시킨다. 수조의 물이 끓어올라 증발하면 연료봉은 냉각 불능 상태에 빠진다.
사용후핵연료를 감싸고 있는 피폭관(지르코늄 합금)이 고온에 노출되면 공기나 수증기와 반응해 급격히 손상된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될 위험이 발생한다. 고온의 지르코늄과 수증기가 반응하면 대량의 수소 가스가 발생하며, 수소가 격납건물 내부나 상부에 쌓일 경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처럼 수소 폭발로 이어질 수 있다. 가동 중이던 원자로도 실내 온도가 2000도 이상으로 오르면 핵연료와 구조물이 녹아내려 원자로 용기 바닥으로 떨어지는 노심 융해 현상이 일어난다. 이 경우에도 외부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모습. 2011년 3월 25일. AP 연합뉴스
원전과 사용후핵연료 밀집 한반도와 일본 가장 취약
문제는 핵발전소가 세계에서도 가장 밀집해 있는 한반도와 이웃 일본이 그에 대한 공격에 가장 취약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의 싱크탱크인 핵비확산정책교육센터(NPEC)는 2024년 한국 고리원전의 사용후핵연료 풀(수조)이 드론 공격을 받는다는 가정 아래 전개한 워 게임(가상 전쟁)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할 경우 한국 국내에서 평균 850만 명이 대피해야 할 것으로 상정했다. 한·미·일 전문가들이 참가한 이 워게임에서 드론 공격은 남한 내의 북한 대리 세력이 감행하는 것으로 가정됐다.
2025년 2월 NPEC의 수시 정책보고서 전략적 분산: 북한의 대리세력이 남한의 원자로를 목표로 삼는다 에 따르면 고리 원전 3호기의 사용후 핵연료 풀에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과거 12개월 간의 기상 상황을 적용해 봤을 때, 한국 국내에서 피난 대상자는 평균 850만 명에서 최대 5000만 명에 이른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방사성 물질은 대량으로 일본까지 흘러가서 일본인들도 1000만 명이 피난을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언론인 아오키 미키는 녹색평론 194호(2026년 여름호)에 기고한 원자력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라는 글에서 이 워게임에 참가한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 전 위원장이 실시한 이같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인용했다. 강 전 위원장은 한국에 인접한 일본 사가(佐賀)현에 있는 규슈 전력 겐카이(玄海)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상정했다. 그 경우 일본에서 평균 132만 9000명에 대해 피난 명령이 내려질 것으로 추정됐다. 임의 피난을 포함하면 일본에서는 최대 1241만 명, 한국에서도 최대 863만 명이 피난해야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NPEC 한국 내 친북 세력의 드론 고리원전 공격 설정
이 수시 보고서를 헨리 소콜스키(NPEC 사무국장)가 요약·분석한 3월 5일자 기사(원자력 과학자 게시판)에 따르면 이 워게임은 당초 중국이 미국·한국·일본을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북한에게 한국의 고리원전을 공격하도록 요청한다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워게임 참가자 중 우파 북한 전문가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가 북한이 남쪽을 침공하는 것보다, 한국 내부의 친북 성향 세력이나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의 시나리오가 변경됐다. 즉 북한이 국경 너머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대신 한국 국내에서 띄운 드론이 고리원전을 공습하는 것으로 상정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드론을 발사한 것인지를 두고 한·미·일 3국이 혼란과 상반된 반응을 드러낼 것이라는 게 이 시나리오의 핵심 중 하나이다. 그 혼란의 와중에 중국은 대만을 침공한다는 설정이다.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법률 자문으로 활동했던 대북제재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4일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에서 방공망에 의해 요격된 드론 파편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와 연기가 석유 산업 단지 위로 피어오르고 있다. 2026. 03. 04 푸자이라 미디어 사무소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소콜스키에 따르면 3개국의 고위 안보 담당자와 원자력 규제담당 관리들을 포함한 워게임 참가자들이 처음에는 적국이 원전을 공격한다는 게 현실적인 가정인지 납득시키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원전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교전국이 방사성 물질로 인한 피해가 자국도 피해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원전을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버리게 됐다.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 담당자들은 이제 이런 전망에 대해 너무 민감하다 면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를 거부한다고 소콜스키는 말했다.
그러던 차에 2024년 12월 31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넷판에 유출된 러시아 군사 문서에서 일본의 도카이 원전 시설을 포함한 민간 인프라 공격계획이 드러나 이런 우려를 더 증폭시켰다. 또 일본의 롯카쇼 재처리시설까지 공격받아 사용후핵연료 화재가 발생한다면 체르노빌의 예닐곱 배에 이르는 대규모 방사능이 누출될 수도 있다고 소콜스키는 우려했다.
소콜스키는 이 분석기사에서 평화시에 미국과 동맹국이 원자력발전소의 취약성에 대해 계속 침묵한다면 그곳에 대한 공격의 가능성과 안보상의 충격을 더 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군다나 한국과 일본에 걸쳐 많은 대규모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가 있는데 이들 가운데 현재 유효한 방공체계나 충분한 대피계획을 갖춘 곳은 없다고 그는 평가했다.
NPEC 보고서는 미국이 러시아·중국·북한뿐 아니라 동맹국 현지에서 이뤄지는 공격까지 포함해 원전 공격 가능성을 측정하고, 이를 가정한 워게임을 정례 군사협력의 일환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미국과 동맹국은 누가 공격했는지 특정할 수 없을 가능성까지 대비해 핵시설을 포함한 민간 인프라의 능동적, 수동적 방어시스템의 견고성을 테스트해야 한다. 보고서는 이런 스트레스 테스트가 드러낼 취약점에 대한 분석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이 공공시설이 공격받을 가능성과 방어 대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주민들의 지지가 필요한 보호 대책의 능동적 주체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NPEC의 이같은 워게임 보고서와 러시아의 일본 원전 공격 계획문서를 다룬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는 국내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NPEC는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본부를 둔 비영리·비당파적 안보·핵정책 전문 싱크탱크(정책연구기관)로 1994년 헨리 소콜스키가 설립했다.임항 편집위원 hnglim8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