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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구조적 다수론 이 놓치는 것, 정치개혁과 재벌개혁

구조적 다수론 이 놓치는 것, 정치개혁과 재벌개혁
[칼럼]
지난 7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마주 앉아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끊임없이 외연을 넓혀 그런 다수를 만들고 거기서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그것이 뒷받침된다’고 덧붙였다. 닷새 앞서 유시민은 같은 노선을 재건축”이라 부르며 필패의 노선이자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지지자들이 원한 것은 3층집에 한 층을 올리는 증축인데 대통령은 집을 헐고 새로 짓는 재건축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논쟁이 불붙자 대통령 정무수석은 재건축뿐 아니라 재개발도 가능하다고 반응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직접 구조적 다수론을 펼치며 재건축 의지를 재천명했다.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가 진행된 6월 29일로부터 이틀 지난 시점에서 본인의 정치기획에 자신감을 드러낸 셈이었다. 구조적 다수론은 새로운 용어이지만 그 뜻은 낯설지 않다. 이해찬의 민주당 20년 집권론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그 방법론에 해당한다. 구조적 다수론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의 임기 내에 확실한 과반 다수의 지지를 확보해서 민주당의 20년 연속집권 구조와 토대를 만들겠다는 정치적 포부를 밝혔다. 또한 본인의 실용주의 기반 중도확장 노선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구조적 다수론을 둘러싸고 논의가 불붙었지만 대부분 증축과 재건축 비유가 함축한 정체성 논쟁을 넘어서지 못했다. 반면 이 글은 그 논의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끝까지 따져본다. 먼저 이 구상이 무엇이며 어떤 기대에 서 있는지 살피고, 그것이 정치개혁과 부딪침을 밝히고 재벌체제를 강화함을 보이며 대안을 제시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일 오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6.7.1. 연합뉴스 정당한 포부와 그 실현의 조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 과반수를 확보하겠다는 정치지도자의 열망과 포부는 얼마든지 정당하다. 우리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며 전임자의 역점 사업이 통째로 뒤집히는 것을 지겹도록 보았다. 까딱 잘못하면 국힘당의 재집권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보수 세력이 강고하기 때문에 대통령 입장에서 2년 후 총선과 대선 승리는 절박한 과제다. 나아가서 큰일에는 긴 시간이 필요한데 5년 단위 진자운동은 그 반대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민주당의 지지세는 이제야 과반에 가까운 안정적 상대다수에 이르렀다. 이것을 더 안정적인 과반 지지로 넓혀서 바람이 웬만큼 불어서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내겠다는 정치적 포부는 나무랄 데가 없다. 정치적 포부가 겨냥하는 목표는 기후위기시대와 인공지능시대, 미중패권경쟁시대의 민주주의와 민생,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민주당이 20년 연속 집권하는 것이다. 구조적 다수론은 민주당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이 찾아낸 나름의 전략 구상이다. 먼저 그 길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본인의 말에서 찾아보자. 상춘재 회동에서 대통령은 구조적 다수를 만드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끊임없이 외연을 넓히는 것과 끊임없이 성과를 내는 것이 그것이다. 외연을 넓히는 길은 이렇게 그려진다. 대통령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을 지론으로 밝혀 왔으니 왼쪽의 한 축을 끌어안고, 탈이념 실용주의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전투적인 역사전쟁을 누그러뜨리고,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중도와 온건보수 성향의 상징적 인물을 영입한다. 이렇게 중도와 합리적 보수 성향의 유권자까지 지지의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왼쪽 진보정당이 지리멸렬한 상태가 이어지리라는 전제가 이 우클릭을 뒷받침한다. 밀어붙이는 왼쪽이 약하니 안심하고 오른쪽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곧 지금의 정당지형과 정당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 자체가 구조적 다수를 만들어 낼 요인의 하나다. 성과를 내는 길은 이렇게 그려진다. 실용주의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성심껏 펼쳐서 그 성과로 지지를 넓히고 다지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 두 사람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면서까지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해 3남 지역의 첨단산업화와 균형발전 의지를 가시화한 것이 그 표현의 하나다. 실제로 구조적 다수 발언이 나온 것은 7월 1일인데, 그 이틀 전인 6월 29일 국민보고회에서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둘은 한 몸이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구조적 다수론의 경제적 토대인 것이다. 첨단 AI 산업으로 호남과 충청과 영남에 새 산업벨트를 세워 3남의 균형발전을 이루면, 그 성과가 지지로 이어져 지지기반을 넓혀 주리라는 기대다. 여기까지가 대통령이 그리는 구상이다. 이제 이 방침 안에 내적 긴장이나 장애물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외연을 넓히는 두 방향이 서로 당긴다. 조국혁신당과 합당하는 것은 약간 왼쪽을 향한 것이고, 우클릭해서 중도와 온건보수를 끌어오는 것은 오른쪽을 향한 것이다. 한 정당 안에 조국혁신당 지지층과 온건보수 영입 인사를 함께 담으면 둘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왼쪽을 품으면 중도가 부담스러워하고, 중도로 가면 왼쪽이 이탈한다. 외연을 양쪽으로 동시에 넓히려는 시도 자체에 모순이 깃들어 있다. 둘째, 성과의 시간과 지지의 시간이 어긋난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중장기 투자라 성과가 손에 잡히기까지 여러 해가 걸린다. 그런데 선거는 그 사이에 온다. 아직 오지 않은 성과로 지지를 넓히기는 어렵다. 성과로 다수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성과가 무르익기 전에 치를 선거들을 먼저 넘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국운이 걸린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그 설계자인 민주당정부가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명분이 먹힐 여지는 있다. 셋째, 더 중요하게는 성과를 내는 방법이 재벌개혁을 스스로 막는다. 국리민복의 경제성과를 재벌 투자를 통해 내려고 할수록 재벌의 협조가 필요해지고, 그럴수록 재벌을 규율하기 어려워진다. 재벌 총수에게 폴더 인사를 하면서까지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모습이 그 단면이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따진다. 정치개혁과 부딪친다 이제 유권자 지지를 권력으로 바꾸는 장치를 보아야 한다. 여기서 지금의 선거제도가 개입한다. 소선거구제 총선은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 뽑기에, 안정적 제1당에게 더없이 매력적인 제도다. 상대다수에 그친 지지를 압도적 다수 의석으로 바꿔 주기 때문이다. 제2당과 지지율이 10% 포인트 이상 벌어지면 지역구 의석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한다. 결선투표 없는 대선도 마찬가지로 과반에 못 미치는 1등을 대통령으로 만든다. 앞서 본 외연 확대와 성과로 안정적 과반에 다가갈수록, 이 두 제도는 그 지지를 의석과 권력으로 한껏 부풀린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구조적 다수를 노리는 순간, 그 정당은 선거제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 소선거구제의 최대 수혜자가 자기 발판을 스스로 허물 리 없기 때문이다. 21대와 22대 국회에서 거대 양당이 준연동형을 위성정당으로 무력화하고 선거제 개혁을 끝내 외면한 것이 그 증거다. 유권자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면 소선거구제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런 정당이 굳이 자기에게 유리한 증폭장치를 내려놓을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때가 되면 압도 의석에서 밀려나는 구조적 제2당이 비례대표제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어느 쪽이든 제1당이 먼저 선거제 개혁을 들고 나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아직은 국힘당이 소선거구제를 사수한다. 설령 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살리려고 해도 국힘당이 막무가내로 반대한다. 선거법 개정을 게임의 룰이라는 이유로 지금처럼 여야합의주의에 맡기는 이상 선거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가로막히는 것은 선거제 개혁만이 아니다. 비례대표제가 열어 줄 다당제도, 국민발안 같은 직접민주주의도, 추첨으로 뽑힌 시민의회 같은 숙의민주주의도 함께 막힌다. 왜 이 셋이 한꺼번에 막히는가. 이런 장치가 도입되면 시민이 그것으로 소선거구제 선거법부터 제대로 바꿀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시민이 서명을 모아 선거제 개혁을 국민발안으로 직접 입법하거나, 시민의회를 소집해 선거제를 숙의에 부치면, 이해당사자인 거대 양당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소선거구제를 넘어설 수 있다. 곧 국민발안과 시민의회는 양당이 쥔 선거법의 빗장을 시민의 손으로 여는 열쇠다. 구조적 다수를 노리는 정당이 이 열쇠의 도입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구조적 다수론은 비례대표제, 다당제, 그리고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라는 정치개혁의 여러 방향과 두루 부딪친다. 선거제 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는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표의 등가성을 깨뜨려 사표를 양산하고 표심과 의석의 불비례성을 키우며 거대 양당의 담합을 낳기 때문이다. 구조적 다수론은 그 불의한 제도를 자기 존립의 조건으로 삼는다. 개혁의 대상을 발판으로 삼는 것이다. 재벌체제를 강화한다 두 번째 문제는 더 무겁다. 대통령은 구조적 다수로 이루려는 목표가 있다.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양극화를 넘어서고, 한반도에 평화를 세우고, 기후 위기에 맞서고, 인공지능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목표들은 진지하고, 내가 바라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갈라지는 것은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이고, 다섯 목표 모두가 재벌체제라는 하나의 현실에서 판가름 난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무엇을 논하든 재벌체제를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민주주의를 보자. 재벌 총수는 시민이 뽑지 않았고 시민이 갈아치울 수 없는 권력이면서 경제를 넘어 정치와 행정, 사법은 물론이고 언론과 학계에까지 손을 뻗는다. 중도보수로 무게를 옮긴 다수, 성과에 정당성을 건 다수, 질 위험이 없는 다수는 이 권력과 부딪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구조적 다수가 노리는 것은 대리인들의 권력 독점이어서, 재벌의 과두 위에 정치의 과두를 한 겹 더 얹는 결과가 된다. 민생을 보자. 일과 소득, 복지가 민생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 성장이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고용 없는 성장은 양극화를 심화하고 분배구조를 악화시킨다. 세금으로 걷어 나누는 재분배는 어떤 정권도 어느 정도 하게 마련이지만, 소유와 지배 자체를 바꾸는 분배는 재벌의 이해관계와 부딪치기 때문에 아무나 못 한다. 그런데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익이 재벌과 소수에게 몰리면, 세금으로 아무리 메워도 소득 격차와 경제력 집중의 근원은 남는다. 평화를 보자. 남북 경협의 실제 주역은 대기업이고, 재벌이 통제받지 않은 채 경협을 끌면 평화의 열매도 소수에게 쏠린다. 기후를 보자. 온실가스를 많이 뿜는 산업이 다 재벌의 주력이라, 재벌을 규율하지 못하는 정권은 녹색 전환을 강제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을 보자. 그 인프라를 쥔 것이 재벌이니 폭발한 생산성의 열매는 재벌에게 쏠리고 지워진 일자리의 충격은 사회가 부담한다. 다섯이 한 곳으로 모인다. 재벌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다수는 아무리 커도 이 다섯 가운데 어느 것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다. 재벌체제를 넘느냐는 그 다수가 무엇을 딛고 섰느냐에 달렸다. 소선거구제를 지키니 정치의 과두를 못 깨고, 중도보수로 옮기니 재벌을 관리 대상으로만 보고, 왼쪽을 삼키니 소유와 이익을 나누자는 목소리가 사라진다. 구조적 다수를 이 방식으로 이루는 데 성공할수록 정작 이루려던 다섯 목표에서 멀어진다. 강해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역설이다. 그 다수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것을 떠받치는 구조에서 그리되는 것이다.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일본 자민당은 38년을 내리 집권했지만 재벌의 후신과 손잡고 철의 삼각형으로 굳었을 뿐 그것을 넘지 못했다. 반대로 스웨덴 사민당은 비례대표제 아래서 늘 연립했으며 가끔 질 때는 정권을 내주었지만 44년간 연속 집권하며 복지국가를 세웠다. 언제든 질 수 있는 구조에서 매번 이겨 낼 만큼 잘했기에 개혁이 오래갔다. 위에서 재벌에 의존해서 성과를 내는 방법이 재벌개혁을 스스로 막는다고 했는데, 이제 그 뜻이 분명해진다. 국리민복의 성과를 재벌의 투자를 통해 내려고 할수록 재벌의 협조가 절실해지고, 협조가 절실해질수록 재벌을 규율할 손이 묶인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재벌의 수천조 원 투자에 기대는 한, 그 투자를 이끌어 낸 정권이 그 재벌의 지배구조를 정면으로 겨누기는 어렵다. 성과의 크기가 클수록 재벌에 대한 의존도 커지고, 그럴수록 재벌은 규율 받지 않는 권력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재벌을 실제로 규율할 힘은 어디서 오는가. 여기서 두 가지 민주적 장치가 결정적이다. 국민발안과 시민의회다. 이 둘의 남다른 점은 재벌의 손이 닿지 않고 재벌의 손을 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재벌은 그동안 국회와 행정부와 법원에 두루 영향을 미쳐 왔지만, 유권자 1%의 서명으로 발의되는 국민발안 법안과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숙의해서 권고하는 시민의회 법안에는 로비나 후원이 통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발안과 시민의회는 시민의 손에 강력하고 최종적인 재벌 통제 무기를 쥐어 주는 장치다. 바로 그렇기에 재벌체제는 이 두 장치의 도입에 온 힘을 다해 반발할 것이다. 자기를 규율할 유일하게 손댈 수 없는 무기가 시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재벌이 반길 리 없다. 대안은 대체로 승리하지만 질 수도 있는 안정적인 제1당이다 대안이 있다. 대체로 이기되 언제든 질 수도 있는 안정적 제1당의 길이 그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우클릭으로 만든 단독 과반은 재벌체제를 넘어서지 못한다. 대안이 여기서 갈라진다. 우클릭을 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왼쪽으로 좌파 지지층이 진보정당으로,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일부가 중도정당으로 빠져 40퍼센트 초반에서 45퍼센트의 제1당에 머문다. 단독으로는 과반이 안 되니 연합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진보, 중도, 누구와 연합하든 연합은 협상을 요구하고, 협상은 권력의 독점을 막는다. 우클릭한 단독 과반이 재벌과 손잡는 과반이라면, 연합할 수밖에 없는 제1당은 왼쪽과 손잡으면 재벌을 규율하는 과반이 될 수 있다. 지금 진보정당이 3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것은 그럴 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소선거구제가 그 표를 사표로 만들어 유권자를 민주당에 인질로 붙들어 두기 때문이다.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그 표가 풀려 진보정당이 3퍼센트를 넘고 소유를 나누자는 목소리가 원내에 선다. 물론 이 대안의 전제도 불확실하다. 진보정당이 실제로 자랄지, 연합이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두 길의 불확실성은 방향이 다르다. 구조적 다수론은 전제가 어긋나도 그 시도가 재벌체제를 강화하지만, 이 대안은 전제가 어긋나도 그 시도가 정치 과두제를 완화한다. 성공하면 재벌체제를 넘고 실패해도 과두제를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남은 물음은 그 출발점을 어떻게 여느냐다. 앞서 보았듯 비례대표제와 국민발안과 시민의회는 구조적 다수를 노리는 정당이 스스로 도입할 유인이 약하다. 그러니 돌파구는 밖에서 와야 한다. 국민의힘이 영남 독점에도 불구하고 또는 영남 독점을 상실한 결과로 총선에서 한 번 더 크게 지면 비례대표제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다음 총선을 앞두고도 위성정당 같은 야바위 담합이 반복될 조짐이 보이면 시민의 분노가 대규모로 조직돼 위성정당을 포기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개헌 국면에서 추첨 시민의회를 개헌의 국민참여 절차로 제안하는 게 바람직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일단 시민의 손에 개헌 시민의회가 쥐어지면, 소선거구제를 넘고 재벌 규율의 빗장을 여는 일이 비로소 시민 자신의 몫이 된다. 대통령의 자리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의로운 선거제라는 사실은 모르지 않지만 외부에서 조르는 힘도 없는데 굳이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을 건 아닐 수 있다. 더군다나 비례대표제를 죽어라고 반대하는 국힘당을 돌려세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국민발안이나 시민의회도 국힘당이 절대 받아줄 리 없고 게임의 룰은 여야합의로 고쳐야 한다는 국힘당의 몽니에도 일리가 있다. 정치개혁의 길을 포기한 그 자리를 구조적 다수론이 채운다. 김대중이 정보화 시대에 IT 강국의 고속도로를 깔았듯, 이재명이 인공지능 시대에 3대 메가 프로젝트로 그 고속도로를 놓는 일은 옳다. 다만 그 고속도로가 낳을 부작용, 곧 재벌 쏠림과 일자리 충격과 깊어지는 격차를 극복할 방편을 함께 놓아야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선거법 개정을 직접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과 소속양당에게 맡겨서 되겠는가. 국민발안과 시민의회야말로 국민주권정부가 위대한 국민”에게 줘야 하는 가장 큰 선물이자 정치개혁과 재벌개혁의 문을 여는 열쇠다. 대만도 한 일을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나는 이재명 대통령이 주권자에게 권력을 돌려주어 20년 뒤에도 기억되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그 길은 정치개혁과 재벌개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를 정상화하고 선진화하는 길이다. 정치와 경제의 과두제를 타파하고 극복해서 모두를 위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 길을 여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어야 국운이 트인다. 대체불가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가 흉내 못 낼 초격차 산업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초격차 경쟁력은 어느 순간 따라잡히면 사라진다. 진짜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재벌도 어떤 정권도 어떤 외세도 함부로 갈아치울 수 없는 나라, 곧 시민이 스스로 주인인 나라다. 초격차 산업도 주권자의 손안에 있을 때만 나라의 것이 되고, 재벌이 사유화하면 나라까지 재벌의 손에 들어간다. 좀처럼 지지 않는 다수를 세우겠다는 포부는 정당하다. 그러나 그것을 소선거구제와 우클릭으로 이루려 하면, 그 다수는 정작 이뤄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유동적인 다수’를 보장하는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구조 안에서 언제든 질 수도 있는 다수라야 시민이 그 다수를 손에 쥐고, 함께 가는 세력과 더불어 재벌체제를 넘어선다. 주권자를 주권자답게, 대리인을 대리인답게! 우리에게 필요한 다수는 구조적 다수론이 꿈꾸는 좀처럼 지지 않는 다수가 아니라 구조적 다원성 안에서 단독으로 또는 연합하여 마땅히 할 일을 해내며 대체로 이기는 유능하고 안정적인 다수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kwaknh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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