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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설계, 박종철 덮고 강기훈 조작…훈장 세차례 받아
[사회혁신]
2026년 여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정해창(丁海昌, 1937~ ) 항목에서 가장 압도적인 사실은 그의 경력에 빠진 구멍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유신헌법 법률 정비, 대마초 연예인 단속,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은폐,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지휘. 책은 그를 TK 출신 정치검사, 6공 검찰공화국 핵심으로 활약 한 인물로 규정한다. 그런데 그 화려한 약력 끝에 붙은 상훈란을 보면 더 놀랍다. 1973년, 1987년, 1990년, 세 차례나 근정훈장을 받았다. 유신법령을 정비할 때도, 대공수사국에 있을 때도, 매번 정부는 그에게 훈장을 안겼다.   정해창 전 비서실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대신해 무교동 시그너스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율곡사업과 관련한 감사원의 서면질문에 대한 회신불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1993.8.26 연합뉴스 자료사진 1937년 경북 포항 출생, 김천중학교를 거쳐 경북고, 서울법대 수석 정해창은 1937년 11월 4일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성장했다. 아버지 정윤진은 대구사범학교 1회 졸업생으로 김천중학교 교사를 지냈다. 경북고(37회)와 서울법대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했고, 대학 4년 전 과목 A학점이라는 전설을 남겼다.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행정과·사법과에 동시 합격했다. 그의 서울법대 동기는 화려하다. 이수성(국무총리), 안우만(법무부장관), 윤영철(헌법재판소장), 최상엽(법무부장관) 등 12명이 장관급에 올랐다.   정해창(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체제 설계자 들의 무사고 경력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독일의 한스 글로프케(Hans Globke, 1898~1973)는 나치 시대 뉘른베르크 인종법의 시행 세칙을 직접 작성한 관료였다. 전후 그는 서독 정부의 비서실장급 요직까지 올랐다. 법률로 체제를 설계한 사람이 체제가 바뀌어도 살아남는 구조, 그것이 정해창의 35년 경력과 닮아 있다. 다만 정해창은 박정희에서 전두환, 노태우까지 세 정권을 모두 무사히 건넜다.    한스 글로프케(위키피디아) 1972년 유신헌법 법률 정비, 별 승진의 첫 단추 정해창의 반헌법 행위의 출발점은 1972년 유신체제 법률정비 작업이다. 법무부에 파견된 그는 비상국무회의를 통해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을 개정하는 실무를 맡았다. 핵심은 구속적부심사 폐지와 검찰 인사권의 대통령 귀속이었다. 박정희는 이를 통해 검찰을 확실히 장악해 민주세력 탄압의 도구로 썼다. 1973년 4월, 정해창은 이 공로로 검찰과장에 특별 승진했다. 같은 해 황조 근정훈장도 받았다.   정해창(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76~1977년 대마초 단속, 풍기문란 단속이라는 통제술 서울지검 형사3부장 정해창은 1976년 윤형주, 김추자, 신중현 등 유명 연예인 다수를 포함한 1104명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적발했다. 박정희는 대마초 흡연자에게 현행법 최고형을 적용하라 고 직접 지시했다. 위법의 심각성에 비해 과장된 단속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유신체제는 이런 풍기문란 단속을 통해 국민에 대한 통제력을 과시했다.   1975년 12월 4일자 경향신문 갈무리 1977~1978년 중앙정보부 파견, 8개월의 침묵 정해창은 1977년 6월부터 8개월간 중앙정보부 제2수사국장으로 파견됐다. 김기춘(1939~ )이 1국장, 정해창이 2국장, 백광현이 3국장을 맡았던 시기다. 이 8개월간 어떤 사건을 담당했는지는 본인도, 어떤 기록도 전혀 언급이 없다. 가장 어두운 시기일수록 가장 깨끗한 침묵이 남았다.   법비 중의 법비 , 김기춘 ⓒ연합뉴스 1981년 검찰국장, 시위전력자 사법시험 탈락 공작 법무부 검찰국장이 된 정해창은 1981년과 1982년 사법시험 면접에서 안기부가 기안하고 전두환이 결재한 시위전력자 불합격 방침 에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다. 신상한 등 10명이 시국 시위 전력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졌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를 국가권력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규정했다.   정해창(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2년 법무부 차관, 변호사 태윤기 제명, 안기부의 청부 징계 정해창은 1983년 법무부차관으로서 재일한국인 간첩사건 변호의 명수였던 태윤기 변호사 제명 징계위원장을 맡았다. 태윤기가 대법원 무죄와 파기환송을 잇따라 끌어내자, 안기부는 그가 판결문을 가족에게 전달한 것을 문제 삼아 제명을 요구했다. 변호사법상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이 맡아야 했는데도 차관이 맡은 것 자체가 위법이었다. 이를 명령한 안기부와, 이를 집행한 정해창 모두 사법정의보다 권력의 요구를 우선했다.   태윤기 변호사(위키백과) 1986년 대검 차장, 부천서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지휘 정해창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1986~1987년 대검 차장 시절이다. 부천경찰서 경장 문귀동의 성고문 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두 개의 대형 인권침해 사건의 은폐·조작 결정에 참여하고 이를 검찰에 전달·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1987년 5월 박종철 사건 은폐 문책인사에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던 정해창은 오히려 법무부장관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 초기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6월 항쟁 33주년을 맞은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2020.6.10 연합뉴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지시 정해창의 가장 결정적인 반헌법 행위는 1990년 12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뒤다. 1991년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이 분신하자, 정해창은 치안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분신의 배후가 있는지 수사하라 고 지시했다. 그 지시가 강기훈(1964~ )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시작이었다. 강기훈은 2015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4년 만이었다.   김기설씨 유서 대필 및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된 강기훈씨(당시 27세)가 1991년 10월 23일 공판이 열리는 법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수습, 마지막까지 권력의 편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정해창은 전 안기부장 서동권, 전 청와대 사정수석 김유후와 함께 뒷수습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권력의 위기마다 그가 등장했다.   국민 공분 산 비자금 4,000억원…YS에게 3,000억, DJ에게 20억 : 서울경제, 2021.10.26.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한스 글로프케 같은 체제 설계자 들의 무사고 경력은 가장 위험한 역사의 패턴으로 가르쳐진다. 법률과 제도를 설계하는 능력이 어떤 정치체제에도 봉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능력 때문에 체제가 바뀌어도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정해창의 35년을 떠올렸다. 유신을 설계하고, 박종철을 덮고, 강기훈을 만든 그 손이, 단 한 번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훈장만 세 번 받았다. 그것이 한국 공안검찰 카르텔의 가장 정직한 자화상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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