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사랑의 정치와 평화를 실천한 사내 [사람들] 기원전 5세기 중국대륙,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가 세상을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이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잡아먹으려 이빨을 드러내던 춘추전국시대 한복판에 묵자(墨子, 기원전 480?~기원전390?)라는 이름의 사내가 등장한다. 성은 묵(墨), 이름은 적(翟)이라 전해지는데, 정작 그가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는지는 안개 속이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이 사내,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묵자(위키피디아)
유가와는 다른 길을 걷다
당대 최고학파는 단연 유가였다. 그런데 묵자는 처음엔 유가를 공부하다가 이내 등을 돌린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가의 사랑은 차등이 있는 사랑이었다.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가까운 이와 먼 이를 구별해서 사랑하라는 게 유가의 가르침이었는데, 묵자는 이걸 별애(別愛), 즉 편 가르는 사랑이라 불렀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섰다.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라.
이게 그 유명한 겸애(兼愛)다. 겸애는 그냥 착하게 살자는 훈계가 아니었다. 묵자는 여기에 계산을 붙였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게 결국 나를 이롭게 하는 길이라는 것. 요즘 말로 하면 서로 손해 보지 않는 셈법이다. 그리고 이 겸애의 논리적 짝이 바로 비공(非攻)이다. 침략전쟁은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것. 다만 묵자는 순진한 평화론자는 아니었다. 남이 쳐들어오면 맞서 지키는 건 인정했다. 그는 침략은 반대했지만 방어는 옹호한 실천가였다.
전서(위)와 해서로 쓴 묵자(墨子) (위키피디아)
말로 그친 게 아니라 열흘 밤낮을 걸었다
묵자의 진가는 이론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난다. 초나라가 송나라를 치려고 공격기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자, 묵자는 열흘 밤낮을 걸어 초나라 도읍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기계를 설계한 기술자 공수반(公輸班, 기원전 507?~기원전444?)과 마주 앉아 허리띠를 풀어 성벽모형을 만들고 나뭇조각으로 공격과 방어를 아홉 번 겨뤘다. 공수반이 아홉 번 공격법을 바꿔도 묵자는 아홉 번 다 막아냈다. 궁지에 몰린 공수반이 너를 없앨 방법은 있다 고 으름장을 놓자, 묵자는 태연히 답했다. 내 제자 삼백 명이 이미 송나라 성벽에서 방어 채비를 마쳤다. 결국 초왕은 송나라 공격을 접었다. 말로 설득이 안 되니 실력으로 보여준 셈이다.
공수반(公輸班, Gongshu Ban)의 조각상(鲁班与公输般是同一个人吗_传说)
조직된 사랑, 묵가 집단
묵자의 사상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말만 남긴 게 아니라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묵가집단은 거자(鉅子)라 불리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엄격한 규율 아래 움직였다. 구성원들은 검소하게 살고, 노동을 천시하지 않았으며,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지키러 직접 몸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지식인 대부분이 귀족과 왕을 상대로 말을 팔던 시절, 묵가는 농민과 수공업자, 전쟁으로 살 곳을 잃은 사람들 편에 섰다. 한때는 유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세력이 컸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진시황(秦始皇, 기원전 259~210)이 천하를 통일하고 사상을 획일화하면서 묵가는 급속히 자취를 감춘다. 본래 71편이었다는 『묵자』는 절반가량만 남았고, 겸애와 비공을 외치던 목소리는 2000년 넘게 묻혔다.
19세기에 그린 진시황 상상도(위키피디아)
지금 한국이 새겨볼 대목
여기서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묵자는 사랑을 감상이 아니라 조직으로 만들었다. 옳다고 믿는 걸 말로만 떠들지 않고, 몸을 움직여 지키는 실천으로 옮겼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때 국회담장을 넘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모습이 묵자의 제자 300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말뿐인 정의감이 아니라 발로 뛰는 연대, 그게 위기를 막는다.
또 하나, 묵자는 혈연과 진영을 넘어선 사랑을 주장했다. 요즘 한국 정치판을 보면 내 편은 무조건 감싸고 남의 편은 무조건 흠집 내는 별애의 풍토가 여전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권과 반칙을 봐주는 온정주의도 마찬가지다. 묵자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 사랑, 정말 모두에게 공평한가?
진영을 넘어선 원칙, 편 가르지 않는 잣대야말로 지금 한국사회가 묵자에게서 빌려올 만한 낡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가르침이다.
묵자 의 한 페이지(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