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중국의 그물에 갇힌 러시아 경제 [국제]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경제는 중국으로 방향을 빠르게 틀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서방의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러시아 시장은 나름의 문제가 있었음에도 비교적 다변화되어 있었다. 기계 장비와 식품, 약품, 의류, 소프트웨어 등은 유럽, 일본, 미국, 한국, 중국에서 들여왔고 자동차 산업은 여러 글로벌 기업에 의존했으며 수출입 경로도 역시 다양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강력하게 진행되면서 예전 무역 루트는 다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판이 크게 바뀌었다. 이제 중국은 단순한 최대 파트너를 넘어서 상품, 기술, 부품, 물류를 제공하는 사실상 러시아의 유일한 공급자가 되었다. 자료 해석 방법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중국 의존은 어떤 분야에서 50% 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이 주장하는 동방 정책 이라기보다 국가 경제가 아예 재편되는 과정에 더 가깝다. 그것도 좋은 쪽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4일 러시아 러스키 아일랜드에 있는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린 제17회 러중 정부간 에너지협력위원회 회담에서 중국의 딩슈에샹 국무원 제1총리와 알렉산더 노바크 러시아 부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2026.9.4. 타스=연합
공장 기계와 부품 80% 이상을 중국으로부터 수입
이런 의존 현상은 여러 분야에서 엿볼 수 있다. 산업 분야가 대표적이다. 금속 가공 기계나 다양한 공장 기계 분야에서 중국산 수입 비중은 70%를 넘는다는 자료가 많다. 전체 외국산 장비를 기준으로 하면 러시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3~84%에 달한다. 그것도 러시아 산업은 완성된 중국산 기계뿐만 아니라 자체 생산을 위한 핵심 부품까지 중국에서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자기 힘으로 생산하는 것이 있긴 하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예전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들여오던 것들이 전부 다 중국산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일반 ‘파트너’ 관계 수준을 훨씬 넘은 수준이다.
자동차 산업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르노, 닛산, 폭스바겐, 벤츠, 도요타가 소유했던 러시아에서의 공장들은 이제 대부분 중국 자동차나 중국 플랫폼 기반의 차를 생산하기 위해 재가동되었다. 가끔 러시아 브랜드를 달고 팔리기도 하지만 새로운 엠블럼 뒤에는 똑같은 중국산 반조립 부품, 엔지니어링 기술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은 생산을 빠르게 재개하고 시장에 차를 채워 넣는 데는 유용할 지 몰라도 국산화 비율은 여전히 바닥 수준이고 중국산 자동차는 ‘수입’이 아니라 ‘대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다. 핵심 부품, 전자 장비, 엔진 등은 대부분 중국에서 들어온다. 수년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정부의 국산화 및 수입 대체 프로그램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제는 단순히 중국산 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는 러시아 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입뿐 아니라 석유 수출 등도 중국에 절대적 의존
중국과 거래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현대 경제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나라는 없다. 진짜 문제는 선택지 가 사라질 때 발생한다. 단일 공급자가 장비, 예비 부품, 기술의 주요 출처가 되면 그들은 가격, 납기, 품질, 서비스 등의 거래 조건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러시아 공식 선전 매체들은 이를 ‘성공적인 수입 대체’라고 포장하며 대중들에게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존의 대상과 의존의 수준이 바뀌었을 뿐이다. 유럽과 일본 기술이 중국 기술로 대체되었을 뿐, 제대로 된 자체 생산 능력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이러한 의존은 수입뿐만 아니라 수출 측면에서도 치명적이다. 러시아는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 이상으로 자국의 핵심 수입원인 석유와 가스를 사 줄 구매자로서 중국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2022년 이후로 서방 시장을 잃은 러시아는 막대한 할인을 감수하면서까지 에너지를 중국에 팔고 있으며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 같은 주요 프로젝트에서도 가격 협상권은 철저히 중국이 쥐고 있다.
여기에 금융 분야의 의존도 역시 심화되고 있다. 서방의 금융 제재 이후 러시아는 대외 무역 결제의 대부분을 위안화로 전환했다. 국가 국부펀드와 외환보유고의 상당 부분도 위안화로 채워넣고 있다. 이는 러시아 경제가 중국의 통화 정책과 금융 시스템에 고스란히 종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안 좋은 양상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시베리아 힘 가스관이 중국으로 연결되는 동부노선 가운데 지린성 창링과 허베이성 융칭을 연결하는 구간이 3일부터 개통된 가운데 융칭 지역 가압소의 직원이 시설물을 살피고 있다. 2020.1.2. 스좌좡 신화=연합뉴스
소비재는 팔면서도 생산시설 투자에는 조심스러운 중국
중-러 관계는 진정한 산업 파트너십보다 단순한 중국 시장 확장에 더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중국은 러시아에 기꺼이 장비, 자동차, 소비재를 팔지만 러시아 내에 제대로 된 생산 시설을 짓는 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러시아에 쌓인 중국의 직접 투자액은 160억 ~ 175억 달러 정도인데 이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전체 해외 투자 규모에 비하면 미세한 수준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러시아가 미래가 불확실하고 제재 위험과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을 가진 시장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오랜 기간 자본을 묶어두고 각종 위험을 감수하며 현지 공급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경제적인 이유도 크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잉여 생산 능력을 활용해 완성품을 수출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 굳이 인력도 부족한 러시아에 공장을 지어 잠재적인 경쟁자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런 논리를 여러 분야에서 엿볼 수 있다. 온라인 플랫폼 거래는 특히 뚜렷하다. 최근 몇 년간 러시아 내 중국계 기업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2월 1434개였던 중국계 법인이 2026년 2월 기준 1만 4798개로 늘어났다. 중국 기업들은 주로 전자상거래와 도소매업에 집중하고 있고 제조업의 비중은 거의 없다.
중국은 러시아의 창고나 상업용 부동산을 사들이는 대신에 현지 플랫폼의 인프라를 빌려 쓰는 방식을 선호한다. 물류와 보관, 최종 배송은 러시아 회사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우크라이나의 지속적인 러시아의 산업 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과 같은 맥락에서 자산 소유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위험은 러시아가 떠안고 상품 판매 수익과 공급망 통제권은 중국 제조업체와 판매자들이 가져가는 구조다.
어느새 중국의 ‘동생’이 되어버린 한 때의 형님
물론 러시아에게도 이런 의존에 따르는 단기적인 장점도 있다. 중국산 공급은 서방 기업들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주었다. 그래서 일상용품 품귀 리스크를 줄이고 산업 현장에 장비를 공급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중국이 없었다면 2022년 이후 겪었을 경제적 충격은 아마 훨씬 컸을 것이다.
12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8회 BRICS 정상회담 기념식수 행사에서 모디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환담하고 있다. 2026.9.12. EPA/스푸트니크=연합
하지만 이런 의존이 러시아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기계, 교통, 전자제품, 소비 시장, 물류 등 여러 분야에서 단 하나의 외부 공급자에게 의존하는 나라, 원자재를 단 하나의 구매자에게만 파는 나라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발전과 개선의 여지를 사실상 없애는 것이다.
2000년대에 러시아 언론에서는 중국을 ‘우리 아시아 동생’이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어떤 지수를 봐도 거의 모든 측면에서 러시아가 중국의 ‘동생’이 되어 버렸다. 러시아 정부를 비판하는 러시아 진보 언론은 이 상황을 공격 포인트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전쟁이 아직 안 끝나고 그 이후에 러시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중국에 대한 이런 과도한 의존은 앞으로 몇 년, 몇 십년 동안 러시아의 발전에 있어서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교수 abnormal.ily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