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명품을 택하는 삶 [칼럼] 1.5달러짜리 패딩, 인생의 터닝 포인트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패딩을 하나 발견했다. 부드러운 솜털과 깃이 가득한 패딩. 가격표를 뒤집어 확인해보니 1.5달러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 내가 여기에 올 때 지하철 교통카드에 3.5달러 정도가 찍혔는데, 넌 어떻게 지하철 요금보다 싼값으로 여기에 온 거니? 이게 가능한가?” (19쪽)
싼 가격에 ‘득템’하는 재미에 푹 빠져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던 저자의 일상에 값싸고 세련된 ‘1.5달러짜리 오리털 패딩’이 돌멩이처럼 날아와 박혀 균열을 낸다. 습관성 쇼핑이 덜그럭거리기 시작한다. 값싼 패스트패션 산업에 숨겨진 충격적인 이면을 알게 된 저자는 익숙했던 소비를 멈추고 삶의 방향을 튼다. 1.5달러짜리 패딩 앞에서 누구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전환이 놀랍다. 기후위기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 해양환경단체 활동가로서의 경험이 세상을 조망하는 부감의 시야를 키웠을 것이라 짐작된다.
패스트패션, 일회용품이 된 값싼 옷들
과거의 패션은 정체성이자 신분이었다. 입은 옷과 장신구를 통해 사람의 지위를 드러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패션은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개성의 표현이 되었다. 누구나 다양한 옷을 값싸게 사 입는다. 유튜브에는 쇼핑 하울(haul: 흥청망청하기, 사치 부리기) 영상이 넘친다. 옷 100만 원어치 샀습니다.”라는 식의 영상들마다 조회수가 여섯 자릿수 이상이다. 드디어 ‘패션의 민주화’를 이룬 건가?
‘패스트패션’이란 단어는 패션업체의 리드타임(lead time: 디자인에서 판매까지 걸리는 시간)이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획기적으로 단축되었다는 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1989년 스페인의 패션그룹 자라(ZARA)가 최소 6개월씩 걸리던 리드타임을 2주로 단축하면서 이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가히 혁명적인 생산력이었지만 폭발적 자원 낭비와 오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자라의 패스트패션 속도는 곧 따라잡혔다. 새롭게 등장한 브랜드들(아소스, 부후, 쉬인 등)이 더 빠른 속도로 옷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쉬인의 리드타임은 불과 5일, 하루에만 6000종을 만든다.
사람들은 갈수록 옷을 더 자주 사고, 짧게 입고,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버린다. 섬유 쓰레기의 증가는 패스트패션 시장의 성장에 비례한다. 매년 5600만 톤의 옷이 전 세계에서 팔리고, 동시에 매년 9200만 톤의 옷이 쓰레기로 버려진다(2020년 기준). 수천만 톤을 체감하기는 쉽지 않으니 감지할 만한 크기로 줄여보자. 매년 9200만 톤이라면 매초 트럭 한 대 분량이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째깍 째깍 초침이 1초씩 움직일 때마다 옷 한 트럭 분량이 쓰레기가 되고 있다. 이제 좀 실감이 나는가?
통계는 현상을 압축적으로 수치화하는 데 유용할지언정 개개인의 삶에 실감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세계 물 소비량의 20%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거나 지구에 배출되는 탄소의 10%가 패스트패션 산업에서 나온다”는 말을 들어도 나와 무관한 이야기 같다. 통계화된 수치는 개인의 행동과 책임을 가린다. 관계있는 것끼리 선으로 이으시오 학교에서 내준 문제지의 명령처럼, 나는 나의 욕망, 선택, 행위들과 통계화된 결과 사이에 선을 긋는다. 문제로부터 쏙 빠져나와 멀찌감치 서서 말하지 않고 내가 그 선의 출발점에 있는 당사자임을 인정한다. 이 책의 저자가 1.5달러짜리 패딩 앞에서 일상의 관성에 브레이크를 걸고 방향을 틀었던 건, 원인과 결과 사이의 선 긋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알고자 하는 마음,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 그리고 감춰진 세상을 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패스트패션의 약자 착취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8층짜리 라나플라자 건물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건물 벽에 금이 가고 누수가 일어나며 붕괴 조짐이 보이자 불안해진 노동자들은 건물로 들어가길 망설였다. 건물주는 건물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했고, 공장장들은 당장 일을 시작하라고 노동자들을 윽박질렀다. 대량 선적 물량 마감이 닥쳤다. 당장 들어가 일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 3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재봉틀 앞에 앉은 지 한 시간 후, 건물은 무너졌다. 1138명이 죽었고, 2500여 명이 다쳤다.
방글라데시 가지푸르의 한 공장 재봉실에서 방글라데시 힌두교 의류 노동자가 옷을 만들고 있다. 2025.4.9. 로이터 연합뉴스
패스트패션 회사들(베네통, 망고, 프라이마크, 월마트 등)이 싼값에 빠르게 옷을 뽑기 위해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의 공장에 주문서를 밀어 넣으면, 주문을 수주하려는 공장들은 경쟁적으로 저렴한 제작비를 제시한다. 밀려드는 주문량을 촉박한 일정에 맞추려면 가난한 노동자들을 쥐어짜야 한다. 개발도상국 의류 노동자의 80%가 18~35세 여성이다. 이들은 주당 70~80시간 이상 일한다. 글로벌 패션 회사들은 생산 기간 단축과 낮은 가격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현지 공장은 노동 착취와 불법 하청을 밥 먹듯 한다. 착취가 곧 이윤”이 된다.
우리가 버린 헌 옷은 어디로 갈까
입지 않는 옷을 초록색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며 이 옷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 잘 쓰이겠지, 막연히 기대한 적이 있다. 그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수년 후 KBS 환경스페셜 (2021)를 보고 깨달았다. 수거된 옷의 95%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는데, 그중 극소량을 제외한 대부분이 쓰레기가 되어 땅과 강에 방치된다. 쓰레기 관리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생태계가 파괴되고 마을이 황폐화한다. 케냐의 강둑은 의류 쓰레기로 뒤덮이고, 칠레의 사막에는 수만 톤의 헌 옷이 쌓여 있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의 강변에는 뼈만 남은 소들이 풀 대신 옷을 씹는다. 강은 헌 옷 쓰레기로 메워져 죽음의 강이 되었다. 강물과 강가에서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사라진 지 오래다. 햇빛에 장시간 노출된 합성섬유에 불이 붙고, 연기와 함께 뿜어져 나온 독성물질이 하늘을 뒤덮는다. 패스트패션으로 돈을 버는 기업과 수시로 옷을 사면서도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우리가 만든 지옥도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패스트패션 자본의 속도전과 쉴 새 없이 파괴하고 죽이는 전범 국가의 폭력성이 많이 닮았다. 그들이 압도적인 물량과 압도적인 폭력을 퍼붓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그들의 이익은 그들만의 이익이다. 옷을 빠르게 사 입고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그 옷을 다시 빠르게 버리는 우리의 이익도 아니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 어린이들과 여성들의 이익도 아니다.
옷을 일회용품으로 만들기 위한 기업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다. (…) 소비자들이 물건을 빨리 버리고 새로 구매하게 하려는 의도, 다시 말해 ‘계획된 진부화’의 결과인 것이다.” (84쪽)
옷뿐만이 아니다. 디자인이 바뀌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신상’의 광고가 뜨면 구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 물건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의도적으로 제품의 물리적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부품만 교환해도 될 제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계획된 진부화’다. 진부화 전략은 자본이 밀어내는 상품 대부분에서 작동 중이다.
소비 대신 선택하는 다른 삶
나는 옷을 사지 않는다. 200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았으니 벌써 18년째다. 저자처럼 패스트패션 산업의 문제를 알고 한 의식적 결행은 아니었다. 손수 바느질해 옷을 만들고 헌 옷을 고쳐 입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새 옷이 필요 없게 되었다. 몸 하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옷이든 물건이든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게 번거롭다. 나는 삶을 간결하게 유지하고 싶다.
어려서는 언니들의 옷을 물려 입었고, 이삼십 대에도 비싼 옷이나 장신구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비싼 가방, 화려한 옷들, 반짝이는 전자제품이 탐나지 않는다. 옷이든 물건이든 손때 묻혀 닳도록 쓰는 게 좋고, 친구들이 선물해준 사연이 있는 물건을 사랑한다. 흔히들 유명 브랜드의 고가품을 ‘명품’이라 하지만 나는 정성 들여 손수 만든 물건이 진짜 ‘명품’이라 여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옷장에 잠들어 있는 티셔츠와 청바지도 오래오래 입을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패션이지, 폐페트병으로 티셔츠나 청바지를 만들기 위한 물 절약 공정 과정이 아니다.” (219쪽)
책의 8장에 소비 외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삶의 모습” 6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1) 미니멀리즘 : 삶에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자신에게 집중하기.
2) 과시적 비소비 : 비소비, 환경보호, 비건 지향 같은 개인적 실천을 과시하기.
3) 반소비주의 : 물건 수리, 재능 교환, 소비를 줄이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4) 수리할 권리 : 수리 대신 새 제품 교체(구매)를 권유하는 마케팅에 저항하기.
5) 리페어 컬처 : 물건을 고치고 아껴 오랫동안 즐겨 사용하는 문화.
6) 미닝 아웃 : 신념(meaning)을 대외적으로 밝히기.
저자가 제시한 위 여섯 가지 중 1, 3, 4, 5번은 내게 ‘평범한 일상’이다. 2, 6번은 노력이 필요하다. 태생적으로 과시가 불편하고, 대외적 드러냄이 성정에 맞지 않은 탓이다. 저자는 강연, 방송 출연, 환경단체 활동, 책 쓰기 등으로 ‘미닝 아웃’을 실천한다. 내가 신념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통로는 주로 글이다. sns를 통해, 책을 통해, 그리고 이 서평을 통해. 이것이 소극적인 나의 ‘미닝 아웃’이다.
우리가 아무리 버려진 페트병이나 방수천으로 만들어진 티셔츠나 가방을 사며 ‘지구를 위하고 있다.’는 심리적 위로감에 젖는다 해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8톤 트럭처럼 속도를 붙이는 패스트패션과 트렌드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친환경적 소비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유행과 소비의 텀이 빠르게 돌아가는 한 ‘제로웨이스트 패션’이나 ‘의식 있는 소비’ 따위는 맥을 추리지 못한다.” (40쪽)
김혜형 작가·농부 asstillwater@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