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통신진흥법 개정 계기로 80년 언론학살 청산해야 [뉴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은 1980년 7, 8월에 1000여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켰고, 같은해 12월에는 신문·방송·통신사를 강제로 통폐합했다.
1980년 7월 31일 신군부(계엄사령부 및 보안사)는 각 언론사에 자율 정화 라는 명목으로 해직 대상자 명단을 전달하고 즉각 처리를 강요했다. 이 지침에 따라 8월 10일을 전후해 전국 신문·방송·통신사에서 1천여 명에 가까운 언론인이 일시에 강제 해직됐다.
해직된 언론인들은 단순히 직장을 잃은 데 그치지 않고, 신군부의 블랙리스트 에 올라 수년간 타 언론사 재취업이 금지되었으며, 취업 제한과 경찰·보안사의 감시 속에서 극심한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언론사 강제 통폐합은 1980년 11월 12일 각 언론사 사주 및 대표들을 보안사로 불러 언론사 포기각서와 주식 양도각서 작성을 강요하면서 본격화했다. 신군부는 같은달 25일 신문방송협회 등으로 하여금 언론 자율정화 및 구조개편 결의문 을 발표하도록 압박했다.
이어 12월 1일 자로 동양방송(TBC)과 동아방송(DBS) 등이 KBS로 강제 흡수 통합되었고, 민영방송이던 MBC의 지분(65% 또는 70%)이 KBS로 넘어가며 공영방송 체제로 강제 개편됐다.
통신사 역시 동양통신과 합동통신 등이 강제 흡수·통합되어 연합통신(현 연합뉴스) 으로 출범하게 됐다.
언론인 1천여명(2천명, 3천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음)의 강제해직, 언론사의 강제 통폐합은 전무후무한 폭거였다. 전두환 신군부 일당의 한국 언론 학살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언론 학살 사태는 2010년에 와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 조사를 통해 국가 권력에 의한 불법적이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 및 언론 탄압으로 규정됐다.
무려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국가 권력이 자행한 불법행위로 결론짓고 국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20일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80년 언론인 강제해직의 역사재판 국민대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오른쪽 넷째부터 조경태 의원, 조정식 국회의장, 김재홍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정근식 서울교육감, 전진숙 의원, 정진욱 의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1기 진화위)가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에 대해 최종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발표한 시점은 2010년 1월 7일이었다.
당시 결정의 주요 경과는 다음과 같다.
진화위는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탄압이 국가 권력에 의한 대표적인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이자 역사적 규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하여, 2007년 11월 20일 직권조사 개시를 결정했다.
약 2년 2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2010년 1월 7일 공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결정 핵심 내용은
1. 1980년 언론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 해직은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저지른 불법행위임을 명확히 확정했다.
2. 신군부가 적법 절차 없이 강압적으로 언론사 재산 및 주식을 포기하게 한 점, 언론인을 강제 해직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취업까지 막은 점의 위법성을 규명했다.
3. 이에 따라 국가는 피해자들과 언론사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명예 회복과 손해 배상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 고 정부에 공식 권고했다.
국가가 외면한 언론 학살의 잔혹사…언론계도 소극적 대응
신군부의 국가폭력에 맞서 피해 언론인들과 몰수당한 언론사 사주 및 유족들이 명예 회복과 재산권 반환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했으나, 법원과 정부의 미온적 태도로 인해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88년 올림픽을 전후하여 해직 언론인 복직 논의가 일었으나, 국가나 언론사 차원의 완전한 명예복직(원직 복직 및 부당해고 기간 임금 보상) 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당수 언론사들은 강제 해직의 불법성을 인정하여 복직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규 채용 또는 ‘경력직 재입사’ 형태를 취했다.
이로 인해 해직 기간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함으써 까마득한 후배들과 같은 기수로 재입사하거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로 복귀하는 등 실질적인 피해 보상은커녕 또 다른 차별을 겪어야 했다.
성향이나 투쟁 강도에 따라 상당수 언론인들은 아예 언론계로 돌아오지조차 못했다.
주식·재산권 반환 소송과 ‘소멸시효’의 벽
1980년 통폐합 당시 강제로 주식과 언론사를 빼앗긴 민간 사주 및 기업들(동양통신을 소유했던 두산그룹, 동양방송의 삼성, 기타 지방 신문사 등) 역시 민주화 이후 국가를 상대로 주식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잇따라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강제 양도)였음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민법상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10년)나 취소권 행사 기간이 이미 지났다 는 이유로 소멸 시효 완성에 따른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 소유주 고(故) 김지태 선생의 유족들은 언론 학살에 대한 진화위 결정(2010년 1월) 직후인 2010년 6월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강제 헌납된 주식(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 주식 등)을 돌려달라며 민사 소송(주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강압에 의해 주식을 넘겨준 불법행위는 인정된다 면서도, 민법상 취소권 행사 기간(10년)과 제척기간 및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 는 이유로 유족 측 패소 판결을 내렸다.
국가폭력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시효 경과를 이유로 또 다시 패소 판결한 것이다.
위법성은 인정되지만 시효가 경과됐다는 판결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제기됐다. 국가가 저지른 위법 불법 행위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책임을 묻는다면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는 엄밀히 말해 행정부를 뜻한다. 다시말해 행정부의 불법 행위를 사법부가 견제하기는커녕 옹호하고 감싸도는 행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3권 분립 중 행정부와 사법부를 제외한 입법부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주목받게 됐고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물론 특별법 제정에는 지지 여론이 뒷받침돼야 했고, 이는 제4부 언론이 떠맡아야 할 몫이었다.
1988년 제정된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과 2003년 제정된 뉴스통신진흥회에관한법률(뉴스통신법)은 입법부와 언론이 합작해 거둔 대표적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항쟁을 계기로 언론 분야에서는 MBC 정상화가 우선 순위로 떠올랐다. 입법부에서는 방문진 법을 제정하고 법 부칙 제2조(경과규정)에 전두환 정권이 불법적으로 KBS에 넘겼던 MBC 지분을 방문진에 무상 출연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방문진은 MBC 지분 70%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민영방송사였던 MBC가 가장 신뢰받는 공영방송 중 하나로 우뚝 서게 된 데에는 자본주의 논리를 뛰어넘는 ‘무상 출연’ 이라는 법적 조치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MBC 주식의 법적 소유자였던 KBS 측이 끝까지 유상 양도를 고집했다면 방문진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막대한 비용으로 방문진 창립이 좌절됐을지도 모른다.
방문진 전례…신문·방송사 지분 뉴스통신진흥회에 무상 출연하도록
연합뉴스는 MBC의 사례에 따라 특별법 제정으로 전두환 정권이 쌓아놓은 폐해를 청산하고자 했다. 방송법에 대응하는 뉴스통신진흥법을 만들고, 뉴스통신법 안에 방문진에 대응하는 뉴스통신진흥회를 두도록 했다. MBC와는 똑같은 주식회사 형태이고 1대주주가 특수공익법인이라는 점도 공통적이다.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방문진은 지분이 70%인 데 비해 뉴스통신진흥회는 30.77%에 불과하다. 방문진은 명실이 상부한 대주주이지만, 뉴스통신진흥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30% 지분이면 우호지분 확보로써 대주주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강제로 불법적으로 만들어놓은 ‘이상한 주식회사’에서는 한갓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이다.
뉴스통신법 제정 과정에서, 과거 방문진 사례를 들어, 두 공영방송사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연합뉴스 지분 74.5%를 무상으로 출연해주길 원했지만 씨알도 안먹혔다. 두 방송사가 합쳐 51% 지분이라도 내놓으라고 했지만 과거 두산과 쌍용으로부터 넘겨받은 지분에도 미치지 못한 30.77%를, 그것도 유상으로 양도하고선 그걸로 끝이었다. 지난 1988년 무려 70% MBC 지분을 무상으로 주고받은 일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똑같이 불법적으로 취득한 주식을 한 쪽에서는 무상으로 주고받고 한 쪽에서는 유상으로 양도받고, 그것도 일부만을 양도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공평한 처사가 아니다.
최근들어 뉴스통신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정안이 네 건이나 발의될 정도로 입법부의 관심이 크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대체 무엇을 위한 개정이냐는 것이다. 개정안을 보면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수를 늘려 정치권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대표이사 선출 절차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연합뉴스 노조 측에서는 재정 안정성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들은 개정안에 담겨야 할 주요 사안이라고 보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다. 연합뉴스가 당면한 핵심 문제는 정상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뉴스통신진흥회의 과반 지분 확보를 위한 주주 변경이다.
뉴스통신진흥회는 과반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 있으나 그 권한은 막강하다. 대표이사, 이사, 감사 추천권(사실상 선출권)에다 연합뉴스 경영 감독권까지 갖는데 상식적으로 볼 때 정상적인 지배구조가 아니다. 지난 2003년 뉴스통신법 제정 당시 ‘중간 단계 해결’이라고 자평했던 것은 향후 법 개정을 통해 뉴스통신진흥회를 명실상부한 대주주로 만드는 것, 정상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것이 법 제정의 완결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뉴스통신진흥회를 대주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주주사인 방송사와 신문사의 지분을 뉴스통신진흥회로 옮겨야 한다. 뉴스통신진흥회를 제외한 방송 신문 주주사들의 지분은 불법적으로 취득한 데다 언론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주주로서의 자격도 없다. 불법 취득 지분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본다. 주주로서의 자격 상실이란,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매체 융합이 이뤄지고 있으며, 매체 융합의 방향은 신문 방송 매체의 통신 매체화이고, 이런 새로운 언론 환경에서 연합뉴스와 연합뉴스 주주사들이 경쟁관계, 달리 말해 이해충돌의 관계에 놓이게 됐으므로 더 이상 주주로서 자격을 가질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현재 신문 방송사가 연합뉴스 주식의 70%가량을 갖고 있는데, 비유하자면 반도체업체로서 서로 경쟁관계인 H사가 S사의 지분 70%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분 구조를 가진 주식회사를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이런 비정상적 주식회사가 존재하기나 할까.
누가 이렇듯 비정상적인 지배구조를 갖게 만들었나? 다름아닌 전두환 정권, 전두환 정부였다. 따라서 진화위에서 권고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은 연합뉴스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적절한 조치란, 주주 자격을 상실한 신문 방송사들이 불법적으로 취득한 지분을 뉴스통신진흥회에 내놓게 하는 것이다. 방문진 사례처럼 개정 법 부칙에 무상 출연 규정을 두는 게 가장 무난한 방식이라고 본다. 신문 방송사 주주들이 저항한다면, 역시 방문진 사례처럼 입법부와 제4부 언론의 협력으로 여론전을 펼치면 제압 가능할 것이다.
뉴스통신진흥회가 대주주가 되면 연합뉴스는 레거시 미디어 연합체에서 국가기간뉴스통신사, 달리 표현하면 ‘국민 통신사’로서 명실상부한 위상을 갖게 된다. 지배구조가 바뀌는 만큼 당연히 진흥회 이사 추천 방식도 바뀌게 된다. 우선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신문 방송사 주주들이 사라질 것이고 이에따라 신문협회, 방송협회의 이사 추천권 역시 사라질 것이다.
7일 서울 충무로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 조사결과 발표에서 이명춘 조사3국장(왼쪽)이 언론통폐합 집행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0.1.7 연합뉴스 자료사진
80년 언론학살 이젠 청산하자
80년 해직 기자들은 최근 강제해직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강제 해직에 대한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굳이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80년 언론 학살의 참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감행한 언론사 강제 통폐합과 대규모 언론인 강제 해직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대한민국 언론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한 역사적 과오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이 같은 언론 학살의 실체가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소멸시효의 기계적 적용과 법적 한계로 인해 주식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가 번번이 좌절된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남긴 사법적 2차 가해였다. 아울러 현재까지도 연합뉴스의 지배구조 속에는 신군부 통폐합 당시 주주로 편입된 신문·방송사들이 경쟁 관계이자 주주라는 기형적이고 모순적인 이해충돌 구조가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과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사법적 판단이나 일회성 권고에만 기대어 더 이상 피해자들의 희생을 방치해선 안 된다. 불법행위의 주체인 국가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서야 하며, 왜곡된 지배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입법적 결단을 통해 연합뉴스 주식을 특수공익법인인 뉴스통신진흥회로 무상 출연하는 등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1980년의 어두운 유산을 완전히 청산하고, 국가기간뉴스통신사가 진정한 국민의 품에서 공정성과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책임 있는 조치가 촉구된다.정일용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ciy61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