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쿠팡 주식 거래, 한미 통상·안보에 불똥 튈까 [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는 대신 두 번째 임기 첫 해에 비트코인 등으로 적어도 22억 달러(약 3조 4200억 원)의 재산을 불렸다. 그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쿠팡 주식을 18차례 거래한 사실도 드러났다. 게티 이미지 합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쿠팡 주식을 모두 18차례 사고판 것으로 확인됐다는 외신 보도에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쿠팡 규제를 문제 삼는 보고서를 공개한 데 이어 미국 보수 진영에서도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상황에 트럼프 대통령이 쿠팡 주식을 거래했고 보유한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이해충돌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식 거래와 미국 정부의 대(對)한국 통상 기조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올해 5월 18차례 매매...백악관 독립 운용사가 투자 결정
미국 정부윤리청(OGE)이 지난달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의 연례 재산신고서(Annual Financial Disclosure)와 지난 5월 공개된 정기거래보고서(Periodic Transaction Report·OGE Form 278-T)를 분석한 결과다. OGE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두 개의 투자계좌를 통해 지난해 10월 여러 차례 거래를 시작한 뒤 올해 2월 다시 매수 규모를 늘렸고, 올해 5월에는 일부를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례 재산신고서에는 지난 연말 기준 한 계좌에 5만1000~10만 달러 상당의 쿠팡 주식이, 다른 계좌에는 각각 1001~1만 5000달러 규모의 쿠팡 주식이 기재됐다. 전체 보유 규모는 최대 13만 달러(약 2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다만 미국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는 정확한 금액이 아닌 구간별로 공개하기 때문에 실제 투자 규모와 손익은 확인되지 않는다. 올해 가장 큰 규모의 매수가 이뤄진 2월 당시 쿠팡 주가는 18달러 안팎이었고 5월 일부 매도 시점에는 15달러 수준까지 하락해 주가 흐름만 놓고 보면 높은 수익을 거두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개별 종목 투자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자산은 자녀들이 관리하는 신탁에 편입돼 있으며, 개별 투자 결정은 독립적인 자산운용사가 맡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 계좌에서는 지난 일 년 동안 2만 1285차례 주식 거래 가운데 올해 1분기에만 3600건이 넘는 주식 거래가 이뤄졌으며 쿠팡 거래 역시 전체 포트폴리오 운용의 일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쿠팡 거래가 특정 정책이나 통상 현안과 직접 연결됐다고 단정할 근거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대통령·USTR·국무부까지 쿠팡과 이어진 권력의 핵심
하지만 쿠팡과 미국 행정부 핵심 인사들의 연결고리는 적지 않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취임 전 대형 로펌 킹앤드스폴딩 파트너로 재직하면서 2024년 쿠팡으로부터 강연·자문 사례금 1만 달러를 받은 사실을 신고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에서도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앨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차관도 취임 전 아메리칸 글로벌스트래티지(AGS)에서 근무하며 쿠팡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수를 받은 것으로 신고했다. 후커 차관은 삼성전자와 SK,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다른 한국 기업에도 같은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커 차관이 몸담았던 AGS는 트럼프 1기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회장을 맡았던 회사다. 오브라이언은 그동안 한국의 플랫폼 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으며 AGS 역시 쿠팡을 고객사로 두고 있었다.
하원 법사위 보고서와 백악관 전·현 당국자 발언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 1일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하며 쿠팡 사례를 집중 거론했다. ‘경쟁 차단: 미국 소유 기업에 대한 한국의 차별적 공격’이라는 제목의 35쪽짜리 중간 조사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지속해서 표적으로 삼아왔고,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과 규제기관 등을 동원해 쿠팡에 과도한 조사와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공화당 주도로 작성된 보고서로, 정식 하원 보고서 번호가 붙어 있지 않다.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비서실장을 지낸 프레드 플라이츠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FPI) 부소장은 보수 매체 기고문을 통해 쿠팡 규제가 한·미 동맹에 잠재적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업을 조직적으로 차별해왔다는 내용을 담은 강도 높은 보고서를 공개했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십 가운데 하나를 떠받치는 신뢰와 우호를 훼손할 가능성을 지닌다”고 했다. 이어 (보고서는) 미국의 경제 경쟁력이나 통상 약속을 훼손하는 행위를 워싱턴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이자, 쿠팡과 다른 미국 기업의 처우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을 압박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백악관의 현 당국자는 하원 법사위의 쿠팡 관련 보고서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국 언론의 질의에 한국 정부가 쿠팡을 콕 찍고 있다(single out)”며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미국 기술 기업들을 차별적으로 표적으로 삼는 상황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쿠팡 주장만 반영 청와대 표적 조사 않는다
외교부는 지난 2일 보고서가 쿠팡 쪽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는 잘못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와 의회에 관련 내용을 바로잡아 나갈 예정”이라고 반박했다. 국정원도 사고 조사에 대해 쿠팡 측에 어떤 지시·명령이나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외교부는 3일에도 모든 기업은 국내법에 따른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는 대원칙 하에, 우리 정부는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공정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른 조사와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디지털 기업을 비차별적으로 대우한다는 한미 공동설명자료(조인트팩트시트, JFS) 상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 중임을 적극 설명할 것”이라며 동 사안이 계속해서 한미 양국 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사안을 관리해 나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쿠팡에 대한 조사는 모두 국내법상 적법절차에 따라 비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며 국적에 따라 기업활동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거나, 누구를 표적화해 조사하지 않는다 고 밝혔다.
쿠팡이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벌여 온 적극적인 로비와, 미국 정부 요인들과 맺은 관계 등을 감안할 때 미측의 쿠팡 관련 압박이 단기간 안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결국 한국 정부와 국회 등도 긴 호흡으로 전략적이고 치밀한 대미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앞서 쿠팡은 올해 1분기(1~3월) 로비자금으로 109만 달러(약 17억 원)를 지출했다고 신고한 바 있다. 미국 연방 의회뿐 아니라 국무부와 재무부, 상무부, 무역대표부, 농무부, 중소기업청 등 다양한 정부기관을 로비 대상으로 삼은 사실이 로비 공개법 보고서를 통해 확인됐다.
쿠팡 문제,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미 투자 이행 속도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이 쌓이면서 핵추진잠수함 건조,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보와 같이 정부가 우선순위를 둔 한미 안보 협력에도 영향을 미쳤고 관련 협의가 한때 지연되기도 했다. 한미 간 원자력 협의는 결국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개최됐고,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노력 때문인지 쿠팡 문제는 최근까지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쿠팡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백악관까지 한국 정부 비판에 가세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 문제를 관리하기보다는 쿠팡의 입장을 한국에 관철하는 데 더 관심을 두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 측이 법사위 보고서에서 한국이 한미 JFS에 명시된 한미 정상 간 무역 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쿠팡 문제를 더 키우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미국 측이 쿠팡 문제를 빌미로 또다시 원자력 협의를 지연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한편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소비자 이탈 현상이 나타났던 쿠팡의 결제액과 이용자 수가 최근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G마켓과 11번가 등 토종 이커머스 플랫폼 결제액은 유출 사태 이전보다 감소세를 보여 대조를 이뤘다. 5일 인공지능(AI) 데이터 테크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달 쿠팡의 신용·체크카드 추정 결제금액은 4조 833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쿠팡 결제액은 지난 5월 4조 8596억 원보다 259억 원가량 적지만,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태 당시 4조 4735억 원과 비교하면 3601억 원가량 많다. 지난해 12월 4조 3373억 원과 비교해도 4963억 원가량 늘었다. 쿠팡 결제액은 올해 2월 4조219억 원까지 줄었다가 이후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며 최근 두 달 연속 4조 8000억 원대를 기록했다.
쿠팡 이용자 수도 유출 사태 당시보다 늘었다. 지난달 쿠팡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3509만 171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달 3498만 2662명보다 10만 9048명 늘어난 수치다. 정보 유출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11월(3442만 207명)과 비교해도 67만 1500명 넘게 증가했다.
쿠팡의 결제액과 이용자가 최고 수준으로 회복된 데에는 생필품·식품 중심의 반복 구매 구조와 빠른 배송, 멤버십 기반의 충성 이용자층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로켓배송과 새벽배송 등 생활 밀착형 서비스가 일상 소비와 결합하면서 정보유출 논란에도 이용자 이탈이 장기화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