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애국으로 포장된 정치 집회를 멈춰라 [뉴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3번 출구 앞에서 자유대학 등 주관으로 진행된 제2연평해전 추모식 모습 @인터넷 갈무리
지난 28일 오후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이 서울 지하철 잠실역 3번 출구에 집결했다. 이들은 제2연평해전 24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고양 in 이 이날 보도한 것을 보면, 자유대학을 비롯한 청년단체 회원들은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과 제2연평해전 발발일인 6월 29일을 추모하기 위해 대형 태극기와 순국자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잠실역 3번 출구를 출발해 석촌호수를 돈 다음 올림픽공원 3번 출구 앞까지 6.29㎞를 걸었다. 이후 올림픽공원 3번 출구 앞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 자리엔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도 함께 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정에 기습공격을 가해 발발했다. 참수리 357호정 장병들은 적의 기습공격에도 즉각적인 대응으로 북한 경비정을 제압했지만, 이 과정에 고속정장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다쳤다.
해군은 29일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제2연평해전 승전 24주년 기념행사 를 개최했다. 기념식에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김경률 해군참모총장을 비롯해 참전용사 고(故) 서후원 중사의 부친인 서영석 유가족회장 등 전사자 유가족, 참수리-357호정 부장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이희완 전 국가보훈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자유대학 등은 왜 하필 전날 올림픽공원에서 추모식을 했을까. 저들의 모습을 보고 진짜 추모에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정녕 전사자를 추모하고자 했다면 대전현충원을 가거나 당일 평택 2함대사령부를 찾거나 참수리357호 실물크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했어야 할 것이다.
29일 인천 송도고에서 열린 연평해전 전사자 윤영하 소령의 추모식 중 송도고 재학생과 주니어 ROTC 학생들이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2026.6.29 연합뉴스
불법 행위 지지를 애국으로 포장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로 촛불집회가 한창 열리던 시기에 박근혜를 지지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태극기를 들었다.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는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대변되었다. ‘태극기 부대’로 칭해지던 이 탄핵 반대 집회는 박정희 지지가 높은 5060세대 이상이 주축을 이뤘고, 당시에도 태극기를 정치적 집회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있었다.
박근혜 탄핵 후 약 8년 만에 12·3 불법계엄 선포를 자행한 윤석열의 파면 선고가 이뤄졌다. 파면 선고가 나기 넉 달 전인 2024년 12월 당시 한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박근혜 당시처럼 탄핵 집회를 주도했다. 마찬가지로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든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태극기로 애국심을 강조하고 성조기로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윤석열 파면에 반대하는 이유가 ‘애국심’ 때문이며 대한민국을 공산화하려는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윤 어게인에 기름 부은 선관위
윤석열이 파면된 지 1년 3개월,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도 1년을 넘겼다. 그런데 아직도 전국 곳곳에서 ‘부정선거’ ‘STOP THE STEAL’ ‘이재명 탄핵’ 등의 피켓을 든 ‘윤 어게인’ 집회가 열리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퍼지고 있는 이들 집회를 보면, 윤석열 파면을 외치던 빛의혁명 시민들이 각각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대형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해 장관을 이뤘듯이 이들은 국가 행사에 쓰일법한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한다. 이렇게 태극기를 드는 것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 때문이며 대한민국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것에 뭐라하는 사람은 중국인이거나 좌파라는 논리를 펼친다.
이들에게 기름을 부은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개표소로 쓰이던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봉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참정권 침해에 항의하던 올바른 시민들의 목소리는 결국 다수의 윤 어게인 목소리에 묻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사람들이 서로를 감시하며 핸드볼 경기장에 입주한 체육단체, 관련 종사자, 경찰공무원 등의 권리를 침해했다.
이런 와중에 연평해전 전사자를 추모한다며 올림픽 공원에서 위법한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추모식을 진행하는 저들의 행동을 과연 순수한 추모라고 볼 수 있을까?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 개표소 봉쇄 시위 가 이어지는 가운데 17일 참가자들이 봉쇄된 문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17 연합뉴스
윤 어게인 세력은 현재도 소셜미디어 등에서 12·3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했고 헌법재판관들의 만장일치 판결은 정치적 압박에 따른 판결이며 유죄 선고가 이어지고 있는 사법부 판결도 엉터리 정치적 판결이라고 주장한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윤 어게인 도심 집회에 선관위의 선거관리 부실을 규탄하는 올림픽공원 집회까지 태극기를 들고 나서면 자신의 어떤 행동이든 모두 정당하다고 우겨대는 정치집회를,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의 교묘한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볼 수 밖에 없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태극기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지 특정 정치 세력이 정치적 행동에 동원하는 소품이어선 안 된다.최우혁 시민기자 hyeok05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