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솔 광장 한 달 점령한 주거 안정 외침 [뉴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유명 관광지 푸에르타 데 솔 광장을 21일(현지시간) 찾은 관광객들이 젊은이들의 주거 안정을 입법으로 뒷받침할 것을 요구하며 한 달 가까이 시위를 벌이는 임시 텐트촌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2026.10.21 임병선 에디터
휴가를 마치고 귀국 길에 21일(현지시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솔 광장(Puerta del Sol)을 찾았다. 지난달 말부터 젊은이들의 주거 안정을 입법으로 뒷받침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텐트를 치며 농성을 벌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수도의 관문 격인 아토차 역을 나와 400m를 걸으니 솔 광장의 상징인 곰 동상이 나타났다. 그 뒤로 그 넓은 광장의 어떤 바닥도 볼 수가 없었다. 온갖 색깔과 갖가지 크기의 텐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간간이 구호 소리가 들렸다. 관광객들은 처음에는 멈칫했다가 나중에 스페인이니까~ 하는 눈치였다. 솔 광장에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그 앞에 들어선 노천 카페들, 사진 촬영에 열중하는 관광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텐트 물결과 격문들, 현란한 색칠의 문양과 엠블럼들이 넘실댄다.
현지인들은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무심했다. 외국인들은 수도의 광장을 통째로 시위꾼들에게 내준 현지 경찰의 관대함에 놀랄 따름이다. 경찰은 광장과 주변을 연결하는 길목마다 지키며 불상사를 경계할 뿐 구호를 외치는 이들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솔 광장보다 훨씬 규모가 큰 마요르 광장(Puerta del Mayor)을 그나마 온전히 광장으로 남겨준 것은 관광객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배경으로 광장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이들은 훨씬 널따란 마요르 광장을 향했다.
솔 광장에서 누에보스 미니스테리오스 역으로 가는 길을 차지한 채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자전거 시위대. 2026.10.21 임병선 에디터
누에보스 미니스테리오스(Nuevos Ministerios) 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관공서들이 운집한 지역이다. 요란한 경찰차 사이렌이 울리고 길이 막히는 게 답답한 차량 운전자들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바라보니 녹색 물결이 일렁인다. 녹색 조끼를 걸친 수백 명이 자전거를 탄 채 달리며 구호를 외쳐댄다. 나중에 AP 통신 사진을 확인하니 마드리드 지역사회 비대학 공립교육기관 파업위원회 회원들이었다. 새롭고 흥미로운 시위 양태라 인상적이었다.
경찰 관련 건물 앞에서도 항의 집회가 이어졌는데 기마 경찰이 네 명 정도 보였다. 집회를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광객 카메라에 담기기 위해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평온했다.
프랑스 시위가 극단적인 양상으로 바뀐 과정에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스페인에서는 텐트촌을 해체하려 하거나 자전거 시위를 막는 대응은 없었다. 이제 관용의 나라 라는 타이틀은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옮겨져야 할 듯하다.
국내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지만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87세 할머니 마리아 델 카르멘 아바스칼이 월세 두 달 치를 못 내자 지난달 23일 살던 아파트에서 들것에 실려 쫓겨난 것이 조직적인 시위의 발단이 됐다. 71년 동안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난 것이 한이 됐는지 할머니는 지난 7일 병원에서 세상을 등졌고, 추모 열기가 더해져 젊은이들이 하나 둘씩 텐트를 치며 한뎃잠 투쟁을 시작했고 급속도로 불어나더니 광장 전체를 메웠다. 그리고 한 달가량 주거 안정을 촉구하는 성난 함성이 이어지고 있다.
여론의 압력으로 집권 사회당 정부는 저렴한 주택 조치와 강제 퇴거를 막는 법안을 승인했으나, 의회에서 지지를 받지 못했고,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11월 조기 총선을 촉구했다. 11월에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총파업도 예고돼 있다.
관광객들이 21일(현지시간) 이것이 에스파냐 (ESTO ES ESPANA) 등의 격문이 나붙은 솔 광장의 임시 텐트촌 옆을 지나가고 있다. 2026.10.21 임병선 에디터
비즈니스 신문 익스판시온에 따르면, 스페인의 한 달 최저임금은 1221유로(약 181만 7540원)인데 80㎡크기 아파트의 평균 월 임대료는 약 1130유로(168만 2080원)이다. 솔 광장에서 한뎃잠을 자며 시위에 참가하는 웨이트리스 다이아나 만자나레스는 AP에 내 월급 대부분은 집세로 나간다. 내 룸메이트도 나처럼 생계를 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면서 이것이 나의 현실이고, 이 도시에 사는 우리 대부분의 현실 이라고 말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코미디언인 나딘 필롤(38)은 직장도 있고, 파트너도 있으며, 아이를 갖기를 희망하고 있다. 현재는 마드리드 중심가의 아파트를 빌려 세 사람과 공유하고 있다. 동부 발렌시아의 남자친구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해 가정을 꾸리는 것을 꿈꾸는데 실현 가능성이 적어 고민이다. 내가 집을 갖고 식구들에게 최소한의 좋은 삶조차 줄 현실적인 방법은 없다. 그건 정말 불가능하다 고 털어놓았다.
스페인 전역에서 치솟는 임대료와 저렴한 주택 부족으로 인해 가족을 꾸리는 일이 나중으로 미뤄지고 있으며,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압박이 가해지며, 젊은이들은 독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위 캠프에서 잠을 잔다는 필롤은 염가 주택을 공급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일을 막으려는 입법이 좌절된 것에 대해 얘기하며 눈물을 참다가 정말 화가 난다 고 말했다.
그녀가 현재 지내는 아파트의 복도 천장에는 습기 자국과 물 자국이 남아 있고, 창문은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고 했다. 필롤은 집주인이 수리를 거부하며, 자신과 다른 세입자들에게 저렴한 대안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월 세전 2000유로(297만 3820원)를 벌고 있는데, 이는 스페인의 평균 월 총급여인 약 2460유로(366만 1365원)에 조금 못 미친다.
침대와 컴퓨터 책상이 겨우 들어가는 작은 방 하나에 월 350유로를 지불하며, 나머지를 생계와 자신의 집 계약금을 모으는 데 쓰고 있다. 하지만 필요한 보증금 마련을 위해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나는 것보다 월세가 빠르게 올랐다. 필롤은 모든 중요한 인생의 이정표를 지연시킨다 고 갑갑해 했다.
스페인에서는 오랫동안 주택 소유가 일반적이었으며, 약 4분의 3의 가구가 자신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웹사이트 Idealista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스페인의 주택 가격은 약 90% 상승했으며, 평균 임대료는 거의 곱절로 올랐다. 마드리드에서 50㎡ 아파트를 임대하는 비용은 지난달 평균 1170유로로, 평균 월 총급여의 절반 정도였다.
허드렛일들을 하며 한 달에 800유로를 빠듯하게 버는 마누엘 나바로(32)에게는 지낼 곳을 공개 시장에서 임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아내, 세 자녀(네 살, 일곱 살, 여덟 살)와 함께 마드리드 지역정부 사회주택 기관 소유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데 허가를 받지 않았다. 당국은 가족의 퇴거를 추진하고 있다.
잠을 잘 수 없는 날도 있다. 아이들 앞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밤이 되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지난 2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점거한 텐트촌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2026.10.2 AFP 자료사진
2년 전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 가운데 프랑스 길 전체 810㎞를 35일 동안 걸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길의 초반 팜플로나에서 벨로라도까지 170㎞를 걸었다. 2년 전에는 막연히 지방 소멸 을 느꼈다면, 이번에는 절감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살 사람 구함 딱지가 붙은 건물들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무너져 버려진 집들도 수두룩했다. 평일인데도 낮에 하릴 없이 돌아다니는 젊은이도 적지 않았다.
메뉴 달 디아 (Menu dal dia, 오늘의 메뉴)를 쉽게 먹지 못하는 아쉬움은 컸다. 유럽식 정찬은 보통 세 코스인데 두 코스에 후식까지 주니 배고픈 순례자들에게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샐러드나 수프, 또는 파스타로 첫 접시를 선택하고, 소나 돼지, 닭 등 육류와 대구(바칼라오) 등 해물로 두 번째 접시를, 와인이나 맥주, 생수, 아이스크림 등을 후식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 좋다. 주머니 얇은 순례객은 아침에 바르(Bar)에서 커피와 또르띠야를 3~4유로에, 이른 오후에 그날의 목적지에 도착해 한 끼니를 메뉴 달 디아로 12~14유로 쯤에 즐기고 씨에스타 끝난 뒤인 8시나 9시쯤 감파스에 맥주를 마시면 하루의 피로를 거뜬히 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 메뉴 달 디아가 사라져 있었다. 물가가 올라 채산성 때문에 그러지 않나 싶었다. 웨이터에게 물으면, 고개를 저으며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부르고스나 세고비아, 마드리드 같은 큰 도시들에서 메뉴 달 디아를 먹을 수 있었다. 물론 값은 뛴다. 일인당 18~21유로다.
하지만 디아 (Dia)나 까르푸 같은 대형 유통 체인점에 가면 다농 요거트 4개 묶음에 1유로, 커다란 바케트빵이 2유로, 햄 2유로나 하몽 3유로, 생오렌지를 갈아 주스로 만들어 1리터 용기에 담아주는데 5유로로 생활물가가 여전히 쌌다. 이들 매장의 와인 진열장에 가면 1~3유로의 값싼 제품들이 즐비해 놀랍기까지 했다.
그래도 겉으로 보면, 스페인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행복해 보였다. 씨에스타가 끝난 오후 5시 반쯤이면 철시했던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하고 골목과 거리에는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노천 카페와 감파스 골목에는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들고 밤 9시가 돼도 멋지게 차려 입은 노부부들이 거리를 누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다만 주거비 문제가 심각함은 순례객들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욕실을 따로 쓰는 알베르게 숙소나 펜션, 아파트형 숙소 값이 2년 전보다 엄청 올랐기 때문이다. 2년 전 50유로쯤 하던 숙소가 80유로로 치솟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골은 빈집이 남아도는데 사람들이 계속 몰려드는 도시는 주택 공급이 부족해 그런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씨에스타 때는 쥐죽은 듯 고요했던 골목에 오후 6시쯤이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가족 단위, 소모임들이 넘쳐난다. 시골 마을에도 서점은 가장 번듯한 가게 축에 든다. 노인을 휠체어에 태워 공원 등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손자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런 관계는 아닌 듯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순례객이 본 겉모습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평균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스페인 라 리오하주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마을의 한 유통 체인점의 와인 진열대. 2026.10.15 임병선 에디터
다시 본론이다. 임대인들은 임대료 납부를 중단한 세입자를 퇴거시키는 데 몇 달이 걸릴 수 있으며, 임대료 대출 및 기타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임대 규정 변경이 법적 불확실성을 초래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이 나라가 70만 채의 주택 부족에 직면해 있다고 추정한다. 이민 증가와 단기 관광 임대 증가가 수요를 증가시켰고, 관료주의와 노동력 부족으로 건설이 둔화되고 있다.
마드리드에 사는 로라 알론소(26)는 지난 8월에 집주인이 나가라고 통보해 교외의 새 아파트를 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거의 공방이 없었다. 부모 집의 어린 시절 방으로 돌아가야 할까봐 두려웠다. 살 던 집이 시장에 나오자마자 50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모든 행복한 가족은 똑같아; 불행한 가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 널리 알려진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다. 뉴스위크는 프랑스가 불붙여 유럽 각국으로 번지는 청년 시위 물결을 다룬 기사의 첫 문장으로 인용한 뒤 국가들에도 적용할 수 있겠냐 고 물었다. 프랭크 브루니 듀크대 교수는 서로 다른 성향의 정부가 같은 도전 앞에서 실패하고 있다 고 분석했다. 생활 수준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흔들리는데 복지 시스템을 유지할 재정 여력은 줄고 있다. 유럽이 안보환경이 변화할 수 있음을 전체적으로 몰각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러시아의 위협과 중국의 부상, 미국의 고립주의가 잇따르거나 동시에 진행됐는데 유럽은 평화가 계속될 것처럼 행동했다고 브렛 스티븐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프랑스의 어이없는 약탈과 과격분자 난동에 초점을 맞춰 분배와 복지 단어만 나와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던 보수 매체를 중심으로 연일 무상복지에 치중하다간 우리도 저꼴 당한다고 선동에 열심이다.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좌절과 낙담, 적개심을 이유로 이주민 차별 시선을 대놓고 드러내기도 한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합심해 주거 안정을 꾀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촉구하고 조성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 될 것이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