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확대 정해놓고 공론화…국민주권 위배 아닌가 [환경]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회원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15주기를 맞아 탈핵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3.11 연합뉴스
지난 13일, 정부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원전과 SMR을 추가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에는 전문가 의견과 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반영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얼핏 신중한 태도로 읽힌다.
그러나 그 공론화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모호함이야말로 지금 이 나라의 원전 정책이 서 있는 자리를 정확히 보여준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원전 확대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함께 풀어야 하는 처지에서, 원전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름의 근거를 갖는다. 문제는 그 답이 옳은가 그른가가 아니다. 누가, 어떤 절차로, 어떤 책임 위에서 그 답을 확정하는가이다. 지금의 제도는 이 물음에 아무 답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미 결정 은 끝나 있었다
정부는 이미 2025년 2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규 대형원전 2기(설비용량 2.8GW, 한국형 APR1400)와 SMR 1기(0.7GW)를 확정한 바 있다. 준공 목표까지 2037년, 2038년, 2035~2036년으로 못박혔다.
그 뒤에 남은 절차는 부지를 어디로 할 것인가뿐이었고, 그마저도 올해 상반기 영덕과 기장으로 신속히 결정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기본계획 이라는 이름이 붙은 문서치고는, 이 계획은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통상 기본계획이란 하위의 실행계획에 방향과 지침을 제시하는 상위 문서이며, 구체적인 수량과 사양은 그 아래 단계에서 확정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정반대다. 몇 기를, 어떤 노형으로, 언제까지 지을 것인지 — 이 사업의 본질에 해당하는 모든 것이 기본계획 단계에서 이미 종결되어 있다. 이름은 기본 이라 부르면서, 실질은 확정 인 문서. 이 어긋남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 아름다운 산하는 후손이 함께 영구적으로 이용할 터전이다. 핵발전소는 근본부터 위협한다. 대리인이 아닌 당대의 국민이 책임을 지고 결정해야 한다. @이원영
국회는 보고 받을 뿐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어긋남은 우연이 아니라 법 조문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전기사업법 제25조를 찾아보면,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하는 절차에서 전력정책심의회에는 심의 를 거치도록 하면서(같은 조 제2항),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는 그저 보고 하도록 정해 놓았다(같은 조 제5항).
심의와 보고는 다른 말이다. 심의는 승인하거나 조건을 달거나 되돌려 보낼 수 있는 권한이다. 보고는 통보를 받는 것으로 끝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 원전을 몇 기 지을지, 어떤 위험을 국토에 심을지를 실제로 승인하는 기관은 어디인가. 국회가 아니다. 정부 내부에 설치된 자문기구, 전력정책심의회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조차 통보문을 받아드는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며, 국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공청회 한 번이 전부다.
이것을 입법의 실수라 부를 수는 없다. 법이 처음부터 이렇게 짜여 있었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지만, 전기사업법은 그 권력이 국민에게 되돌아갈 문을 애초에 좁게 만들어 놓았다. 주권자가 들어설 자리를 형식적 통과의례로 대체해 놓은 것이다.
대리권력자의 판단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물론 국회가 형식적으로라도 심의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원전처럼 수십만 년의 위험을 국토에 심는 결정은, 5년 임기의 대통령도, 4년 임기의 국회의원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지닌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오래전 칼카르 판결에서 확립한 원칙 — 국민의 생명과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안은 행정부의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되며 국민의 대표기관이 직접 정해야 한다는 이 원칙조차, 이 사안 앞에서는 절반의 답에 지나지 않는다.
대리권력이 아무리 성실해도 대리는 대리일 뿐이며, 이 정도로 되돌릴 수 없고 이 정도로 국토 전역에 미치는 결정은 오직 주권자 자신이 직접 들여다보고 결정할 때에만 정당성을 가진다.
다행히 이 나라의 헌법재판소는 이미 이 길을 한 번 열어둔 바 있다. 2024년 기후위기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계획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에 명백히 부족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조치가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조치가 위험의 크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 이른바 과소보호금지원칙이다. 핵위험은 기후위기보다 더 즉각적이고 더 치명적이다. 헌법재판소가 세워둔 이 저울은, 원전 증설이라는 이번 사안에도 그대로 놓일 수 있다.
통보받는 국회, 구경하는 국민
정부가 예고한 공론화 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처럼 추첨으로 뽑은 시민들이 양쪽 정보를 고르게 받고 석 달 가까이 숙의하는 절차가 될지, 아니면 한 달짜리 요식 행위로 끝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법이 그것을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공백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헌법재판소에 묻고자 한다.
첫째 국민투표를 요청할 권리, 둘째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추첨으로 뽑힌 시민의회로 넘어가는 절차, 셋째 그 숙의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준.
이 세 가지를 법으로 못박지 않는 한, 공론화 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말잔치로 그칠 것이다.
법정은 두 개의 얼굴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국회를 통보 대상으로, 국민을 구경꾼으로 세워 둔 이 법을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헌법 제1조 제2항이 처음부터 명한 대로 권력의 문을 다시 주권자 쪽으로 열어젖힐 것인지. 핵발전소를 늘릴 것인가 줄일 것인가는 그다음 질문이다.
먼저 답해야 할 것은, 수십만 년의 위험을 이 땅에 심는 결정을 대체 누가 지고 갈 것인가이다. 그 책임은 다음 정권도, 관료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 당대의 국민에게 있다. 헌법을 건너뛴 원전추진은, 이제 헌법 앞에 서야 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