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정치판 역전, 우익 보우소나루 집안 득세 [뉴스] 10월 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총선 당시, 자유당(PL) 소속 브라질 대통령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투표하며 손짓하고 있다. 2026.10.4.로이터 연합뉴스
4일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우익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가 47.03%를 득표해 1위를 했다. 2위인 현직 대통령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의 45.16% 득표에 비해 1.87%p 앞섰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가 따로 결선투표를 하게 돼 있는데, 오는 25일 최종 승자를 가린다.
브라질 대선 1차 투표 1, 2위 표차 1.87%p, 25일 결선
1차 투표에서 패배한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이긴 사례가 브라질에선 한 번도 없는데다, 전체의 채 8%도 되지 않는 표를 가져간 나머지 군소 후보 11명의 성향이 대체로 우파이거나 중도여서, 2차 결선투표에서도 플라비우 보우소나루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정하긴 이르다.
침체된 선거전 분위기를 고조시켜 투표율을 높이고 지원금을 늘리거나 인기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점을 활용하는 한편 군소 후보들과 어떻게 협상을 하느냐에 따라 브라질 역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한 룰라가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분된 브라질 사회, 결선 표차 1%p 미만 예상
1.87%p는 2022년 대선 때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의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룰라와의 표차와 비슷하다. 이번 대선 1, 2위의 합계 득표율이 92.19%인데 둘의 표차가 1.87%면, 브라질 사회가 거의 두 파로 양분돼 있다는 얘기다. 이번 2차 결선투표에서 양극화는 더 첨예해져 1, 2위간의 표차가 1%p 미만일 수 있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양쪽을 통상적인 보수-진보 개념으로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브라질 사회는 보수우파와 진보좌파로 거의 정확하게 양분돼 있고, 불과 1~2%의 유동표가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정권이 왼쪽으로 갈 수도 있고 오른 쪽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난 24년 중 18년을 룰라의 노동당이 정권을 잡았고 81세가 다 된 룰라가 12년을 집권했다. 브라질 유권자들 다수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바라고 있다는 보도들이 많아 보인다.
룰라 집권 기간에 실질 소득이 소폭이나마 증가하고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음에도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 속에 정권교체를 바라는 분위기인 듯하다.
10월 5일 브라질리아에서 노동자당(PT) 소속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대선 결선 투표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정치적 동맹들과 회의를 하던 중 발언하고 있다. 앞서 10월 4일 치러진 선거에서 우파 성향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룰라 대통령을 제치고 깜짝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3주 뒤 결선 투표가 치러지게 되었다. 2026..10.5. AFP 연합뉴스
비전 제시 못한 룰라 젊은층과 남성 표 얻는데 실패
이와 관련해 흙수저에 노조 지도자 출신인 룰라가 젊은층, 특히 남성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실패했다는 지적들이 있다. 희망찬 미래 비전 제시에 실패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어려운 처지에서 몸을 일츠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는 고난 극복 서사만으로는 비전 부재의 공백을 메우기 어려워졌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과거 집권시절에 터진 두 차례의 대형 부패 스캔들로 인한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버지 자이르보다 온건 우파 이미지의 플라비우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장남 플라비우가 집권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변화는 어떤 것일까.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주도한 우파 포퓰리즘 운동인 ‘보우소나리스모’(보우소나루주의)는 쇠퇴일로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2022년 대선에서 숙적 룰라에게 근소한 표차로 진 뒤 쿠데타를 모의한 혐의로 징역 27년 3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수사 당국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려던 대통령령 초안과 독극물을 이용해 룰라 대통령을 암살하려던 음모를 포착했다. 증거는 명백했다. 그에 대한 유죄 판결로 보우소나리스모는 죽었고, 브라질은 이제 10여 년간의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들이 커졌다.
하지만 판세는 금방 뒤집혔고, 보우소나루 집안이 권력을 탈환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또 다른 형태의 양극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과격한 우파 포률리스트인 자이르 보우소나루와는 달리 아들 플라비우는 방향은 다르지 않되 좀 더 온건하고, 대선에서도 그런 온건파 이미지를 앞세운 것이 예상 외의 득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보우소나루 집안 전체의 대역전극?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세 번째 부인이자 독실한 신앙인이요 성형수술을 즐기는 복음주의 기독교인인 미셸 보우소나루는 플라비오의 둘째 형인 카를로스 보우소나루와 함께 상원의원이 되고, 막내아들 자이르 레난은 연방 하원의원이 된다.
플라비우의 주요 공약은 계엄령 선포로 쿠데타를 시도하다 징역을 살고 있는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사면하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자발적인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 에두아르도의 사면도 그는 바란다. 에두아르도는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재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혐의로 궐석재판에서 4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아버지에게 형을 선고한 판사들을 벌 주라고(제재하라고) 로비활동을 벌였다.
정권이 바뀌면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기소를 주도했던 알렉산드르 지 모라이스 대법관도 아마 무사하지 못할 듯하다. 이제 보우소나루 진영은 상원에서 대법관 탄핵이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의 세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플라비우가 집권한다면 시장주의자인 그는 규제를 완화하고 친트럼프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중하층 지지기반에다 친환경적이었고 트럼프 정권과는 껄끄러웠던 룰라와는 대비되는 방향으로 향할 것이다. 드릴(drill), 베이비, 드릴”을 외쳤던 트럼프처럼 브라질에 풍부하게 매장된 화석연료 생산확대를 재촉할 플라비우의 자원개발, 규제 완화, 민간투자 확대 노선이 침체된 브라질 경제에 활기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협소한 중간 유동층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종 판세 향방은 25일 결선투표 이후에나
룰라가 예상 외로 고전한 것은 고물가, 가계부채 증가, 재정적자 확대, 치안 불안 등 누적된 경제사회문제에 대한 유권자들 불만이 표출된 결과라는 지적들이 있다.
반면에 플라비우는 이런 룰라 정부의 경제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 정서를 파고들어 긴축과 재정 건전성 회복을 공약하며 표심을 끌어모았고, 여기에 트럼프 정권과의 우호적 기류 또한 보수층 지지를 결집시키는 데 한몫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최종판세 향방은 아직 알 수 없다. 25일 결선투표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