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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단군 할머니는 누구였을까

단군 할머니는 누구였을까
[사람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대표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곰탱이랑 호랭이가 사람이 되고 싶어 백 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었단다. 헌데 호랭이는 쑥 마늘 냄새에 질려 몰래 마을에 내려가 담배를 훔쳐 와서는 피웠대. 담배연기 때문에 쿨럭거리며 곰탱이가 말했지. 너 언제 사람 될래?” 호랭이가 그랬어. 난 그냥 호랭이로 살래!” 사람 사는 꼴을 보고서 마음이 바뀌었다나. 그래서 곰탱이만 여자사람이 되었대. 그러곤 죽도록 고생을 했다지. 남자가 되게 해달라 할 걸 후회하면서…. 호랑이가 담배 피던 그 옛날, 곰도 사람 사는 꼴을 엿봤더라면 여자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았을 듯하다. 단군신화를 만든 이들이 곰토템 신앙을 갖고 있었을 거라는 설이 있지만, 곰을 여성의 조상으로 삼은 것은 어쩌면 호랑이 같은 여성을 원치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쑥이랑 마늘을 백 일 동안 참고 꾸역꾸역 먹을 만큼 ‘미련곰탱이’ 같은 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의 생산과 분배에서 여성 철저히 배제했던 닫힌 사회 5천 년 만에 한반도에서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일이다. 조선 5백 년 동안 드물게 목소리를 낸 여성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여성들’이 아니라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특출한 개별 여성이었다. 황진이, 신사임당, 허난설헌…. 당대의 남성들에 의해 예외적인 여성 또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인정받은 여성들이었다. 한반도의 여성들만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사회에서도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흑인 참정권이 인정되고도 50여 년이 지나서였다. 여성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난 남성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여성의 권리를 억압해온 것은 가부장의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별볼일 없는 남성이라도 집에서는 여성 위에 군림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라도 평범한 남성들의 권력을 보장함으로써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여성 참정권 100주년 을 맞아 2020년 8월 26일 미국 뉴욕시 센트럴파크에서 제막식을 가진 여성 참정 운동가 동상. 한편 전근대 사회는 여성들도 나름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으니, 자녀 양육과 집안 살림에서는 가모장 여성이 실질상의 권력을 행사했다. 조선 사회의 경우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권력을 보장함으로써 남성 권력 질서를 더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사랑방에 기거한 남성들은 안방 권력을 침해하지 않는 암묵적 약속을 지킴으로써 내외의 권력 구조를 안정시켰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먹거리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기술 못지않게 권력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인간은 밥만큼이나 권력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닫힌 사회에서는 내부를 쪼갬으로써 권력을 생산해낸다. 이지메가 일어나는 구조, 약자를 억압하는 구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닭들도 닭장에 가둬두면 서열 싸움이 일어나 제일 약한 닭을 쪼아 죽인다.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열린 사회의 특징이다. 지켜보는 이들이 있고, 달아날 곳이 있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에서도 여성은 없었다 개천절. 하늘이 열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늘과 땅이 만났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남신들만 자유를 누렸다. 곰이 변신한 여자는 그저 단군을 낳은 웅녀 역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단군신화에 단역으로도 등장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 단군의 부인! 자손이 이렇게 번성했으니 단군 할아버지는 분명 독신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은 한민족의 할머니는 대체 누구였을까? 13세기 후반 몽골제국의 속국이 되었던 고려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편찬한 책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정치신학으로서 단군신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홍익인간에서 인간(人間)은 사람(人)이 아니라 ‘인간세상’을 뜻한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사람 살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정치 행위를 의미한다. 정치학자 김영민은 단군신화가 (몽골)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이라고 말한다.(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 어크로스, 2025)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하늘신 환인의 서자 환웅이 하늘 아래에 뜻을 자주 두고 인간세상을 욕망하였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서 삼위태백 지역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하였다.” 여기서 ‘홍익인간’은 인간의 관점이 아닌 인간세상을 굽어보는 신의 관점을 차용한 이념이다. 그 관점은 곧 남성의 관점이기도 하다. ‘웅녀의 변신’, 참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는 메시지 아닐까? 고려시대에 ‘서자’는 첩의 자식이 아니라 장자가 아닌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환인이 서자를 땅으로 내려보낸 것은, 장자는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신도 죽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는 걸까. 죽지 않는다면 승계 문제가 복잡해질뿐더러 하늘신의 자손 신들로 하늘이 빽빽해져 인구과밀 문제가 대두되겠지만, 신화는 이런 복잡한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환웅이 땅으로 내려온 뒤 웅녀와 혼인해 단군을 낳은 뒤 어떻게 되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단군을 낳은 웅녀의 뒷이야기도 없다. 단군이 조선을 세워 1500년간 다스리다 1908세로 산신이 되었다며 주인공인 단군의 생몰만 이야기할 뿐이다.   북한은 지난 3일 평양 단군릉 앞에서 개천절 행사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2025.10.4.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그런데 짧은 신화 속에 단군왕검의 출생의 비밀은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신들이 강림했다는 설정은 다른 건국 신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신이 인간과 교접해 낳은 아이가 건국 시조가 되었다고 전해도 될 텐데 왜 굳이 곰을 등장시켰을까? 환웅도 웅녀의 변신을 위한 장치로 기능하는 측면이 크다. 웅녀의 뒷이야기는 전하지 않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인간이 된 곰의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것은 단순히 곰토템 신앙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신화에서 ‘변신’이라는 장치는 인간다움이란 것이 저절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쏙과 마늘을 백 일 동안 참고 먹는 정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된다. 인내라는 덕목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요구되는 덕목이었다. 단군 시대부터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정치를 지향했지만 그 바탕에는 신분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굳건했다. 하층민과 여성까지 이롭게 하는 정치가 실현된 것은 ‘5천 년 역사’의 막바지 20세기 들어서였다. 왜 옛날 남자들은 어머니와 아내에게서 여성을 보지 못했을까 단군신화가 고려시대에 등장했지만 단군신화를 알고 있었을 고려 귀족과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서 모두가 단군의 후손이라는 한민족 의식이 자라지는 못했다. 후손 중 누구는 노비가 되고 누구는 노비 주인이 되어 동족을 사고파는 것을 어떤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조선 시대 중엽에는 노비가 전체 인구의 1/3이 넘었다. 노비를 360명 넘게 거느렸던 퇴계의 경(敬) 사상에서 노비는 경의 대상도 주체도 아니다. 노비 수를 늘리기 위해 양천교혼을 권장했던 퇴계에게 노비는 논밭과 같은 재산일 따름이었다. 마치 가축을 교배시켜 새끼를 치듯 노비를 늘리기 위해 양천교혼을 권장했다. 종모법(從母法) 또는 일천즉천법(一賤卽賤法)에 따라 노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노비로 살아야 했던 이들만 삶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 평민 여성은 사실상 (솔거)노비와 다름없는 처지였다. 집 안에 갇혀 아이 키우고 밥 짓고 틈틈이 농사일도 해야 했다. 심지어 밤에는 호롱불 아래 베를 짜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마을의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소외되었고, 과거를 볼 자격은 아예 주어지지도 않았다. 사실상 사회활동이 금지된 것이다. 남정네들은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들, 아내를 그런 처지에 두고서 마음이 편했을까. 갓난쟁이 시절부터 그런 모습만 보아왔으니 당연하게 여겼던 걸까. 본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신분사회에서는 불평등한 인간관계가 기본값이니 남녀간의 불평등도 원래 그런 것이려니 했을 것이다. 양반가 남정네들은 사모곡을 읊조리기만 했지 이 땅의 어머니들이 처한 현실을 개선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양반가 여성들의 삶은 그나마 나았기에 별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일까. 마을의 영달 위해 자살까지 강요 받았던 청상과부 하지만 양반가 여성도 운이 나쁘면 청상과부가 되어 평생을 수절하며 살거나 열녀라는 이름으로 자살을 강요당하곤 했다. 이슬람식 명예살인의 조선판인 셈이다. 사회가 여성들에게 가한 가스라이팅이었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으면서 가문 중심의 사회 질서를 위한 규범으로 충효열을 강조했다. 성종 때는 과부가 재혼하면 그 자손이 관직에 진출할 수 없게 하는 법을 공포했다. 효자와 열녀가 난 고을이나 가문에는 세금 혜택과 과거 특전이 주어지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양반 수가 증가해 벼슬자리가 귀해지자 미관말직이라도 얻기 위해 과부에게 자결을 강요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남정네들이 알량한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여성에게 죽음을 강요하기까지 한 조선의 가부장 문화는 여성을 노비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의 재산쯤으로 여긴 것이다. 그런 문화 속에서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동학이 여성 또한 ‘스스로 하늘을 모시고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라 천명한 것은 놀랍다. 최제우가 여종 둘을 딸과 며느리로 삼은 것처럼 모든 인간을 하늘 아래 평등한 존재로 바라본 관점은 이후 천도교의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여성도 교육을 받고 사회활동을 하게 되면서 3.1운동 때는 유관순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시위에 참여해 독립선언서 배포와 자금 조달 역할을 맡았다.   경주 용담정 최제우 동상 이제는 평등 사상으로 단군신화를 재해석해야 할 때 서구의 인권 개념과 별개로 동학에서 비롯된 평등의 이념은 이후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 등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성인권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지난 백 년 동안 여성의 삶이 조금씩 나아졌지만 아직 성평등에는 한참 못 미친다. 성평등은 근대 이후 인류가 지향해온 방향으로, 우리의 누이와 딸들을 위해서라도 늦추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일각에서는 역차별을 운운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져온 관성이 몇십 년만에 뒤집힐 리는 없다. 성평등의 과실을 일부 엘리트 여성들이 독점하면서 생긴 착시 현상일 뿐이다. 개천절을 처음 기념한 것은 1909년 나철이 만든 대종교였다. 대종교 인사들은 임시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아 독립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몽골제국의 속국이 된 고려의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지식인들 또한 단군신화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다.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가 된 오늘날, 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으로서의 의미보다, 같은 조상을 둔 후손으로서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기제로 단군신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현병호 시민기자 mindle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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