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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어두운 시대를 향한 양산박 구도자들의 호통

어두운 시대를 향한 양산박 구도자들의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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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칼럼니스트  중국 고전 수호전(水滸傳)은 북송 말기 영웅호걸들의 의협과 활극을 그리고 있다. 불온한 시대와 타협하지 못하는 영웅 호걸들이 산채 양산박에 숨어들어 타락한 권력과 맞서는 이야기다. 우두머리인 송강을 중심으로 무송과 노지심, 임충 등 108명의 호걸들이 의기로 뭉쳐 탐관오리를 벌하고 모리배를 혼내는 무용담은 흥미진진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양산박의 구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정범구 전 독일대사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정철승 법무법인 더펌 대표 변호사, 박황희 전 대만 국립정치대학 객원교수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네 사람은 신간 ‘불온한 시대의 동행’(파라북스)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면서 스스로를 ‘양산박의 구도자’로 칭했다.   불온한 권력에 대한 분노로 한 자리에 모인 의협들 네 사람 삶의 행적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왜 이들이 ‘양산박의 구도자’를 자칭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들은 모두 ‘현대판 무림’에서 명성이 자자한 의협(義俠)들이다. 불온한 권력에 맞서 줄기차게 의로운 목소리를 내고 끊임없이 담대한 행동을 해온 이들이다. 책의 부제는 네 사람의 삶을 한 줄로 요약하고 있다.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묻다!” 네 사람을 한 자리로 불러 모은 것은 분노였다. 무너지는 사회 정의와 왜곡되는 법치에 분노한 의인들이 ‘불온한 시대의 동행’이라는 양산박으로 모여든 것이다. 책의 서문이 밝힌 것처럼 이들은 하나의 직업군이나 하나의 이념적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저마다 외교와 정치, 법률, 인권, 교육, 시민사회, 문화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약해 왔다. 책 속에서 드러난 필자들의 모습은 양산박 호걸들의 특징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시대의 문제 고민하며 갈등의 접점 찾아 다니는 조율자 정범구 전 대사 # 정범구는 조율자다. 그는 교수와 방송인, 정치인, 외교관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책은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사회 갈등의 접점을 찾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실천을 모색하는 조율자로서의 정범구를 그리고 있다. 책의 1부 정범구의 글에는 ‘자유의 값, 시대의 무게’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책은 구석구석에서 ‘자유의 값’과 ‘시대의 무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교도소 수감자들의 노역 일당이 왜 누구는 10만 원이고 재벌회장은 수억 원인가, 장갑차 앞을 맨몸으로 막아 선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디로 향했을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민주주의의 통제 아래 두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 민족이 두개의 국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축복인가, 아니면 역사적 비극인가! 정범구는 다양한 직업을 거쳤던 만큼 색다른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1997년 김대중과 이회창 후보가 맞붙었던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TV토론을 진행했던 사연;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뒤 여의도에서 보냈던 시간; 독일대사 재임 시절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등과 각별하게 지내던 뒷이야기 등을 담담하게 회상한다. 주류의 삶 거부하고 지적 편력과 혁신적 실천 일관한 경계인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 곽노현은 경계인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류 중 주류로 살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춘 인물이다. 경기고와 서울법대, 미국 펜실베니아대 로스쿨 출신이다. 서울교육감과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방송통신대 교수 등 그가 지녔던 직함만 보더라도 주류로 분류되는 삶의 여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러나 철저하게 경계인으로 살았다. 평생 진보의 길을 걸었으나 운동권에는 몸을 담은 적이 없었고, 어느 자리에 가더라도 학연이나 지연이나 혈연을 멀리했고, 정치를 했으나 여의도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는 특정 울타리에 머무르는 것을 거부했다. 책은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편력과 혁신적 실천으로 일관했던 곽노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의 2부 곽노현 글의 제목은 ‘법의 함정, 진실의 기록’이다. 책은 세상의 불온과 온몸으로 맞서는 곽노현이 어떻게 ‘법의 함정’에 빠졌는지를 설명하는 ‘진실의 기록’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곽노현의 서울교육감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당시 1심과 2심과 3심은 모두 ‘사전 약속에 따른 후불 매수’라는 검찰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사후 매수’라는 어불성설의 논리로 유죄를 판결하는 대목, 삼성 그룹 경영권의 편법승계 고발을 주도했던 곽노현이 그 사건의 무죄 판결을 지켜 보면서 정치권과 검찰과 사법권력이 재벌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등을 통해 권력의 마력과 인간의 민낯을 보여준다. 곽노현은 자신이 수십 년간 구조적 사유와 실천의 결합을 통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힘주어 정리한다.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두는 법치주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인권보장, 모든 이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민주주의, 이를 위해 모든 이의 잠재력 실현을 보장하는 공교육이라는 4개의 분야를 연구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일을 찾아 실천해 왔다.” 화 있을진저, 너희 법률가들이여” 외치는 협객 변호사 정철승 변호사 # 정철승은 협객이다. 그는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 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내신 독립투사 윤기섭 선생의 외손자다. 윤기섭 선생은 남부끄럽지 않게 살다 죽었다는 것을 후세에게 전해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정철승은 외할아버지의 유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고 책에서 고백한다. 책은 그가 외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통일을 방해하거나 평화를 가로막거나 정의를 어지럽히는 세력에 혈혈단신 맞서는 협객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의 3부 정철승의 글에는 ‘망각의 늪, 정의의 연대’라는 문패가 달려 있다. 정철승은 정의를 기억하고 지키는 일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역사는 기억을 통해 정의를 세운다. 기억하지 않는 사회는 같은 비극을 반복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진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정철승은 혈혈단신 악당을 징치하는 협객처럼 우리 사회의 진실 왜곡과 부정행위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는 일제강점기 현제명과 이홍렬 등 친일 매국노들이 작곡한 악보를 보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기괴한 코미디”라고 탄식한다. 거물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과 국가 사이에 벌어진 친일 재산 환수 소송에서 법원이 친일파 후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보고는 반역자의 논리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수용하는 사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사법부입니까”라고 묻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강제 추행 고소사건을 변호하면서 검경의 수사결과와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내용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1년 실형을 받기도 한다. 정철승은 성경 누가복음을 인용해 법률가들에게 경고를 날린다. 화 있을진저, 너희 법률가들이여.” 동서고금 넘나드는 언어로 제도와 신분 비판하는 딸깍발이 박황희 고전학자 # 박황희는 딸깍발이다. 그는 자신과 어긋나지 않는 자리를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최고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쟁이지만,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찰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자리는 언제나 배타적이고 그 자리에 오르는 순간 다른 길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스스로 버렸다는 것이다. 책의 4부 박황희의 글은 ‘언어의 그림자, 제도의 얼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중학교 시절 이미 ‘세계 고전 명작 시리즈’ 전집 100권을 완독했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중학생 시절 그의 책장에는 파스칼의 팡세와 플라톤의 국가론,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단테, 칸트, 니체, 사르트르와 까뮈 등이 꽃혀 있었다. 박황희는 당시 그의 머릿속에는 셰익스피어의 독백과 괴테의 한숨이 엉켜 있었다”고 회상한다. 책은 박황희의 ‘언어의 그림자’들을 현란하게 늘어놓는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면서 풀어내는 이야기 보따리들은 쏠쏠한 재미들을 가득 담고 있다. 봉이 김선달에서 비롯된 말짱 황”의 유래나 정인보의 호인 ‘위당’에 얽힌 일화나 유대인 신화에 얽힌 이야기 등은 쉽사리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박황희의 ‘딸깍발이’ 기질은 ‘제도의 얼굴’에 대한 까칠한 비판에서도 잘 드러난다. 예컨대 예수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목사’라는 신분이 요즘 넘쳐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는 묻는다. 그는 신앙이 살아 있으려면, 가장 먼저 신앙을 둘러싼 ‘제도’와 ‘신분’이 죽어야 한다”고 직격한다. 불온한 시대 넘어 다음 시대를 위한 윤리적 초대장 불온한 시대의 동행’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과 반칙과 불의를 돌아보게 한다. 정범구와 곽노현, 정철승, 박황희 등 ‘현대판 양산박 호걸’들이 풀어놓은 인생담과 증언과 고발들은 불온한 시대를 일깨우는 ‘죽비’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에필로그에서 밝힌 그대로 불온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기록”이면서 다음 시대를 위한 윤리적 초대장”이다. 책은 묻는다.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당신은 ‘침묵하는 시민’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지키는 증언자’로 설 것인가.”  박상주 mindle@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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