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가자 배재고 야구단, 혹은 배재고의 기획된 사고 [사회혁신]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벌인 스타벅스 가자 응원 사태는 일부 선수들의 우발적 탈선 행위일까. 학교 측과 일부 여론은 이를 일부 선수들의 돌출행동으로 정리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사건의 정황과 학교의 교풍과 역사를 함께 들여다보면, 이는 우연한 일탈이 아니라 예견 가능했던-예견됐어야 할-사고라고 봐야 맞을 듯하다. 나아가 오히려 ‘준비된 사고’ ‘기획된 일탈’이라고 봐도 마땅해 보인다.
동영상 자체가 돌발적인 사고라는 점을 부정하고 있다. 덕아웃에서 터져 나온 응원가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구호라고 보기 힘들었다. 가사와 박자가 맞춰진 응원가 형식으로 제창됐다는 것은 사전 연습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결과물로 보인다. 한 경기에서 즉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완성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내 운동장이나 야구부 시설 등에서 미리 맞춰봤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만하다.
더구나 이같은 행위가 광주일고에게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같은 광주 지역의 동성고, 진흥고를 상대로도 반복되었다는 점은 그같은 의심을 더한다. 일회성 해프닝이라면 한 번으로 그쳤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같은 패턴이 여러 학교, 여러 경기에 걸쳐 되풀이됐다는 것은 이것이 우발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야구부 내에서 하나의 레퍼토리 로 굳어진 관행이었음을 보여준다. 광주 지역에 연고를 둔 학교를 상대할 때마다 미리 준비해서 꺼내든 계획적 카드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경기 중 이 응원이 터져 나왔을 때 감독이나 코치가 즉각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는 의심을 굳힌다. 지도자가 모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알고도 막지 않았다는 점은 이 응원 문화가 선수단 내에서 최소한 묵인된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용인, 독려돼 온 관행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수단 차원에서의 방조와 기획으로까지 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재고 교정에 세워져 있는 이승만의 전신상.
일부 선수를 넘어서, 코치진을 포함한 선수단 전체의 사안이란 것을 넘는 것은 물론, 배재고의 학풍과 교내 문화 자체가 이번과 같은 사고를 ‘배양’하고 ‘육성’했을 수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될 수 있다. 배재고 교정에는 국내에 단 4개 남은 이승만 동상 중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현존하는 이승만 동상 중 가장 오래된,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에 세워진 동상이다. 학교의 중심 공간인 배재동산에서도 한가운데에 우뚝 선, 이 학교 졸업생인 이승만의 동상 비문에는 한평생을 항일과 반공, 자유민주주의에 바친 겨레의 큰 스승에 대한 추모 라는 미화된 문구만이 새겨져 있다. 독재를 기도한 사사오입 개헌이나 3·15 부정선거, 양민 학살 등 숱한 죄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배재고 기숙사 이름도 이승만의 호를 따 우남학사 로 붙여져 있다. 학교 홈페이지 자랑스러운 배재인상 코너는 2000년 수상자로 이승만을 소개하며 그를 건국대통령 으로 표기하고 있다. 건국대통령 이라는 표현은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으로 탄생한 상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 전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지만 무시되고 있다.
독재와 부정선거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은 배재고 학생들에겐 훌륭하기 그지 없는 선배 로 기려지고 있다. 배재고 출신 자녀의 어느 학부모는 역사 교과서에서 4.19를 배울때 이 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피 흘려 지킨 민주주의 가치와 이를 지키기 위한 희생에 대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라고 말한다.
이 학부모는 (그래서) 이번 사건은 철없는 아이들의 일회성 행동이 아니고 교장, 교감, 교사들까지 일관되게 유지돼 온 유구한 학풍 의 결과라는 합리적 의심을 한다. 준비된 도발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승만 숭배는 배재고에 그치지 않는다. 같은 배재학당 재단의 대전 배재대학에도 이승만 동상이 세워져 있다. 지난 1987년 2월 졸업생 명의로 건립된 동상은 그해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학교에 독재자의 동상이 있으면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것은 자기모순 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에 의해 곧바로 철거됐다. 그러나 1990년 학교 측이 보관 중이던 동상을 기어코 다시 세웠고, 학생들의 계란·페인트 투척 시위 끝에 1997년 자진 철거됐다가, 2008년 배재대와 배재학당 총동창회가 건국 60주년을 명분으로 또다시 세웠다. 그해와 2018년 두 차례의 철거 시위에도 동상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학교법인 배재학당은 이승만 탄생 150주년과 서거 60주년 인 2025년을 맞아 새로운 우남 이승만 건국대통령 동상 까지 제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차원에서 이승만에 대한 숭배 현양 작업을 수십 년간 집요하게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규연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 교장이 전국 고교야구대회 도중 발생한 상대팀 배재고등학교의 응원 구호 논란과 관련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30일 서울 송파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를 방문하고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광주일고와 경기 중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라고 외쳤다. 2026.6.30 연합뉴스
지난해 한겨레 등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극우 세뇌교육 논란을 빚은 리박스쿨의 교재로 활용된 책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 를 서울 초중고교들 중에서 가장 많이 보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 학교 전자책도서관에는 5.18 북한군 개입 허위 사실로 징역 2년이 확정된 지만원 씨의 5.18 혐오 모독 도서도 비치돼 있었다. 이번 사고가 야구장에서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학교 측의 이승만 숭모와 리박스쿨 참여, 5.18 혐오의 사실상 권장 등과 어울려 체계적으로 준비 된 것이라고 해도 될 만하다.
이같은 배재학당의 행태는 배재학당이 스스로 자부하는 역사와도 상당 부분 배치된다. 배재학당은 1885년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중등교육기관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반일 투쟁의 산실 역할을 했던 곳이다. 현직 교사와 재학생, 졸업생들이 3·1운동 전후 다양한 형태로 독립운동에 참여해 체포되고 옥고를 치렀다.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한글학자 주시경, 사회운동가 신흥우 등이 이 학교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동문들이다. 그런데 정작 친일 세력을 중용하고 독재로 민주주의를 압살한 인물을 학교의 대표 인물로 떠받드는 모순이 수십 년째 이어져 온 것이다. 독립운동의 산실을 자처하면서도 그 독립운동가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짓밟은 인물을 추앙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배재고 선수들이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감수성을 갖추지 못한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봐도 될 듯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고는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 이벤트가 일부 직원의 실수나 과오가 아니라 조직문화 전체의 산물이었던 것과도 닮아 있다. 배재고 야구단의 스타벅스 가자 라는 말 자체가 신세계그룹 총수로부터 비롯된 기업 조직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었듯, 선수단의 탈선행위도 선수 개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학교의 교풍과 문화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법하다.
여기에 학교의 사회경제적 위치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 소재하고 학비가 고가인 자율형 사립고라는 점, 보수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이번 사고를 낳은 토양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측의 사과나 일부 선수 에 대한 학교측의 징계로 이번 사태를 수습하거나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든 이유다. 선수단을 넘어서 학교 자체에 책임을 물어야 마땅해 보인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