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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민주공화정 첫 번째 확장, 모든 권력 국민에게 제도화

민주공화정 첫 번째 확장, 모든 권력 국민에게 제도화
[뉴스]
지난 글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이 100여 년 동안 국가의 근본원리로 선언해 온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은 식민지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탄생했지만, 그 안에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인류 정치사상의 보편적 성취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민주공화주의는 어떻게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과연 누구의 사상이며, 어느 철학자가 이를 하나의 정치철학으로 체계화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습니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도, 샤를 드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 1689~1755)도,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도,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 )도 스스로를 민주공화주의자 라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정치사상사 역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각각 독립된 사상 전통으로 연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 (The Tennis Court Oath, 1791년경,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프랑스혁명의 출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역사화이다. 제3신분 대표들이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원칙 아래 새로운 헌정을 만들 것을 맹세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역사적 확장인 국민주권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민주공화주의는 어느 한 사상가나 특정 학파가 창안한 단일한 정치철학이 아닙니다. 물론 오늘날 정치철학에서는 민주공화주의(democratic republicanism)를 하나의 연구 분야로 다룹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민주공화주의는 특정 학설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시대마다 새로운 역사적 과제에 응답하며 서로를 보완하고 결합해 온 헌정질서의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분석 개념입니다. 민주주의가 던진 질문은 분명했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권력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민주주의는 이에 대해 국민주권이라는 원리를 제시했습니다. 국가는 군주나 왕조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동의와 참여를 통해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공화주의가 던진 질문은 달랐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가. 국민이 세운 권력이라 하더라도 어느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공공선과 법치, 권력분립의 원리 속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권력의 주체를 세웠다면 공화주의는 권력의 운용 원리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국가의 정당성을 세웠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제도와 원리를 발전시켰습니다.근대 이후 인류의 정치는 이 두 전통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한 역사라기보다, 하나의 민주공화정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보완하며 발전해 온 역사였습니다. 대한민국이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선언한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단순히 병렬적으로 나열한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과 권력통제, 공공성과 법치라는 두 전통을 하나의 헌정원리로 결합한 선언이었습니다. 민주공화주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국가의 주인을 군주에서 국민으로 바꾸는 것. 이번 글에서는 민주공화주의가 국민주권이라는 첫 번째 원리를 어떻게 확립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민주공화정의 출발점이 된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국민은 어떻게 국가의 주인이 되었는가 민주공화주의의 역사는 시대마다 자유를 위협했던 새로운 문제에 응답하며 스스로를 확장해 왔습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분명했습니다. 국가의 주인을 군주에서 국민으로 바꾸는 것.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국민주권은 너무도 당연한 정치원리처럼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가는 국민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가는 군주의 소유물이었고, 백성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이었습니다. 왕권신수설은 군주의 권력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 설명했고, 절대왕정은 국가를 왕조의 재산처럼 운영했습니다. 제국은 정복한 영토와 민족의 운명을 지배자의 의지에 맡겼으며, 식민지 주민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질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군주가 있었고, 국민은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존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유럽 사회는 거대한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과학혁명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신뢰를 낳았고, 상공업의 성장과 시민계층의 확대는 기존의 신분질서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왕과 교회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 국가는 신의 의지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시민의 동의 위에서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집약한 것이 계몽주의였습니다. 계몽주의는 단순한 철학사조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바탕으로 절대왕정과 신분질서를 근본부터 다시 묻기 시작한 정치적 각성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치철학을 요구했고, 그 응답이 바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였습니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사회계약론』(1762)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누구도 이를 대신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 1689~1755)는 『법의 정신』(1748)을 통해 권력분립의 원리를 제시하며 권력이 다시 절대화되지 않도록 제도적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은 『상식』(1776)에서 세습군주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이러한 사상을 혁명의 언어로 바꾸었습니다.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던진 질문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들의 대답도 하나였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다. 그 질문은 곧 역사를 움직이는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 국민주권은 어떻게 헌정질서가 되었는가 1776년 미국 독립혁명은 국민주권을 국가 건설의 원리로 구현한 첫 번째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나온다. 고 선언했습니다. 이어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We the People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국가를 창설하는 주체가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을 헌법의 첫머리에 새긴 것입니다. 국민주권은 이로써 정치철학을 넘어 헌정질서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원리를 특정 국가의 경험을 넘어 인류 보편의 정치원리로 확장했습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3조는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고 선언했습니다. 미국혁명이 국민주권을 헌법 속에 구현한 혁명이었다면, 프랑스혁명은 그것을 모든 정치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원리로 선포한 혁명이었습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독립기념일을 맞아 워싱턴 기념탑 뒤로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고 있다. 1776년 영국의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가 미국독립을 선언한 날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에는 해마다 미국 전역에서 불꽃놀이가 열린다. 2025.7.5. [UPI=연합뉴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은 민주주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세웠다면, 공화주의는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다시 어느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되지 않도록 권력분립과 법치, 공공성의 원리를 발전시켰습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정당성을 세웠습니다. 공화주의는 권력이 공공성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제도와 원리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국가를 세웠고, 다른 하나는 국가를 지키는 원리를 세웠습니다. 이 두 전통은 서로 다른 질문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의 헌정질서 속에서는 하나의 정치원리로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은 단순히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세운 국가를 끝까지 국민의 국가로 유지하기 위한 제도와 원리가 함께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데 그 역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1919년 3·1민족혁명은 우리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세계 앞에 천명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한 문장은 단순히 왕정을 부정한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천명한 국민주권의 원리였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거부한 민족자결의 의지였으며, 새로운 대한민국이 어떤 원리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를 밝힌 헌정철학의 선언이었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을 선언하며 국민주권과 권력통제라는 민주공화주의의 원리를 대한민국의 국가 운영 원리로 채택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가보다 먼저 국가의 원리를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먼저 고민한 것은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를 세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보다, 어떤 원리 위에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먼저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었고, 단순한 공화국도 아니었습니다. 민주공화제였습니다. 이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만을 강조하려 했다면 민주주의를 선언하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국가의 형태만 규정하려 했다면 공화국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하나의 헌정원리로 결합한 민주공화제를 국가의 출발점으로 선언했습니다. 그 안에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조차 어느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공화주의의 원리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조소앙(趙素昻, 1887~1958)을 비롯한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민주공화정을 단순한 정치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를 떠받치는 헌정철학으로 이해했습니다. 조소앙이 제시한 삼균주의는 정치적 균등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국가를 지향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이었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으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그의 통찰은 훗날 복지국가와 사회권의 발전, 그리고 인간존엄을 국가의 핵심 가치로 받아들이게 되는 현대 민주공화주의의 방향과도 깊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제는 서구 정치사상을 단순히 수입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국민주권과 권력통제라는 근대 헌정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족자결과 공동체적 책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함께 담아낸 창조적 헌정질서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국민주권은 미국에서 헌법의 원리가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인류 보편의 정치원리로 선언되었으며, 식민지 세계에서는 민족자결의 원리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을 민주공화제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헌정원리로 집약하여 선언한 보기 드문 국가였습니다. 이것이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역사적 확장이었습니다. 국가는 더 이상 왕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권은 군주나 식민지배자가 아니라 국민에게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을 권력의 주인으로 세웠고,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다시 어느 누구의 사유물도 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 법치와 공공성의 원리를 발전시켰습니다. 이 두 전통이 결합하면서 비로소 근대 민주공화정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의 한계 ― 국민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그러나 민주공화주의의 첫 번째 확장은 아직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 고 선언했지만 노예제는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국민주권을 선언했지만 여성은 여전히 정치공동체의 바깥에 머물렀습니다. 제국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민족의 자유를 짓밟았습니다. 국민주권은 민주공화주의의 위대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국가로부터 동등하게 존중받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민이라는 정치적 지위는 확보되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아직 민주공화정의 중심 원리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국가의 주인을 국민으로 바꾸는 데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을 모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데까지 확장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로 이 한계가 민주공화주의에 또 하나의 역사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면,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민주공화주의는 이 질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대가 던진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해 나갔습니다. 국민주권이라는 토대 위에 인간존엄이라는 새로운 원리가 더해지면서 민주공화주의는 두 번째 역사적 확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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