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과 대자비, 명진 스님이 평생 걸어온 길 [사람들] 2011년 7월 월악산 보광암에서 설법하는 명진 스님. 서울 강남구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나 외롭게 자승 조계조 총무원장, 이명박 정부와 대립하던 시절이었다. 명진 스님은 매년 여름이면 프리다이빙을 위해 찾던 제주 서귀포시 하예포구 앞바다에서 22일 오전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소생하지 못했다. 불교방송 BTN 홈페이지 갈무리
명진 스님의 입적을 깊이 애도하며, 평생을 수행과 중생 구제, 그리고 불의에 대한 저항에 바치신 스님의 극락왕생을 온 마음을 모아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수행자의 세간 인연이 다함을 목도하며, 단순한 한 인간의 죽음을 넘어 이 시대가 상실한 참된 존재의 무게를 함께 마주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사바세계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고요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남아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짙은 허무와 슬픔을 남깁니다. 그러나 불교의 오랜 지혜가 말해주듯, 죽음은 존재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요, 한 조각 구름이 인연 따라 모였다가 다시 본래의 허공으로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순환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이제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과 하나가 되셨으나, 그분이 이 땅에 남기신 철학적 궤적과 치열했던 삶의 법향은 여전히 이 사바세계에 진동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삶을 돌이켜볼 때, 우리는 ‘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과 직면하게 됩니다. 스님에게 수행은 산사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홀로 깨달음을 탐구하는 관념적 유희가 아니었습니다. 스님의 수행은 곧 삶 그 자체였으며, 불의와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 세계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자 투쟁이었습니다. 대승불교의 핵심 가치인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은 스님의 삶에서 결코 분리된 두 개의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위로 진리를 구하는 철저한 일심의 정진은 곧 아래로 고통받는 중생을 향한 대자비의 실천으로 직결되었습니다. 스님은 세속의 타협과 번뇌 속에서 진정한 깨달음의 꽃이 피어난다는 처염상병의 이치를 몸소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대다수의 인간이 세속의 권력과 명예, 그리고 안전이라는 환상에 기대어 자기 자신을 기만하며 살아갈 때, 스님께서는 언제나 타협하지 않는 주체적인 존재로서 선성에 섰습니다.
파사현정, 즉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스님에게 있어 목숨과도 같은 행동 원칙이었습니다. 권력의 압제나 세속의 비난 앞에서도 스님은 결코 굴복하거나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혈기에서 비롯된 반항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신념과 부처님의 법다운 삶을 살겠다는 단단한 서원에서 비롯된 사유의 결과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연기법을 단순한 이론이 아닌 삶의 실천적 규범으로 완전히 체화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긴다 는 연기의 진리는,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며 세사의 불의가 곧 나의 불의라는 비판적 의식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사회의 어둡고 그늘진 곳,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소외된 이들이 울부짖는 현장에 스님께서 늘 함께하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스님에게 타인은 나에게 외재하는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연기적망으로 얽혀 있는 또 다른 나 였습니다. 따라서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는 선심을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연기적 자아를 실현하는 필연적인 당위였습니다.
22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서 각계 원로들이 세종호텔과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해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명진 스님,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 단병호 평등사회노동교육원장, 김상근 목사 등이 참석했다. 2025.7.22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가 흔히 사유하는 삶과 죽음의 이분법적 구도 역시 스님의 입적 앞에서 새로이 해체됩니다. 불교의 무상과 무아의 철학은 생과 사를 갈라놓지 않습니다. 삶이 곧 죽음의 시작이며, 죽음은 새로운 인연의 시작일 뿐입니다. 스님께서는 살아생전 이미 스스로의 욕망과 집착을 끊임없이 죽이는 하심의 수행을 이어오셨기에, 이번 육신의 입적 또한 본래의 청정한 성품으로 돌아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여정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삶에 대한 연착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어, 오직 순간순간에 충실하며 존재의 본질을 투영하셨던 스님의 모습은 남아있는 우리에게 참된 해탈이 무엇인지를 고요히 웅변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뿌려놓으신 가르침의 씨앗은 이제 사부대중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서 깨어남의 계기로 작동해야 합니다. 스님의 부재는 깊은 슬픔을 남기지만, 그 슬픔은 단순한 감상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스님께서 온몸으로 밀고 나갔던 진리 탐구의 길,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고자 했던 비장한 자비의 길을 우리 스스로가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스님의 입적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길이자, 스님께서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대승적 평등세상을 향한 발걸음일 것입니다.
이제 스님께서는 모든 시비와 고통, 번뇌와 번잡함이 사라진 영원한 묵언의 세계로 드셨습니다. 육신이라는 한정된 틀을 벗어나셨기에, 스님의 법신은 이제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고통받는 모든 중생이 있는 곳마다 머무실 것입니다. 생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사란 한 조각 구름이 사라짐이라 했던 그 옛 선사의 읊조림처럼, 스님의 가고 옴 또한 우주의 대생명력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춤사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명진 스님, 부디 세간에서의 모든 중생 구제의 수고로움을 내려놓으시고, 본래부터 푸르고 고요한 원적의 바다에서 영원한 해탈의 기쁨을 누리소서. 스님께서 남기신 뜨거운 사유와 불꽃 같았던 삶의 기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바른길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한없는 존경과 애도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극락왕생을 깊이 기원하며, 언젠가 중생 구제의 큰 서원과 대자비의 마음을 품고 다시 이 땅에 오시어 지혜의 대광명을 비추어 주시기를 온 마음으로 엎드려 아뢰옵니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