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LG도 철수한 전기차 충전시장…승부처는 ‘충전기’ 아닌 소프트웨어 [뉴스] 국내 대기업들이 전기차 충전기 사업에서 잇따라 발을 빼고 있다. LG전자가 진출 3년 만에 사업을 접은 데 이어 SK그룹도 자회사 SK시그넷 매각에 나섰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충전기 제조 및 설치에 대한 사업은 둔화되고 있는 반면,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 관리, 전력거래 등 운영 사업에 집중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모양새다.
저가 경쟁·고정비 부담에 SK·LG 충전소 사업 정리
SK와 LG는 전기차 충전소 제조 사업 철수 수순을 밟고 있다./ChatGPT생성 이미지
지난 24일 SK㈜는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공개매수신고서를 통해 SK시그넷 잔여 지분을 공개매수해 완전자회사로 전환한 뒤 상장폐지와 매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SK시그넷은 초급속 충전기 기술을 앞세워 북미시장에 진출한 후 미국 현지 공장도 세웠다. 하지만 충전 인프라 투자가 늦어지고 공장 운영비 부담이 커지면서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LG전자 또한 2022년 충전기 업체 애플망고를 인수한 후, 사명을 하이비차저로 바꾸고 시장에 진출했다. 충전기 제조에 관제와 유지보수를 결합한 사업모델을 내세웠다. 2024년에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연간 1만대 이상의 충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가동했다. 그러나 시장 성장 둔화와 가격 경쟁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4월 사업 종료를 결정했다.
양사의 사업 정리에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충전기 제조업의 구조적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중국 업체를 중심으로 저가 제품 공급이 늘었지만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제품 인증에는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해 재무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판매량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고정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드웨어 매출 줄고 소프트웨어 성장…해외 전기차 충전소 산업 재편
해외에서도 충전소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사업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영국의 전기차 충전소 전문기업 EO차징(EO Charging)은 아마존과 DHL 등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했지만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폭스바겐그룹의 자회사 엘리(Elli)도 올해 말 급속충전기 생산을 종료하고 제조를 외부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대신 스마트 충전과 전력거래 등 디지털 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다는 방침이다.
북미 최대 전기차 충전소 기업, 차지포인트(ChargePoint)의 실적에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업의 엇갈린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차지포인트의 네트워크형 충전시스템 매출은 전년보다 8% 감소했다. 반면 소프트웨어·구독 매출은 13% 증가했다. 구독 매출 비중과 마진이 개선되면서 연간 매출총이익률도 24%에서 31%로 높아졌다.
충전기 숫자보다 이용률…운영사 59%가 수익성 핵심으로 지목
PwC의 2026 전기차 충전사업 전망 보고서/PwC
PwC는 ‘2026년 유럽 충전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충전기 제조 및 설치가 더 이상 산업의 핵심 병목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충전기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보다 이미 구축한 충전망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분석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데이터 분석, 자동화, 네트워크 관리 등이 사업자의 경쟁력을 가르는 요소로 제시됐다.
충전사업자들이 꼽은 핵심 과제도 달라졌다.
전기차 충전 소프트웨어 기업 Driivz가 실시한 ‘2026년 전기차 충전소 운영사업자 실태 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충전기 신뢰성과 네트워크 안정성을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수익성 향상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충전기 이용률을 선택한 비율도 59%였다. 응답자의 47%는 24시간 네트워크 가용성을 우선 투자 분야로 제시했다.
충전기 설치 대수보다 실제 가동률과 이용률을 높이는 문제가 사업자들의 우선순위로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