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구와바라 시세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세상에는 기록하는 자와 기록하는 자를 기록하는 자가 있다.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 구와바라 시세이가 기록하는 자라면 다큐멘터리 을 만든 감독 고희영은 또 다른 기록자이다. 시세이는 말한다. ‘기록은 현실’이라고. 은 지금이 아니면 기억의 순간과 조각들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는 불굴의 보도 사진작가의 생전 모습, 그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88세 포토저널리스트의 현재와 과거를 엮은 에세이 다큐
은 놀라운 작품이다. 전기 다큐가 ‘이토록’ 재밌다는 것에 일단 놀라게 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유유히 흐르는 극영화의 구성에(다큐멘터리의 구성이 아니라) 흥미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의 기본 뼈대는 2024년 촬영 당시 미수(米壽, 88세)의 나이였던 시세이가 200자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그가 그걸 직접 읽는(내레이션을 맡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고희영의 다큐는 그가 글 쓰는 모습을 중간중간 넣으며 이건 시세이 본인이 쓰고 얘기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몇 차례 한국으로의 기억 여행을 오가는 그를 좇는다.
시세이의 작품 속 한국은 그가 현재 오가는 여행을 통해 지금의 모습과 비교되고 기억된다. 그 서사의 구성이 자못 ‘소설적’이다. 현재의 모습에 과거가 자주 플래시백으로 얽히고 엮인다. 다큐 은 일종의 에세이 다큐이다. 감독 고희영이 구와바라 시세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시선이 깊이 배어 있다. 이른바 시네마 베리테 방식(감독의 주관이 개입)이지만 늙은 구와바라 시세이의 뒤를 묵묵히 따라다닌다는 점에서는 다이렉트 시네마(인위적 개입을 최소화)의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고희영의 이 다큐는 영리하게도 그 두 가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작품이다. 현대 다큐가 추구하는 진실의 입체성을 그려 나가는 작품이다. 그래서 때로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고 때로는 극영화 분위기를 주면서도 다큐가 지녀야 할 사실과 중립의 노선을 잘 지켜나간다. 그 리듬이 좋다.
인간 존엄을 담아낸 사진으로 사회를 바꾸겠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보도사진 작가이다. 그는 세상의 온갖 현장을 다 누빈 사람이다. 1960년 미나마타병의 현장을 찾아 그 참상을 카메라에 담은 최초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그때 그의 나이가 불과 24세(1936년생)였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기회로 호황기를 맞았고 고도성장의 발판이 이루어진 때였다. 수은 중독을 문제 삼기에는 관련 기업들에 대한 권언(勸言)의 보호막이 막강할 때였으며 무엇보다 전학련(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 이후 극렬 조직인 전공투, 곧 전학공투회의가 된다)의 1차 안보투쟁이 격렬했던 때이다. 당시의 기시 노부스케 내각은 미국과 미일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려 했으며 이는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에 따라 일본을 미국 주도의 전쟁에 참여시키는 복안이었다. 제2의 태평양전쟁에 대해 공포심을 가진 일본 국민이 대거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 결과와 이후의 과정이야 어떻든 이 조약으로 일본 내 미군기지(오키나와 등)의 영구화가 이루어졌다.
바로 이 시기에 약관의 구와바라 시세이는 일본 최남단 규슈의 구마모토현 미나마타 어촌에서 벌어진 수은 중독 사태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이는 어쩌면 시세이의 초기 사진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거대 담론을 통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이슈를 통해 사회를 바꿔 보겠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하는 사진 촬영 방식이다. 수은 중독으로 몸과 팔, 손과 발이 뒤틀리고 정신상태가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을 그는 있는 그대로만 찍지 않는다. 환자의 가장 아름다운 표정의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그는 또박또박 말한다. 사진은 인간의 존엄을 담아내야 한다.” 지금의 일본 사회를 이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이 바꿔 냈는지, 아니면 전학련의 치열한 싸움이 바꿔 냈는지, 이후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 양쪽에서 모두 ‘블라꾸리스트’에 올랐던 기자정신
구와바라 시세이가 한국 보도 저널리즘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4.19를 찍은 이후 내내 1960년대 한국의 가난과 변화를 많이 찍었기 때문인데 그는 대체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담았다. 청계천 판자촌을, 역시 그의 철학대로, 개개인의 존엄성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기록했다. 정작 우리는 창피하다며 기록을 없애거나 감추고 있을 때 그는 이것이 현실이며, 비록 고단하더라도 그 안에 각자의 우주와 행복이 있음을 밝혀냈다. 그가 찍은 가난한 청계천의 모습은, 지금 보면, 기이하게도 남루하지만은 않다. 다들,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다 저렇게 살았음을, 그래서 삶은 기이하게도 평등하고 평범하다는 자각에 이르게 한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찍은 부산 산복도로 사진과 그 옛 사진을 들고 지금도 실재하는 산동네 건너편에 선 2024년의 늙은 그를 숄더 샷(어깨너머 쇼트)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이 다큐멘터리가 이룬 미학적 성취 중의 하나이다. 과거와 현재는 이어지고 중첩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지금도 산허리를 굽이굽이 감싸고 도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서민 동네를 보여주되 그 안에 어떠한 피난민의 역사와, 어떠한 이주민의 역사가 도도히 흐르고 있는가를 역설한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 자체를 웅변한다. 한 명의 사진작가가 역사적 주체임을 당당히 드러낸다.
시세이는 한국을 수시로 오가며 베트남전 파병의 순간들도 기록했다. 동두천 양공주들의 모습, 거기에 있었던 성병 관리소 등등도 그의 관심 취재 영역이었다. 그는 말한다. ‘그 와중에 당연하게도 북한에 가고 싶었다.” 시세이는 이후 7차례 북한을 오간다. 한국에서는 가난의 치부를 찍는다고 입국이 금지되기도 했고 북한에서는 이산가족(60~70년대 ‘재일조선인 북송선’에 몸을 싣고 북한에 온 일본인 상당수가 자유롭게 일본을 왕래하지 못했다)의 슬픈 모습을 담았다 해서 또 입국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는 양쪽의 ‘블라꾸리스트(블랙리스트)’였다.
한쪽 눈 실명으로도, 떨리는 손으로도 현장을 놓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의 부인 구와바라 카츠코 여사는 한국인이다. 이름은 최화자이다. 화자(和子)의 일본어가 카츠코이다. 카츠코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만큼 한국어 역시 흐트러짐 없이 올바르게 말해 영화 중간 깜짝 놀라게 한다. 시세이는 1965년 한일 굴욕외교 협정 반대 시위를 시작으로 청계천 판자촌과 베트남전 파병, 미군 기지촌 등을 다니다 1969년 한국 고도성장의 한 축을 담으려 했던 듯 신진자동차(코로나, 크라운 등 승용차 생산) 공장을 탐방했다가 자신의 일어 통역을 담당한 최화자 씨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최화자, 구와바라 카츠코는 이후 50여 년간 시세이의 반려자로 그의 작품 성취를 후원한다.
다큐 에는 그 같은 개인사의 미시와 그가 찍은 한국과 세상이라는 거시의 두 얼굴이 나란히 병치하되 그것이 변증법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반대로 사회구조적인 변화만으로도 좋아지지 않는다. 다만 어느 쪽으로 세상의 변혁을 추구해 나갈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실존적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아흔 해 가까운 인생이 바로 그 점을 역설하고 있으며 다큐 또한 그 점을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죽음으로 돌아온 병사의 유가족이 무덤 앞에서 슬퍼하는 모습을 찍을 때 시세이는 어쩔 수 없이 손이 떨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슬픔이나 연민 때문에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면 보도 저널리스트의 자격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어릴 때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오른손잡이지만 왼쪽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대목에서 구와바라 시세이는 약간 히힛, 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삔또(핀트, 포커스)는 내가 제일 잘 맞췄어. 요즘은 전부 컴퓨터가 자동으로 맞추지만, 예전에는 다 손으로 했거든.”
왜 사진 찍고, 왜 다큐 만드는가, DMZ국제다큐영화제 초청작
사진은 왜 찍는가. 다큐멘터리는 왜 만드는가. 예술의 효용성은 무엇인가. 주식 광풍과 ‘영끌’의 부동산 투기 바람이 잠재워지지 않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다큐멘터리 이 던지는 질문이다. 다들 생소해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화제작 만큼 재미있다. 만큼 내면적으로 블록버스터(구역을 날려버릴 강력한 폭탄)이다. 두 작품을 같이 보면 좋겠지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은 본래 8월 개봉 계획이었으나 와 의 스크린 장악 시기를 피해 9월 2일 개봉한다. 기억해 놓았다가 꼭 볼 만한 작품이다. 지난해 9월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작이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