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옷에 실려간…‘늙은 군인의 노래’ [사람들] 1976년 김민기는 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에서 근무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원통)이었다. 산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하늘이 가장 좁다는 곳이었다. 1970년대 그곳에 배치받은 사병들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김민기에게 그 높은 산 좁은 하늘 아래, 빡빡 기는 생활은 차라리 속 편했다.
그가 중고교 시절 가장 즐기던 건 보이스카우트 야영이었다. 산이건 들이건, 바다건 가리지 않았다. 몸은 구부정한 약골 같았지만, 그의 수영 실력은 선수급이었고 체력도 만만찮았다. 전방 부대의 내무생활이나 훈련에 쉽게 적응한 건 그 때문이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야외 훈련은 앞장섰다. 나이 많은 티는 물론 유명 대학 출신의 ‘범생이’ 티도 내지 않고 서너 살 아래 동료들과 잘 어울렸으니, 동료나 후배들도 잘 따랐다. 게다가 이미 부대 안에는 그와 관련한 신화적인 소문이 파다했고, 보안대의 보안 점검을 주기적으로 받던 터였으니, 선임자나 장교, 선임하사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병장 시절 어느 날, 전역을 앞둔 한 선임하사가 피엑스로 그를 불렀다. 맥주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선임하사는 김민기가 맥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단에서 짬밥을 가장 오래 먹은 ‘왕 고참’이었다. 술이 거나해지자, 선임하사는 지나온 군 생활을 털어놓았다. 그의 하소연은 맥주 상자가 바닥을 보이도록 끝날 줄 몰랐다.
사병으로 입대해 제대해 봤자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장기 하사로 ‘말뚝’ 박고, ‘빽’도 주변머리도 없어 강원도 전방만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오십 중반, 이제 계급 정년으로 그나마 군문에서도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한때는 전역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부대를 벗어나려니 아쉽고 안타깝고, 자기 삶이 불쌍하기도 했다. 군 생활 이외에 다른 일을 한 적이 없으니, 그 나이에 사회에 나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불안도 했다.
술도 끝나가고 이야기도 끝났는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그가 불쑥 부탁 하나 하자”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를 위해 노래 한 곡만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김민기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봤다. ‘맨입으로…’라는 뜻임을 알아차린 선임하사는 ‘막걸리 세 말’을 내겠다고 했다. 김민기는 웃으며 승낙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늙은 군인의 노래’였다.
1979년 발매된 양희은 음반(거칠은 들판에 푸르른 솔잎퍼럼) 앞면과 뒷면. 앞면에 양희은이라는 도장만 찍혀 있다. 늙은 군인의 노래 작곡은 양희은, 작사는 김아영으로 되어 있다. 이 앨범에 늙은 군인의 노래가 실려 있었으나 금지곡이 되는 바람에 발매를 중단했다.
양희은의 1979년 음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천릿길 재발매판. 초판에는 김민기가 작사·작곡한 ‘늙은 군인의 노래’가 수록됐으나, 국방부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문제 삼으면서 음반이 회수됐다. 이후 재발매판에서는 이 노래가 빠지고 ‘주여 이제는 그곳에’가 대신 수록됐다.
평생을 군문에 몸담았던 이의 애환이 듬뿍 담긴 이 노래는 그의 부대에서부터 애창하기 시작해 사단으로 퍼졌다. ‘김민기가 작곡한 노래’라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그의 부대에선 행군할 때 군가 대신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사병과 하사관(지금의 부사관) 사이에서 잘 나가던 이 노래는 김민기가 제대하고 2년 뒤인 1979년 1월 양희은의 음반 에 수록돼 발매되면서 동티가 났다.
음반에 실린 노래는 ‘건전가요’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것들이었다. 공륜 심의 통과를 위해 김민기 이름은 모두 지웠다. 작사 작곡자를 모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했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양희은 작곡, 김아영 작사로 되어 있었다. 김아영은 당시 레코드사 직원이었다고 한다. 이 앨범에 함께 수록된 ‘천 리 길’에는 아예 작사 및 작곡자로 오른 이름이다.
이렇게 애를 썼지만, 음반의 수명은 참으로 짧았다. 공륜의 검열도 통과했는데, 앨범이 발매되자 국방부가 허겁지겁 딴지를 걸었다. ‘늙은 군인의 노래’가 문제였다. 가사 가운데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라든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따위의 노랫말이 회의적이고 패배적이어서 군인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안사의 보고에 따르면 이 노래가 군내에 이질감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부사관과 사병들은 애창하지만, 장교들은 영 내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는 장관 명의로 공륜에 ‘늙은 군인의 노래’의 금지곡 지정을 요청하고, 레코드사에도 직접 입장을 전했다. 놀란 서라벌 레코드사는 발매를 즉각 중지하고 시장에 깔린 음반도 바로 회수했다. 이후 레코드사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지우고, 대신 역시 노래 ‘주여, 이제는 그곳에’를 실어 다시 발매했다.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노래 ‘주여, 이제는 이곳에’를, 제목에서 ‘이곳’을 ‘그곳’으로 한 글자 바꾼 것이었다.
이와 함께 ‘늙은 군인의 노래’는 병영에서 공식적으로 퇴출당했다. 그렇다고 사병이나 부사관 개개인이 부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특히 부사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비공식 애창곡이었다. 김민기는 이런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에서 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다. 김민기는 훗날 공수부대원들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 모습을 봤다고 회고했다. 사진: 5.18재단(황종건 제공)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였다. 티브이를 보는데 진압군인 공수부대가 행진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더란다. 김민기는 기겁해, 엉겁결에 주위를 둘러봤다고 한다. 다행히 주변엔 그의 노래란 걸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에선 ‘저 노래를 부르며 시민을 학살하다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선 ‘오죽 신세가 처량하면 저 노래를 부를까…’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대부분 부사관으로 구성된 공수부대 장병들은 신군부로부터 받은 엉터리 정보와 지시에 따라, 시민에게 대검과 총부리를 겨누고, 휘두르고, 쏴야 했다. 제 정신 가진 장병이라면 곧 뭔가 잘못돼가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그에 따른 신세 한탄을 쏟아내야 하는데 이 노래만큼 심정을 잘 표현한 것은 없었을 것이다.
광주 학살이 끝나고, 대학가에서 학생 시위나 노사분규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이 노래는 시위 현장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각자 속해 있는 집단에 따라, 가사 속의 ‘군인’을 ‘농민’ ‘노동자’ ‘투사’로 바꾸어 불렀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또 결속을 다지기에 이 노래만큼 안성맞춤인 것도 없었다.
2018년 6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회 현충일 추념식. 최백호가 군 복무 중인 연예인들과 함께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6월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 행사. 70년 만에 돌아온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윤도현이 부른 ‘늙은 군인의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운구됐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문재인 대통령 시절 ‘늙은 군인의 노래’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2018년 현충일 때부터 정부는 각종 공식 행사에서 이 노래를 추모곡으로 썼다. 2020년 6.25 70주년 행사에서는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가 북쪽에서 귀환할 때 추모곡으로 썼다. 유해가 행사장에 입장할 때 윤도현이 이 노래를 불렀다. 2021년에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김석주 일병 등 국군 2명의 유해가 운구될 때도 추모곡으로 불렸다.
김민기는 군 시절 ‘늙은 군인의 노래’ 말고 두 곡을 더 작곡했다. 하나는 ‘천 리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종적을 감춰버린 ‘수색 중대가’다. ‘천 리 길’은 어떤 맥락에서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노랫말만 보면 군부대의 천 리 행군이나 중대 혹은 대대 단위의 준비 태세 혹은 전술 훈련 때의 행군을 연상시킨다. 어떤 이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 구호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를 연상하기도 했다.
선율이나 리듬은 경쾌하고 발랄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특히 후렴(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 쳐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이 그렇고, 각 절에 들어가는 ‘칡넝쿨 우리 갈 길 막아도’ 혹은 ‘땀방울 눈가에 쓰려도’ 혹은 ‘새 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따위의 내용이 그렇다. 물론 내 나라, 내 땅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보는 게 온당하겠지만,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짓밟는 군사독재와 맞서는 이들에게는 전의를 다지는 시위의 출정가로 안성맞춤이었다.
김민기가 아이들과 함께 부른 ‘천리길’이 수록된 1993년 김민기 전집 4. 1979년 양희은 음반에서는 제목이 ‘천릿길로 표기 됐으나 김민기 4에서는 ‘천 리 길’로 표기됐다.
‘천 리 길’은 1979년 1월 발매한 양희은의 앨범 을 통해 처음 발표됐다. 1980년대 중반 쏟아져 나온 비합법 민중가요 카세트테이프엔 단골로 실렸다. 김민기의 목소리로 수록된 건 1993년 였다. 자신의 작곡 의도를 세상에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아이들과 함께 불렀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널리 자유롭게 불리기 시작해 2021년 ‘KBS 열린음악회’에서 크라잉넛이 록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발표하기도 했다. 2002년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에는 1절의 첫 악절이 SK 휘발유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돼 널리 알려졌다. SK는 기업의 친환경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이 노래를 CM 송으로 썼다고 한다.
‘수색중대가’는 같은 사단의 수색대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고교 선배가 그에게 중대 노래를 지어달라고 해서 작곡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적어도 그가 현역으로 있는 동안 수색대 장병들이 훈련하거나 행군할 때면 꼭 불렀던 것으로 김민기는 기억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김민기는 애써 찾으려 하지도 않고, 기억하려 하지도 않았다. 노래의 생명이란, 부르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인데, 지은이가 애써 기억하려는 게 구차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곽병찬 언론인 chankb19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