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만의 검찰 수사권 박탈…아직 갈 길이 멀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24일 내란 가담 의혹 등 피의자 조사를 위해 경기도 과천 권창영 2차 종합 특별검사팀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6.6.24 연합뉴스
지금,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은 내란수괴로 구속돼 있고, 윤석열 밑에서 검찰총장이었던 심우정은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로 수사받고 있다. 검찰 조직의 최정점에 있었던 두 사람이 나란히 내란 이라는 이름으로 심판대에 오른 것은 검찰 개혁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증명해 보이는 상징적 장면들이다. 그래서 78년 만에 검찰 수사권 박탈이 가능했다.
1948년 검찰청법 제정 이래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그 거대한 권력의 성채가, 마침내 금이 가기 시작한 셈이다. 지난 반세기 넘는 동안 고통받았던 수많은 검찰 권력의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릴 만한 순간이다. 그런데 그 오랜 수많은 잘못들을 성찰하거나 반성하는 검찰 내부의 목소리는 놀랄 정도로 찾기 어렵다. 그걸 지적하고 비판하는 언론도 찾기 어렵다.
거꾸로 검찰이 사회적 약자와 인권의 수호자 라는 낯간지러운 이야기만 넘쳐난다. 수십 년간 스스로 저질러 온 잘못은 입꾹닫 한 채, 마치 자신들이 힘없는 약자의 편이었던 것처럼 포장하는 검찰의 뻔뻔함은 기막힐 정도다. 그러면서 성폭력 피해자, 장애인 등을 들러리로 세운 채 앞으로 벌어질 대혼란 을 협박하며 경고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가 4일 검찰개혁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의 페이스북에 감사와 응원의 댓글을 달았다. 김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마치 검찰의 수사권이 사라지면 이 나라의 형사사법 체계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들이 그것을 이용해 얼마나 특권을 누려 왔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한다. 그러면서 검찰이 아니었으면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 때문에 장윤기 같은 범죄자들의 실체를 못 밝혔다 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 식구 감싸기 올림픽 대회가 있다면 금메달은 누가 뭐래도 검찰 몫이다.
검찰 내부에서 성폭력이나 범죄를 저지른 검사는 징계, 수사, 기소는커녕 공개도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검사 비위 사건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한결같다. 내부 감찰은 유야무야 끝나고, 인사 이동으로 조용히 덮이며, 문제가 커져도 그 검사는 나중에 변호사 개업 후 전관의 지위를 누리며 승승장구한다. 이런 이중 잣대야말로 검찰 권력의 오랜 주특기였다.
지난 20년간의 성폭력 수사·재판 과정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경찰보다 검찰이 피해자에게 해를 끼친 경우가 3배나 많다.(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시민감시단이 2004년부터 선정한 성평등 걸림돌 사례에서 경찰 11건, 검찰 30건) 1964년에 성폭력범의 혀를 깨문 최말자 씨에 대한 경찰의 정당방위 인정을 뒤집고 구속해 버린 것도 검찰이었다.
이 사건은 국가 권력이 피해자를 어떻게 다시 한번 가해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수사 중에 자살하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경찰보다 검찰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무려 10배도 더 많았다. 별건 수사와 먼지털이식 압박, 그리고 한 번 찍히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수사 관행이 만들어 낸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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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학의에 대한 경찰의 강간치상 혐의를 무혐의로 뒤집은 것도, 김건희 씨의 온갖 혐의들을 기소하지 않았던 것도, 미성년자 성착취 국민의힘 시의원에 대한 영장을 거듭 반려한 것도 검찰이었다. 힘없는 피의자에게는 날카롭기만 하던 검찰의 칼날은 권력자 앞에서는 한없이 무뎌지고 느슨해졌다. 즉, 검찰은 강자, 부자, 권력자들의 편이었다는 게 진실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울어진 사회(계급사회)에서 이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부와 권력이 있으면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좋은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권력 기관에 더 많은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다.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재력이 있는 사람과, 국선 변호인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기 힘든 사람 사이의 격차는 처음부터 좁히기 어렵다.
그래서 경찰도, 검찰도, 사법부도 기본으로 부자와 강자들의 편이다. 어느 한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형사사법 체계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편향이다. 그런데 권력이 집중돼 있고, 민주적 통제가 어려운 기구일수록 그것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사권, 기소권, 영장 청구권, 공소 유지권, 형 집행권 등을 한 손에 쥔 검찰이 문제였고 검찰 개혁이 제기되어 왔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토록 많은 권한을 단일 기관이 독점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압도적인 권한의 집중이야말로 검찰을 성역으로 만들고, 스스로에 대한 수사조차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든 원인이다. 경찰 피해자의 목소리를 내세워 이것을 흠집 내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경찰 피해자는 검찰 개혁을 반대하고, 검찰 피해자는 경찰 개혁에 반대해야 하나?
이런 식의 단세포적이고 억지스러운 편 가르기는 피해자들이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드는 조잡한 분할 통치의 논리일 뿐, 피해자들의 권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필요한 것은 경찰, 검찰, 사법부 모두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피해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의 표적 수사, 별건 수사, 먼지털이 수사에 의해 고통받은 피해자들은 또한 피의자 들이었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법사위원들이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와 관련해 국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서 위원장, 민주당 김승원 간사, 진보당 손솔 의원. 사진=서 위원장 페이스북
그들은 국가 기구와 권력 기관에 맞서 자신이 간첩 이나 파렴치한 범죄자 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며 누명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잘못된 구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재산과 시간과 자신의 삶까지 잃어야 했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따라서 검찰 개혁의 내용은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더 빠르게 범죄자로 판정하고 더 강력하게 처벌할 것인가 라는 방향일 수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사건의 진실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억울한 누명을 쓰는 피해자(피의자)가 없도록 막아낼 것인가 가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여성 단체나 피해자 지원 단체들의 요구와 어긋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틀렸다.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단체들이 바라는 것은 단지 괴물 같은 가해자들을 샅샅이 찾아내 모조리 감금하고 강력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 권력과 형벌 기구를 더욱 강화하는 방식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보다는, 그 국가 권력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칼날로 돌아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감금과 처벌 을 중시하는 것은 페미니즘과도 거리가 멀고,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우파적 그룹의 관점이었다.
모든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은 더 이상 새로운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처벌의 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구조적 폭력이 재생산되는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그 바탕에 있다. 따라서 여성 단체 등이 검찰 수사권 박탈을 무슨 여가부 폐지처럼 막아설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부와 권력에서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바로 검찰 권력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기도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검찰 개혁은 이제 중요한 한 고비를 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번에 통과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대통령령, 시행령, 세부 규정, 매뉴얼 등을 모두 바꾸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 지난한 작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왼쪽에서 두 번째)와 한동수 변호사(네 번째) 등이 6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검찰개혁을 위한 시민 주도 신형사소송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페이스북
경찰과 국수본의 수사 능력과 검찰과의 협력, 민주적 통제 방안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공소청 출범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검사들의 직간접적 사보타주와 방해 공작, 장관이 앞장서고 있는 법무부의 비협조까지 넘어서서 이런 과제를 이루어야 한다. 더구나 이제 겨우 수사권을 분리했을 뿐이고 검찰의 기소권 독점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기소권을 어떻게 더 쪼개고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는 더욱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무엇을 기소하고 무엇을 기소하지 않을 것인가를 오직 검찰만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과 구조를 대배심 제도나 시민 기소위원회 등을 통해서 분산하고 통제해야만 한다. 게다가 검찰은 지금 디지털 포렌식 센터와 범죄정보기획관 등으로 대표되는 캐비닛 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내밀한 정보와 기소권 독점을 통해서 상대방을 압박하고, 사건에 따라서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착수금만 50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꽉 쥐고 있겠다는 말이다. 정보와 권력을 함께 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압도적 우위는, 검찰 조직을 떠난 이후에도 전관들의 몸값을 천장을 뚫고 끌어올리는 배경이 되어 왔다.
더구나 겨우 고비를 넘은 검찰 개혁이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제발 망해라 저주를 퍼붓고 있는 친검 언론, 친검 기자, 법조 기자단의 문제도 있다. 이들은 검찰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검찰의 입과 같은 구실을 해 왔다. 검찰과 오랜 세월 공생 관계를 맺어온 법조 기자들에게, 검찰 개혁은 자신들의 밥그릇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검찰 권력과 그들의 동맹 세력이 이 사회 곳곳에 얼마나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들의 벽을 넘어서야 하는 검찰 개혁이 얼마나 힘든 과제였는지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검찰 정권의 몰락과 정권 교체 이후에도 쉽게 안심하지 못하고 계속 의구심과 불안감 속에 있어야 했다.
민정수석에 고위 검사 출신들이 자꾸 임명되고, 친윤석열 검사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법무부의 탈검찰화는 소식이 없는 것에 실망하고 발을 굴러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청와대의 의지 부족만이 아니라, 불리한 상황에서 일단 공격 에서 방어 로 태도를 바꾼 검찰 권력의 끈질긴 버티기와 알박기가 가져온 한계일 수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한 것은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열망과 포기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검찰과 동맹 세력을 비판·고발하고 정치인과 정치권을 감시·압박하면서 검찰 개혁의 진정한 마무리를 위해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힘이 검찰 개혁에만 머물러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온 국가보안법의 폐지, 혐오의 시대를 막아서기 위한 차별금지법의 제정 등 검찰 개혁만큼 오래됐고 결코 더 쉽지 않을 다른 개혁 과제들로 관심과 연대가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개혁의 과제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며, 서로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고 연대하는 것을 누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할지는 분명하다.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