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덜 지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저출생 대책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청년을 붙잡지 못하는 도시의 저출생 대책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정책을 외친다. 청년수당을 주고, 청년센터를 만들고, 청년행사를 열고, 청년친화도시를 선언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자주 빠진다. 그 정책은 청년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지원 대상으로만 보는가, 아니면 그 청년이 지역에 머물며 터를 잡고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가. 진짜 청년정책은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일하고, 관계를 맺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삶을 설계할 수 있게 만드는 정책이어야 한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에서 저출생 대책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청년수도 관악이라는 도시브랜드를 활용하며, 청년들의 활발한 정보교류와 네트워크를 담당하고 있는 관악청년청.(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소재)
아침 8시, 집안은 늘 전쟁터다. 밥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는 부모의 마음과, 1분이라도 더 자고 싶은 아이들의 고집이 매일 아침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아들과 딸의 입에 번갈아 밥알을 밀어 넣고, 어제저녁 미처 챙기지 못한 학교 제출 서류를 부랴부랴 찾는다. 하필 이런 날이면 프린터 잉크는 떨어져 가고, 아이의 양말은 늘 한 짝이 사라진 듯 엇갈린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우주를 품는 일처럼 경이롭고 따뜻하지만, 그 우주를 하루도 빠짐없이 궤도에 올려두기 위해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아침의 중력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우리 가정도 맞벌이를 이어가던 시기가 있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만큼은 아이 곁에 돌봄의 공백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결국 한쪽이 일과를 조정해 생활의 무게를 떠안는 선택을 해야 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정 내부로 흡수됐다. 오늘날 저출생 정책이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출산을 권하는 구호가 아니라, 양육의 공백을 사회가 어떻게 함께 메울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청년정책이어야 한다. 청년이 지역에 머물 수 없는 곳, 집값과 일자리와 돌봄의 조건이 모두 불안한 곳에서 아이를 낳으라고만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늘봄은 돌봄의 전부가 아니다
요즘 저출생 대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늘봄’이다. 하지만 늘봄은 돌봄 그 자체가 아니라 학교 안에서 제공되는 방과후·돌봄 확장 서비스에 가깝다. 말하자면 학교가 문을 조금 더 오래 열어두는 제도다. 반면 돌봄은 훨씬 넓다. 아이의 등교 전, 하교 후, 방학 중, 아플 때, 부모가 일과를 못 비울 때, 급한 상황이 생겼을 때까지 삶의 전 구간을 떠받치는 체계여야 한다. 늘봄이 학교 안의 한 축이라면, 돌봄은 학교 밖과 집 앞, 동네와 행정을 함께 묶는 생활 인프라다.
그런데 정책은 자주 이 둘을 혼동한다. 학교에 프로그램 하나 더 붙이면 돌봄이 해결되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부모가 실제로 겪는 위기는 교실 안에만 있지 않다. 아침 등교 준비, 하교 동선, 병원 진료, 방과후 공백, 주말과 방학의 빈칸, 갑작스러운 휴교와 감염병 상황까지 이어진다. 이름만 바뀐 제도는 많지만, 부모의 하루를 실제로 덜어주는 장치는 아직 부족하다.
아침 풍경이 그 차이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날 때 믿고 맡길 곳이 있는가. 하교 시간이 부모의 퇴근 시간보다 빠를 때 동네에서 연결되는 안전한 돌봄망이 있는가. 학교와 학원과 돌봄기관의 안내가 서로 다를 때, 부모가 그 모든 정보를 제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출생 장려’나 ‘돌봄 강화’라는 말은 그저 정책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태어난 곳에서 행복하게 배우는 지역 교육혁신 (이미지 출처 : 교육부 홈페이지 카드뉴스)
현금보다 중요한 마찰 제거
자치구들의 저출생 대응을 보면 씁쓸할 때가 많다. 어떤 곳은 미혼 남녀 만남 행사에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붓고, 어떤 곳은 출산축하금 인상 소식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물론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부모들이 정말 현금 몇십만 원, 몇백만 원에 인생의 선택을 바꿀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낭만적이거나, 너무 행정편의적이다.
서울의 여러 자치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출산·양육 지원을 한데 모아놓았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들어가 보면 신청 경로가 흩어져 있고, 동일한 정보를 여러 번 입력해야 하며, 상담 전화는 늘 연결이 어렵단다. 어떤 구는 육아지원 포털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링크 모음에 그치고, 어떤 구는 프로그램 실적은 많지만 정작 부모가 원하는 긴급 돌봄이나 시간제 보육 정보는 찾기 어렵다. 정책의 이름은 거창한데, 체감은 여전히 각자도생이다.
사실 부모가 바라는 것은 영웅 대접이 아니다. 애국하라는 훈계도, 국가경쟁력이라는 수사도 아니다. 그저 오늘 아침이 어제보다 조금 덜 버거웠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가 아파도 눈치 보지 않고 반차를 낼 수 있는 직장, 방과후 공백을 메워줄 실질적인 동네 돌봄, 서류 한 장 때문에 학교와 구청과 센터를 맴돌지 않아도 되는 행정,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가 내가 혼자 감당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는 사회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정책은 늘 거창한 메가시티 위를 날고, 부모들은 서울의 좁고 위험한 골목길 통학로와 끝없는 등교 전쟁 속에서 하루를 버틴다. 수백억 원짜리 통합 플랫폼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일상의 마찰계수를 낮추는 세밀한 장치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국력 과시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덜 지치게 만드는 것, 그게 진짜 저출생 대책이다.
아침마다 짝짝이 양말을 신으며 등교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하나를 지키는 일.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삶을 꾸릴 수 있게 만드는 일. 그 둘은 따로 떨어진 과제가 아니다. 수백억 원짜리 화려한 예산서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청년의 서늘한 일상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아주 구체적이고 촘촘한 정책이다. 그 상식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드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불편을 포장한 현재일 뿐이다.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