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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금고털이 협잡꾼이 애국자가 될 수도, 에디 채프먼

금고털이 협잡꾼이 애국자가 될 수도, 에디 채프먼
[사람들]
세상에는 애국심을 인정 받아 훈장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순전히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 얼떨결에 훈장을 받는 사람도 있다. 에드워드 아놀드 채프먼(Edward Arnold Chapman, 1914~1997)은 후자 쪽,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사례에 속한다. 그는 영국 정부로부터도, 독일 나치정부로부터도 각각 인정을 받은 인물이다. 두 나라 모두에게서 사랑받은 스파이라니, 이쯤 되면 재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곡예에 가깝다.   1942년의 채프먼(위키피디아) 금고털이범의 화려한 전과 채프먼은 1914년 잉글랜드 북부 더럼 지역의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술집을 운영했으나 장사보다 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집안형편은 늘 궁핍했다.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둔 채프먼은 열일곱 살에 근위연대에 입대했지만, 런던의 유흥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정신이 팔려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 결국 불명예제대를 당한 그는 런던 소호 거리의 온갖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바로 금고를 폭약으로 여는 기술이었다. 그는 젤리 갱단 이라 불리는 금고털이 조직에 가담해 전국을 돌며 은행과 상점의 금고를 날려버렸다. 벌어들인 돈으로 소호의 명사들과 어울리며 배우와 예술가들 틈에서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화려한 생활에는 늘 끝이 있는 법. 경찰의 추적을 피해 영국 채널 제도의 저지섬으로 도망친 그는 그곳에서 야간클럽 절도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나치를 속인 영국의 이중간첩, 에디 채프먼(https://allthatsinteresting.com) 저지섬 감옥에서 태어난 이중첩자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채프먼이 감옥에 있는 사이 독일군이 저지섬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영국인 죄수에서 독일점령지의 죄수로 신분이 바뀐 그는 특유의 임기응변을 발휘한다. 자신은 영국경찰에 쫓기는 몸이니 영국에 충성할 이유가 없다며 독일정보기관 압베어에 스파이로 써달라고 자원한 것이다. 폭파전문가라는 그의 이력은 독일 측에게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프랑스에서 약 일 년 간 첩보훈련을 받은 채프먼은 1942년 12월, 영국 케임브리지셔 지역에 낙하산으로 투하된다. 독일이 그에게 맡긴 임무는 영국의 핵심 폭격기 생산공장을 폭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착지하자마자 그가 향한 곳은 은신처가 아니라 경찰서였다. 자수한 그는 영국 정보기관 MI5에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이렇게 그는 암호명 지그재그 (Zigzag)라는 이중첩자로 다시 태어난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인생이력에 딱 어울리는 암호명이었다.   채프먼.(Eddie Agent Zigzag” Chapman (1914-1997) - Find a Grave Memorial) 가짜 폭파, 진짜 훈장 MI5는 채프먼을 이용해 기막힌 속임수를 꾸민다. 1943년 1월, 실제 공장은 멀쩡히 놔둔 채 정교한 위장시설을 꾸며 마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해 독일정찰기가 사진을 찍도록 유도한 것이다. 감쪽같이 속은 독일은 채프먼의 전과 를 크게 치하했고, 그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독일로부터 훈장까지 받는다. 영국을 위해 일하면서 독일의 훈장을 받은 셈이니 채프먼만큼 양쪽에서 동시에 신뢰를 얻은 이도 드물다.   채프먼.(Eddie Chapman - Alchetron, The Free Social Encyclopedia) 적과의 우정, 그리고 그 후 전쟁이 끝난 뒤에도 채프먼은 자신을 담당했던 독일 정보장교와 친분을 이어갔다. 훗날 형편이 어려워진 그 전직 장교는 채프먼의 딸 결혼식에 하객으로 초대받기까지 했다.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 세월이 흐른 뒤 사돈처럼 지낸 셈이다. 채프먼은 이후에도 밀수와 도박판을 기웃거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1997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인생은 여러 권의 회고록과 영화로 만들어졌다.   1954년 4월 4일 런던에서 아내 베티 파머와 함께한 에디 채프먼(Jecinci) 한국에 던지는 질문 채프먼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위대한 애국자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애국심이 아니라 생존본능으로 움직였고, 그 결과가 우연히 조국에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훈장을 받고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반면 진짜 신념을 가진 이들은 종종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잊힌다.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에서는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려던 윤석열 일당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평소 애국과 안보를 그토록 외치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위기의 순간, 그들의 선택은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안위 그리고 이해관계였다. 채프먼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의 말이 얼마나 그럴듯한 애국의 언어로 포장되어 있는지가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그가 실제로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채프먼의 삶은 또 다른 질문도 던진다. 한때 적이었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화해는 진실을 덮어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기록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진 뒤에야 가능하다. 계엄의 밤에 가담했던 이들의 이름과 행적을 흐지부지 덮어버린다면, 그것은 화해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협잡일 뿐이다. 채프먼처럼 화려하게 각색된 이야기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채프먼과 그의 롤스로이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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