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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엔 타워 데이 열건가…생각 없음이 악의보다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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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로고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스타벅스가 9월 11일에 Tower Day 를 열었다고 상상해 보자.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연상시키는 Tower 라는 이름의 텀블러를 할인하고, 하늘에서 쾅! 이라는 카피를 붙인다. 기획부터 대표이사 결재까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논란이 터진 뒤, 회사는 이렇게 발표한다.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의도는 없었다. 물론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하지만 그 터무니없는 일이 바로 한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상상이 아닌 실제 사례도 있다. 텍사스의 한 매트리스 판매점은 9·11 기념일을 앞두고 매트리스를 쌍둥이 빌딩처럼 세워놓은 Twin Tower Sale 광고를 냈다가 전국적 공분 속에 무기한 영업중단을 발표했다. AT&T는 9·11 추모 빛기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이미지를 광고에 올렸다가 몇 시간 만에 삭제하고 사과했다. 링크드인은 9월 11일에 제품 기능 소개 웨비나를 잡았다가 마케팅 세계가 최소한 침묵해야 하는 날 을 건드렸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일정을 변경했다. CNN은 이런 사례들에 대해 9/11 is NOT a holiday 라고 단언한다. 논쟁이 아니라 상식이라는 것이다. 미디어 전략가 스티븐 로젠바움은 링크드인 사례를 두고 대기업은 마케팅 이벤트를 잡기 전에 내부 일정, 모기업 일정, 업계 일정을 확인한다. 한 직원이 9·11 마케팅 이벤트를 임의로 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고 지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팀장·담당·본부장·대표이사로 이어지는 4단계 보고라인과 결재·합의자들이 5월 18일 ‘탱크데이’를 통과시켰다. 일부는 첨부파일조차 열지 않았다. 5월 26일, 신세계그룹 차원의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탱크 는 대만 공급사가 정한 텀블러 제품 명이고, 5월 18일은 가습기 리콜로 일정이 밀려 우연히 잡힌 날짜이며, 일선 직원부터 대표이사까지 결재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요약하면 신세계의 조사 결과는 의도는 없었지만 사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말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심각한 고백이다. 의도적 악의였다면, 문제는 비교적 단순하다. 해당 책임자를 징계하면 된다. 한 사람의 잘못이나 개인의 일탈로 환원할 수 있다. 그런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5월 18일에 탱크 와 책상에 탁 이 한 홍보물 안에서 만났는데도, 4단계 결재라인의 누구도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재 합의자 7명 중 일부는 디자인 시안이 담긴 메일의 첨부파일조차 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했다. 책상에 탁! 문구는 기존 카피 가방에 쏙! 과 운율을 맞춰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고, 경영진에게는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핵심 담당자 3명은 사생활을 이유로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고, 조사는 그 한계를 안은 채 고의성을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고 마무리했다. 신세계그룹이라는 대기업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 조직의 결재라인 전체에, 국가폭력의 기억을 경계하는 감각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의 부재가 악의보다 더 넓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일찍이 경고한 바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에 복무했다. 스타벅스의 결재라인에서 일어난 일을 그 비극과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지 않음’의 위험은 이 사태를 읽는 데 하나의 경고등이 될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시스템의 관행이 될 때, 결과는 개인의 악의보다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상조사가 답하지 않은 질문이 하나 있다. 왜 감수성이 부재했는가. 왜 결재라인 전체가 5월 18일과 탱크의 조합 앞에서 아무런 경보도 울리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이렇게 지적했다. 오너의 의중을 살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체득화돼 있는 일이다.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면피성 꼬리자르기 사과 정용진 회장 규탄, 스타벅스 불매운동 전국화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국민중행동 등 참석자들이 관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5.27 연합뉴스 물론 특정 발언 하나가 특정 광고 문구를 직접 낳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더 넓다. 조직은 총수의 언어와 관심사를 보고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무엇은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배운다. 총수가 과거 멸공 을 SNS에 올리고 극우 만화가와 사적 만남을 통해 친분을 과시했던 조직에서, 5·18 감수성 이 결재 체크리스트의 상위 항목이 되기는 쉽지 않다. 진상조사는 결재라인의 무감각을 확인했지만, 그 무감각의 토양을 묻지 않았다. 정용진의 사과에서도 자신의 과거 발언과 행보가 조직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마디도 없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분간 세 차례 고개를 숙이며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 고 말했다.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 는 선언도 있었다. 그러나 변명하지 않는 것과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보통 사과는 세 가지를 필요로 한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특정하는 것, 왜 벌어졌는지 설명하는 것, 어떻게 바꿀 것인지 약속하는 것. 정용진의 사과에는 첫째도 둘째도 비어 있었다. 잘못의 내용을 특정하지 않는 사과는 형식은 있으되 내용이 없다. 원인을 밝히지 않는 사과는 재발 방지를 약속할 수 없다. 또한 정 회장은 사과문 후반부에서 돌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우리 모두가 같다고 믿습니다. 사과하는 쪽이 먼저 꺼낼 말은 서로 이해하자 가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했다 여야 한다. 국가폭력의 기억을 마케팅에 올린 기업이, 그 기억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들을 향해 서로 이해하자 고 말할 때, 그 서로 는 대칭적이지 않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구조가 된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는 말은 더 깊은 문제를 건드린다. 5·18은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국가가 공식 인정한 민주화운동이고, 법원이 판결한 국가범죄이며, 특별법으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한 역사적 사실이다. 헌법 전문에 그 정신을 명시하려 한 것도 바로 이 무게 때문이다. 이것을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의 영역에 놓는 것은, 사과의 형식 안에서 사과의 전제를 상대화하는 행위다. 자크 데리다가 비판한 조건부 용서 의 구조가 여기에 있다. 사과의 형식을 제출하고, 그 대가로 정상화를 요구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거래다. 미국에서 9·11 추모 빛기둥을 광고에 넣은 AT&T는 몇 시간 만에 삭제하고 사과했다. 링크드인은 9월 11일 웨비나 일정을 즉시 변경했다. 매트리스를 쌍둥이 빌딩처럼 쌓은 회사는 무기한 영업중단을 선언해야 했다. 한국에서 5·18에 탱크데이 를 연 기업의 총수는 여드레 뒤에 4분간 사과하고 서로 이해하자 고 말했다. 이 간극은 한 사회가 국가폭력의 기억에 부여하는 무게의 차이다. 진상조사 결과는  아무도 몰랐다 고 변명했지만 그 모름 자체가 가장 심각하다는 것을 신세계 관계자들이 자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총수가 사과문에서조차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라고 말해 논란을 자초했고 그 표현을 걸러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말 자체가 사과의 전제를 녹여버렸다. 조사도, 사과도, 이 사태의 원인에 닿지 못했다.   지난 2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열린 스타벅스 코리아 규탄 기자회견에서 스타벅스 텀블러와 컵 등이 깨지고 찌그러진 채로 놓여있다. 2026.5.21 연합뉴스 결국 시민들이 텀블러를 부수는 분노도, 4분간의 사과도 이 문제를 끝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걸 끝내는 것은 우리가 질문을 계속하는 것이다. 왜 이 조직은 멈추지 못했는가. 왜 이 사과는 사과로 완성되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우리 사회에서 5·18의 무게는 아직도 이렇게 가볍게 취급될 수 있는가. 의도가 없었다면, 그것은 의도가 있었을 때보다 더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 악의를 품어야만 국가폭력의 기억이 텀블러 광고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악의 없이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주디스 슈클라가 말한 잔혹함에 대한 감각이 한 기업의 결재라인에서, 한 총수의 사과문에서,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막지 못한 광고 카피에서, 동시에 부재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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