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죽음은, 특히 그것이 천수를 누린 자연사라면, 그 죽음이 쉽게 용납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죽음은 본래 애도의 대상이지만, 어떤 죽음은 추모를 보내기가 힘들다. 아니, 애도를 보내는 것 자체가 부정의라고 해야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한 사회가 그 죽음을 받아들이려면 필요한 선행 조건이 있는 죽음이다. 사죄와 반성, 그리고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만 하는, 그것 없이 천수를 다한 자연사라면 그 인물의 죽음 이상으로 한 사회가 일종의 죽음 을 겪게 되는 그런 죽음이다. 이를 테면 그런 죽음은 사회의 허락, 정리와 청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대신 스스로를 용서한 채 한 인물이 일방적으로 먼저 가버렸다.
교회에서 신앙 간증을 하는 고문기술자 이근안. S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는 소식이 하루 뒤인 26일 알려진 것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갖는 복잡한 심경, 적잖은 당혹감이 바로 그렇다.
향년 88세. 이른바 천수 (天壽)를 누렸다. 88이라는, 인간의 삶의 길이로는 결코 작지 않은 그 숫자의 생애를 보내고 자연사한 인물의 죽음 앞에서 떠올리게 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다. 두달 전에 별세한 이해찬 전 총리, 그의 향년은 73세였다. 지금의 장수 시대에는 너무도 때 이른 죽음의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겪은 혹독한 구타와 고문의 후유증이 꼽혔다.
그리고 이 전 총리의 별세와 함께 다시 환기됐던 이름 하나를 이근안의 죽음을 맞아 다시 선명히 떠올리게 된다. 김근태 전 의원. 민청련 의장이었던 그야말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이근안으로부터 23일간의 ‘지옥’을 경험했던 사람이다. 그의 향년은 겨우 64세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 고통을 겪다가 60대 중반,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 전 총리나 김 전 의장처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근안의 고문으로 인해 삶이 파괴되고 결국 일찍 세상을 뜬 이들 중의 하나가 이을호 민청련 상임위 부의장이다. 김 의장과 함께 끌려가 이근안 일당에게 23일에 걸쳐 수십번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한 그는 후에 이렇게 술회한다.
잠 안재우고, 물고문 며칠 하면 변이 안나온다. 전기고문과 칠성판이 더해지면 내가 올빼미 라는 환상이 든다. 죽고 싶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
이을호는 결국 김 의장이 사망한 지 10년 여 후에 고문후유증에 따른 복합증세로 세상을 떠나 김 의장이 묻혀 있던 마석 모란 공원묘원 묘역으로 뒤따라갔다.
이근안은 고문 기술자 외에도 인간 백정 , 지옥에서 온 장의사 등의 별칭으로 불렸다. 그의 고문 수법은 잠 안 재우기, 물고문, 전기고문, 날개 꺾기, 통닭구이, 관절 빼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현란’했다. 남영동에 끌려갔던 이들이 증언하는 칠성판 물고문은 나무판자에 사람을 눕히고 가죽끈으로 묶어 물을 퍼붓는 방식이었다. 뛰어난 고문 기술로 영화 〈1987〉에서 박처원 남영동 대공분실장이 가장 아꼈다는 부하가 바로 이근안이었다. 1981년 서울대 무림사건 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지목됐던 그는 그해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래도 난 애국을 한 것이었다 고 2012년 12월 14일 이근안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종지묵을 댔다. 2012.12.14 연합뉴스 자료사진
1999년 10월 28일의 이근안.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주화 이후 수배된 그는 12년간 도피 끝에 자수했고, 받은 형량은 징역 7년이었다. 출소 이후 그는 목사가 됐다. 공개 간증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신앙을 통해 용서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스스로를 사면한 것이었다. 그리고 생전 자서전에는 이런 말도 남겼다.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 교회 신앙 간증에서는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고 하기도 했다.
이근안의 천수는 또 다른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광주 5·18 유혈 진압의 주범 독재자 전두환이다. 그는 호사를 누리며 살다가 2021년 만 90세로 자연사했다. 사죄 없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처벌 없이 그는 편안하게 죽었다.
이근안에게 전성기를 안겨준 것이 전두환의 독재였다면, 두 사람의 천수는 우연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 한국 사회의 한 구조적 현실처럼 보인다. 국가폭력에 짓밟힌 몸은 더 일찍 무너지지만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이들은 장수하는 뒤집힌 역사와 현실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근안의 죽음을 이렇듯 그의 사망 뉴스 한 줄로 쉽게 보낼 수 없는 이유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해찬 전 총리의 이른 죽음과 그 두 달 뒤의 고문기술자의 자연사. 70을 갓 넘기고, 70에 못 미쳐 세상을 떠난 이해찬과 김근태, 두 사람의 몸이 무엇을 증언하는지를 묻는 것. 고문이 애국이고 예술이었다”고, 자신을 스스로 용서한 이의 88년의 장수와 함께 물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