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독재 옹호하는 그럴싸한 주장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러시아어 SNS에 최근 한국에서 이루어진 정권교체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아래 댓글에서는 ‘정권교체’와 ‘지도자 교체’의 필요성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논지가 많이 나왔다. 특히 러시아어 SNS에 자주 등장하는 논리들이 그대로 드러나서 매우 흥미로운 토론이 되었다.
이 논의 속에는 푸틴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논리들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우리가 보기에 이러한 논리 구조는 꽤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1. 지도자를 자주 바꾸면 정책의 연속성이 끊긴다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할 때마다 이전 지도자의 결정을 모두 부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결국 시간과 자원이 낭비된다는 논리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지속 가능한 성장도 어렵고 장기적인 인프라, 국방, 무역 정책 등도 추진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정책의 계승성’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된다. 대표적인 예가 북한과 러시아다. 러시아 네티즌들의 논리대로라면 러시아의 장기 인프라 프로젝트(크림반도 대교, 주요 도시 간의 고속철도, 모스크바의 낙후된 동네 재개발 등)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권력이 장기적으로 바뀌지 않아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를 예시로 들면서, 인프라나 건설 등 분야에서 제대로 된 개혁이 하나도 없고 경제 침체가 뻔히 보이는 반면에, 권력이 바뀌지 않고 ‘안전’한 국가(중동 왕국, 중국, 북한 등)에서는 눈에 띄는 거대한 프로젝트도 많고 실제로 완성 단계까지 성공적으로 간다는 논리다.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난 2~4일 중국 방문을 담은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열병식 행사가 끝난후 만나서 대화하는 도중 파안대소하는 모습.[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2025.9.6
2. 국정은 경험이다
현 지도자는 국정 운영에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인물이다. 이미 국정 과제를 잘 파악, 해결 과정에 있는 사람을 갑자기 교체하면 혼란이 생기고 새로운 결정권자와 실무자들이 경험을 쌓는 데 다시 시간이 걸린다는 주장이다.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가 석기시대부터 배워 온 기본 원리는 ‘역할 분담’이다. 농사는 농부가 짓고 사냥은 사냥꾼이 하듯이 국정도 경험 많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다.
러시아에서는 이와 관련해 자주 쓰이는 관용어가 있다. Лошадей на переправе не меняют”(‘강을 건너는 중에는 말을 바꾸지 않는다’). 즉, 일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담당자를 바꾸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2024년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길거리 인터뷰에서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푸틴이 전쟁을 시작했으니 푸틴이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3. 국가 지도자는 국가의 상징이다
국기를 바꾸지 않듯 지도자를 자주 바꾸는 것도 비효율적이며 국가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논리다. 안정적이고 강한 지도자는 국민에게 ‘기준점’을 제공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보다 안정된 환경을 선호하기 때문에 잦은 개혁과 변화는 불필요한 불안감만 불러일으킨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잣대’로서 지도자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특히 경기 불안, 전쟁, 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이러한 담론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매우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러시아 국가두마(국회) 의장 볼로딘은 푸틴이 없으면 러시아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러시아 언론 보도에서는 미국과 나토에 맞서는 유일한 인물로 푸틴을 찬양하며 이런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를 바꿀 수는 없다”는 논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서사다.
4. 잦은 정권 교체는 권력 구조를 약화시킨다
잦은 선거는 국정을 ‘투표 쇼’로 변질시키고 정치 세력들은 국가 운영보다 권력 다툼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국정의 가치는 ‘국가 운영의 효율성’이 아니라 ‘지지율 경쟁’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반면 권력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혼란이 줄고 권력 조직이 안정되며 효율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서사가 바로 ‘효율적인 권위주의 vs 혼란스러운 민주주의’다. 러시아의 언론은 유럽과 미국의 문제점을 과장하거나 집요하게 분석하면서 자국의 ‘전통 가치’를 강조한다. 유럽의 경제난, 난민 문제, 미국 사회의 분열, 그리고 동성결혼, 비혼주의, 여성 인권 등 ‘극좌 진보 가치’를 예로 들며 러시아는 이런 혼란 대신 전통적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런 담론은 자연스럽게 권력 구조를 바꾸지 말자” 하나로 뭉쳐서 영원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정치 체계와 권력 구조의 문제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반복해온 오래된 주제다. 각 나라는 저마다의 역사와 조건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고 서로를 비판하기도, 혹은 동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대가 어떤 논리와 사고방식으로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국제 관계 속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러시아가 다시 가까워질 때 이를 반드시 머리에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