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만에 돌아온 이종섭 대사 업무에 충실하겠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이동하고 있다. 2024.3.21 [공동취재] 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임시 귀국했다. 호주로 출국한 지 11일 만이다. 그는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한 채 도주하듯 빠져나갔다.
이 대사는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을 통해 들어와 취재진과 만나 여러 질문을 받은 뒤, "저와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선 제가 이미 수 차례에 걸쳐서 그런 의혹이 사실이 아니란 점 분명하게 했다"며 "여러가지 의혹에 대해서 다시 중복해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제가 임시 귀국한 것은 방산협의 관련한 주요국 공관장회의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며 "체류하는 동안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일정 잘 조율돼서 조사받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 대사는 향후 일정과 관련, "다음 주는 방산협력 관련한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 같다"며 "그 다음 주는 한·호주 간에 계획돼 있는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2+2 회담 준비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말씀드린 두 가지 업무가 전부 다 호주 대사로서 해야할 중요한 업무"라며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호주 대사 업무를 강조한 것은 여야에서 제기되는 자진사퇴 요구에 일단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외압 의혹으로 수사받는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24.3.21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 대사는 기자들로부터 '사의 표명 의사가 있느냐' '귀국 관련해서 대통령실에서 미리 연락받았냐' 등의 질문을 함께 받았지만, 이에 대해선 답변을 하지 않았다. 불리한 질문에 아예 발언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여기까지 하겠다"며 대기하는 차량을 타고 급하게 떠났고, 입국장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취재진이 수사 외압과 관련해 질문하자 "수사 문제는 수사기관에서 다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른 질문들도 답하지 않았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 시절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을 가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돼 수사 받던 중 호주 대사로 임명돼 논란이 됐다. 그는 출국금지 상태였으나, 법무부가 이를 해제해 이틀 만인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호주로 출국했다. 이에 국내외에서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이 대사의 호주 출국이 이른바 '런(run·도주) 종섭 사태'로 비화하며 서울 지지율이 10% 이상 떨어지는 등 민심이 등 돌리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 여당 선거대책위원회까지 나서서 이 대사의 즉각 소환 및 귀국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여당 지도부와 중진들의 요구에도 "적임자를 발탁한 정당한 인사"라며 완강하게 버텼지만, 총선을 앞두고 부정 여론 확산을 막으려는 듯 전날(20일) 갑자기 이 대사의 귀국 사실을 알렸다.
외교부는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실발 보도에 맞춰 전날 호주,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카타르, 폴란드 등 6개국 대사가 참여하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오는 25일 열린다고 발표했다.
외교가에선 방산 협력 때문에 일부 공관장만 별도로 모은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인 형태의 회의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이 대사의 귀국으로 악화된 여론을 가라앉히기 위해 급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를 포함한 의원들이 21일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향해 사퇴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3.21 [공동취재] 연합뉴스
"이종섭 귀국, 문제 해결 아니라 시작"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사의 임명 철회와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홍익표 원내대표과 조정식 사무총장,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 김민석 선대위 상황실장 등은 이날 오전 입국장 기자회견에서 "국제적 망신이고 호주에 대한 외교 결례"이라며, 이 대사의 귀국을 규탄했다. 이 자리엔 한준호·오기형 의원, 안귀령 대변인 등 선대위 본부장단과 더불어민주연합 강민정·이동주 의원 등도 자리했다.
홍 원내대표는 "애초부터 호주 대사 임명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여당이 선거를 앞두고 민심이 나빠지고 선거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급히 귀국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사는 수사 외압의 핵심 피의자이며, 대통령실이 부당한 수사 외압을 했는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라면서 "그런 이 대사를 호주로 도피시킨 것 자체가 대통령실로 연결되는 수사에 대한 고의 방해나 지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공수처를 향해 "당시 안보실 관련 사람들과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 등이 어떻게 수사에 개입했는지 등을 수사하라"며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 대통령의 부당한 수사 개입이 있었는지도 밝히라"고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전날 이 대사의 귀국을 두고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한동훈 위원장을 겨냥해 "이 대사 귀국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시작"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