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의 한글철학 ㊼] 제소리로 깬 사람 [사람들] 지난 글이 다석철학 인물지도”를 그리는 숨빛 얼개라면, 이번 글은 그 숨빛 얼개를 좀 더 촘촘하게 짠 그물코 머리글이다. 특히 앞글에 밝힌 아홉 길 – 숨빛 도는 자리”를 ‘빛줄기’로 놓고 아홉 길 말머리 1)말글 뿌리, 2)민족 숨빛, 3)오산 불씨, 4)예수 길, 5)빈탕과 신비, 6)동아시아 회통, 7)해방과 씨알 전승, 8)현장 영성, 9)학문 확장과 사상 대화”에 속하는 인물(빛)을 그물코로 엮었다.
한 사람이 깬 깨달음은 홀로 솟았으되, 그 속에는 시대의 어둠, 스승과 벗의 불빛, 오래된 경전의 숨, 말글의 뿌리, 몸맘얼 수행의 불꽃이 한 소용돌이다. 다석은 스스로 은둔했으나, 갇혀 고립된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긴장태 속에서 세계 영성과 조선 말글과 씨알 숨을 제 얼로 받아, 마침내 우리말로 제소리 낸 참 깬 이였다.
그림1) 제22차 세계철학대회가 2008년에 서울대에서 개최됐다. 심포지엄 5개 주제 중 하나로 한국철학이 포함됐다. 유학을 대표하는 4대 사상가로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을 선정해 궁극적 관심과 궁극적 실재”로 비교 분석하는 특별 세션을 준비했고, 근현대 사상가로는 다석 류영모와 씨ᄋᆞᆯ 함석헌을 가장 먼저 선택했다. 까닭은 우리 말과 글로 철학한 최초의 근현대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씨ᄋᆞᆯ사상연구소(소장 박재순)가 주재한 이 발표에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상봉 전남대 교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교수 등 20여 명이 참가했다(당시 기준). 박 소장은 다석과 씨ᄋᆞᆯ의 사상은 동서 문명의 만남의 과정에서 형성된 독자적 철학이라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다”라고 설명했다.
세계철학이 한국에서 묻다
2008년 여름, 서울대학교에 세계 철학자들이 모였다.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열린 제22차 세계철학대회였다. 사람들은 ‘철학 올림픽’이라 불렀다. 세계 철학자들이 서울 하늘 아래 모였고, 오래 서양 언어로 굳어 있던 철학 물길이 처음으로 아시아 땅에서 크게 휘돌았다. 대회 말이마(主題)는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였다. 다시 생각한다! 철학이 제 스스로를 다시 묻는 자리였다. 서양 근대 이성이 세계를 이만큼 밀고 왔는데도 그 이성이 사람을 살렸는가. 기술문명이 하늘까지 치솟았는데도 땅과 목숨을 살렸는가. 인간은 더 많이 알게 되었는데도 참으로 더 깊어졌는가. 그 물음 앞에 한국 철학의 두 이름이 불려 나왔다. 다석 류영모와 신천 함석헌.
한국 철학 빈칸을 채운 두 이름
류영모와 함석헌이 불려 나온 것은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 이름이 국제 학술대회 명단에 오른 그런 일이 아니란 이야기다. 한국 철학의 ‘빈칸’이 세계 철학 앞에서 제 이름을 얻은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철학을 수입했다. 희랍철학을 배우고, 독일 관념론을 배우고, 프랑스 현대철학을 배우고, 영미 분석철학을 배웠다. 배워야 했다. 그것들이 세계정신의 큰 줄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수입한 말로 생각할 것인가! 남의 말로 ‘참’을 말할 수는 없다. 제 몸으로 앓지 않은 앎은 제 속알이 되지 못한다. 제 말로 터지지 않은 생각은 ‘제소리’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해 서울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가 다석과 함석헌을 불러낸 것은, 한국 철학이 뒤늦게 세계 무대에 얼굴을 비친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말로 생각한 철학’, ‘제 삶으로 앓은 철학’, ‘몸맘얼로 꿰뚫은 철학’이 세계 철학 물음 앞에 나선 사건이었다.
제소리 철학
그 자리에 다석 류영모가 있었다. 물론 다석은 이미 1981년 2월 3일에 숨돌렸다. 그는 몸으로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참으로 큰 사람은 죽어서도 물음으로 온다. 이름으로 오지 않는다. ‘말숨’으로 온다. 다석은 한 이름으로 온 게 아니라, 한국 현대철학 말숨으로 왔다. 한글로 참을 밝힌 철학자, 동서양 경전과 사상을 하나로 꿰뚫은 사상가, 예수 그리스도와 싯다르타 붓다와 노자와 공자, 그리고 중용과 훈민정음과 동학과 대종교와 수학과 물리학을 제 몸맘얼로 지나, 끝내 우리말로 제소리를 낸 깨달은 이. 그이가 다석 류영모였다.
다석은 1890년 3월 13일에 나서 90년 10월 21일을 살고 1981년 2월 3일에 돌아갔다. 스무 살 무렵 오산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1928년부터 1963년까지 서른다섯 해 동안 서울 YMCA 연경반(硏經班)을 이끌었으며, 1946년부터 1971년까지 스물다섯 해는 동광원 사경회(査經會)와 수양회(修養會)에서 강연했다. 경기도 벽제 동광원, 전라도 광주 동광원에서.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스무 해 동안 『다석일지』를 썼다. 그 일지 속에 한시와 한글 시조가 수천 수 남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것은 글 분량이 아니다. 참을 향해 날마다 갈고 닦은 한 사람의 숨결이다. 다석은 수많은 경전을 읽었으나, 경전 속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예수를 만났으되 교회 안에 갇히지 않았고, 붓다를 만났으되 불교 안에 갇히지 않았으며, 노자와 장자를 만났으되 도가(道家) 안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공자와 중용을 읽고, 훈민정음을 읽고, 천부경과 대종교 경전[『삼일철학(三一哲學)』]과 동학 경전을 읽고, 간디와 톨스토이를 읽고, 수학과 물리학을 꿰뚫었다. 그러고는 그 모든 것을 한글 글꼴에 심었다. 생각을 글꼴에 심고, 글꼴을 말숨으로 틔우고, 말숨을 삶으로 살았다.
참나 증인, ‘없’으로 가는 이
다석은 말했다.
나는 참나라는 ‘하나’의 증인이다.”
또 말했다.
없을 내가 말하는데 수십 년 전부터 내가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말머리가 맘대로 트이지 않았다. 나는 없에 가자는 것이다. 없는 데까지 가야 크다. 태극에서 무극에로 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 철학의 결론이다.”
이 두 말 사이에 다석의 온 철학이 숨 쉰다. 하나는 참나 증언이고, 하나는 ‘없’에 가는 길이다. 다석에게 참은 소유할 수 있는 참올(眞理)이 아니다. ‘없’은 허무(虛無)가 아니다. 없은 ‘빈탕’이다. 텅 비어 가득한 자리다. 그 자리에 숨이 돌고, 산김(生氣)이 돌고, 산알 빛이 반짝인다. 참은 그 빈탕의 숨빛이다. 그러므로 다석은 신(神)을 소유하지 않았다. 참올(眞理)을 교리로 가두지 않았다. 말로 한아님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없는 데까지 가야 크다고 했다. 제나를 죽이고 얼나로 솟으라고 했다. 몸나를 벗고, 거짓나를 비우고, 이름나를 내려놓고, 얼나로 솟는 길을 걸었다. 그러니 ‘좀나(小我)’ 깬 자리에 ‘큰나(大我)’만이 둥 뚜렷이 솟았으리라.
몸성히·맘놓이·바탈태우
다석은 오늘살이 수행자였다. 하루 한 끼를 먹고, 늘 무릎 꿇고 앉고, 코로 숨 쉬고, 찬물로 몸을 깨우고, 뫼를 오르내리고, 땀 흘려 일했다. 몸은 탈 없이 성히 하고, 맘은 푹 놓고, 바탈은 태웠다. 몸성히, 맘놓이, 바탈태우. 이 세 말은 다석철학 수행 만다라다. 몸성히는 몸을 거룩한 그릇으로 튼튼히 세우는 일이다. 맘놓이는 세상에 붙들린 마음을 푹 놓아 빈탕을 여는 일이다. 바탈태우는 하늘로부터 받은 바탈을 크게 불살라 얼나로 솟구치는 일이다. 새벽에는 생각불꽃을 틔우고, 낮에는 디긋디긋 땅을 딛고 일하고, 밤에는 맘을 놓았다. 그는 철학을 머리로만 하지 않았다. 몸으로 했다. 맘으로 했다. 얼로 했다. 그래서 다석철학은 설명이 아니라 수행이다. 사상이 아니라 살림이다. 글이 아니라 말숨이다.
그림2) 씨ᄋᆞᆯ 함석헌(왼쪽)과 다석 류영모(오른쪽이다. 다석이 세상 속에서 꼭꼭 숨어든 ‘생각하는 철학자’였다면, 함석헌은 세상 속에서 꼭꼭 나가든 ‘실천하는 철학자’였다. 숨어들었다고 세상 밖에 있지 않았고, 나가들었다고 세상 밖에만 있지 않았다. 세상 안팎을 ‘참’으로 울려서 두드리는 북소리였다.
깨달음은 회오리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렇게 큰 깨달음에 다다랐다면, 그 깨달음은 과연 혼자만의 것이었을까. 아니다. 참 깬 이는 홀로 깬다. 그러나 ‘홀로 깬다’는 말은 ‘아무 빛도 받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씨앗은 제힘으로 땅을 뚫지만, 햇빛과 물과 바람과 흙 없이 싹트지 못한다. 다석도 그러했다. 다석은 외로운 뫼였으나, 그 묏줄기(山脈)는 깊고 넓었다. 그이 안에는 수많은 빛들이 들어와 회오리쳤다. 식민지 조선의 긴장, 나라 잃은 겨레의 숨 막힘, 독립운동의 불안과 결기, 오산학교 청년들의 푸른 눈빛, 조선 천재들의 불꽃, 세계 종교의 오래된 경전들, 한글 글꼴의 신비, 한자 자전의 뿌리, 수학과 물리학의 질서, 무교회의 맨몸 신앙, 비폭력의 길, 씨알의 역사, 동광원의 청빈, 무등산의 고요가 모두 그이 안에서 타올랐다.
다석 깨달음은 한 사람 속알에서 홀로 터진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긴장태 속에서 세계 종교, 민족운동, 한글, 수학, 물리학, 수행, 스승과 제자의 빛이 한 사람 안으로 응축되어 터진 ‘생각불꽃’이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이제 이렇게 묻고자 한다. 이 사람이 다석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 작다. 그렇게 물으면 인물지도는 곧장 관계 도표가 되고 만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 사람이 가진 어떤 영성, 어떤 지성, 어떤 실천, 어떤 언어, 어떤 수행 빛이 다석 안에서 다시 타올랐는가? 그 빛은 다석 안에서 어떤 말로 바뀌었는가? 어떤 몸살이로 바뀌었는가? 어떤 한글철학으로 바뀌었는가? 어떤 씨알 역사로 다시 나아갔는가?
깨달음 솟난 지도
그러므로 내가 쓰려는 다석철학 인물지도”는 그저 그런 관계망 따위가 아니다. 누가 다석을 만났고, 누가 다석에게 영향을 주었고, 누가 다석의 제자였는지를 적는 명부(名簿)도 아니다. 그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석을 밝힐 수 없다. 다석은 한 사람 이름으로 붙잡히지 않는다. 다석은 빛 그물망이다. 수천 개 빛 그물코다. 아니, 그보다 더 깊다. 다석은 한 깨달은 사람을 낳은 배움·관계·시대·수행·언어 전체의 장이다. 그러므로 이 인물지도는 깨달음 솟난 지도라 할 것이다. 곧 씨알 수행 만다라다. 한 사람이 어떻게 참을 깨는가, 한 시대가 어떻게 한 사람 안에서 불꽃이 되는가, 한글 한 글자가 어떻게 우주를 여는가를 그려보는 숨빛 만다라다.
참·없·얼나·씨알, 만다라 겹겹
만다라 한가운데에는 다석 류영모라는 이름을 놓지 않겠다. 그 이름보다 깊은 것이 있다. 참이다. 다석이 끝내 다다른 참이다. 그 참을 둘러싸고 네 겹의 중심 원이 돈다. 참, 없, 얼나, 씨알, 나. ‘참’은 다석이 붙잡은 하나 벼리다. ‘없’은 커극(太極)에서 없극(無極)으로 가는 빈탕이다. ‘얼나’는 제나를 벗고 솟는 영적 자기다. 큰나(大我)는 좀나(小我)를 깨야 하고, 속나는 겉나를 깨야 나타난다. 다석은 큰나를 말하고 속나를 외쳤다. 씨알은 깨달음이 사회와 역사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 알갱이다. 그 생명 알갱이 하나가 때 끼지 않은 ‘나’다. 여래(如來)다. 다석은 여래를 ‘있다시 온’이라 했다. 그 맨 처음 ‘있’이 ‘나’다. 중심을 놓아야 다석 깨달음 방향과 힘과 빛과 숨으로 읽힌다. 사람들은 다석 안에서 타오른 빛의 방향들이다. 어떤 이는 말글 빛이고, 어떤 이는 민족 빛이며, 어떤 이는 무교회 빛이고, 어떤 이는 빈탕 빛이며, 어떤 이는 비폭력 빛이고, 어떤 이는 몸수행 빛이다. 그 빛들이 다석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감기고 사라지고 다시 솟아, 마침내 하나 말숨으로 터졌다. 하나로!
아홉 길(方位)로 펼친 빛줄기
이 만다라에는 여러 방위가 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말글 뿌리: 세종, 민세 안재홍
2. 민족 숨빛: 단재 신채호, 시당 여준, 위당 정인보
3. 오산 불씨: 남강 이승훈, 백이행, 고당 조만식, 춘원 이광수
4. 예수 길: 예수(그리스도), 우치무라 간조, 김교신, 송두용
5. 빈탕과 신비: 붓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반야심경․선불교․1700공안
6. 동아시아 회통: 노자, 장자, 공자, 맹자, 장재, 화담 서경덕
7. 해방과 씨알 전승: 간디, 톨스토이, 함석헌, 박영호, 김흥호, 송기득
8. 현장 영성: 이현필과 동광원, 임락경, 김정호
9. 학문 확장과 사상 대화: 학산 이정호, 단애 윤세복, 카를 융
자, 이제 아홉 빛줄기 길을 보자.
먼저 ‘말글 뿌리’가 있다. 세종이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임금으로만 보아선 안 된다. 다석에게 세종은 하늘땅사람(天地人) 소리를 글꼴로 연 바른소리(正音) 태양이다. 훈민정음은 소리글자요, 뜻글자다. 닿소리와 홀소리에는 천지인(天地人), 음양오행(陰陽五行), 역(易), 음성학(音聲學), 육서(六書) 철학 원리가 숨어 있다. 한마디로 훈민정음은 우주어다. 세종이 제시한 첫소리 3개, 가운뎃소리 3개, 끝소리 3개를 다 쓰면 나타내지 못할 소리가 없다. 또한 3․3․3으로 뭉쳐서 뜻글을 지으면 글자 하나에 책 한 권을 담을 수 있다. 다석은 그 글꼴 하나하나에서 뜻을 보았다. 글꼴을 그냥 쓰지 않았다. 글꼴에 참을 심었다. 그러므로 다석 한글철학 첫 빛은 세종에게서 온다. 다석이 세종을 다시 읽은 게 아니라, 세종 정음이 다석 안에서 철학으로 깨어난 것이다. 한글을 소리 글꼴에 뜻 글꼴을 얹혀 써 보라.
그 곁에 민세 안재홍이 있다. 민세는 다사리 말뿌리다. 다사리는 ‘다 살리다’, ‘다 말하게 하다’ 뜻을 품는다. 민세는 우리말 속에서 정치철학의 오래된 씨를 찾아낸 사람이다. 비(虛), 씨(種), 몬(物). 하나 둘 셋 넷 다섯. 우리말의 오래된 뿌리에서 그는 미래 공동체 길을 보았다. 다석 한글철학이 참을 밝히는 말글 길이라면, 민세의 다사리는 그 말글이 사회와 정치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다. 함석헌이 씨알을 역사 속으로 밀고 나갔다면, 민세는 그보다 앞서 우리말 속에서 다 말하고 다 살리는 정치의 씨를 찾았다. 그러므로 민세는 이 인물지도에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 세종 없이 다석 한글철학의 하늘을 열 수 없고, 민세 없이 다석의 씨알 민주주의와 다사리의 땅을 열 수 없다.
그림3) 단재 신채호(丹齋 申寀浩, 1880~1936)와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 1891~1965)이다.
다음에는 ‘민족 숨빛’이다. 단재 신채호와 시당 여준, 위당 정인보가 이 빛줄기에 선다. 단재는 역사 불칼이다. 그는 역사를 죽은 기록으로 보지 않았다. 역사는 정신 싸움이었다. 나라 잃은 시대에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곧 목숨을 걸고 민족 얼줄을 붙잡는 일이었다. 시당 여준은 독립운동 결기와 교육의 숨을 지녔다. 위당 정인보는 조선학의 깊은 우물이다. 다석, 춘원, 위당을 한때 조선의 세 천재라 불렀다. 그 말이 과장일지라도, 그 시대에 그런 천재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라가 무너지면 사람 숨은 깊어진다. 식민지 어둠은 어떤 이들을 짓눌러 죽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생각불꽃을 틔운다. 다석은 그런 시대의 긴장 속에서 민족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외래 종교에 함몰되지 않고, 외래 철학에 종속되지 않고, 조선 말과 글과 얼로 세계를 다시 읽었다.
또 하나 길은 ‘오산 불씨’다. 오산학교는 다석 생애 큰 불씨였다. 남강 이승훈이 있다. 그보다 먼저 도산 안창호도 있었다. 남강은 청년 류영모의 과학수학물리 수재성을 알아보고 오산학교 교사로 불렀다. 백이행이 있다. 오산학교 기틀을 놓은 기독교 민족교육의 사람이다. 고당 조만식이 있다. 물산장려와 무저항 민족주의 실천가다. 춘원 이광수도 있다. 1910년 다석과 춘원은 오산학교에서 함께 교편을 잡았고, 톨스토이 죽음 소식을 들으며 그의 사상에 깊이 흔들렸다. 춘원이 문학과 제도의 길로 갔다면, 다석은 톨스토이 비폭력, 금욕, 무교회적 신앙을 제 몸으로 살아내는 길로 갔다. 오산은 학교 이상의 배움터(배곧)였다. 그곳은 민족교육과 신앙과 청년의 사유가 부딪쳐 불꽃을 낸 자리였다.
‘예수 길’도 있다. 다석은 삼성 김정식의 권유로 열다섯에 예수를 만났고, 스무 살 무렵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예수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교회를 떠났을 뿐, 예수 ‘말숨’을 붙잡았다. 산상수훈 예수, 말씀이 몸이 된 예수, 제도보다 참을 살린 예수.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는 다석에게 제도 밖 신앙 길을 열어주었다. 김교신과 송두용, 그리고 함석헌에게 이어진 ‘성서조선’ 얼줄도 이 방위에 놓인다. 그러나 다석은 우치무라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무교회주의를 한국적 몸살이로 바꾸었다. 교회 바깥에서, 집에서, 연경반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말숨을 나누었다. 구기리 집 대문에 참을 찾고자 하거든 문을 두드리시오”라고 써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집이 대학이었다. 말숨이 예배였다. 오늘살이가 신앙이었다.
‘빈탕과 신비’도 있다. 다석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읽고, 불경(佛經)을 읽고, 선(禪)의 길을 살폈다. 붓다는 제나를 비워 빈탕에 든 이다. 무아(無我)는 다석에게 ‘나없’이요, 참나의 길이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거짓나가 없어야 참나가 솟는다. 몸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 다석이 말한 제나를 죽이고 얼나로 솟나라”는 불교의 무아(無我)와 기독교의 거듭남과 노자의 허(虛)와 동학의 모심(侍)이 한자리에서 타오른 말이다. 다석은 종교를 나란히 세워 비교하지 않고, 그것들을 제 몸속에서 태웠다. 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와 싯다르타 붓다와 노자와 공자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서로서로서로(相卽相入) 들어가 하나로 돈다.
그림4) 왼쪽부터 이현필 선생(동광원 창립자, 1913~1964), 박공순 원장(벽제 분원장, 1931~2018), 김금남 원장(남원 본원 1대 원장, 1928~2020), 방순녀 원장(남원 본원 2대 원장, 1931~ )
여기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놓아야 한다. 에크하르트는 서구 기독교 신비주의 안에서 ‘비움’과 ‘돌파’를 말한 사람이다. 그는 신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신의 바탕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 길은 다석의 ‘없’, ‘빈탕’, ‘제나 죽임’, ‘얼나 솟남’과 깊은 울림이 있다. 붓다가 제나를 비워 공(空)에 들었다면, 에크하르트는 자기를 비워 신성(神性)의 밑자리로 돌파했다. 다석은 이 둘을 하나로 세웠다. 불교의 공, 기독교 신비주의의 비움, 노자의 허(虛), 다석의 ‘빈탕한데’가 한 자리에서 서로를 비춘다. 그러므로 이 방위는 깨달음이 자기 비움과 돌파를 통해 열리는 빈탕과 신비 방위다.
‘동아시아 회통(回通)’에는 노자와 장자, 공자와 맹자, 중용(中庸), 장재와 화담 서경덕이 있다. 노자는 도(道: 길)와 위무위(爲無爲: ᄒᆞᆷ없 ᄒᆞᆷ)의 길을 열었고, 장자는 드넓은 빈탕의 숨을 보여주었다. 공자는 하늘줄을 사람의 삶 속에 세웠고, 맹자는 그 하늘줄이 사람 속에 이미 씨앗처럼 들어 있음을 밝혔다. 맹자가 말한 성선(性善), 사단(四端),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다석에게서 사람 속의 하늘바탈, 참나, 얼나의 길과 깊이 맞닿는다. 다석이 맹자를 좋아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맹자는 사람을 밖에서 고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이미 들어 있는 착한 씨와 큰 기운을 깨워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다석이 말한 내 속에 있는 한아님의 씨”, 곧 누구나 제 씨를 깨면 얼나로 솟을 수 있다는 생각과 공명한다.
다석은 노자를 ‘늙은이’로 풀고, 중용은 ‘가온씀’으로 풀었다. 가온 길(中道)을 밝혔다. 장재는 기일원(氣一元)의 큰 철학을 세웠고, 화담 서경덕은 조선의 기철학(氣哲學)을 깊게 밀고 갔다. 다석은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과 허(虛)를 받아, 하느님을 어떤 존재자처럼 붙잡지 않았다. 하느님은 없이 계신” 님이다. 빈탕한데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역사하는 숨(氣)이다. 서구 신학이 존재의 말로 신을 붙잡으려 했다면, 다석은 ‘없’으로 한아님을 밝혔다. 그 ‘없’은 부재(不在)가 아니라, 모든 ‘있’이 돌아가는 바탕이다. 그러므로 이 길에서 노자와 장자는 빈탕 길을 열고, 공자와 맹자는 사람 속 하늘바탈 길을 세우며, 중용과 장재와 화담은 그 하늘바탈이 우주 숨돎(氣運)과 어떻게 하나로 통하는지를 보여준다.
‘해방과 씨알 전승’에는 톨스토이, 간디, 함석헌, 박영호, 김흥호, 송기득이 있다. 톨스토이는 복음의 맨몸이다. 그는 제도 교회보다 예수 삶을 붙잡았다. 금욕, 채식, 비폭력, 무교회 신앙은 다석에게 깊이 들어왔다. 간디는 참올(眞理)로 거듭난 몸살이다. 그는 정치 지도자이기 앞서 구도자였다. 물레를 돌리고, 금욕을 실천하고, 소박한 삶으로 제국의 폭력에 맞섰다. 다석은 간디를 읽고, 그 삶의 결을 자기 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톨스토이와 간디의 금욕(禁慾)은 다석에게서 한 끼와 해혼(解婚)과 오늘살이 수행으로 바뀌었다.
함석헌은 다석 얼나를 씨알 역사로 밀고 나간 사람이다. 다석에게서 참의 벼락을 맞은 함석헌은 그 빛을 민중, 민주주의, 역사, 평화 언어로 다시 밝혔다. 함석헌이 없었다면 다석 얼나가 씨알 역사로 그렇게 깊이 번져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만으로 다석 전승을 다 말할 수 없다. 박영호가 있다. 그는 다석으로부터 ‘마침보람’을 받은 참 제자요, 다석 구술과 일지와 말씀을 붙들어 『다석전기』와 여러 풀이 글로 세상에 전한 전파자다. 다석 말숨이 흩어지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닿을 수 있었던 데에는 박영호의 큰 공덕이 있다.
그림5) 왼쪽부터 다석의 제자인 김흥호(1919~2012), 박영호(1933~ ), 송기득(1931~2019), 임락경(1945~ )이다.
김흥호도 있다. 그는 이화여대 대학교회를 이끌며 『다석일지』를 번역하고 해설했고, 다석 동서양 회통 사상을 종교철학의 깊은 물길로 정리했다. 박영호가 다석의 말숨을 가까이서 받아 적고 전한 증언자라면, 김흥호는 그 말숨을 동서양 철학과 종교의 큰 얼개 속에서 다시 밝힌 해석자다. 송기득 또한 다석철학을 현대 신학과 사상 언어로 체계화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한 학문적 제자다. 그러므로 해방과 씨알의 길은 다석에게 들어온 톨스토이·간디의 빛과, 다석에게서 나아간 함석헌·박영호·김흥호·송기득의 빛이 서로 휘감기는 전승 방위다. 이 길(方位)에서 얼나는 씨알이 되고, 말숨은 어록이 되고, 깨달음은 역사와 학문과 민주주의 길로 번져간다.
‘현장 영성’에는 이현필과 동광원, 임락경, 김정호가 있다. 이현필은 청빈의 현현(顯現)이다. 동광원은 다석철학이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몸을 얻는가를 보여준 자리다. 고아와 환자를 돌보고, 청빈과 기도와 노동으로 하루를 세운 수도 공동체. 다석은 25년간 동광원과 깊이 이어졌고, 전주에서 가까운 용흥사를 사서 동광원에 기증했으며, 전주 ‘진달래교회’라는 현판도 다석 붓글씨를 새긴 것이다. 임락경은 다석의 몸수행과 생명농업을 현장에서 이어온 생존 직제자다. 목포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김정호는 무등산의 고요 속에서 다석과 깊이 만난 제자다. 1967년에서 1968년 사이, 다석은 무등산 김정호의 산양목장에 머물렀고, 그 시기에 『중용(中庸)』 한글 완역, 곧 『가온씀』의 큰 결실이 이루어졌다. 이 길은 다석철학이 추상 형이상학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땅의 방위다. 청빈, 돌봄, 농사, 몸, 병든 이, 버려진 이, 산과 들의 숨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동광원 여성 언님들 기록은 늘 빠져 있었다. 주로 이현필 선생 제자이지만, 또한 다석 제자들이기도 하다. 수많은 언님(수녀)들이 계셨고, 그분들은 삶 속에서 오롯이 삶으로만 얼빛을 증거했다. 그래서 기록이 많지 않다. 언론 보도를 비롯해, 여러 증언과 기록에 남겨진 분들을 여기에 짧게 정리한다. 앞으로도 언님들 기록을 찾아 보완할 예정이다.
그림6) 전남 광주 동광원에서 1971년 여름 수련회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은 다석 류영모(맨 앞줄 왼쪽 둘째)와 동광원 수도자들 모습이다. 다석 오른쪽에 앉은 이가 정인세 원장이고, 왼쪽이 엄두섭 목사다.
‘학문 확장과 사상 대화’에는 학산 이정호와 단애 윤세복, 카를 융이 있다. 학산은 주역과 정역의 대가였다. 다석과 함께 ‘훈민정음’을 깊이 공부했고, 한글 꼴과 소리에서 우주 원리를 찾았다. 다석 한글철학에서 학산은 결코 곁가지가 아니다. 그는 다석이 세종의 정음(正音)을 우주론 글꼴로 다시 읽는 데 큰 길벗이었다. 단애 윤세복은 대종교의 큰 어른이다. 삼신일체(三神一體), 귀일(歸一), 한민족 고유의 하늘사상은 다석의 하나 사상, 귀일 사상과 깊은 접점을 이룬다. 융은 집단무의식과 자기(Self) 길을 열었다. ‘겉나’를 넘어 깊은 자기로 가는 개성화의 길은 다석의 참나 찾기와 마주 세워볼 만하다. 다석은 기독교 바이블 안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한민족 고유의 정신 뿌리와 세계 종교, 동아시아 우주론, 심층심리학의 깊은 물줄기를 함께 보았다. 이 사상 대화의 길에서 학산과 단애와 융은 중요한 별이다.
좀 더 살필 일은, 1962년 다석이 전남 광주 제중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현필을 문병하려고 내려갔다가 무등산 춘설헌에서 오방 최흥종, 의재 허백련을 만난 인연이다. 당시 세상을 구하는 일로 다석과 깊이 교류하던 최흥종 목사가 허백련을 만나보라고 권유하여 성사되었을 것이다. 여든둘의 위대한 실천가 최흥종, 일흔한 살의 한국화 거장 허백련, 일흔둘의 사상가 류영모. 삶의 경계와 법도를 넘어선 세 거장이 함께했다. 비록 어떤 말을 나누었지 알 수 없으나, 세 사람은 춘설차를 마시며 도심(道心)과 동심(童心)이 살아나도록 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재담을 나누었다. 그것은 아마도 차별도 구별도 없는 세 사람 웃음(無等三笑)”이 아닐는지.
그림7) 왼쪽부터 오방 최흥종(1881~1966), 의재 허백련(1891~1977), 다석 류영모(1890~1981)이다. 오방은 광주 YMCA 창설자였고, 다석은 서울 YMCA 연경반을 이끌었다. 그래서 둘은 가까이 지냈다. 오방의 권유로 다석은 의재와 만났다. 1962년 전남 광주 제중병원으로 이현필을 병문안 갔다가, 세 사람이 의재의 춘설헌에서 만난 기록이 있다. 춘설헌은 본래 ‘석아정’이었고, 오방이 이어받아 ‘오방정’이라 불렀다. 뒤에 의재에게 넘겼고, 의재는 증건하여 ‘춘설헌’으로 이름 지었다. 1966년 오방이 세상을 뜨자, 의재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석은 자기 방식으로 ‘줄곧뚫림’을 살았다. 다석의 ‘줄곧뚫림’은 이론 체계가 아니라 몸맘얼 수행이었다. 몸성히, 맘놓이, 바탈태우. 이 세 줄이야말로 다석식 ‘줄곧뚫림’ 심리학의 우리말 지도다.
아홉 개 길눈
나는 이제 이 인물들을 하나씩 만날 것이다. 먼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긴장태를 볼 것이다. 망국, 식민, 종교 위기, 문명 전환, 전쟁과 해방이 어떻게 한 사람의 숨빛을 깨웠는지 살필 것이다. 사람은 느슨한 시대에만 깊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조여오는 시대가 사람 숨을 깊게 한다. 예수 시대도 나라 잃은 시대였다. 다석 시대도 그러했다. 조선은 무너졌고, 일제는 나라를 삼켰고, 사람들은 숨죽여 살았다. 그러나 그 숨죽임 속에서 어떤 이들은 긴장된 숨빛을 얻었다. 그것이 식민지 역설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은 날카롭다.
그런 다음 그 인물의 수월성(秀越性)을 한 낱말로 붙잡을 것이다. 세종은 정음 천재다. 민세는 다사리 말뿌리다. 단재는 역사 불칼이다. 남강은 민족교육 몸이다. 톨스토이는 복음 맨몸이다. 간디는 진리 거듭난 몸살이다. 에크하르트는 신비 돌파 빈자리다. 함석헌은 씨알 역사화다. 박영호는 말숨 증언자다. 김흥호는 회통 해석자다. 송기득은 다석신학 체계자다. 이현필은 청빈 현현이다. 이렇게 한 낱말로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인물의 빛깔이 보인다. 이름과 연보와 업적을 나열하면 사람은 멀어진다. 그러나 한 사람 빛을 한 낱말로 붙잡으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열린다.
또 다석과의 접점도 가려볼 것이다. 직접 만난 사람이 있고, 책으로 만난 사람이 있고, 사상으로 공명한 사람이 있으며, 다석 이후 제자와 공동체를 통해 이어진 사람이 있다. 남강 이승훈, 춘원 이광수, 함석헌, 이현필, 김정호, 학산 이정호는 다석 삶의 실제 자리와 닿아 있다. 박영호는 다석의 말숨을 곁에서 받아 적고, 붙들고, 세상에 전한 참 제자의 자리와 닿아 있다. 김흥호와 송기득은 다석 이후 그 말숨을 종교철학과 신학의 큰 얼개 속에서 다시 밝힌 학문적 제자 자리와 닿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싯다르타 붓다, 노자와 장자, 톨스토이와 간디, 에크하르트와 융은 책과 사유와 영성의 깊은 만남이다. 세종과 민세는 시대를 달리하지만, 다석 한글철학과 다사리 사상의 말뿌리로 다시 만난다. 관계는 하나가 아니다. 만남에는 몸의 만남, 책의 만남, 생각의 만남, 말의 만남, 사후의 만남이 있다. 그 여러 만남을 가려야 영향을 받았다”라는 식상한 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 깊게는 그 빛이 다석 안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따라갈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톨스토이 금욕은 다석에게서 해혼(解婚)과 일식(一食)과 무교회 오늘살이가 되었다. 노자의 허(虛)는 다석에게서 빈탕한데와 없이 계신 하느님이 되었다. 예수 말씀은 다석에게서 ‘말씀-말슴-말숨’이 되었다. 붓다의 무아(無我)는 다석에게서 제나 죽임과 얼나 솟남이 되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비움과 돌파는 다석에게서 ‘없’과 빈탕, 제나 죽임과 얼나 솟남을 비추는 서구 영성 거울이 되었다. 세종의 정음은 다석에게서 한글 뜻글철학이 되었다. 민세의 다사리는 다석과 함석헌의 씨알 사상 속에서 다 말하고 다 살리는 민주주의 숨으로 번져갔다. 함석헌은 그 씨알을 역사와 민중의 길로 밀고 나갔고, 박영호는 흩어질 수 있었던 다석의 말숨을 어록과 전기(傳記)와 풀이 글로 붙들어 전했으며, 김흥호는 그 말숨을 동서양 종교철학의 회통 사상으로 다시 밝혔다. 송기득은 다석철학을 현대 신학의 언어로 체계화하고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그러므로 다석은 인물들의 영향을 받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다석은 온 세계의 빛을 자기 몸맘얼에서 다시 태운 알맞이의 용광로다. 그리고 그 용광로에서 타오른 말숨은 다시 함석헌, 박영호, 김흥호, 송기득을 지나 씨알의 역사, 어록의 증언, 회통의 해석, 신학의 체계로 번져갔다.
각 인물은 다석 몸맘얼 수행과도 이어질 것이다. 몸성히 인물들이 있다. 간디, 톨스토이, 이현필과 동광원 언님들, 임락경은 몸으로 진리를 살았다. 적게 먹고, 덜 쓰고, 땀 흘리고, 소박하게 살았다. 맘놓이 인물들이 있다. 붓다, 노자, 장자, 에크하르트는 마음을 비우고 놓아 빈탕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었다. 바탈태우 인물들이 있다. 예수, 세종, 민세, 단재, 함석헌은 받은 바탈을 태워 세상에 불을 붙였다. 말숨 전승의 인물들도 있다. 박영호, 김흥호, 송기득은 다석의 깨달음이 한 사람 수행에 머물지 않고 어록, 전기(傳記), 강의, 해석, 신학, 종교철학의 길로 이어지게 한 전승 그물코다. 통합과 인물들도 있다. 학산 이정호, 단애 윤세복, 화담, 장재, 융은 여러 생각 그물코를 한 벼리로 꿰게 한다. 이렇게 보면 인물지도는 더 이상 평면 관계도가 아니다. 그것은 몸의 지도, 마음의 지도, 얼의 지도이며, 동시에 말숨이 어떻게 세대를 건너 씨알로 번져가는가를 보여주는 전승 지도다.
그림8) 벽제 동광원 박공순 원장이다. 젊은 나이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뒤 이현필 선생을 만나 수도자가 된 박공순 원장은 벽제리의 황무지 4,000평을 맨손으로 개간하여 평생 자발적 청빈과 자급자족의 농사 노동을 실천하였고, 자신들은 우거지죽을 먹으면서도 모은 쌀을 빈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스승이 임종한 영적 성지를 끝까지 지켜오다, 2017년 노환이 오자 주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한 달 반 동안 곡기를 끊고 고요하게 생을 마감했다. 사진작가 김원이 박공순 원장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남겼다.
AI 문명 앞, 다시 묻는 씨알 길
그리고 각 글 끝에는 오늘의 씨알 질문을 놓을 것이다. 이 인물의 빛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나는 내 몸맘얼에서 이 빛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이 빛은 AI 문명, 인류세, 전쟁, 혐오, 생태 위기 속에서 어떤 씨알을 깨우는가. 이것이 없으면 이 글은 과거 인물 이야기로 끝나고 만다. 나는 과거 이야기를 쓰려는 게 아니다. 오늘의 씨알을 깨우고 싶다. 다석이 구기리 대문에 참을 찾고자 하거든 문을 두드리시오”라고 써 붙였듯, 이 글도 하나의 문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제 물음을 되찾고, 제 씨를 깨우는 문. AI에게 바로 답을 묻기 전에, 제 안에서 물음을 불리고, 오래 꿍꿍하고, 마침내 제소리로 풀어내는 문.
오늘 우리는 AI 문명 한복판에 있다. 사람들은 제힘으로 제 물음을 불리지 않는다. 곧장 묻고 곧장 답을 받는다. 그러나 AI는 이미 있는 답을 잘 엮을 수 있을 뿐이다. 세상에 없는 깨우침은 제 씨가 깨질 때 나온다. 제 몸으로 앓고, 제 맘으로 놓고, 제 얼로 솟을 때 나온다. 공부는 제 몸에 알맞이 무늬를 새기는 일이다. 알음앓이로 알음알이를 깨쳐 알맞이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석은 철학을 ‘알맞이’라고 했다. 크게 앓아야 맘에 알밴다. 알이 알알이 열맺는다. 이 글이 다석철학 2.0이 되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다석을 해설하는 데서 멈출 수 없다. 다석을 다시 살아야 한다. 다석의 인물지도를 그리는 데서 멈출 수 없다. 그 지도를 따라 오늘의 씨알이 제 길을 걸어야 한다.
철학은 본디 재미있는 이야기다. 잠든 마음을 깨우는 이야기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불을 붙이고, 한 시대의 어둠이 한 생각 불꽃을 키우고, 한 글자의 꼴이 우주를 여는 장면보다 더 큰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세종이 소리를 글꼴로 열고, 민세가 수 헤아림에서 다사리를 찾고, 단재가 역사를 불칼로 벼리고, 남강이 오산에 불씨를 놓고, 춘원이 톨스토이의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다석이 그 흔들림을 일식과 해혼과 말숨 길로 가져가고, 함석헌이 그 얼나를 씨알 역사로 밀고 나가고, 동광원이 그 철학을 고아와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 밥상으로 살려낸다. 이보다 더 큰 서사가 어디 있는가. 이보다 더 깊은 장편 영화가 어디 있는가. 별들이 사막 위를 돌고, 모래바람 속에서 예언자가 걸어가듯, 다석철학의 인물들은 식민지 조선과 세계 문명의 폐허 위를 걸어간다. 그들은 모두 한 사람 안으로 들어와 빛의 회오리가 된다. 그 회오리 한복판에서 다석은 말한다. 없에 가자. 얼나로 솟자. 참을 찾고자 하거든 문을 두드리라.
첫 빛, 세종
이제 첫 빛으로 간다. 다석 한글철학이 어디서 비롯했는가를 묻는다. 다석의 말숨 깊은 곳에는 세종이 있다. 훈민정음이 있다. 하늘땅사람(天地人)이 소리로 만나 글꼴이 된 그 첫 자리가 있다. 세종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소리(正音)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바른소리는 단순한 문자 발명이 아니었다.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소리에 글이 있고, 글에 하늘땅사람의 길올(道理)이 있으며, 그 길올은 뒷세상에서도 바뀔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다석은 그 바른소리 깊은 속을 다시 열었다. 한글은 소리글자이면서 뜻글자다. 글꼴 하나하나가 하늘땅사람의 숨을 품고 있다. 다석 만다라의 첫 문은 여기서 열린다.
그러므로 다음 글에서는 세종을 만난다. 한 임금 이야기가 아니다. 정음 태양을 만나는 일이다. 한글이라는 글꼴 속에 어떻게 하늘땅사람의 숨빛이 깃들었는지, 그 숨빛이 어떻게 다석에게 와서 한글철학의 생각불꽃이 되었는지 살필 것이다. 다석철학 인물지도의 첫 별, 첫 빛, 첫 문은 세종이다. 정음에서 말숨으로, 말숨에서 참으로, 참에서 씨알로 가는 길이 이제 열린다.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gjg6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