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을 살며 200년을 증언한 역사가 에릭 홉스봄 [사람들] 역사학자처럼 인복이 없는 직업도 드물다. 평생 도서관 먼지를 마시며 죽은 사람들 뒷조사를 하다가, 자기가 죽으면 후배학자들이 또 자기 뒷조사를 한다. 그런데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1917~2012)이라는 인물은 좀 다르다. 이 영국 역사학자는 살아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역사가 라는 평판을 들었고, 죽어서는 영국 공영방송이 저녁 메인뉴스에서 부고를 다뤘다. 학자가 연예인급 부고 대우를 받는 일은 흔치 않다.
2004년의 홉스봄.(위키피디아)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를린까지, 망명이 일상
홉스봄은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 출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었으니 태어날 때부터 국적이 애매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은 빈과 베를린에서 보냈는데, 열네 살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고아가 됐다. 그것도 모자라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도망쳤다. 10대 시절 나치 돌격대가 유대인과 노동조합원, 공산주의자를 두들겨 패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역사를 책으로만 배운 게 아니라 몸으로 겪은 셈이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고 나서, 평생 직장이 된 런던대학 버크벡 칼리지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게 있다. 홉스봄은 열여섯 살에 영국 공산당에 입당해서 당이 스스로 해산할 때까지 당원으로 남았다. 그런데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공개적으로 소련을 비판했다. 입당은 했지만 맹종은 안한 사람, 말하자면 조직에 충성하되 머리는 빌려주지 않는다 는 자세를 평생 유지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진성 당원 이면서도 지도부 욕은 제일 시원하게 하는 부류랄까.
타자기 앞에 앉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some personal reflections | the many-headed monster)
19세기와 20세기를 통째로 요약해버린 4부작
홉스봄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시대 4부작 이다. 『혁명의 시대』(1789~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4), 그리고 20세기를 다룬 『극단의 시대』(1914~1991)까지, 프랑스 혁명부터 소련 붕괴까지 200년을 한 사람이 혼자 정리해버렸다. 보통 역사학자들이 논문 하나 쓰는 데도 평생을 바치는 좁은 주제에 매달리는 반면, 홉스봄은 대륙을 넘나들며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노동운동의 거대한 흐름을 종합했다. 그러면서도 학술적 엄밀함을 놓치지 않았다는 게 평가의 핵심이다. 쉽게 쓰면서도 가볍지 않기, 이게 보통사람한테는 거의 불가능한 재주인데 이 사람은 그걸 해냈다.
더 흥미로운 건 발명된 전통 이라는 개념이다. 홉스봄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통 이라고 믿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근대국가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짚었다. 영국 왕실 의례나 스코틀랜드 전통복장 같은 것들이 실제로는 19세기에 새로 디자인된 경우가 많다는 식이다. 이 개념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타자기 앞에 앉은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s Century)
한국에 던지는 질문, 누가 전통을 발명하는가
생각해 보면 한국 현대사에도 발명된 전통 이 차고 넘친다. 국가가 주도해서 만든 국민의례, 특정 정권이 정통성을 세우려고 동원한 역사 서사, 친일 행적을 불가피한 생존 으로 둔갑시키는 미화작업까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적 발명품이 적지 않다. 뉴라이트 계열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고 나오거나,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매번 전쟁이 벌어지는 것도 결국 누가 과거를 발명할 권리를 갖는가 를 둘러싼 싸움이다. 홉스봄이 평생 강조한 것은 역사가의 임무가 권력이 만든 신화를 해체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가 살아서 한국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봤다면 아마 한숨 한 번 쉬고 논문 한 편을 더 썼을 것이다.
또 하나, 홉스봄은 역사학자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역사를 현실과 분리된 박물관 전시품으로 만드는 순간, 그 역사는 권력자들의 손에 의해 마음대로 재단 당한다는 것이다. 이 발상은 지금 한국에서 진행 중인 작업, 즉 헌법질서를 거스른 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작업과도 통한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이라는 시대착오적 카드를 꺼내든 세력이 등장했을 때 많은 시민이 깨달은 것은, 과거를 제대로 기록해두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단순하지만 무서운 진실이었다. 누군가는 그날 밤의 행위자들을 기록해야 한다. 홉스봄이라면 그 작업을 주저 없이 역사학자의 본업 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평생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았던 에릭 홉스봄은 근대 세계의 2세기를 아우르며, 그 이후 어떤 역사학자도 이루지 못한 장대한 역사의 지평을 펼쳐 보였다. 사진: 제라르 롱도(Gérard Rondeau) / Agence VU / Redux.(Eric Hobsbawm, the Communist Who Explained History | The New Yorker)
극단의 시대, 그리고 우리의 시대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 라고 불렀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냉전을 거치며 인류가 얼마나 쉽게 광기로 빠질 수 있는지를 목격한 세대의 증언이었다. 그가 보기에 20세기의 교훈은 명확했다. 민주주의와 법치는 한번 세워지면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시민들이 다시 지켜내야 하는 허약한 제도라는 것이다. 이 진단은 21세기 한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헌법과 민주주의가 당연한 배경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는 항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튀어나왔다.
홉스봄은 2012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까지 신문더미를 침대 옆에 쌓아두고 시사를 챙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평생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도그마에 갇히지 않았고, 평생 학자였지만 책상 물림으로 남지 않았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어쩌면 단순한 문장 하나로 요약될지 모른다. 역사는 죽은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산 자들이 매일 다시 써야 하는 숙제라는 것. 한국사회가 지금 그 숙제를 들고 씨름하는 중이라면, 홉스봄의 책장을 한 번 쯤 들춰볼 이유는 충분하다.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 있는 홉스봄의 무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