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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버틴 마을, 영국 율그리브…공동체가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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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을 버틴 영국 산골 마을이 한국 지방도시에 던지는 물음 영국 더비셔 주 국립공원 피크 디스트릭 한복판에 율그리브(Youlgreave)라는 마을이 있다. 인구 969명(2021년 기준). 술집이 세 곳, 주유소가 하나, 우체국이 딸린 가게 하나. 서울 아파트 한 동보다도 작은 이 마을이 천 년 넘게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지금도 꽤 당당하게 굴러가고 있다. 한국에서 지방소멸 이니 인구감소 니 난리를 치는 요즘, 이 마을이 슬쩍 한 수 가르쳐 주는 것 같아 들여다봤다. 율그리브 마을 우체국.(Beautiful Youlgreave - Historic Peak District Village) 율그리브 마을의 선술집.(Beautiful Youlgreave - Historic Peak District Village) 이름조차 60번 이상 틀린 마을 먼저 이름부터 웃기다. 율그리브는 1086년 정복왕 윌리엄(1028~1087)이 명령해 만든 토지대장 『둠즈데이 북』에 Giolgrave 로 처음 기록됐는데, 이후 이 마을 이름의 철자는 무려 60가지 이상으로 표기됐다. 중세에는 Jalgrave, Iolgrave, Yelgreve, 심지어 Hyolegrave로도 쓰였다. 지역 향토사가이자 전직 교사였던 빌 심웰은 이 마을을 가리켜 영국에서 철자가 가장 많이 틀리는 마을 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도 Youlgreave 와 Youlgrave 두 가지 표기가 공식안내판과 지도에 뒤섞여 있다. 이름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나라가 대영제국을 만들었으니, 표기통일에 목숨 거는 나라들이 조금 부끄러워질 법하다. 이름의 뜻은 노란 숲 으로 추정된다. 마을이름이 황색광석 이 채굴되던 지역의 색깔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땅속에서 납과 아연, 형석을 캐던 광부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율그리브 마을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천 년 묵은 교회와 훔쳐온 세례반 율그리브에는 8세기 색슨 시대부터 교회가 있었고,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1130년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전역에 이런 교회가 수두룩하다고 넘기면 안 된다. 이 교회 안에는 재미있는 물건이 있다. 12세기 노르만 양식의 세례반(洗禮盤)이다. 그런데 이것이 원래 율그리브 것이 아니다. 이 세례반은 원래 인근 엘턴 마을 교회에 있었는데, 1812년 교회첨탑이 무너져 교회를 다시 지으면서 세례반이 엘턴 교회 뜰에 방치됐다. 그러던 것을 율그리브의 피드콕 신부가 발견하고는 자기 사제관 정원으로 가져다 장식품으로 썼다. 후임 윌못 신부가 이게 문화재임을 알아채고 1838년에 교회 안에 들여놓았는데, 뒤늦게 소식을 들은 엘턴 주민들이 당연히 돌려달라고 아우성쳤다. 결론은? 세례반은 지금도 율그리브에 있다. 천 년 된 문화재를 둘러싼 소유권 분쟁이 이렇게 시시하게 끝날 수도 있구나, 새삼 감탄스럽다. 교회 안에는 또 재미있는 무덤이 있다. 중세 영주 토머스 코케인(Thomas Cockayne, 약 1451~1488)의 화려한 돌무덤인데, 죽음의 사연이 황당하다. 코케인은 친구 토머스 버뎃과 가족 혼인문제로 다투다가 결국 결투로 번졌고, 그 자리에서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그런데 다른 전설에 따르면 코케인이 그냥 발을 헛디뎌 친구의 칼에 떨어졌다는 설도 있는데, 이건 좀 믿기 어렵다고 역사가들은 꼬집는다. 결혼문제로 싸우다 죽었다는 건 중세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류의 고질병이다. 율그리브 마을 교회.(Beautiful Youlgreave - Historic Peak District Village) 세계최소 단독 독립가옥과 여성들이 만든 수도 율그리브에는 기네스 기록도 있다. 팀블 홀(Thimble Hall)이라는 건물이 가로 약 3.6미터, 세로 약 3.1미터짜리 세계최소 단독 독립가옥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 있다. 한국의 고시원 방보다도 작다. 이 집에서 실제로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웨일스에 있는 콘위 집은 영국 최소 주택 , 율그리브 팀블 홀은 세계 최소 단독  독립가옥 으로 각자 다른 범주의 기록 보유자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진짜 눈여겨볼 것은 팀블 홀이 아니라 수도 이야기다. 1829년 율그리브 여성 우호조합(Youlgreave Friendly Society for Women)이 자금을 모아 마을에서 1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샘에서 수도관을 끌어와 마을 중앙에 1500갤런 짜리 원형 저수조를 설치했다. 이전에는 강물을 매일 길어 올려야 했고, 여름이면 오염된 강물로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잦았다. 더 놀라운 건 이 수도 시스템이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율그리브 상수도 유한회사(Youlgreave Waterworks Limited)는 영국에서 극히 드문 민간 수도 회사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마을 대부분 가정에 물을 공급한다. 197년 전 아낙네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수도 회사가 아직도 살아있다. 민영화라면 치를 떠는 사람도 있고 국유화에 침을 뱉는 사람도 있지만, 마을공동체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자기가 운영하는 이 수도는 그 어느 쪽 논리도 완전히 맞지 않는다는 걸 조용히 증명한다. 율그리브의 팀블 홀(Thimble Hall) 건물은 가로 약 3.6미터, 세로 약 3.1미터짜리 세계최소 단독 독립가옥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 있다.(Thimble - Bench Architects) 웨일스 콘위의 키 하우스(Quay House) 는 기네스북이 영국에서 가장 작은 집 으로 공식 인정했으며, 가로 약 1.8미터, 세로 약 3미터짜리 빨간 건물이다 . 이집은 독립 가옥이 아니라 연립 주택 형태로, 옆 건물에 붙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 앞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반주도 못 하던 악단이 마을 상징이 된 사연 율그리브에는 100년 넘은 은악대(銀樂隊)가 있는데, 마을 별명인 포미(Pommie) 가 바로 이 악단에서 왔다. 마을 협동조합 상점이 처음 악기를 사줬을 때 단원들이 음악을 거의 몰라서 행진할 때 제대로 된 선율 대신 폼, 폼, 폼 소리를 냈다는 게 한 가지 설이다. 다른 설은 담벼락에 앉은 돼지가 악단 연주에 맞춰 티들리 폼, 폼, 폼 으로 화음을 넣었다는, 더 황당한 이야기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똑같다. 이 마을 사람들은 잘 못해도 일단 시작했고, 우습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 악단이 지금은 마을의 자랑이 됐다. 매년 5월에는 악단 이름을 딴 포미 팬터 달리기 대회 까지 열린다. 잘 못하면 시작도 말라는 문화와, 못해도 일단 해보자는 문화 사이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율그리브 마을 분수대.(Beautiful Youlgreave - Historic Peak District Village) 39세에 무덤을 파다 무덤에 간 고고학자 율그리브 주변 마을 미들턴에는 토머스 베이트먼(Thomas Bateman, 1821~1861)의 무덤이 있다. 그는 율그리브 인근 미들턴 홀에서 자란 고고학자였다. 열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 손에 컸으며, 열여섯 살부터 집안 영지를 관리하면서 고고학에 빠져들었다. 평생 더비셔 일대에서 수백 기의 고분을 발굴했고, 그 결과물을 사재로 지은 롬버데일 홀에 박물관으로 꾸몄다. 1847년에는 더비셔 고대 유물연구를 집대성한 책을 펴냈으며, 39세에 세상을 떴다. 그가 죽자 아들이 아버지의 방대한 수집품을 빚을 갚으려고 모두 팔아버렸고, 그 빚도 다 갚지 못한 채 아들도 일찍 죽었다. 평생 무덤을 파다 무덤에 간 아버지, 아버지 유산 팔아 빚 갚다 죽은 아들. 한 가족의 비극이자, 개인의 노력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못하는 비극이기도 하다. 그나마 발굴 유물들은 지금 셰필드 시립박물관에 있다. 토머스 베이트먼과 그의 아들, 토머스 조셉 뱅크스 작, 현재 셰필드 박물관 소장.(위키피디아) 1932년 광산 폭발, 그리고 협동조합 1932년에는 마을 남쪽 1.6킬로미터 지점의 모스톤 광산에서 폭발 사고가 났다. 환기 팬 설치 작업을 하던 광부 여섯 명 가운데 다섯이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숨졌고, 구조대 두 명과 광산 관리자도 광산에 들어갔다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석탄도 아닌 납 광산에서 산 채로 매몰되는 일이 이 마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전에도 마을은 협동조합으로 뭉쳤다. 1870년에 세워진 율그리브 협동조합은 3층짜리 돌건물에 여러 부서를 두고 운영했으며, 1910년부터 영국 전기산업이 국유화되기 전까지 마을에 전력까지 공급했다. 지금 그 건물은 유스 호스텔로 쓰인다. 1870년에 세워진 율그리브 협동조합은 3층짜리 돌건물에 여러 부서를 두고 운영했으며, 1910년부터 영국 전기산업이 국유화되기 전까지 마을에 전력까지 공급했다. 지금 그 건물은 유스 호스텔로 쓰인다.(김성수 시민기자) 한국이 배울 것, 또는 뼈아프게 되짚을 것 율그리브는 이름도 헷갈리고, 인구도 천 명이 안 되고, 버스도 뜸하다. 그런데도 이 마을은 1000년 가까이 버텨왔다. 비결이 뭘까. 첫째, 여성들이 먼저 움직였다. 1829년 상수도를 만든 것도, 협동조합 기금을 모은 것도 여성 조합이었다. 위기 때마다 관(官)이 아니라 공동체가 먼저 해결책을 찾았다. 한국은 지금도 지방소멸 대책을 중앙정부가 주도한다. 어디선가 먼저 해봤더니 되더라는 이야기가 아래에서 올라와야 한다. 둘째, 못 해도 시작했다. 포미 악단처럼. 한국 지방공동체는 뭔가를 시작하려면 예산이 확보되고, 전문가가 검토하고, 공청회를 열고,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사이에 사람들은 도시로 떠난다. 셋째, 작은 것을 자랑으로 만들었다. 세계 최소주택, 60가지 철자, 돼지가 화음을 넣은 악단. 이 마을은 부끄러운 것을 감추지 않고 관광자원으로 바꿨다. 한국의 많은 지방 도시들은 우리에겐 내세울 게 없다 는 말로 스스로를 지운다. 넷째, 협동조합이 실물로 작동했다. 수도도, 전기도, 가게도 협동조합이 만들었다. 한국의 협동조합은 수만 개가 설립됐지만 대부분 이름만 있다. 율그리브 협동조합은 150년이 지난 건물이 지금도 사람들이 자는 숙소로 쓰이고 있다. 1086년 둠즈데이 북에 16실링짜리 마을 로 기록됐던 율그리브는 지금도 거기 있다. 납 광산도 닫혔고, 협동조합도 업종을 바꿨고, 악단은 처음에 틀린 음만 냈지만 지금은 매년 달리기 대회 이름이 됐다. 인구 천 명이 넘지 않아도 마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이 마을 구석구석에 있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영국 더비셔의 이 작고 이름도 헷갈리는 마을을 한번쯤 걸어볼 이유가 있다. 버스는 뜸하니 걸어서 가야 한다. 그게 또 이 마을의 방식이기도 하다. 율그리브 마을 냇가에서.(김성수 시민기자) 쌀쌀한 날씨에도 율그리브 마을 냇가에서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The Best Wild Swimming Spots in Youlgreave, Peak District - She Gets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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