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 무너진 미국 대외정책 중심 CIA로 넘어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4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2026.4.8. EPA 연합뉴스
역사가로서 큰 구도에서 보건대, 이번 이란에서의 전쟁은 미국이 이미 당한 ‘두 개의 거대한 패배’에 뒤이은 것이다.”
프랑스 역사인구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8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패배했으며, 이는 미국이 최근 잇따라 겪은 세 번째의 큰 패배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중국에 이은 세 번째 대이란전 패배
첫 번째 패배는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이 러시아에 사실상 패배한 것이다. 제조업이 쇠퇴한 미국은 지원대상국인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것은 미국의 산업 시스템이 대규모 전쟁을 떠받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두 번째 패배는 그 뒤에 분명해진, 더 중요한 중국에 대한 패배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로 중국을 위협했으나 중국이 희토류 수출규제로 반격하자 금방 (추가관세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금 트럼프가 보여 주고 있는 모든 행동은 이들 중요한 패배로부터 눈을 돌리고, 스스로도 잊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토드는 지난해 일본에 와서 아사히와 인터뷰할 때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 뒤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공격도 (베네수엘라 공격과) 같은 식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이란이 무너지지 않자 사태는 수습할 수 없게 됐다. 미국에게는 ‘세 번째의 거대한 패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국 지도자들 암살은 히틀러 같은 수법의 광기
토드는 이 전쟁의 밑바탕에는 미국사회의 붕괴, 구체적으로는 ‘종교 제로’ 상태가 있다”고 했다. 예전에 (미국)사회를 통합했던 도덕적・정신적인 규율과 가치관이 사라져 퇴폐와 공허 속에서 마치 파괴와 살육 자체를 즐기는 듯한 ‘허무주의(니힐리즘)’가 퍼지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도 적용된다.”
그는 미국의 뜻에 따르지 않는 이란의 지도자들을 배제(제거)”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 사람의 지도자를 암살하는데 그치지 않고 타국의 지도자들을 잇따라 배제해 가는 것은 결단코 용납돼선 안 된다.” 토드는 그런 행위는 현대의 상식있는 정치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광기의 결과”라며 히틀러와 같은 수법”이라고도 했다.
토드는 자신의 이런 비판을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고 있는 것”이라며 유대계 배경을 지닌 프랑스인인 나 자신이 지금 그들의 광기와 폭주를 무엇보다 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의 독자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미국 어디로 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6월 1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를 방문하여 미 육군 창설 기념일을 맞아 연설하기 위해 단상에 서 있다. 2025.6.10.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이 CIA로 넘어갔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군대끼리 하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짓은 개인을 표적으로 삼아 살해하는 ‘암살’이 아닌가. 미국 외교의 중심을 담당하는 역할은 국무부도 국방부도 아니고 CIA(중앙정보국)로 옮겨가 버린 듯하다.”
그는 미국이 의회와 대통령, 대법원으로 구성된 ‘공화국’이 더는 아니게 돼 버렸다면서 내가 보고 있는 지금의 미국은 대통령, 국방부, 그리고 CIA로 구성된 ‘제국’으로 변질됐다”며 의회와 대법원은 이미 자문기관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인다”고 했다. 개인을 표적으로 삼은 암살에 기대는 미국의 대외정책에서는 CIA가 가장 중요한 기관이 돼 있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허무(주의)적 암살국가로 전락했다는 증거다.”
대처는 영국 노동계급과 산업시스템 파괴
토드는 지난해 인터뷰에서 미국이 일으킬 수 있는 대립(분쟁)에 일본은 관여하지 말고 신중하게 지켜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새로 집권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영국의 전 총리 마거릿 대처를 모델로 삼고 있는 것과 관련해 대처는 흥미깊은 인물이지만, 나는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대처가 영국 노동자계급과 산업 시스템을 파괴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보수강경파였던) 대처의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다카이치)의 중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는 내가 ‘공상의 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의 전형으로 보인다.” 토드는 지금은 내셔널리즘 자체가 재검토되고 있는 시대라면서 중국에 적대하는 것이 일본 내셔널리즘이라는 사고방식은 이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셔널리즘이라는 사상은 전통적으로 자국민의 수를 불리고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이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일본 본래의 내셔널리즘은 일본의 주권을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일본의 과제는 중국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것은 오키나와를 생각하면 누가 봐도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오키나와를 미군 기지로 내주고 있는 일본이 왜 그 사실에는 침묵하면서 ‘대만 문제’에 개입하려 하느냐는 질타다.
미군기지로 내준 오키나와부터 반환받아야
‘공상’이 아닌 ‘현실’의 내셔널리즘 관점에서 보면 자국내에 있는 외국 기지를 반환받고 주권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다. ‘분단해서 지배한다’는 미국의 전략에 편승해 위싱턴의 의도대로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드는 자신이 일본의 대만 통치를 주도했던 고토 신페이에 대해 알고 있는 소수의 프랑스인 중의 한 사람이라며, 일본의 대만 통치가 고토 등의 공적도 있고 세계 식민지 역사에서도 드문 성공사례이기도 해서 현지(대만)의 일부 사람들도 지배자 일본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하지만 그것은 지난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주장을 지지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대만은 문화적으로도 국제정치의 현실에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한 채 (대만) 얘기를 할 순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현실을 과거의 노스텔지어(향수)로 덮어 감추는 것은 위험하다. 즉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포지티브한(긍정적인) 평가를 현대의 현실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대는 80년 전에 끝났는데,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내셔널리즘’이라고 착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상의 내셔널리즘이다.”
4월 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인근에서 이란의 군사 행동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고(故)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2026.4.8.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라는 ‘제국’의 붕괴, 한중일의 대응전략은?
토드는 지금 세계가 미국의 세번째 패배를 경험하고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사태가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제국의 붕괴 자체일지도 모른다”며 그것은 우리가 익숙해진, 오래도록 세계를 떠받쳐 온 이념과 구조가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있는 사태”라고 했다. 그러면 일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3국은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라는 공통의 구조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또 유교적인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 3개국이 세계 선박 건조의 약 90%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공업력을 갖고 있다. 수출 주도로 발전해 온 성장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유사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일본이 가야 할 길은 이런 자신의 특징을 확실히 파악하고, 미국으로부터 조용히 거리를 두면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 평화적으로 이해 및 관계를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토드는 조언했다.
에마뉘엘 토드. 아사히신문 4월 8일
이제부터 엄청난 격동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길로 나아가면 다극화하는 세계 속에서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일본의 존재감을 인정할 것이다.”
미국과 너무 밀착해 미국 전략에 놀아나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한중일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독자적인 전략을 만들어 가라는 얘긴데, 지금의 일본을 보건대 그야말로 ‘공상’에 가까운 조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