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달하게 사는 모듈적 삶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임미성 재즈가수
너도밤나무 펄프에서 추출한 친환경 섬유인 모달(modal)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섬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무드, 소프트, 내츄럴을 표방하는 모달 섬유는 잠옷에서 셔츠, 바지, 커텐 등 다른 장르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모달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함’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섬유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달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집중 모드, 수면 모드, 기능성 모드 등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이 모드들이 모달의 핵심이다. 모달이 추구하는 것은 ‘어떤 모드로 존재하느냐’이다. 그것은 언제나 ‘완성’이 아닌 ‘상태’에 머물고 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재배치되는 모듈의 세계
모듈 가구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재즈의 즉흥성, 유연성이 느껴진다. 이는 모듈 가구의 특징, 재배치가 가능한 모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늘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듈 가구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Fritz Haller 이다. 그가 제작한 ‘USM Haller시스템’이 바로 모듈 가구의 대표 아이콘이다. 금속 프레임 구조로 만들어져 조립과 해체가 가능하다. 가구를 사용하면서 계속 재구성이 가능하며, 공간에 따라 확장할 수 있다. 이 가구가 시대를 넘어서도 각광 받는 것은 다른 가구와 매치시켜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데에 있다.
프리츠 할러
인기 아이템인 모듈형 쇼파(Sectional modular seating)의 개념을 발전시킨 이는 Harvey Probber이다. 조각을 이어붙이거나 상황에 맞게 배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모듈형 쇼파의 특징이다. 모듈형 쇼파 역시 공간과 장소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행을 타지 않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벽 자체를 모듈 공간으로 만든 Poul Cadovius는 벽걸이형 모듈 선반 시스템의 선구자로 ‘가구가 바닥에만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선반 시스템을 통해 보여주었다.
고정된 형태로 제작되지 않은 모듈 가구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용도’라는 즉흥이 가능한 모듈 가구는, 흐름에 내맡기면서도 자기만의 균형을 잃지 않는다. 이제는 감정도 모듈 가구처럼 해체하고 재조립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와 환경, 자기 자신마저도 계속 변화하는 삶을 사는 시대의 모듈 가구는 가구, 그 이상의 무엇이다.
개인적인 취향, 사소한 기억, 정서, 느낌, 감정, 매일의 기분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트렌드가 되었다. 재즈의 모달이 정해진 코드가 아닌 상황에 따라 음계를 선택하듯, 모듈 가구가 정해진 형태없이 그때그때 재조합되듯 이제는 감정을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화되고 흘러간다. 해체된 것은 재조립되고 다시 편집된 것은 유통된다. 나는 모달 양말에서, 모듈 가구에서 감각적 세계관을 느낀다.
부드럽고 유연하며 흐름을 따라가는 ‘모달 재즈’의 속성
수면 양말의 대명사가 될 만큼 인기 있는 것이 모달 양말인데, ‘모달 양말’이라는 글자를 처음 보았을 때 충격적이었던 것은 재즈에서 쓰이는 모달(코드 진행 대신 음계 자체를 중심으로 연주되는 방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달 재질로 만들어진 의류나 침구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은 부드럽고 유연하며 흐름을 따라가는 ‘모달 재즈의 속성’마저 닮아 있었다.
‘Modal은 원래 ‘양식(mode)’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전통적 직물 구조를 해체해서 새로운 소재로 탄생된 ‘모달 섬유’와 기존의 특정 코드 진행을 해체한 ‘모달 재즈’는 모두 하나의 본질이 아닌 여러 모드(mode)로 전환된 상태다. 즉흥으로 재편집된 모달적 세계는 톤이나 결이 중요하다. 모달 재즈가 자유롭고, 명상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달 재즈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1959)로 유명해졌다. 마일즈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 외에도 모달 재즈의 흐름을 알 수 있는 대표적 음반들이 있다. Wayne Shorter의 (1966)은 추상적인 분위기의 모달 재즈를, McCoy Tyner의 음반 (1967)는 반복되는 모달 리프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리듬을 느낄 수 있다. Alice Coltrane의 (1971)는 인도 음악을 결합하여 모달 재즈가 영성과 명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 재즈가 코드를 통한 ‘규칙’에 머물고 있다면 모달 재즈는 하나의 스케일로 ‘상태’에 머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앨리스 콜트레인
기억과 감정이 단위로 작용하는 재즈의 모듈
철학에서의 modal은 존재가 어떤 방식(mode)으로 성립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기존의 고정된 코드를 벗어난 모달 재즈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철학의 modal 역시 고정된 자아가 아닌 흐르는 존재로서의 자아, 정착보다는 노마드성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한 개인이 고정된 직업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작가이면서 요리사, 여행 블로거의 삶을 동시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모듈(module)의 어원은 ‘modulus’로 작은 척도, 측정 단위, 기준이 되는 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건축적인 개념이었다. 재즈에서 모듈과 같은 개념으로는 짧은 멜로디 패턴을 반복하는 릭(lick)이나 프레이즈(phrase)가 있다. 기능적으로는 독립적인 단위를 가지고 상황에 따라 조합하는 것이다.
음악학 이론에서는 모듈러 구조(modular structur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재즈의 즉흥연주 패턴들을 분석할 때) 모듈이 재즈 용어로 쓰이진 않으나 모듈의 원리로 즉흥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오네트 콜맨(Ornette Coleman)의 반복 구조 음악에서는 곡 전체가 아닌 작은 모듈들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같은 곡은 연주자 각자의 모듈적 흐름들이 존재하는데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재즈에서의 모듈은 재즈 연주자들의 억양, 호흡 같은 모듈을 공유하며 서로 반응한다. 하나의 리듬 모듈을 가지고도 즉흥적으로 변주한다. 모듈이 ‘고정된 부품’이 아니라 세포처럼 변형되는 것이다. 블루스 프레이즈 하나만 들어도 연주자의 인생까지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재즈의 모듈이 기억과 감정이 단위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건축에서 그 기준 단위로 사용되었던 모듈의 의미가 산업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부품체계로, 문화이론에서는 여러 단위들이 연결되며 구조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숏폼 영상이나 플레이 리스트, 프랜차이즈 구조, 재즈 즉흥 패턴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듈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은 계속 다른 상태가 되어가는 존재”
재즈가 향해 나가는 것은 완성된 전체가 아니다. 작은 단위들이 서로 반응하며 그때그때 만들어 나가는 구조다. 이런 의미에서 재즈는 모듈적인 예술이다. 이는 재즈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들뢰즈가 말했던 인간은 하나의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다른 상태가 되어가는 존재”를 떠올려보라.
변화 가능한 존재 방식과 유연성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가 중요해진 세상이다. 언제든 다시 배열될 수 있는 상태가 되려면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에서도 자기 리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날의 상처를, 혹은 관계의 의미를 바꾸고, 기억을 재배열하며 새로운 감정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은 결국 유연함이다. 그것은 모달 양말이나 모듈 가구 속에 잠재된 감각적 세계관이다. 모듈한 구조를 가지고 감각적으로 모달하게 사는 삶을 실현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임미성 laelld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