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 [뉴스] 오동진 영화평론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새 영화 는 요란은 떨었지만 결국 이렇게까지 할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스필버그는 그간 200편에 이르는 영화를 제작하고 그중 상당수를 직접 연출했으나 당대를 이끄는 어마어마한 걸작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물론 시대를 뛰어넘는 이슈를 선구적으로 제기한 작품은 많았다. (1975)가 그랬고 (1993)이 그랬다. 스필버그는 오히려 정치와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발군이었다. (1993)와 (2005) (2012), (2015) 등은 날카로운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천착했던 것은 지구를 넘어선 우주였으며 외계인이었다. 그는 외계인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었으며 그 같은 신념은 (1977)에서 시작돼 (1982)를 거쳐 (2005) 등으로 확고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스필버그는 이제 자신만이라도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결론을 맺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이번 작품 이다.
어느날 갑자기 초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기상캐스터
하지만 그 모든 것도 한 유대인 영화 제작자의 영리한 상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는 무슨 엄청난 지구상의 음모를 파헤치는 거창한 폭로의 날, 진실을 최초로 공개하는 날, 어마어마한 무엇을 얘기하는 척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SF 드라마일 뿐이다. 유난히 지루하지도 않지만, 특별히 의미가 남다른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폄훼하거나 지나치게 치켜세울 작품이 아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제 80세의 노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 세계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2022년에는 를 통해 자신의 성장사와 가족사를 정리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 스필버그의 영화는 적어도 관람이 손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145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뭐가 복잡해 보이지만 의 얘기는 두 인물을 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보면 된다. 한 명이 마거릿 페어차일드(에밀리 블런트)이고 한 명이 다니엘 켈너(조쉬 오코너)이다. 마거릿은 평범한 기상 캐스터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카나리아 한 마리가 창틈으로 날아와 마거릿 앞에 앉은 다음부터 여자는 무슨 신호를 받은 양, 기이한 행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러시아어,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말하는가 하면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마음속을 꿰뚫는 독심술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상대가 어떤 결핍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한지도 알게 된다. 그녀를 쫓는 정부(위탁) 기밀관리기관 ‘워덱스’의 수장 노아(콜린 퍼스)는 부하들에게 그녀를 잡을 때 눈을 쳐다보지 말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외계인 만났던 두 남녀, 드디어 ‘그 날’이 온 걸까?
마거릿 말고 또 한 명의 주요 인물이 다니엘 켈너(조쉬 오코너)이다. 그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이다. 워덱스의 보안요원이(었)다. 다니엘은 조직의 대표인 노아에 맞서 그간의 음모를 파헤치려는 핵심 간부 휴고(콜먼 도밍고)와 함께 UFO의 존재와 그 비밀이 들어 있는 기밀 파일을 세상에 공개하려 한다. 결국 ‘디스클로저 데이’란 휴고로부터 지시받은 다니엘 켈너가 워덱스 본부에서 탈출, 마거릿이 있는 캔자스시티로 가서, 더 정확하게는 마거릿을 만나 그녀가 일하는 방송국 KCXE (캔자스시티 지역방송국)으로 가서 그녀가 진행(하게)하는 뉴스쇼를 통해 UFO에 대한 진실을 모두 폭로하는 날을 말하는 것이다. 이걸 위해 영화는 2시간 반 동안 거듭되는 추적과 탈출, 개인의 에피소드와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관계들을 켜켜이 쌓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결국 두 인물, 곧 마거릿과 다니엘은 어렸을 때 외계인을 최초로 접촉했던 사람들이다. (영화 에서 소녀 혹은 소년과 외계인이 서로의 손가락을 맞닿게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외계인이 준 능력은 오랜 기간 잠재돼 있다가 그들의 고도화된 지성의 판단에 따라 이제 때가 됐다고 봤을 때 차별적인 능력으로 각각 발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대학생 때 비상한 수학능력이 고도화되기 시작했는데 외계인의 과학 문명을 전달할 메신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조직의 간부였던 휴고가 다니엘 켈너에게서 알아본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외계인과 접촉했던 두 사람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휴고는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설명된다.
갈 데까지 가 버린 로즈웰 외계인 존재 음모론
외계인에 관한 음모 이론은 모두 1947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에서 UFO(미확인 비행물체)의 잔해가 발견됐다는 육군 항공대의 발표 이후 그것이 번복되고 관련한 자료가 모두 극비화 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유사 사건이 반복됐다는 뉴스들이 양산됐고 정부가 그 모든 것을 무슨 이유에서인가 철저한 비밀로 봉인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현재까지도 퍼져 있는 상황이다. 로즈웰의 비밀은 근 80년간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외계인 사체가 발견됐거나 생존한 외계인에 대한 생체실험이 진행된 것은 아닌가, 이들 외계인의 존재를 ‘보관하는’ 별도의 군사 기지가 지금도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이 모든 것을 위해 정부는 또 다른 비공식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져 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모든 의문을 이번 에 다 쏟아붓고 있다. 특징적인 것이 있다면 스필버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거듭되는 질문을 한 번 더 얹는 쪽이 아니라 정부를 대신해 자기 스스로 외계인의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판정을 내리려 한다는 것이다. 다소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외계인 음모론은 이제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외계인 존재 이론이 주는 혼란과 위험에 대비해 스필버그는 영화 곳곳에 그것에 대한 안전장치를 숨겨 놓는다. 다니엘 켈너의 애인 제인(이브 휴슨)은 수련 수녀 출신이다. 그녀가 잃은 것은 신의 마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녀를 교육했던 수녀원장 모라(엘리자베스 마블)는 ‘신이 우리 말고 또 다른 존재를 만드셨느냐’는 제인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신께서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이 땅(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를 만드셨다고 말씀하셨지. 이 땅(on Earth)에서 말이야.” 그렇다면 다른 땅에서도, 혹은 다른 행성에서도, 더 나아가 이 우주 다른 곳에서도 아름다운 존재를 빚어내셨다는 말이 된다. 스필버그는 외계인 존재론과 기독교 창조론은 부딪히지 않는다고 애써 강조한다. 갈등하고 혼란이 야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의 이론과 같다. 이 엄청나게 거대한 우주 속에 우리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아까운 것이냐는 얘기와 맥락이 같다.
미국은 이제 ‘새로운 이상’을 세우고 좇아야 할 때
주인공 마거릿 페어차일드가 기상캐스팅 도중 중얼거리게 되는 이상한 말은 나중에 결국 외계인의 언어임이 알려진다. 그 말을 알아듣는 것은 다니엘 켈너 뿐이다. 그가 그걸 어떻게 알아듣는지는 역시 극 후반과 결말에 가면 알게 된다. 두 사람이 첫 접촉자였기 때문이다. 그때 마거릿이 중얼거린 외계인의 말은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 스필버그가 하고 싶은 말, 이 영화가 궁극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해 설혹 우리가 지금 다 알고 있지 못하고, 완전히 모르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스티븐 스필버그 식 영화적 세계관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그간 만들어 놓은 비밀주의와 신비주의, 무엇보다 미국 중심의 우주관과 세계관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스필버그는 로즈웰에 외계인은 불시착하지 않았다는 미 육군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그 비밀을 영구 봉인한 미 정부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아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신뢰할 만한 가치를 이제는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필버그의 가 정작 폭로하려는 것은 미국의 정신적 가치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때문에 ‘새로운 이상’(그것이 설령 외계인의 것이라 하더라도)을 만들고 좇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더 이상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스필버그가 폭로하려는 진실은 거기에 있다. 폭로의 첫날은 한국에서는 지난 6월 10일이었다. 개봉 3일만인 12일 현재 한국인 10만 9645명이 스필버그의 새 음모론에 동의하고 나섰다. 향후 더 많은 관객이 동조할 것으로 보인다.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