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다시 민주공화주의를 묻는다 [뉴스] 인문연구가 이병권은 앞서 「표현의 자유」 7부작을 통해 극우세력이 내세우는 표현의 자유 담론을 역사적·철학적으로 분석하며, 표현의 자유가 민주공화정의 공론장을 파괴하는 혐오와 허위정보의 도구로 왜곡될 수 있음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민주공화주의」 6부작으로 그 문제의식을 한 단계 더 확장합니다. 필자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 플랫폼과 인공지능, 그리고 국제적으로 연결된 극우세력이 결합하며 형성한 새로운 권력질서의 문제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선언한 민주공화국 의 의미를 다시 묻고, 민주공화주의가 새로운 권력에 응답하며 어떻게 스스로를 발전시켜 왔는지를 역사와 정치철학, 경제와 기술의 흐름 속에서 추적합니다.
특히 이번 연재는 민주공화주의의 발전 과정을 국민주권, 인간존엄, 비지배(non-domination)라는 세 단계의 역사적 확장으로 새롭게 정리합니다. 이를 통해 민주공화주의를 과거의 헌법 조문이나 정치이념이 아니라, 시대마다 새롭게 등장한 권력을 시민의 민주적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 온 살아 있는 헌정질서로 재해석합니다. 또한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 필립 페팃(Philip Pettit, 1945~ )의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빅테크와 인공지능 시대 민주공화주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도 함께 모색합니다.
이번 연재는 민주공화주의를 과거의 정치사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헌정질서로 다시 읽어보려는 하나의 시도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제정한 최초의 헌법에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제 로 규정했을까.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화국도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원칙이 한 번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48년 제헌헌법은 다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고 선언했고, 1987년 현행 헌법 역시 같은 조문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대한민국은 100여 년 동안 민주공화국을 국가의 근본원리로 유지해 온 나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민주공화주의란 무엇인가. 서양 정치사상을 찾아보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설명한 연구는 넘쳐났고, 공화주의를 다룬 정치철학 역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이 한 세기 넘게 국가의 기본원리로 선언해 온 민주공화국 자체를 하나의 정치철학으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의외로 많지 않았습니다.
근대 정치사상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각각 발전시켜 왔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의 원리를 발전시켰고, 공화주의는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권력분립과 공공성, 법치의 원리를 다듬어 왔습니다. 20세기에 들어 두 차례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참화를 겪으면서 정치철학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라는 과제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이후 현대 공화주의는 다시 활발하게 연구되었지만, 대한민국 헌법이 선언한 민주공화국 자체를 중심에 놓고 해석하려는 논의는 상대적으로 드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이 10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선언해 온 민주공화국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이 오늘의 대한민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헌정 절차에 따라 탄핵했고, 2024년 12월 3일에는 헌정질서를 뒤흔든 내란 사태까지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거치고도 민주공화정이 무엇이며, 왜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출발점이자 최후의 기준인지를 우리 사회가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권력을 견제하는 공화주의를 소홀히 하기도 하고, 자유를 말하면서도 공동체와 공공성을 함께 성찰하지 못하는 모습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혼란의 배경에는 민주공화정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새로운 정치사상을 제안하려는 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헌법이 10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선언해 온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정치사상의 흐름 속에서 다시 읽어보려는 하나의 해석입니다. 저는 민주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단순히 병렬적으로 결합한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민주공화주의는 시대마다 등장한 새로운 권력과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서로를 보완하고 확장해 온 살아 있는 헌정원리이며, 대한민국 헌법을 이해하는 하나의 정치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5일 윤석열 파면 축하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연을 즐기며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2025. 4.5 사진 이 호 작가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식민지배 경험이라는 특수한 역사 속에서 탄생한 헌정질서이지만, 그 안에는 국민주권과 권력통제, 공공성이라는 인류 정치사상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보편적 가치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원리를 100여 년 동안 헌법의 근본질서로 유지해 왔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단순한 국가 형태를 규정한 조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를 지향해 왔으며 앞으로도 어떠한 국가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인 헌법적 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글은 대한민국 헌법이 선택한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다시 읽어보고,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과 앞으로의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 대한민국은 왜 민주공화국인가
―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만남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곧이어 이렇게 덧붙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두 문장은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두 번째 문장에는 익숙했지만, 첫 번째 문장에는 충분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대한민국이 왜 단순한 민주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어야 하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민주주의만으로 충분했다면 헌법은 왜 굳이 공화국 을 함께 선언했을까요. 반대로 공화국만으로 충분했다면 왜 국민주권을 헌법의 첫 번째 원리로 삼았을까요. 대한민국 헌법은 두 개의 정치원리를 나란히 적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서로를 보완할 때에만 자유롭고 지속 가능한 헌정질서가 가능하다는 역사적 경험을 헌법의 첫 문장에 담아낸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정치원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정당성을 묻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 왕인가, 귀족인가, 특정 계급인가, 아니면 국민 전체인가. 민주주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오며, 권력은 국민의 동의에 의해 구성되어야 합니다.
반면 공화주의는 권력의 운용 방식을 묻습니다.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은 누구를 위해 행사되어야 하는가. 그 권력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될 수 있는가. 공화주의의 대답 역시 분명합니다. 국가는 어느 누구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것이며, 권력은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고, 누구도 그것을 자의적으로 독점하거나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 누가 권력을 갖는가’를 묻는 정치원리라면,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어떻게 사유화되지 않고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도록 만들 것인가’를 묻는 정치원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원리를 세우고, 공화주의는 그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다시 누구의 사유물도 되지 않도록 통제합니다. 이 두 원리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민주주의만 강조하면 국민의 선택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반대로 공화주의만 강조하면 시민의 주권은 약화되고, 공공선이라는 이름 아래 소수 엘리트가 국가를 대신 운영하려는 유혹이 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민주주의만으로 충분했을까요.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결론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민주주의 없는 공화주의
먼저 민주주의 없는 공화주의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로마 공화정은 국가를 공동체 전체의 것, 곧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로 이해했습니다. 왕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의 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의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아니었습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원로원 귀족층에 집중되었고, 여성과 노예, 빈민 다수는 정치공동체의 주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공공선을 강조하는 정치체제라 하더라도 시민이 권력의 주인이 아니라면 공화국은 쉽게 소수 엘리트의 통치체제로 기울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없는 공화주의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는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 1517~1519년경 집필, 1531년 출간)에서 로마 공화정을 높이 평가하며 시민적 덕성과 공공선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군주론』(Il Principe, 1513년 집필, 1532년 출간)에서는 국가의 존립과 질서를 위해 강력한 지도자의 필요성도 인정했습니다. 공공선을 지향하더라도 시민주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권력은 다시 소수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긴장은 이미 이 시기부터 존재했습니다.
■ 공화주의 없는 민주주의
반대로 공화주의 없는 민주주의 역시 결코 안전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주권자가 되었다고 해서 권력이 자동으로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의 의사는 때로 소수를 억압할 수 있고,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얻은 권력도 법과 제도의 견제를 받지 않으면 다시 사유화될 수 있습니다. 미국 건국의 지도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습니다.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1751~1836)은 『연방주의자 논고』 제10편(The Federalist No. 10, 1787)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횡포가 가져올 파벌(faction)의 위험을 경고하며 권력분립과 견제장치를 강조했습니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 역시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émocratie en Amérique, 제1권 1835, 제2권 1840)에서 민주주의를 인류의 거대한 진보로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다수의 폭정 을 민주주의가 스스로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위험 가운데 하나로 지적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하나였습니다. 권력은 왕에게 있을 때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등장한 권력도 견제받지 않으면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주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왔든 반드시 법과 제도의 통제를 받아야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미국 헌법은 국가를 민주주의(democracy)라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 헌법 제4조 제4항(Guarantee Clause)은 연방이 모든 주에 공화정 형태의 정부(Republican Form of Government) 를 보장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미국 건국세력이 민주주의를 부정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주권을 인정하면서도 다수의 이름으로 등장한 권력 역시 견제받지 않으면 또 다른 전제정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원리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속시키기 위한 헌정원리였습니다.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문제를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국민주권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혁명의 열정은 곧 정치적 폭력과 극단적 대립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onaparte, 1769~1821)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혁명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폴레옹 법전』(Code civil des Français, 1804)을 제정하여 근대 국가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혁명은 왕정을 무너뜨렸지만 권력은 다시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 역사적 경험은 민주주의의 실패를 보여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지속되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를 보여준 역사적 경험이었습니다.
국민주권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선거는 권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누구를 위해 행사되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국민은 권력을 위임할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은 완성된 체제가 아니다. 시민의 참여와 감시, 공론과 연대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공동체의 질서다.
그러나 그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원리로 다시 등장합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정당성을 세웁니다.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누구의 사유물도 되지 않도록 통제합니다. 결국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사상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원리였습니다.
인류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결론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주었습니다. 공화주의는 그 권력이 다시 누구에게도 독점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두 원리가 만나면서 민주공화국이라는 근대 헌정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왜 하필 민주공화제 를 선택했던 것일까요. 바로 이 질문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 대한민국은 왜 민주공화국인가
―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만남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헌법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이라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을 단순히 모방한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은 근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축적해 온 정치사상의 성과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식민지 조선이라는 현실 속에서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그들이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단순히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국가를 세울 것인가보다, 어떤 원리 위에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먼저 결정한 나라였습니다. 대한제국은 황제에게 주권이 귀속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출발부터 그 질서를 부정했습니다.
국가의 주인은 황제가 아니라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리를 헌법의 첫머리에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왕조국가와 식민지배를 동시에 넘어서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선택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공화제였습니다. 이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국민주권만을 강조하려 했다면 민주주의만 선언해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국가의 형태만을 규정하려 했다면 공화국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결합한 민주공화제를 헌법의 첫 원리로 선언했습니다.
그 한 단어의 선택에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그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조차 어느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공공선을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는 공화주의의 원리를 하나의 헌정질서로 구현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1919년 대한민국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습니다. 국토도 없었습니다. 정부도 없었습니다.
국제사회로부터 국가로 승인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독립운동가들은 가장 먼저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헌법의 첫 번째 원리로 민주공화제를 선언했습니다. 무장투쟁보다 앞선 것이 헌정원리였습니다. 독립보다 먼저 고민한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생존조차 불확실했던 민족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민주공화정이었다는 사실은 오늘의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읽게 합니다.
■ 특수성과 보편성이 만나는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1919년은 세계사적으로도 거대한 전환기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제국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공화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은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고,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헌법』(1919)이 제정되었습니다. 세계는 군주와 제국의 시대를 넘어 국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주공화제 선언 역시 이러한 세계사적 전환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은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습니다.
그것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헌정질서라는 점입니다. 특수성은 분명합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은 식민지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국가를 상실한 민족이 독립국가를 다시 세우면서 선택한 건국의 원리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성도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수 세기에 걸쳐 축적해 온 인류 정치사상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국가의 근본원리로 삼았습니다. 국민주권, 권력분립, 권력통제, 공공성이라는 원리는 특정 국가만의 가치가 아니라 근대 헌정국가가 함께 발전시켜 온 보편적 가치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바로 이 두 전통을 하나로 결합했습니다.
식민지라는 특수한 역사 속에서 탄생했지만, 인류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보편적 정치원리를 독립국가의 헌정질서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원리를 100여 년 동안 헌법의 근본질서로 유지해 왔습니다. 식민지배와 해방, 전쟁과 분단, 권위주의와 민주화, 두 차례 대통령 탄핵과 헌정질서를 뒤흔든 내란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수많은 정치적 격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은 단 한 번도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었던 적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 지속성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을 단순한 헌법 조문이 아니라 살아 있는 헌정질서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그 답은 단순히 국가의 형태를 규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리와, 그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조차 누구의 사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화주의의 원리를 함께 지키겠다는 헌법적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새로운 정치사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10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선언해 온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오늘의 현실 속에서 다시 읽기 위해서입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은 식민지라는 특수한 역사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국민주권과 권력통제, 공공성이라는 원리는 인류 정치사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보편적 가치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의미는 바로 이 특수성과 보편성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공화주의는 1919년에 완성된 정치철학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공화제를 국가의 근본원리로 선언한 이후에도 민주공화주의는 시대가 제기한 새로운 위기와 과제에 끊임없이 응답하며 스스로를 확장해 왔습니다. 국민주권에서 출발한 민주공화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의 비극을 거치며 인간존엄을 핵심 가치로 받아들였고, 오늘날에는 플랫폼 권력과 인공지능, 초국적 자본이 등장한 시대를 맞아 비지배(non-domination)라는 새로운 원리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100여 년 전 만들어진 과거의 선언이 아니라,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요구하는 살아 있는 헌정원리입니다. 그렇다면 민주공화주의는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국민주권에서 인간존엄으로, 다시 비지배의 원리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해 왔을까요. 다음 글에서는 민주공화주의가 시대의 위기에 어떻게 응답하며 진화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오늘 우리가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를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병권 인문연구가 lbkwon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