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는 ‘비핵화’ 아닌 ‘핵군축’으로 풀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경렬 전 대사
미국에서 총기 소지는 헌법으로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Second Amendment)로 규정되어 있다. 잘 규율된 민병대(militia)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수차례의 대법원 판례로도 확정된 개인적 권리다.
대북 협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방적 핵 폐기 요구
북한은 2023년 9월 헌법을 개정해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명시했다. 헌법 제4장 제58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핵무기발전을 고도화한다.” 북한은 이미 2012년에 헌법을 바꿔 서문에 ‘핵보유국’이라는 문구를 공식적으로 넣었다. 2023년 개정헌법은 본문 개정을 통해 핵무력 정책을 국가 최고법으로 영구화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26~27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핵무력 강화정책의 헌법화’ 문제가 상정돼 전폭적인 지지찬동 속에서 채택됐다고 조선중앙TV가 28일 보도했다. 2023. 9. 28 연합뉴스
미국에 개인무기 소지 권리를 박탈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초현실적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에 ‘선(先) 비핵화를 요구한다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과거 모든 협상의 족쇄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라는 목표였다. 핵만이 생존수단이라고 믿는 북한에게 마땅한 대가도 없이 일방적 핵 폐기를 요구하는 것은 협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북한은 1993년 3월에 핵무기 비확산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를 선언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하고 한미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이에 북미가 고위급회담을 열고 북한은 일단 NPT 탈퇴 효력 발효를 유보한다. 이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가 나오고 북한은 핵 동결을 약속한다. 그러나 2002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제기하며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한다. 이에 북한은 2003년 1월 NPT에서 완전히 탈퇴해 버린다.
북한의 비핵화는 2007년이 거의 마지막 기회였다. 2007년 9월 말 6자회담의 결과로 ‘10·3 합의’가 나온다.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를 대가로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와 경제적 보상을 약속한다. 미국은 당초에 HEU 프로그램과 시리아와의 커넥션을 포함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신고할 것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북한은 영변의 플루토늄 핵시설 이외에는 HEU 프로그램의 존재나 시리아와의 협력을 강력히 부인한다. 미국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10·3 합의는 오래가지 않았다. 핵심은 북미 간 상호 불신이었다. 그래서 ‘선 비핵화’라는 이상적인 해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10.3 합의 무산 시킨 미국 내 강경 기조
2007년 합의 후 미국 내부에서 대북 강경 기조가 대두되고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이 합의 이행을 지연하자 북한은 2009년 4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다. 이에 유엔 안보리의 규탄이 나오자 북한은 6자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핵 프로그램을 재개한다. 그리고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6일 성명을 발표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음으로써 10.3 합의를 위반했다며 그 대응 조치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조치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 8. 26 (연합뉴스 자료사진)
6자회담은 중국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에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총 열 번에 걸쳐 열렸다. 2007년 9월 말 회담이 마지막이었다. 6자회담이 열린 4년여의 시기는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 의혹 시기와 일치한다.
2004년 봄 시리아의 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 시절, 북한의 고위 관료들이 아사드 정부와 빈번히 교류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군 정보기관인 아만(Aman)은 이를 핵무기에 관한 것으로 추정한다. 모사드(Mossad)는 아만의 정보를 믿지 않는다. 미국의 CIA가 통신을 도청한 결과 아만의 추정이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다. 이스라엘의 암호통신 부대인 8200부대(Unit 8200)가 시리아를 집중적으로 감시한다. 직후에 룡천 폭발이 일어난다.
2004년 4월 22일 낮 1시 경이다. 북한 룡천역에 진입해 주차 정리 중이던 유조열차와 질산암모늄을 실은 화물열차가 충돌하여 순식간에 연쇄폭발로 이어진다. 일부 정보에 따르면 화물열차에는 핵물질을 실은 밀봉된 칸이 하나 있었고 바로 그 옆 칸에 20명이 넘는 시리아의 핵 기술자들이 타고 있었다. 이를 모사드가 알고 있었다 한다. 시리아 인들은 화차가 룡천을 떠나 남포항에 도착하면 핵물질을 회수해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사망한다.
폭발사고로 폐허가 된 룡천 지역 복구를 위해 집결한 트럭과 북한 주민들. 2005. 5. 12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7년 9월 6일, 모사드의 배후 조종으로 이스라엘 공군이 시리아를 공습한다. 과수원 작전(Operation Orchard)이라는 습격이다. 공습의 이유는 시리아가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핵 의심 시설이 있는 동쪽 이라크 국경지역의 데이르에조르(Deir ez-Zor) 주 소재 사막지역 알키바르(Al-Kibar)를 초토화한다. 그달 말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린다.
10년 만에 똑같은 해법으로 또 날려먹은 2018년의 기회
2007년 10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하루 종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김 위원장은 회의 중간에 김계관 부상을 회담장으로 불러들여 최근 6자회담의 결과를 브리핑하게 했다. 베이징 6자회담의 ‘10·3 합의’는 그 직후에 발표된다. 9월 30일 합의된 문안을 부시가 승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10·3 합의’는 그해 말까지 북한과 미국이 이행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북한에 적성국과의 거래 조항을 적용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튿날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0·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다.
그후 거의 10년이 지나 2018년의 환상적인 시기가 있었다. 6월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희망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듬해 2월 하노이 후속회담에서 트럼프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주장을 따랐다. 이미 2007년에 미국이 접었던 해법이었다. 영변 시설 폐기 외에 모든 핵과 미사일 시설의 해체 요구다. 대가는 그까짓 일부 제재 해제였다.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 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둘의 깜짝 회동과 트럼프의 도보 월경이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6년 전의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나오며 담소하고 있다. 2019. 6. 30 연합뉴스
지금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북한의 핵 보유 자체가 아니라 핵의 사용과 확산을 막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다. ‘핵 군축(Arms Control) 및 통제’ 협상의 틀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핵 능력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 및 미사일 시험 동결, 특정 미사일의 폐기 등 단계적이고 상호적인 군축 조치를 유도해 실질적인 위협을 감소시켜야 한다.
아울러 핵무기의 비확산이다. 룡천 폭발과 시리아 알키바르 공습 사례는 북한의 핵 기술 확산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핵 군축이나 남북한 간의 대화와 협력과는 별도로 핵 확산은 막아야 할 인류의 과제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확산 요구에 부응하도록 설득하는 일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
우리는 2007년의 ‘10·3 합의’와 2018년 6월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약속했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 종전선언을 넘어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을 낮추고 상호 신뢰를 쌓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자면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게 핵을 사용할 명분과 동기를 제거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 종식을 선언하고, 체제전복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는 핵 폐기의 ‘대가’가 아니다. 핵 사용 방지의 ‘조건’이다.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반도평화포럼 주최 ‘정부 출범 6개월, 남북관계 원로 특별좌담’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이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명예이사장. 2025. 12. 3 연합뉴스
북한이 한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찬란했던 2018년 한국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워킹그룹(Working Group)을 가동해 남북협력의 진전을 가로막았던 때였다. 스스로 협력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말리는 시누이’ 역할에 머물렀던 것이다. 사실 한국은 말린 게 아니라 앞장서 미국의 지시를 이행했다. 그러니 북한이 한국을 더 이상 신뢰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북핵 문제를 초극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능동적인 중재자이자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다.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미국은 미국 시민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을 수 없다.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이 아닌가. 미국 내에서 수정헌법 2조를 개정해 총기를 회수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듯, 이미 헌법에 핵보유를 명시한 북한에게서 핵을 강제로 박탈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단계에 진입했다. 북한은 헌법으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위헌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무기도 똑같이 빼앗을 수 있는가. 안 될 일이다.
심지어 과거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송민순 전 외교장관 조차 최근 발간한 이라는 회고록에서 아직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전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핵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하는 한국의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맹파’의 ‘워킹그룹’ 저지하고 우리가 먼저 대화 물꼬 터야
지금 남북관계는 미국보다 한 발도 먼저 나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동맹파’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성사시켜야만 한다. 그러자면 우리는 미국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핵보유국 북한을 인정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중단하는 조치를 통해 대화의 물꼬부터 열어야 한다. 지금 외교부가 꾀하고 있는 제2의 한미 ‘워킹그룹’ 운용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는 더 이상 ‘협상을 통한 핵 폐기’의 영역이 아니다. 위협 관리와 평화 정착을 모색해야 하는 영역으로 들어섰다. 핵을 통제하고 핵무기 사용의 동기를 제거하며 한반도에서 두 국가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되 평화협정을 통해 그 위협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북핵 문제를 초극하는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