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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배심제 도입으로 국민의 사법주권 확보해야

배심제 도입으로 국민의 사법주권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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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의 혼란 속에서 사법의 본질을 묻다 2025년과 2026년으로 이어진 비상계엄과 극복 과정에서 우리 사법부에 준엄한 질문이 던져졌다. 유력 대선 주자의 선거법 재판을 둘러싼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엇갈린 행보, 그리고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보여준 엇갈린 태도는, 사법권의 역할이 단순히 ‘외부로부터의 독립’만을 보장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의 법 감정과 유리되고, 절차의 지연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때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과 기능은 흔들렸다. 이때 우리와 유사한 법적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독자적인 개혁을 추진해 온 일본의 사례를 검토하여 2026년 현재 대한민국 사법제도 현대화를 위한 방향을 살펴본다. 독일의 근대 사법 시스템의 영향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사법제도는 메이지 헌법 제57조에서 사법권 행사와 독립을 규정하고, 제58조에서 법관의 자격 및 신분보장을 명시했다. 메이지 헌법은 당시 법치국가(Rechtsstaat)를 명문화한 프로이센 헌법의 영향을 받았다. 이 헌법은 사법권이 국왕의 이름으로 행해지더라도 법관은 오직 법률에만 구속된다는 규정(제86조)과 법관 종신제라는 신분보장 규정을 두었다. 일본은 1890년 민사소송법 제정 당시에, 1877년 독일 제국재판법과 독일 민사소송법을 모델로 삼았다. 독일법의 영향을 받아 일제의 소송법도 ‘서면주의’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러나 독일은 1차 대전 패전과 제국 해체로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지며 사법 체계에 대변환을 맞이했다. 바이마르헌법 제102조는 법관은 독립하며, 오로지 법률에만 종속된다.”고 규정하고, 제104조에서는 법관의 신분보장, 제105조에서는 특별법원 설치금지를 명시했다. 1924년 법무장관 에리히 에머(Erich Emminger)에 의해 단행된 획기적인 사법제도 개편으로 판사의 영향력을 배제한 영미식 배심제”가 폐지되고 법관과 국민이 함께하는 독일식 참심제(Schöffengericht)”가 채택되었으며, 서면주의 소송제도는 서면에 의해 준비된 구술주의”로 전환되었다. 복잡해지는 법률 사건에서 사건에서 법률 지식이 없는 시민들이 감정에 휩쓸리거나 오판을 내릴 위험이 크다는 생각으로, 참심제에서는 법관과 법관과 국민이 함께 증거조사부터 양형까지 함께 결정하는 구조를 선택했다. 그러나 국민의 사법 참여를 후퇴시키고 법관의 영향력을 강화하여 결과적으로 나치에 관대한 판결을 낳고 사법부를 보수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일은 2차 대전 패전 이후 단순한 개혁을 넘어, 잘못을 청산하고 법의 이름으로 독재가 군림하지 못하도록 했다. 헌법재판소(BVerfG)를 설립해 사법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실현했으며, 사법권이 연방대법원장 등 특정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고자 법관선출위원회를 두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을 일반·행정·재정·노동·사회법원이라는 5개 분야별 독립 사법 권력으로 분산시켰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 사법개혁의 굴곡과 대한민국에 남겨진 과제 반면,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일본은 사법개혁의 외부 동력이 크지 않았다. 1910~20년대 다이쇼 데모크라시 라는 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1923년 배심제가 도입되었으나,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력이 없었고 평결 결과에 대해 항소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다. 1925년 치안유지법이 통과되고 1930년대 군국주의의 발호와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1943년 배심법 정지 법률이 공포되어 자유주의 흐름도 정지되었다. 2차 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요구로 사법부 민주화를 위해 여러 영미식 제도를 도입했으나, 배심제는 부활하지 않았다. 전후 수립된 최고재판소는 사무총국을 정점으로 한 강력한 인사권으로 재판의 통일성에는 기여했으나, 법관들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법관료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폐쇄성을 극복하고자 2009년 ‘재판원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후 사법 절차의 지연과 불투명성, 재심 무죄 사건 등을 계기로 개혁 논의를 재점화했다. 영미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 사이의 치열한 논쟁 끝에 양자를 절충한 일본형 참심제인 재판원제도 가 탄생했다. 이는 중대 형사사건에서 국민 재판원이 법관과 함께 유·무죄는 물론 양형까지 결정하는 제도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유럽식 사법 시스템을 수용한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사법권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군사정권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독일이나 일본처럼 패전 이라는 강한 개혁 동력도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낡은 사법제도를 일부 수정해 사용해 오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일부 위헌적 제도들이 폐지되었다. 2010년부터는 사법부 내부의 권력 집중 해소와 국민의 직접 참여 확대가 개혁의 주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본의 재판원제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일본은 중대 형사사건에 대해 국민 참여를 ‘필수’로 하여 사법을 국민의 의무이자 주권 행사의 장으로 변화시켰다. 반면,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의 선택에 의존하며 평결의 효력 또한 ‘권고’에 그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여전히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가 누구인지, 전관 변호사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를 개혁하려면 판사에 의한 재판이 아니라 배심원(혹은 참심원)에 의한 재판으로, 다른 표현으로는 국민에 의한” 재판으로의 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 이미 법관에 의한 재판보다 건전한 시민에 의한 재판이 더 옳은 결론을 낸다는 서구의 이론과, 시민의 다수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투표 결과를 낸다는 논의(졸저, 인터넷 선거운동의 자유화에 관한 법적 연구-Condorect의 배심정리를 적용하여”, 세계헌법연구, 2010. 참조)는 제기된 지 오래다. 국민에 의한 배심재판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개혁의 과제인 전관 문제, 재심 무죄, 재판에 견제 기능 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된다.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면 판결과 형량이 일반인들의 법적 감정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의 인적 다양성을 위한 ‘직역 쿼터제’ 일본의 사법제도로부터 주목할 또 다른 점은 최고법원의 다양한 인적 구성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5명의 재판관 중 법관 출신을 6명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를 변호사(5명), 검사(2명), 행정관(1명), 외교관(1명), 학자(1명)으로 전문법관 외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전문가로 구성하는 ‘직역별 쿼터제’를 관행화했다. 사법부의 경직된 사고를 깨기 위해서는 법리적 완결성만큼이나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가치관이 판결에 녹아들어야 한다. 대법원장의 과도한 인사권을 축소하고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는 것은 사법부를 ‘엘리트의 성역’에서 국민의 법원”으로 돌려놓는 방안이 될 것이다. 나아가 지연되는 법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대법관의 증원과 하급법원 판사의 증원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복잡한 민·형사 사건의 경우 대법원까지 확정이 2년은 고사하고 4년 이상이 걸린다. 법관의 증원과 인센티브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 일본식 상고허가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하급심의 법관과 대법원의 재판관 수를 늘리는 것은 필수적이다.  검찰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기소배심과 불기소에 대한 헌법재판) 사법개혁의 또 다른 축은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개혁이다. 대한민국은 최근 한국은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통해 외부적 견제를 꾀하고 있다. 검찰의 정치적 기소 나 봐주기 수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수청을 설치하려 하며, 항고제도와 재정신청 제도가 있고, 여기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일부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개혁의 추진 세력인 여당발 공천 헌금 사건이 수사 대상이 되어, 검찰과 수사기관에 대한 개혁을 보는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다. 중수청을 중심으로 한 수사 개혁도 밀실 속의 그들만의 시스템이나 개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비상계엄 시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현재 기능을 잘하지 못하는 공수처의 예를 다시 반복해서는 아니 된다. 한편, 일본은 강력한 수사·기소 일체형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검찰심사회’라는 독특한 국민 참여 기구를 활성화했다. 국민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심사하고, 두 차례의 ‘기소 상당’ 의견이 나오면 강제 기소가 가능하게 한 이 제도는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를 국민이 직접 통제하여 강력한 실효성을 보여준다. 이는 검찰 ‘권한의 분산’을 택한 한국과 기소에 대한 ‘국민적 감시’를 택한 일본의 차이를 보여준다. 사견으로는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특별검사제도를 사용하고, 미국식 기소배심(Grand Jury)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비리와 고위 공직자 비위 사건에 상설특검과 비상설 특검으로 수사·기소하면 검찰권에 견제가 된다. 그러면서도 특별검사의 범람으로 국정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동시에 3개 이내의 특별검사만 활동하도록 자제하면, 권력과 검찰에 대한 견제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다. 현재 기소유예만 헌법소원 사건이 될 수 있지만, 검찰의 기소 및 불기소에, 항고와 재정신청이 만들어지기 전과 같이,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심판을 할 수 있고, 기소배심제도가 일부 도입된다면 검찰의 기소권에 대한 충분한 견제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검찰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 장치를 두텁게 두면, 검찰 수사권의 박탈과 조직 폐지보다 더 효과적인 개혁이 될 수 있다. 어떠한 제도라도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이 구현되고 그 시스템이 국민에 의하고 국민을 위한 제도가 되어야 한다. 현대 사법의 주인은 국민 대한민국의 사법개혁은 국민의 사법주권 확보를 위해 전진해야 한다. 판사의 판단에만 맡겨진 재판에 대하여, 국민의 상식을 더하고, 법원 내부의 관료적 서열을 파괴하고, 헌법재판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견제해야 한다. 우리 사법부는 독일에서 형성되어 일본을 거쳐 온 ‘근대 사법’의 옷을 여전히 입고 있다. 필자는 헌법재판소 연구원으로 근무 시, 구 형법 제57조 제1항 사건에서 미결구금일수를 형기에 산입하는 범위를 법관의 재량에 의하여 결정”하도록 한 구 형법 규정이 헌법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 형법 규정을 찾았는데 일본은 미결구금일수를 모두 형기에 산입”하고 있었다. 이상해서 일본 제국 형법을 확인해보니 당시 우리 형법 규정과 같이 법관의 재량으로 미결구금일수를 산입하도록 했었다. 결국 구 형법 57조는 위헌결정(2007헌바25) 되었고, 이 결정으로 재소자 중 741명이 출소했다. 우리 사법부는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사법개혁에 반대하기 전에, 스스로 입고 있는 근대 사법의 옷을 거울에 비춰보아야 한다. 그동안 왕의 법원이 아니라 법관에 의한 재판을 보장하던 근대 사법의 가치에서, 이제는 배심제나 재판원과 같이 국민에 의한 재판이라는 현대 사법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현대 사법’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이제 비상계엄이라는 국난을 극복한 대한국민이 사법 작용에 참여하여 국민을 위한 사법부를 만들어야 할 때다. 말 그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사법제도(Judicial system)”를 구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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