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블랙리스트 에 이름을 올린 배우 그레고리 펙 [사람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배우가 있다. 카메라 앞에서만 영웅인 배우, 그리고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영웅인 배우. 그레고리 펙(Gregory Peck, 1916~2003)은 단연코 후자였다. 그는 스크린에서 정의로운 변호사를 연기했고, 스크린 밖에서는 실제로 권력에 맞서 싸웠다. 덕분에 37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의 적(敵) 명단 에 이름이 당당히 올라갔다. 어떤 상보다 값진 영예였다.
1930년 경 아버지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그레고리 펙(위키피디아)
캘리포니아 소년, 뉴욕에서 꽃피다
1916년 4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라호야(La Jolla)에서 태어난 엘드리드 그레고리 펙(Eldred Gregory Peck)은 순탄치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일찍 이혼하면서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군사학교와 고등학교를 전전하며 흔들리던 청년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연극에 눈을 떴다. 의사가 되려던 꿈은 무대의 빛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이름난 연기학교인 이웃집 연기학교(Neighborhood Playhouse) 에서 2년간 갈고닦은 뒤, 1942년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윽고 서부영화의 메카 할리우드로 입성한 것이 1944년. 같은 해 데뷔작 영광의 나날들 (Days of Glory)을 시작으로, 5년 만에 영화상 최우수 남자배우 후보에 네 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말하자면 신인왕 이 아니라 아예 리그 최강자 로 직행한 셈이다.
펙의 영화 데뷔작인 영광의 나날들 (1944) 중 한 장면(위키피디아)
영화로 세상을 건드리다
그레고리 펙의 출연작 목록은 단순한 흥행성적표가 아니라 20세기 미국 사회의 상처와 양심을 고스란히 담은 연대기다.
신사협정 (Gentleman s Agreement, 1947)은 유대인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쳤다. 기자가 유대인으로 위장 취재하며 반유대주의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에서도 제작하기 꺼렸던 소재를 다뤘다. 눈치 없이, 혹은 눈치 있게 무시하던 시절에, 펙은 굳이 그 불편한 이야기를 골랐다.
열두 시의 결전 (Twelve O Clock High, 1949)에서는 2차 세계대전 폭격기 부대 지휘관으로 분하여 전쟁 뒤 찾아오는 정신적 외상과 지도자의 무게를 섬세하게 그렸다.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담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1962년. 역사에 남을 한 편의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 신사협정 (Gentleman s Agreement, 1947) 포스터(위키피디아)
앵무새 죽이기, 한 배우의 일생을 결정한 역할
하퍼 리(Harper Lee, 1926~2016)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퓰리처상 수상, 1961)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에서 펙은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Atticus Finch)를 연기했다. 핀치는 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백인 여성을 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남성 톰 로빈슨(Tom Robinson)을 법정에서 변호하는 홀아비 변호사다. 온 마을의 적의와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실의 편에 선 인물.
이 역할로 펙은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시상식 당일 밤, 펙의 손에는 원작자 하퍼 리가 건네준 그녀 아버지의 회중시계가 들려 있었다. 애티커스 핀치라는 인물은 실제로 하퍼 리의 아버지 아마사 리(Amasa Lee, 1880~1962)를 모델로 했는데, 아마사 리는 영화 촬영 중 세상을 떠났다. 하퍼 리는 그 영화에서 배우와 배역이 하나가 됐다 고 했다. 펙에게 이보다 더한 찬사가 있을까.
2003년, 미국 영화연구소(AFI)는 영화역 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1위로 애티커스 핀치를 선정했다. 그레고리 펙이 세상을 떠난 해에, 그의 가장 위대한 역할이 영원히 기록된 것이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포스터(위키피디아)
닉슨의 적 명단에 오른 배우
그레고리 펙은 화면 안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1947년,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의 그늘 아래 반미활동 조사 위원회 (HUAC)가 할리우드를 공포로 몰아넣을 때, 펙은 이 위원회에 정면으로 맞섰다. 수많은 동료 배우와 감독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동료를 밀고하던 시절이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반전 영화 카톤스빌 아홉의 재판 (The Trial of the Catonsville Nine, 1972)」을 제작·후원했다. 징집 영장을 불태운 반전 신부 베리건 형제(Berrigan brothers)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닉슨 대통령(재임 1969~1974)의 눈엣가시가 됐다. 결국 펙의 이름은 닉슨의 악명 높은 적 명단 에 올랐다. 권력의 눈 밖에 났으나, 역사의 눈 안에는 영원히 남은 것이다.
닉슨의 전임 대통령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은 1969년 펙에게 미국 최고 민간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다. 한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고, 다른 대통령에게 원수로 찍히는 것. 이보다 더 일관된 삶의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리처드 닉슨 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8년 7월 닉슨 대통령 후보 지명에 앞서 백악관에서 만나고 있다.(위키피디아)
스크린 밖의 그레고리 펙
그는 미국 암협회 의장을 역임했고, AFI 공동창립자로 문화기반 다지기에도 공을 들였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장 직을 맡았으며, 고향 라호야에 극장 La Jolla Playhouse 를 세워 지역예술 생태계에도 씨를 뿌렸다.
그러면서도 사생활에서 그는 장난기 많은 인물이었다. 촬영장에서 동료들에게 수시로 장난을 쳐 웃음을 선사했고, 드럼 솜씨도 수준급이어서 집에서 즉흥연주를 곧잘 선보였다고 전해진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진지한 사람이 반드시 무겁고 근엄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레고리 펙이 몸소 보여줬다.
2003년 6월 12일, 그는 87세의 나이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화 로마의 휴일 (1953)의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위키피디아)
한국에서 읽는 그레고리 펙, 지금, 여기
이쯤에서 시선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한국 사회는 지금 여러 갈림길에 서 있다. 검찰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조희대 사법부의 권력 남용 문제, 양극화 사회에서 소수자의 목소리가 법정에 서는 풍경들. 공교롭게도 이 모두는 앵무새 죽이기 가 던진 질문과 정확히 겹친다.
한국에도 그레고리 펙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고(故) 노무현(1946~2009) 대통령처럼 이길 수 없는 싸움인 줄 알면서도 옳기 때문에 싸우는 이들이 있었다. 촛불을 들었던 수백만 시민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영웅 서사 로만 박제되지 않는 것이다.
그레고리 펙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영화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원수 명단을 만들 때, 그 명단에 기꺼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한국의 현재, 공익신고자들은 직장을 잃고, 비판적 언론인들은 고소를 당하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손해배상 청구를 마주한다. 이 모습 속에서 적 명단에 올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는 펙의 삶은 단순한 외국 배우의 이야기를 뛰어넘는다.
또한, 펙은 단 한 번도 나는 배우니까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라는 공적 영향력을 변화의 지렛대로 삼았다. 유명세를 사회적 책임의 근거로 본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유명인들이 공인의 공적 역할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 되묻게 하는 대목이다.
펙과 캐럴 베이커가 출연한 영화 빅 컨트리 (1958) (위키피디아)
앵무새는 아직 살아 있다
하퍼 리는 소설에서 이렇게 썼다.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 앵무새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노래를 부를 뿐이니까.
억울하게 누명 쓴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이 앵무새라면, 그 앵무새를 법과 양심으로 지키려 한 애티커스 핀치가 바로 그레고리 펙이었다.
닉슨의 적 명단에 올랐지만, 역사의 영웅 명단 1위에도 올랐다. 둘 다 같은 사람이 한 같은 행동의 결과다. 권력은 그를 원수라 했고, 시대는 그를 영웅이라 했다. 권력의 기억과 역사의 기억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남는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그레고리 펙은 87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냥 조용히 지내자 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진짜 연기인생이었을지 모른다. 가장 어려운 역할, 바로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으로 사는 일 말이다.
그레고리 펙은 영화 앵무새 죽이기 (1962)에서 애티커스 핀치 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