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거 앞둔 다카이치 전면 지지” 내정간섭 파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28일 일본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총리와 함께 요코스카 항에 정박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갑판 위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2월 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중의원선거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 일본유신회 연립정권에 대한 ‘완전하고 전면적인 지지’를 SNS를 통해 표명했다. 일국의 지도자가 타국의 선거 때 특정 인물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주권국가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용납할 수 없다. 민주국가에서 선거의 자유와 공정, 중립성은 최대한 존중받아야 할 원칙이다. 당연하게도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타국의 선거에 개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언동은 삼가해 왔다.”
아사히 사설 용납할 수 없는 내정간섭”
‘미국 대통령의 지지, 용납할 수 없는 내정간섭이다’는 제목을 단 7일의 일본 아사히신문 사설 첫 대목이다. 아사히 사설은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하지 않은 타국 내정간섭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저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것저것 짚었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 중의원선거를 사흘 앞둔 지난 5일(미국 시각)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총리를 미국 대통령으로서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지지한다”며 자신의 SNS를 통해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의 선거기간 중에 공개적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본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방문 당시 연단에 함께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일본경제신문 2월 6일
다카이치 총리, 일본국민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중의원선거가 일본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선거”라면서 지난해 10월 일본방문 때 다카이치 총리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며 미국 대통령으로서 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영광”이라고 썼다. 트럼프는 또 그녀는 일본국민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다카이치 총리와 일본 우익 연립여당의 승리를 위한 노골적인 선거운동을 벌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통상적인 국가관계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자세를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과거에도 타국 우익 정치인 공개 지지발언 전력들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적인 언행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5일,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는 4월 총선거를 앞둔 헝가리의 우익 정치인 오르반 빅토르 총리에 대해서도 완전하고 전면적인 지지”를 보냈다. 4년 전에도 트럼프는 오르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지난해 11월 온두라스 대통령선거 때는 우익 후보 나스리 아스푸라가 선거에서 지면 온두라스에 대한 재정지원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선지 아스푸라가 이겼다. 또 그 한 달 전인 지난해 10월 아르헨티나 의회선거 때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냈고, 당선된 밀레이는 트럼프 지지후보의 대승!”이라며 으스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동지라고도 할 수 있는 브라질의 우익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대놓고 줄기차게 지지하고 옹호해 온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트럼프주의자인 J. D. 밴스 부통령은 지난해 유럽 방문 때 유럽 주류 ‘좌파’를 공격하면서 총선거 중인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해 독일정부로부터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지발언 대상은 하나같이 우익 정치인
트럼프의 선거개입 대상은 이처럼 하나같이 우익 또는 극우 정치인이나 정당이다.
그리고 그의 타국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발언은 보통 선거가 끝난 뒤 승자에게 보내는 축하인사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굳이 선거 전에 하는 것은 분명 무슨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대가 받아내기 위해 은혜를 팔았다”
아사히는 트럼프의 이번 지지표명이 다카이치 총리 개인에 그치지 않고, 일본유신회까지 포함한 연립정권을 추켜세우며 선거 뒤에 짜여질 정치 틀까지 염두에 두면서 한 것을 두고 일본의 주권과 민주주의의 자율성을 경시한 태도”라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선거 뒤를 내다보고 일본에 외교, 통상상의 ‘대여’(부채)를 만들려는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요미우리신문 등은 이를 은혜를 팔았다”는 말로 표현했다. 선거 직전에다 3월 19일로 예정된 미일 워싱턴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나온 지지표명이 일본의 방위비(국방비) 증액, 관세협상애서 합의한 5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이행, 대중국 관계의 안정화를 그 대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협상(딜)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한 포석으로 봐도 이상할 게 없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이 중의원선거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연립정권이 자민당 단독 과반의석을 넘어 연힙정권 전체의석 300석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이길 것이 확실해 보이는 상대를 골라 눈치볼 것 없이 파격적인 지지로 ‘은혜’를 팔아놓는 것이 확실히 남는 장사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좌파’인 한국정부엔 추가관세 인상으로 압박?
그러고 보면 한국에 대해 뜬금없이 25%로 추가관세를 물리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익이 아니라 ‘좌파’로 인식할 이재명 정부를 찬양하며 은혜를 팔 수는 없으니 관세인상 위협으로 대미 투자 이행과 국방비 증액 등을 압박한 게 아닐까.
트럼프는 과거 유럽 제국 왕가 닮은 ‘네오 로열리스트’
6일 일본경제신문에 기고한 논평에서 와타나베 쓰네오 사사카와 평화재단 수석 연구위원은 기존의 국내외 룰을 무시하면서 개인적인 관계와 가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 미국의 정치학자가 ‘네오 로열리스트’(Neoroyalist)의 그것으로 분석했다면서 이런 재미난 얘기를 했다. 16세기의 합스부르크 왕가나 튜더 왕가가 국경을 넘는 왕실끼리의 혼인관계 등을 통해 국가의 이익보다 왕실 패밀리의 이익을 우선한 것처럼, 가족적인 인간관계를 타국 지도자와 쌓아서 ‘내 편’으로 만들어 자신과 가족의 비즈니스 이익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 모델에 적용해 보면, 트럼프는 다카이치 총리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어서 내정간섭의 터부를 깨고 발언한 셈이 된다. 시진핑 주석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중국방문을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4월 중국을 국빈방문할 예정이다.
또 다른 논평 기고자인 중국 출신 이코노미스트 커룽(카류) 공익재단법인 도쿄재단 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동맹국 대통령으로부터 내정간섭을 당한 다카이치 정권은 주일 미국대사를 불러 항의를 해야 마땅하지만, 아마도 그렇게는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말했다. 일본시간으로 (투표가 끝난) 8일 밤에 지지한다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트럼프 방식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란 사람은 어디까지 세계를 가지고 놀(翻弄) 작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