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주름진 손등 쓰다듬을 날이 얼마나… [사람들] 2010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심달연 할머니가 압화 작품을 만들고 있다. 고려대 제공
경기 광주시 퇴촌면 가새골길 85번지에 들어선 나눔의집. 그곳 마당에 서면 바람이 먼저 속삭이며 다가온다. 봄이면 새순 냄새가 살짝 배이고, 가을이면 낙엽이 발밑에 조용히 스며든다.
이옥선 할머니가 마당 한구석 벤치에 앉아 주름진 손등을 천천히 들어 올리셨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눈빛은 단단했다. 1928년 울산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에 여관에서 끌려간 길. 중국 옌지 위안소의 그 세월은 97세가 되도록 손등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었다. 늦깎이로 영어를 익혀 유엔 무대에 서고, 미국 브라운대학교 강당에서 이것이 진실 이라 외친 손. 2025년 5월 성남 요양병원의 침대 위에서, 그 손은 고요히 놓여 있었다.
길원옥 할머니의 손은 또 다른 온기를 품었다. 같은 1928년생. 열세 살 때 공장 일 한다더라 는 말에 속아 만주로 떠난 소녀. 수십 년 만에 돌아와 수요시위를 지키고, 유럽의회 7개국을 돌며 증언했다. 노래를 불렀다. 길원옥의 평화 . 멜로디는 포근했지만, 가사 끝자락엔 가느다란 떨림이 배었다. 나비기금을 일구고, 평화의 소녀상 표지석에 자신의 필체로 새겼다. 일본이 사죄하라. 그 외침은 2025년 2월 추운 겨울에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이용수 할머니가 2023년 11월 23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 구회근)로부터 원고 승소 판결을 받고 감격에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다. 2023.1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용수 할머니는 아직 그 바람 속에 서 계신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나 열여섯에 태국 위안소로 끌려간 몸. 가장 늦게, 가장 오래 증언해 온 분. 90세를 넘어서도 수요시위 맨 앞줄에 서서 진실을 말할게요 라고 말씀하셨다. 2025년 8월 14일 기림의 날에도 홀로 꽃을 놓으시며, 손등 주름을 쓸어 넘기셨다. 그 손은 아직도 따스하다. 지금은 대구 자택에서 조용히 지내시지만, 목소리는 전국을 울린다.
나눔의집은 처음부터 그런 바람 부는 고갯길이었다. 1990년대 말 중국·필리핀 등에서 돌아온 할머니들을 모셨다. 이옥선, 박옥선, 강일출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마당을 지켰다. 하나둘 요양시설로 떠나 지금은 할머니들이 계시지 않지만, 매년 설날 합동 다례제를 조용히 치른다. 20만명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피해자 중 정부 공식 등록 240명 가운데 올해 설 다례제 때 생존자는 6명이었는데 3월 말에 5명이 됐다. 가새골길 끝에서 들리던 담소는 이제 바람결에 흩어지는 것 같다.
이 길목에서 10여 년을 걸었다. 여성가족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홈페이지 운영을 맡아 왔었고, 이를 계기로 기억 한켠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는 순간들로 채워졌다. 할머니 부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국화꽃 배너를 만들어 올리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가끔은 수요일 낮 열두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몇 번 발을 맞췄다. 고양정부합동청사에는 국립여성사전시관이 있고, 1층 라키비움(larchiveum, 도서관과 기록관, 박물관의 합성어)을 거쳐 2층에 올라가면 김서경 작가의 김학순 할머니 조각상도 만날 수 있다. 특히 그 뒤편에 전소라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나를 잊지 말아요 는 할머니들이 떠나실 때마다 소녀상을 하나씩 빼내는 전시로 잊혀짐에 맞서고 있지만 그 하얀 소녀상 역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전시관이 문을 연 2014년에는 47개였는데 이제 6개가 남아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아직도 꺼내보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영상. 흐릿한 화면 속 하얀 저고리 차림으로 살아있는 내가 바로 증거 라고 하시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2018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첫 기림의 날 행사도 다녀왔고, 천안 망향의동산 기림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던 무더웠던 여름날도 쉬 잊히지 않는다.
지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로는 처음 자신이 일제시대 때 정신대 대원이었다고 증언하는 김학순 할머니. 연합뉴스 자료사진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김학순 할머니 증언으로 피어난 바로세우기의 날.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할머니 이야기를 나누고, 소녀상 앞에 꽃을 놓는다. 이용수 할머니처럼 홀로 서는 이도 있고,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는 이도 있다.
관악에서도 2016년 봄, 서울대생들과 주민들이 나들목길에 모였다.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자고 속삭였다. 언젠가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되고 이후 한일합의로 일본이 철거를 요구할 무렵. 그 바람은 구의회 담소로 이어졌지만, 세월 따라 희미해졌다. 그 자리는 아직 텅 비어 발소리만 메아리친다. 전국에 100여 소녀상이 피어났지만, 관악은 여전히 꿈만 간직한 채 서 있다.
위안부소녀상 미니어처(필자 소장)
주름은 세월의 무게가 아니다. 고통을 껴안고 용기를 잇는 생생한 온기다. 이옥선 할머니 손은 연설문처럼 펼쳐졌고, 길원옥 할머니 손은 노래처럼 쥐어졌다. 이용수 할머니 손은 오늘도 꽃을 놓는다. 나눔의집 마당에서 우리는 그 손을 마주한다. 관악이 다시 어루만진다면, 잊힌 이야기가 스멀스멀 피어날 터. 소녀상 하나, 역사 모임 하나, 어르신 담소 자리 하나. 작은 불씨가 숲을 밝힐 수 있다.
지난 3월 말 즈음 하늘의 별이 하나 더 졌다. 이제 남은 별은 단 다섯. 누군가에게는 그저 숫자 하나 줄어든 것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아물지 않은 역사의 생살이 또 한 점 떨어져 나간 아픔이다. 이번에 떠나신 할머니는 유족의 뜻에 따라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은 채 고요히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셨다. 그 지독한 고요함이 도리어 천둥소리처럼 가슴을 울린다.
이제 남은 다섯 분. 그분들이 짊어진 역사의 무게를 우리가 어떻게 나누어 들어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별이 하나 졌다고 그 빛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 존함은 비공개로 남을지언정, 그분이 몸소 증명해낸 세월이 비공개로 남아선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다섯 밖에 남지 않은 그 별들을 더 아프게 바라보는 일 뿐이다. 그 별들이 다 지고 나면, 망각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증언할 기록의 시간이 시작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곳에선 부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신의 고운 이름 석 자로 불리며 편히 쉬시길 빕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억하자. 그 아이들이 자라 할머니 손은 어땠나요 물을 때, 따스한 차 한 잔처럼 전할 수 있게. 관악 바람이 그치지 않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올해 8월 14일 기림의 날 행사엔 꼭 두 아이 손을 잡고 다녀와야겠다. 그 손등에 주름이 새겨지기 전에.조태희 시민기자 jotaehu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