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국가 정체성’ 밝히는 한글 현판을 달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으뜸 마루지인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 ‘문화유산’이라는 범주 안에서 원형 보존은 기본 원칙이겠지만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그보다 더 크고 넓은 ‘국가 정체성’의 범주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1. ‘원형’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문화유산 관리에서 원형의 복원과 보존은 기본 원칙일 것이다. 과거의 그 사물이 지닌 역사와 느낌의 복원은 아무래도 그 모양의 복원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니 말이다. 그렇지만,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 문화유산의 원상태를 그대로 회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복원의 진정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사례를 보자.
노트르담 성당은 2019년 화재로 첨탑과 지붕에 큰 피해를 봤다. 재건 방향을 둘러싸고 가장 잘 알려진 마지막 상태대로 원형을 복원하자는 의견과 시대적 맥락을 반영하여 첨탑을 새로 설계하자는 의견이 맞섰다. 문화유산 전문가 다수는 1859년 비올레르뒤크가 설계한 첨탑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마크롱 대통령을 중심으로 현대적 맥락을 반영하여 21세기 감각으로 첨탑을 재설계하자는 주장이 나와 국제 건축 공모까지 추진하려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은 중세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19세기 복원 과정에서 비올레르뒤크가 새로 설계한 작품이다. 중세 첨탑은 이미 18세기 말 철거되었고, 1857년에 제안된 새 첨탑 설계는 기존의 남은 형태와 옛 기록을 참고해 새로 디자인되었다.
격렬한 논쟁 끝에 결국은 화재 직전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로 했으나, 노트르담 성당 첨탑은 그 ‘원형’ 자체가 이미 19세기에 창조적으로 복원한 것이었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 논쟁에서 우리는 가장 잘 알려진 원형대로 복원하는 방향도 있지만, 19세기 비올레르뒤크의 창조적 복원이나 마크롱처럼 새로운 감각으로 복원하는 방향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류의 보편적 감각이나 가치임을 확인한다.
이 사례는 문화재 복원이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 시기 중 어떤 시점을 ‘진정성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뚜렷한 사진이나 명확하게 알려진 기억조차 없는 광화문 현판을 원형대로 복원했다면서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독단처럼 느껴진다.
경복궁과 광화문은 모두 임진왜란 때 불타 270년 넘게 폐허였는데, 1865년에 집권한 흥선대원군이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나라의 기풍을 바로잡는 일이라면서 중건에 착수했다. 지금의 광화문 현판은 흥선대원군 중건 당시 무관 임태영이 쓴 것을 원형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원형은 우리에게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과 같은 온전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2010년에 광화문을 제자리에 복원하고 한자 현판을 달았으나, 조선 초의 원형이 아님은 물론이요, 원형으로 삼은 흥선대원군 시절의 현판도 희미한 사진을 디지털 복원한 결과라 근거가 너무 약하다. 2018년에 일본에서 발견한 ‘경복궁 영건일기’의 기록에 따라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정반대 배색인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의 현판을 걸어놓고 있었으니, 복원의 노력은 장하나 이 정도면 사실상 가상 모형이다. 2023년에 검은 바탕에 금색 글씨 현판으로 바꿀 때도 글꼴은 2010년 것을 그대로 썼는데, 과연 어디까지 진정성을 확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렇게 복원하는 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을 것이다. 광화문과 경복궁의 복원은 문화적 자긍심 이전에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다. 일제가 1926년에 광화문을 치워버리고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는데, 이를 해방 뒤에도 1995년까지 정부 청사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우리 문화를 파괴하려던 일본의 만행이 극심했기에 우리는 더더욱 원형 복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결정이 이제는 시대적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원형의 진정성도 문제지만, 한자 현판은 국가 정체성의 혼란과 약화를 부른다.
2. 원형과 현대성, 옛 가치와 새 가치의 공존은 가능하다
복원 다음으로, 문화유산의 관리에서 ‘원형 보존’만이 철칙은 아니다. 문화 강국들에서는 단순한 원형 보존을 넘어서 문화유산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세계 정상급 루브르 박물관은 1682년에 베르사유로 궁전을 옮기기 전까지 왕실 궁전으로 쓰였다. 그 뒤 일부가 박물관으로 사용되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대적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한쪽 공간을 사용하던 재무부를 옮기고 루브르 앞 광장에 21.6미터 높이의 유리 피라미드와 지하 출입구를 설치하여 3개 전시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냈다. 프랑스의 상징물 앞에 웬 이집트유물을 세우냐며 격렬한 반대와 논란이 있었지만, 1989년에 완공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
파리에 있는 팡테옹은 원래 교회였으나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프랑스 위인들의 유해를 안장하는 곳으로 지정되었다. 교회의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고 십자가 등 교회 상징물을 제거한 뒤, 팡테옹 정면에 조국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라는 비문을 새겼다. 그러나 왕정복고에 따라 세속 상징물이 제거되고 십자가가 복원되는 등 엎치락뒤치락하다 공화국의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사원으로 세속화가 확정되었다. 사원 반구지붕의 십자가는 유지하여 종교적 상징과 공화국 상징이 공존한다. 정치적 변화와 시대정신이 문화유산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이질적인 가치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프랑스 문화부가 있는 파리 팔레루아얄은 17세기 건물인데, 1986년에 그 중정에 흑백 줄무늬 돌기둥으로 만든 ‘두 개의 판’이라는 다니엘 뷔렝의 현대 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역사 유적의 기존 구조를 훼손하지 않은 채 현대 미술의 요소를 함께 설치한 것이다. 뷔렝의 건축물은 노출된 미술품이라 심각하게 훼손되어 복원이냐 철거냐 논란이 벌어졌고, 문화부는 예산을 투입해 이를 복원하였다. 이는 보존과 현대성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역사적 가치의 공존이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원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림 4 로마의 카라칼라 대욕장의 오페라 무대와 관객석.
이탈리아도 각 시대의 흔적을 존중하면서 현대적 활용을 더해 관광과 교육을 촉진한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폐허와 보강이 공존한다. 콜로세움은 나무판에 모래를 깔고 검투장으로 사용하던 1층 바닥을 복원하지 않았다. 지하 공간에 예전 무대 아래 있던 복잡한 기계장치와 구조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콜로세움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보다 활용에 방점을 둔 사례이다. 한꺼번에 1,500명이 목욕을 할 수 있었던 로마 시대의 대욕장 카라칼라는, 폐허 가운데 남아 있던 벽면을 음악 공연에 쓰는 반사판으로 삼아 무대를 세우고, 바깥에서 보이는 벽체의 안쪽에는 욕장 유적 대신 계단식 좌석을 설치하여 오페라 극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시적인 전시라면 모를까 덕수궁을 박물관으로 완전히 바꾸자거나 종묘 앞 공터에 무슨 구조물을 세우자고 하면 나 역시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형 보존과 현대적 재해석 및 활용 의 조화에는 어떤 원칙이 있을까? 그 사회의 시대정신일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은 1995년부터 해체했지만, 경성부 건물이었던 옛 서울시청은 2011년부터 서울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둘 다 1926년에 일제가 지은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것은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주장이었다. 한국이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지금은 민족정기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명확히 세우면서 인류 공영에 앞장서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거기에 광화문 한글 현판이 필요하다.
3. ‘국가 정체성’을 광화문에서 보여주어 인류 공영에 앞장서자
한글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기본인데, 국가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은 없다. 우리 국민 누구나 한글이 소중하다, 자랑스럽다는 점에 공감하겠지만, 한글이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명제에 관해 들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를 살펴보자.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내린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확인’ 결정은 이 판결을 어떻게 보느냐와 무관하게 ‘국가의 정체성’에 관해 눈여겨볼 만한 규정을 내놓았다.
여기서 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수도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도 국명을 정하는 것,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영토를 획정하고 국가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 된다고 할 것이다.”(2004, 10. 21. 헌법재판소 판결문 중)
한글은 과학적이고 애민 사상의 결과라 자랑스러운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요소이기에 국가의 정체성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대한 국민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인 것이다. 그 층위가 문화나 도덕이나 법률 수준이 아닌 헌법 사항이며, 그것도 사소한 사항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항이다.
한글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인 헌법 사항이 된 과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첫째, 법적 정통성이다. 130여 년 전 동학농민혁명의 충격으로 시행된 갑오개혁 때 한글은 공식적인 나라글자로 확정되었다. 1948년에는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05년 국어기본법에서는 우리 고유의 글자로 한글을 규정하였다. 둘째, 역사적 정통성이다. 한글은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의 동력이었는데, 우리의 문자 생활이 한자에서 한글로 바뀐 것은 결코 법적 강제나 권력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나 조선어학회와 같은 민간의 노력, 문맹 퇴치 계몽운동과 한글 운동, 민주화 이후 한글 신문을 발행한 국민 주도의 문자혁명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변화였기에 국민 통합의 정서적 원천으로서 한글이 지니는 힘이 다른 무엇보다 단단하게 국가 정체성으로 작용한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다는 일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올바로 밝히는 일이다. 첫째, 우리가 한자 사용 국가라는 국제적 오해를 없애고, 130년 동안 형성된 문자 측면의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국가 상징 공간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는 자주적 문화를 가진 독립 국가였고, 그 대표 상징이 바로 한글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였듯이 우리도 광화문 현판에서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야 할 때이다. 둘째, 우리 민족이 애민 사상, 오늘날의 인본 사상을 중시하고 우러른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의 미래 좌표가 애민 정신의 산물인 한글로 광화문에 표현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역사적 준비이다. 경복궁은 한글이 태어난 곳이니, 태생 글꼴인 훈민정음체로 광화문 현판을 단다면 그 상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나아가, 인류의 문화사적 가치 차원에서 볼 때, 한글은 민주주의를 향한 인류의 노력이라는 측면에서, 인간을 향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인류에게 꼭 알려야 할 존재이다. 인본주의(휴머니즘)의 최고봉이기 때문이다. 탄생 배경이 사람을 위한 마음이었고, 한자의 기득권을 물리치고 공용 문자로 우뚝 선 과정이 또한 그러한 운동의 결과였다.
세계 어디에도 민권 신장 측면에서 문자의 변화가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역사를 지닌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은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을 상징하는 장치로 ‘한글’이라는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민주공화국을 상징하고 민주공화국에 살아있는 숨결을 불어 넣는 문화 장치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애민 정신, 언어 인권 정신으로 빚어진 한글의 이야기는 어떤 민주시민교육보다도 세계인의 뇌리에 깊게 박히는 인류 공영의 담론이 될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보존과 활용, 원형과 현대적 상징성, 옛 가치와 새 가치의 공존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문가들의 원형 보존 노력도 소중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뜻과 미래 활용 측면도 반영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