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번 돈, 또 부동산 블랙홀 이 삼키면 안된다 [뉴스] 지난달 도소득세 중과 시행을 앞두고 일부 급매물이 팔리며 수도권 아파트의 신고가 거래 비중이 10% 미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8일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매물 정보. 2026.6.8. 연합뉴스
23년 만의 호황이 2026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정부의 정책 사령탑 김용범 정책실장마저, 명목성장률 두 자릿수라는 ‘환희’ 뒤에 ‘낯섦과 두려움’이 함께 있다고 했다. 좋은 숫자 앞에서 불안을 먼저 꺼내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그 무거움은 정확하다. 그가 던진 질문은 분명하다. 이 돈을 어디로 흘려보낼 것인가.”
사실 답은 명확하다. 이 횡재를 그대로 두면 또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빨려 들어가 우리 사회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격차를 더 크게 키울 것이다. 성과급과 수출 대금이 풀리는 올 연말과 내년 초를 넘기면 실기하게 된다. 현재 우리는 예고 없이 찾아온 부를, 내일의 성장을 위해 쓸 것인가 아니면 한낱 자산 부풀리기에 그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숫자는 환호하는데 골목은 차갑다
이번 호황은 착시가 아니다. 글로벌 인공지능 투자가 폭발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치솟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은 사상 최대를 갈아치웠다. 코스피는 9000을 넘나들었고,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가 실제로 들어오고 있다. 법인세가 늘어 재정에 숨통이 트였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도 당초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숫자만 보면 박수칠 일이다.
지난 1년간 코스피 주가 추이
그런데 같은 시간, 골목은 차갑다. GDP 디플레이터는 10%를 넘는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에 머물고, 대기업의 이익은 폭증하는데 동네 상가는 공실을 걱정한다. 주가는 사상 최고를 향하는데 폐업을 저울질하는 사람은 줄지 않는다. 김 실장의 표현 그대로,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 게다가 반도체발 증시 상승이 외국인의 차익 실현을 부르면서 원화는 되레 약해졌고, 약한 원화는 수입물가를 밀어올려 그 차가움을 더한다.
임대 문구가 붙어있는 서울 시내 한 상가. 2026. 6. 23 연합뉴스
같은 노동, 갑자기 늘어난 장바구니
이 낯섦의 정체를 숫자로 보면 이렇다. 올 1분기 우리가 실제로 만들어 낸 양(실질 GDP)은 3.8% 늘었다. 그런데 그것을 팔아 살 수 있는 양(실질 국민총소득, GDI)은 13.2% 늘었다. 두 숫자의 차이는 9.4%포인트, 지난 25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기다. 똑같이 일했는데 장바구니가 갑자기 불룩해진 것이다. 반도체 값이 뛰어, 우리가 파는 것의 값이 우리가 사는 것의 값보다 훨씬 비싸진 덕분이다. 경제학은 이를 ‘교역조건의 횡재’라 부른다.
무서운 것은 이 구매력이 이미 확정됐다는 점이다. 다만 시차를 두고 풀릴 뿐이다. 순서는 이렇다. 올여름 상반기 실적이 확정되면 성과급 규모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것이 실제로 지급되고 수출 대금이 본격 들어오는 올 연말과 내년 1분기에 비로소 돈이 움직인다. ‘올해는 정말 다르구나’라는 확신이 퍼지는 순간, 관망하던 자금은 가장 익숙한 곳 — 부동산으로 향한다. 그러니 제도는 그 전에, 늦어도 올 하반기 안에 설계와 입법을 끝내 두어야 한다. 둑은 홍수가 난 다음에 쌓는 것이 아니다.
23년 만의 낯선 풍요, 그래서 풍요 다루는 법을 잊었나?
우리 명목 성장률이 마지막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02년, 온 나라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월드컵의 해였다. 1980년대엔 평균 17.9%, 1990년대엔 13.8%였다. 그 시절을 산 세대도 기억이 흐릿하고, 청년들에게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세계다. 우리는 어느새 4~5%의 낮은 명목 성장에 몸을 맞추는 법을 배웠다. 금리도 임금도 부채도 그 리듬에 맞춰졌다.
그런데 더 낯선 것은 호황의 성격이다. 그 시절의 고성장이 국내 물가가 함께 끓어오르는 종류였다면, 지금의 성장은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과 기업 수익성이 만든 결과다. 그래서 이번 호황은 더 진짜인데, 더 낯설다. 풍요가 왔는데, 우리는 정작 풍요를 다루는 법을 잊고 있었다. 가난이 사람을 힘들게 하듯, 풍요 역시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부는 어떻게 쌓여왔나
우리 사회의 부는 점점 ‘생산’보다 ‘자산 가격’에 기댄 채로 쌓여 왔다. 국민 전체의 가계부라 할 국민대차대조표가 그것을 또렷이 보여준다. 가계 자산의 약 4분의 3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순자산 상위 10%가 전체의 76%를 쥐고 있고, 상위 20%와 하위 20%의 자산 격차는 무려 250배에 이른다.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이 훨씬 가파르다.
임금과 자산의 경주는 이미 승부가 났다. 지난 5년 임금은 32.6%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3.5배가 됐다. 성실히 일해 번 돈으로는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여기에 이번 횡재가 얹힌다. 손을 놓고 있으면, 그 과실의 대부분은 이미 자산을 가진 쪽으로 흘러가 격차를 한 단계 더 벌릴 것이다. 평균은 좋아지는데, 중간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강남 3구의 한 아파트 단지.
기본사회라는 그릇으로 흐르는 돈을 받아야
우리는 이런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안다. 결국 부동산이다. 김 실장도 보유세와 양도세의 정상화를 말하면서, 현금을 가진 사람이 움직이면 어지간한 규제로는 역부족”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인정했다. 옳은 진단이다. 이번에 움직일 사람들은 빚을 내야 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미 현금을 쥔 이들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서면, 웬만한 규제는 둑을 넘는 물을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규제의 ‘다음 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모두의 몫으로 되돌리는 그릇이 필요하다, 기본사회다. 이것은 한가한 이상이 아니라 이미 작동하는 현실이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76년, 석유라는 횡재가 한 세대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영구기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1982년부터 지금까지, 그 기금의 수익을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모든 주민에게 해마다 똑같이 배당해 왔다. 노르웨이는 북해 석유로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를 쌓아 미래 세대의 몫으로 묶어 두었다. 횡재를 사적 불로소득으로 흩어 버리는 대신, 공동의 자산으로 붙들어 모두에게 돌려준 것이다.
횡재가 왔다. 반도체가 벌어온 국부, 그리고 그 돈이 흘러들면 또다시 부풀어 오를 토지의 불로소득. 이것을 환수해 모두의 몫으로 되돌리는 그릇이 바로 ‘기본사회’다.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해 기본소득으로 환류하고, 한 시기의 횡재이익을 사회가 함께 나누어 청년의 자산 형성과 돌봄, 미래 산업으로 잇는 것. 이것은 일반 증세가 아니다. 노동으로 번 돈과 중산층의 월급에 손대는 일이 아니라, 노동 없이 생긴 이득과 한 철의 횡재에 한정해 환수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재원은 ‘미래를 사는 데’ 써야 한다. 인구가 줄고 돌봄 수요가 폭증하는 시대에 돌봄은 비용이 아니라 사회의 기반 시설이다. 반도체가 벌어온 돈을 미래에 투자하면, 이번 호황은 우리가 오래 갇혀 있던 저성장 터널의 출구가 될 수 있다.
분배는 성장의 적이 아니다
누군가는 분배가 성장을 해친다고 말할 것이다. 위가 넘치면 아래로 흐른다는 ‘낙수효과’의 오래된 약속을 다시 꺼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이 증명한 것은 그 반대다. 위는 넘쳐도 좀처럼 아래로 흐르지 않았고, 과실은 위에 고인 채로 머물렀다. 성장의 열매가 소수와 부동산으로만 흘러 중간이 무너지면, 경제는 좋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힘들까?”라는 물음이 사회 곳곳에 쌓인다. 그 물음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가 된다. 분배는 호황의 적이 아니라, 호황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건이다.
다만 우리는 정직해야 한다. 교역조건의 횡재는 반도체 값에 달려 있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 영원한 호황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햇볕이 들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 좋은 시절에 미래의 토대를 놓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답해야 한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 돈을 어디로 흘려보낼 것인가. 답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환수의 장치다. 이 횡재를 모두의 몫으로 되돌릴 구체적 수단 — 토지 불로소득과 한철의 초과이익에 한정한 환수와 환류를, 노동소득에 대한 일반 증세와 분명히 구분해 설계해야 한다. 둘째, ‘언제’ 하느냐다. 분수령은 성과급이 지급되고 수출 대금이 유입되는 올 연말과 내년 1분기다. 그 전에 — 늦어도 올 하반기 정기국회 안에 — 환수·환류의 설계와 입법을 끝내야 한다. 추상적 의지가 아니라 날짜가 박힌 ‘시간표’가 필요하다. 둑은 그 전에 쌓아야 한다. 셋째, 그 재원을 어디에 이을 것이냐다. 청년의 자산 형성과 돌봄, 미래 산업으로 이어야 한다. 환희를 위로만 모이게 둘 것인가, 아니면 모두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송종운 평화와먹고사는문제 연구소장
김 실장은 ‘역대급 호황은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옮길 실행력을 요구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 상상력에는 이름이, 그 실행력에는 시간표가 필요하다. 나는 그 이름이 ‘기본사회’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름보다 급한 것은 시점이다. 둑은 지금 쌓아야 한다.
20여 년 만에 찾아온 이 기록적인 번영 앞에서, 우리는 오래 마주하지 않았던 선택을 다시 요구받고 있다. 숫자는 방향을 보여줄 뿐, 선택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미룰 수 없다. 반도체가 번 돈을, 또 부동산이 삼키게 놔둘 것인가. 지금이 아니면, 늦는다.송종운 평화와먹고사는문제 연구소장 sjw@mind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