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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할머니가 무솔리니에 총 쏴 역사를 바꿀 뻔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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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깁슨이 1926년 4월 7일 무솔리니를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을 때 그녀의 나이는 쉰 살이었다.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첫 눈에 봐도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인다. 이탈리아 내무부 자료사진 BBC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7일은 영국 웨일스 출신 바이올렛 깁슨이 이탈리아 로마의 군중 속에서 튀어나와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얼굴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긴 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무솔리니가 권력을 틀어쥔 지 3년 밖에 안 됐을 때였다. 둘의 거리는 불과 몇 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무솔리니가 고개를 휙 돌리는 바람에 총알은 그의 코를 다치게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번에는 불발됐다. 파시즘과 인류 역사를 바꿀 뻔한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고 영국 BBC가 얼마 전 짚었다.  일 두체 (Il Duce, 영도자), 총통 , 강철의 심장 , 완고한 방어자 , 대원수 등으로 불린 베니토 아밀카레 안드레아 무솔리니는 1883년 7월 29일 이탈리아 북중부 프레다피오에서 태어나 파시즘이란 정치 사조를 창시했다. 그는 1922년부터 1943년까지 총통으로 이탈리아를 이끌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무솔리니는 아돌프 히틀러가 따라 하려 했던 멘토였다. 하지만 그도 제자인 히틀러의 영향을 받아 반유대인 법안을 이탈리아에 도입하기도 했다. 1940년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이탈리아의 군사적 약점을 드러냈고, 그 뒤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발칸 반도에서 연이어 패퇴했다.  1943년 7월,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했다.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정부의 옛 동지들에게 쫓겨나 투옥됐다. 그 해 9월에 이탈리아는 연합국과 휴전을 체결했다. 독일군은 이탈리아 점령을 시작했고, 무솔리니는 독일 특공대에 의해 구출됐다. 그는 새 정부의 지도자로 임명됐으나 실권이 거의 없었다. 연합군이 이탈리아를 통해 북진하자 무솔리니는 스위스로 달아나려고 트럭 짐칸에 정부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몸을 숨겼다. 하지만 코모 호수 근처에서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에게 발각돼 1945년 4월 27일 총살당했다. 이틀 뒤 아침 밀라노의 한 광장 근처 주유소 앞에 둘의 시신이 버려졌는데 성난 군중이 주유소 앞 철제 틀에 둘의 시신을 거꾸로 매달았고 그날 오후 미군들이 시청 영안실로 옮겼다.  그런데 그는 생전에 무려 네 차례나 암살 시도를 겪었다. 바이올렛 깁슨은 그를 암살하려는 시도 가운데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경우였다.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달려들어 그녀를 치도곤낼 것을 우려한 경찰이 급히 그녀를 체포해 피신시켰다. 조카손녀 필리파 깁슨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어쩌면 그녀를 죽였을 것 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렛은 이탈리아에서 수감된 후 영국으로 추방돼 노샘프턴의 정신병원에 수감돼 1956년 숨졌다.   무솔리니의 피격 직후 모습. 게티 이미지  웨일스 중부 세레디기온 랭그라노그 출신인 필리파는 큰할머니(종조모, 從祖母)가 매우 부유하고 정치적인 가문 출신이라고 말했다. 바이올렛의 아버지는 앵글로-아일랜드 귀족이자 당시 아일랜드의 최고 법률 직위인 대법관(Lord Chancellor)인 애쉬본 남작이었다. 바이올렛은 그 나이와 지위에 전형적인 집안 배경 을 물려받았지만, 가족에 반항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필리파는 말했다. BBC 라디오 킴루(Cymru, 웨일스)의 팟캐스트  Dros Ginio 에서 그녀는 가족들은 전혀 만족하지 않았지만, 바이올렛에 대해서는 좀 더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부분적으로 정신건강 문제는 있었지만 동시에 매우 지적인 여성이기도 했다 고 말했다. 바이올렛은 결국 이탈리아로 가서 언어를 배우고 선한 일을 했다 고 증조카는 말했다. 그 시절은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던 시대였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던 시기가 있었다. 그녀는 약혼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정신적 붕괴를 겪었고, 흉기로 공격해 수감되기도 했으며, 극단을 선택하기도 했다고 필리파는 전했다. 그런데 사회주의 지도자 자코모 마테오티가 파시스트 폭도들에게 살해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이 그녀를 무솔리니 암살로 내몬 이유 중 하나였다. 필리파는 그러니까, 부분적으로는 정치적 동기이자 부분적으로는 신앙적 동기였다. 중요한 대의를 위해 순교한 것 이라고 말했다. 필리파는 이모할머니는 그 때 쉰 살이었지만 훨씬 나이 들어 보였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총을 꺼내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녀는 또 총격 후 영국 정부와 바이올렛의 가족이 무솔리니에게 편지를 보내 감사 인사와 생존을 축하하며 바이올렛의 정신적 불안정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무솔리니 역시 그녀의 정신적 불안정에 초점을 맞췄는데 정치적 반대자가 그렇게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생명을 노린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모두 살아남았다. 이 모든 것이 (그가 무적이라는 인식에 영향을 주며) 그가 무적이고, 신의 보호를 받으며, 임무가 있고 그게 그가 여기 있는 이유라는 인식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나는 (암살 시도가) 역효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바이올렛 깁슨 명판. PA미디어 자료사진 바이올렛의 삶은 노래, 책, 연극, 라디오 다큐멘터리, 그리고 2021년 영화 바이올렛 깁슨: 무솔리니를 쏜 아일랜드 여성 에 영감을 제공했다. 그 다음해에는 더블린에서 바이올렛을 기리는 명판이 공개됐다.  필리파는 큰할머니를 존경한다면서도 정치적 폭력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폭력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해법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그런 일을 하게 된 이유가 그녀의 깊은 신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용기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스스로를 바치려는 의지를 존경하지만, 어떤 정치적 암살 시도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조카손주 필리파 깁슨은 이모할머니를 존경하긴 하지만 정치적 폭력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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