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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장 과 민주주의 연구한 위르겐 하버마스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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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지난 2013년 8월 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철학 강연을 하던 중 취재진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2013. 8. 6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공론장 (Öffentlichkeit, Public sphere) 개념을 설파했던 독일 사회 철학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가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독일 dpa 통신 등이 전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2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하버마스는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송두율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가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자 서울지법에 그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에도 앞장선 일로도 기억된다. 독일 출판사 수어캄프는 하버마스가 14일(현지시간)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주의 슈타른베르크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하버마스가 있다 고 일컬어질 만큼 고인은 현대 서구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지식인으로 평가된다. dpa는 그가 공론장 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민주 사회를 조직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담론의 형태를 탐구하면서 전후 독일의 지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그는 괴팅겐 대학(1949~50년), 취리히 대학(1950~51년), 본 대학(1951~54년) 등에서 철학, 심리학, 독일 문학, 경제학 등을 두루 공부했다. 이후 유럽 진보 운동의 사상적 뿌리 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요람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에서 본격적인 학문의 길을 걸었다. 스승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그는 1960년대에 이미 파시즘 전체주의는 좌우 진영 모두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1960년대 말 격렬했던 독일 학생운동권과 갈등 때문에 그는 부르주아 반동 지식인으로 몰려 상아탑을 떠나 연구와 저작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탄생한 저작이 1981년 출간된 의사소통 행위이론 이다. 그의 의사소통 합리성 , 생활세계 등 개념은 사회철학을 넘어서 20세기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론장의 구조변동 은 현대 사회학과 철학 분야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사실성과 타당성 (1992)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현실 정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목소리 중 하나였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라고 고인을 기렸다. 하버마스의 전기 철학자 (The Philosopher)의 저자 필립 펠쉬는 그를 전후 독일 사회를 각성시킨 대중 교육자 로 평가하기도 했다. 1980년대 독일 일부 역사학자들이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가 유럽의 전쟁과 폭력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논란이 일자, 하버마스는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과거사 청산 (Vergangenheitsbewaltigung)을 독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일 사회는 이 논쟁을 거쳐 과거의 과오를 끊임없이 참회하고, 사죄하는 참회 문화 를 내재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버마스는 독일 사회에 최근 나치에 동조적인 극우 정권의 세력이 급부상하며 참회 문화가 도전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2001년 10월 14일(현지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서적상 및 출판업자 협회가 시상하는 평화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며 손동작을 하고 있다. 2001. 10. 14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그는 또 유럽의 통합이야말로 독일 민족주의의 부활을 막는 안전장치로 보고 유럽의 결속과 통합을 강하게 지지하는 유럽주의자 이기도 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공고히 하기 위해 EU 전체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2007년 제안했다. EU가 직접 선거로 EU 대통령을 선출하고 공동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외무장관직을 설치하는 등의 문제를 EU 국민 전체의 투표에 부치자는 것이었다. 하버마스는 2013년 한상진 서울대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지식정보 혁명과 함께 새로운 미디어가 이끄는 역동적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며 역사에 대한 자기 성찰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 진단하기도 했다. AP 통신은 하버마스가 태어날 때부터 윗입술이 갈라져 있는 구순구개열 장애를 갖고 태어나 어린 시절 두 차례나 교정 수술을 받아야 했다며 이런 경험이 언어와 의사소통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소개했다. ARD는 하버마스는 언어는 모든 것의 토대 라는 확고한 사상을 바탕으로 건전한 토론 문화가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신념을 정립한 학자 라고 평가했다. 1929년 6월 18일 뒤셀도르프에서 출생한 고인의 부친은 쾰른 상공회의소 전무이사를 지냈다. 고인은 아버지를 나치 협력자로 여겼다. 그는 히틀러 청소년단의 한 갈래인 융볼크(Yungvolk)의 지도자인 융볼크퓌러(Yungvolkfuhrer)였다. 하지만 나치는 장애인인 그를 열성분자로 분류했다. 해서 히틀러 유겐트에 정식 입단하지 못해 유겐트 응급처치반 하급요원이 됐다. 그로선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굼머스바흐에 있는 신학교 책임자였던 관계로 어릴 적부터 개신교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럼에도 종교의 세속화를 지지하던 그가 말년에는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은 흥미로운 변화로 꼽힌다고 로이터통신은 소개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신중한 군사 지원을 지지하고, 러시아와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해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독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하버마스를 독일 철학의 수치 라며 비판했다. 문학과 영화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 본 대학 동창생 우테 베셀회프트와 1955년 결혼해 지난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등질 때까지 70년을 해로한 그는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이 가운데 역사학자로 괴팅겐 교수였던 막내딸 레베카 하버마스는 202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한편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는 현재 포르투갈에 머무르고 있으며 경향신문에 월 한 차례 정도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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