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 10주기, 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영복 선생. 사진=성공회대학교
오늘 1월 15일은 신영복 선생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불린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더 거칠어지고, 말이 더 사나워질수록, 우리는 신영복이라는 이름을 다시 부르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추모나 향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요청에 가깝다. 그의 사유는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혼란한 시대를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윤리적 좌표이기 때문이다.
신영복은 체계적인 철학서를 남긴 사상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삶 전체는 하나의 일관된 철학으로 읽힌다. 그것은 개념의 체계라기보다 삶의 태도로 구현된 사유였다. 그는 인간을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사회를 관념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언제나 인간이 처한 조건, 관계의 맥락, 권력의 작동 방식 속에서 사유했다. 그의 질문은 단순했다. 인간은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도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평생 동안 그의 사유를 이끌었다.
그의 사유가 형성된 조건을 빼놓고 신영복을 말할 수는 없다.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구속되어 20여 년을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한 개인의 삶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다. 감옥은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시간은 정지되고, 관계는 단절되며, 인간은 번호로 환원된다. 그곳에서 인간은 쉽게 체제의 적이나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신영복은 그 공간에서조차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을 분노의 언어로 기록하지 않았고, 복수의 언어로 해석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그곳에서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화되는지를 관찰했고, 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지켜내기 위한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고발문이 아니라 성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폭력의 구조를 폭로하면서도, 그 구조 속에 놓인 인간을 단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어떻게 폭력의 논리에 포획되는지를 묻는다. 이것은 도덕적 우월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태도였다. 그는 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인간을 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급진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신영복 사유의 중심에는 언제나 관계가 있다. 그는 인간을 고립된 개인으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나’보다 ‘우리’를 향해 있었고, 경쟁보다 연대를, 승리보다 공존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더불어 숲’은 단순한 공동체의 이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 방식이었다. 숲은 하나의 나무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무는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토양과 물, 햇빛과 바람, 보이지 않는 뿌리들의 관계 속에서만 살아간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신영복 선생. 더불어숲 페이스북
오늘날 사회는 인간을 철저히 개인화한다. 성공은 개인의 능력으로 환원되고, 실패는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이런 조건 속에서 관계는 비용이 되고, 연대는 비효율로 취급된다. 신영복의 관계론은 이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과연 혼자 설 수 있는 존재인가. 개인의 성취와 실패는 정말 개인만의 문제인가. 그의 사유는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유가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신영복이 평생 경계한 것은 권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 정치 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경계한 것은 인간을 단순화하고, 선과 악으로 나누고, 적과 동지를 가르는 모든 형태의 권력이었다. 권력은 언제나 단정적인 언어를 요구한다. 옳고 그름을 빠르게 가르고,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구호로 압축한다. 신영복은 이런 언어를 경계했다. 그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고, 함부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남겼다.
그가 말한 ‘낮음’은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윤리적 전략에 가깝다. 그는 위로 올라가 권력을 쥐기보다, 아래로 내려가 인간을 지키는 길을 택했다. 이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권력의 논리에 편입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증오로 싸우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증오의 질서 안으로 들어간다. 신영복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분노를 말하면서도 분노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신영복 선생의 붓글씨 처음처럼
처음처럼 이라는 말은 그의 사유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흔히 오해되듯 순진한 초심의 강조가 아니다. 신영복이 말한 ‘처음’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그것은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며, 자신이 옳을 수 있다는 확신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긴장 상태다. 그는 인간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할 때라고 보았다. 확신은 쉽게 폭력이 된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대의라는 명분으로, 인간은 타인을 배제하고 제거한다.
오늘날 사회는 확신의 경쟁장에 가깝다. 모두가 옳다고 말하고, 상대를 무지하거나 악하다고 규정한다.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타협은 비겁함으로 취급된다. 이런 시대에 ‘처음처럼’은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윤리이자, 동시에 가장 절실한 윤리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신영복의 사유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우리에게 편안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의 서체 또한 그의 철학을 응축한 형식이다. 그의 글씨는 빠르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며,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사유의 리듬과 삶의 태도가 배어 있다. 그의 글씨는 읽는 이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멈추게 하고, 돌아보게 한다. 글씨가 사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주었다.
신영복은 스승으로서도 독특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앞에서 가르치기보다 옆에서 함께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질문을 남겼고, 답을 주기보다 생각할 시간을 열어주었다. 그는 자신의 사유를 절대화하지 않았고, 제자들을 자신의 그림자로 만들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언어로 생각하고, 자기 자리에서 판단하도록 했다. 이것은 교육에 대한 철학적 태도이기도 하다. 교육은 복제가 아니라, 사유의 탄생이라는 인식이다.
신영복 선생이 떠난 지 10년, 사회는 더 빠르고 더 날카로워졌다. 혐오는 언어가 되었고, 배제는 정책이 되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다시 신영복을 읽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해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함부로 해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묻는다. 지금 우리의 말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를 끊고 있는가. 지금 우리의 정의는 인간을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제거하고 있는가.
감옥에서 계수(동생의 부인)님께 보낸 편지
신영복이 남긴 것은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다. 이론이 아니라 방향이며, 결론이 아니라 기준이다. 그는 우리에게 완성된 길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윤리적 나침반을 남겼다. 10주기를 맞아 우리는 다시 그 기준 앞에 선다. 처음처럼, 낮게, 더불어. 신영복 선생은 떠났지만, 그의 질문은 여전히 우리를 현재로 불러낸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사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