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주의·강경 시온주의, 선민의식의 3각 동맹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힘은 돈이라고들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거액 후원자와 슈퍼팩(Super PAC), 로비 조직과 외곽 네트워크는 후보를 키우고 의제를 만들며 선거의 지형을 설계합니다. 칼럼 1에서 살펴보았듯, 오늘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깊은 균열 가운데 하나는 정치가 시민의 언어보다 자본의 언어에 더 민감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오늘의 미국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돈은 광고를 살 수는 있어도 신념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고, 패배한 선거 결과를 부정하게 만들며, 자신에게 불리한 제도와 규범을 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힘은 다른 곳에서 나옵니다. 돈이 판을 만든다면, 군중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과 감정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감각, 곧 정체성과 선민의식(選民意識, Chosenness)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권력은 단순한 이해관계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특별한 공동체라는 믿음,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확신, 문명을 이끌 사명을 가졌다는 자의식은 언제나 강력한 정치 에너지였습니다. 때로 그것은 공동체의 결속과 책임윤리로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순간, 그 믿음은 타인에 대한 배제와 지배,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했습니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는 집단은 타인을 동등한 시민으로 보기보다 교화의 대상, 통제의 대상, 제거의 대상으로 보기 쉽습니다.오늘 미국 보수정치의 핵심부에서는 이 오래된 정치 문법이 다시 강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세 흐름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그것들이 점점 하나의 권력 블록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3일 대선 결과에 불복해 소송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지지자들이 1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인 뒤 마가(MAGA) 행진을 벌이고 있다. 2020.11.15. [UPI= 연합뉴스]
첫째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입니다. 이 흐름은 트럼프 1기에서 백인 중하층의 상실감, 반이민 정서, 반엘리트 분노를 결집시킨 대중 포퓰리즘으로 등장했습니다. 빼앗긴 미국을 되찾자”는 구호는 단순한 선거 문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화 이후 제조업 공동화, 지역 공동체 해체, 문화적 불안, 사회적 지위 하락에 대한 집단 감정을 정치적으로 조직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에 접어들며 MAGA는 선거 캠페인을 넘어 국가 재구성 프로젝트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강한 국경, 행정권력 집중, 반다원주의 문화전쟁, 동맹 재편, 대외 강경주의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습니다(Reuters, 2026.3.18 / The New York Times, 2026.3.22).
둘째는 정치화된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입니다. 미국 보수 개신교의 일부는 오래전부터 미국을 신이 특별한 사명을 부여한 나라로 이해해 왔습니다. 청교도 전통,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종말론적 역사관이 결합된 흐름입니다. 이들에게 미국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도덕 질서의 붕괴입니다. 낙태 반대, 성소수자 권리 반대, 공교육 장악, 사법부 보수화 전략은 단순한 가치 논쟁이 아니라 국가의 영혼을 되찾는 전쟁으로 제시됩니다(The Washington Post, 2025.11.7).
셋째는 강경 시온주의(Hardline Zionism) 세력입니다. 역사적 시온주의가 유대인의 안전한 국가 건설이라는 근대 민족주의 운동에서 출발했다면, 오늘의 강경 시온주의는 다른 성격을 띱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 영구적 안보 위협 담론, 성서적 영토 서사가 결합하여 군사적 우위와 예외적 국가권력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가자지구와 레바논, 이란을 둘러싼 최근 군사 충돌은 이러한 흐름이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BBC, 2026.4.11 / Financial Times, 2026.4.14).
이 세 흐름은 출발점이 다릅니다. 하나는 미국 대중정치의 산물이고, 하나는 종교를 기반으로 성장한 정치세력이며, 하나는 중동의 국가주의 전략과 연결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에서는 놀랄 만큼 자주 같은 편에 섭니다. 트럼프 진영은 친이스라엘 강경노선을 적극 지지하고,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이를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며, 공화당 강경파와 신흥 빅테크 권력은 이 결합을 새로운 지배연합으로 활용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과 미국 대사관 이전은 그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Reuters, 2017.12.6 / The New York Times, 2017.12.6). 왜, 어떻게 이런 결합이 가능한가. 이번 글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MAGA, 정치화된 복음주의, 강경 시온주의는 왜 서로 손을 잡는가. 이들의 연합은 미국 민주주의와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왜 오늘날 돈의 정치 위에 다시 신념의 정치가 세워지고 있는가.
■ 세 흐름을 묶는 세 가지 의식 구조
막대한 선거자금이 드는 미국 정치제도가 이 결합의 물질적 기반이라면, 더 깊은 곳에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된 정신 구조가 존재합니다. 저는 그것을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 우리는 특별한 공동체라는 선민의식(選民意識, Chosenness)입니다. 여기서 선민의식은 특정 종교의 교리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만이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며, 역사의 방향을 결정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정치적 자의식까지 포함합니다. 미국은 세계를 이끌 사명을 가진 나라이고, 참된 신앙인은 자신들이며, 선택된 민족은 자신들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의식은 늘 스스로를 보편의 대표자로 상상합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는 정치신학에서 주권자는 예외를 결정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예외의 주체로 여기는 순간, 공동체는 법 위에 서려 합니다.
가자지구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와 피난민 장면. 피해의 기억이 또 다른 피해를 낳는 역설”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우리는 공격받고 있다는 피해자 정체성 정치(victimhood politics)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 피해의 절대 규모가 아니라, 피해 감정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정치화되느냐입니다. ‘피해자 정체성 정치’란 자신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스스로를 박해받는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 피해 경험과 상처의식을 정치적 정당성, 집단 결집, 권력 획득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개념은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 여성해방운동, 성소수자 권리운동, 장애인 권리운동 등 차별받아 온 집단의 권리 회복 요구와 함께 등장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후 미국 사회학자 브래들리 캠벨과 제이슨 매닝은 The Rise of Victimhood Culture에서 현대 사회에서 상처의 호소와 피해 주장 자체가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의 자원이 되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분석했습니다(Quillette, 2018.4.3 / Psychology Today, 2019.6.18). 쉽게 말해, 누가 더 억울한가를 둘러싼 경쟁이 공론장을 지배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피해자 정체성 정치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식민지 피해자들의 독립운동, 인종차별 피해자들의 시민권 운동, 학살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의 제도 개혁 요구처럼 피해의 기억을 보편적 권리와 민주주의로 확장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반대로 집단적 굴욕감과 피해의식을 증오, 배제, 응징의 정치로 조직할 때 그것은 권위주의와 파시즘의 연료가 됩니다. MAGA의 언어에서 미국 경제 엘리트의 실패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중국이 빼앗아 갔고, 이민자가 침범했으며, 자유주의 엘리트가 전통을 파괴했다는 서사가 강조됩니다. 복음주의 강경파는 다수 종교임에도 박해받는 소수처럼 말하고, 군사강국의 시민들조차 늘 포위된 공동체처럼 행동합니다(Reuters, 2024.10.31 / The Atlantic, 2024.9.12). 사람들은 우월감보다 억울함에 더 빠르게 반응합니다.
셋째, 그러므로 강한 조치와 예외적 권력이 정당하다는 결론입니다. 공동체가 특별하고 동시에 위협받고 있다면, 평시의 법과 절차는 느리고 무능한 것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강한 지도자, 행정권력 집중, 비상조치, 국경 봉쇄, 사법 견제 무력화입니다. 외부로는 전쟁의 상시화, 내부로는 통제의 일상화가 뒤따릅니다(Reuters, 2026.3.18 / The New York Times, 2026.3.22).
이 세 요소가 결합하면 민주주의는 빠르게 흔들립니다. 특별하다는 믿음은 평등의 원리를 약화시키고, 피해자 의식은 타협보다 적대를 강화하며, 예외주의는 법과 제도의 견제를 우회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선거 패배는 쉽게 부정선거 음모론이 되고, 국제규범은 생존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취급되며, 소수자 권리는 공동체 파괴의 상징으로 공격받습니다(Reuters, 2021.1.7 / BBC, 2021.1.7). 돈이 판을 만든다면, 선민의식은 군중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둘이 만날 때 권력은 시민의 권력이 아니라 시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됩니다.
■ 정체성 정치는 어떻게 해방의 언어에서 지배의 언어가 되는가
오늘 세계정치에서 가장 자주 호출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자주 피상적으로 소비됩니다. 누군가는 사회 분열의 원인으로만 말하고, 또 누군가는 정의로운 저항의 언어로만 찬양합니다. 둘 다 절반의 진실입니다. 정체성 정치의 출발은 민주주의의 미완성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근대 국가는 법 앞의 평등을 선언했지만, 현실의 시민은 결코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흑인은 제도적 차별을 겪었고, 여성은 정치적 권리에서 배제되었으며, 성소수자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습니다. 노동자 계급은 경제적 약자로 주변화되었고, 식민지 경험을 가진 민족들은 보편적 인권의 이름 아래 타자의 지배를 견뎌야 했습니다. 추상적 시민이라는 말만으로는 구체적 고통이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성소수자로서, 식민지 피해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보이지 않던 고통을 공적 의제로 만든 것, 그것이 정체성 정치의 역사적 의미였습니다.
1977년 콤바히 리버 콜렉티브(Combahee River Collective)는 인종, 성별, 계급의 억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선언하며 해방정치의 새로운 언어를 제시했습니다(The Guardian, 2020.10.9). 이후 정체성 정치는 차별받는 집단의 대표성과 권리 회복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되었습니다.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Iris Marion Young, 1949~2006)은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동일한 법적 권리만으로는 구조적 억압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형식적 평등만으로는 실질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으며, 억압받는 집단의 경험이 민주주의 안에서 대표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Foreign Policy, 2021.7.14).
문제는 모든 해방의 언어가 그렇듯, 정체성 정치 역시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억압의 경험을 말하던 언어가 어느 순간 특권의 언어가 되고, 연대의 언어가 배제의 언어가 되며, 정의의 요구가 면책의 요구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차별의 시정을 요구하던 정치가 어느 순간 자기 집단의 특수한 권리만을 절대화하는 정치로 변할 때, 해방의 언어는 쉽게 지배의 언어로 뒤집힙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등장하는 것이 피해자 정체성 정치(victimhood politics)입니다. 이는 단순히 피해 경험을 말하는 정치가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를 현재 권력의 근거로 사용하는 정치입니다. 우리는 피해자였으므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고, 우리는 상처 입었으므로 강하게 행동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를 비판하는 것은 다시 우리를 공격하는 일이라는 논리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최근 유럽 정치학계에서는 이를 ‘피해의 경쟁’(competitive victimhood), ‘피해의 위계’(hierarchy of victimhood)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누가 더 큰 피해자인가를 겨루는 순간, 정치는 문제 해결보다 도덕적 우위 경쟁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실제 불평등을 줄이는 정책보다 상처의 서사를 독점하는 일이 더 큰 힘을 갖게 됩니다(Financial Times, 2024.11.18). 그러나 다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피해의 기억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식민지 피해자들의 독립운동, 인종차별 피해자들의 시민권 운동, 학살 피해자들의 진상규명 운동, 성폭력 피해자들의 제도 개혁 요구, 일본 제국주의의 성착취 범죄를 기억하기 위한 소녀상 운동 등은 피해의 기억을 보편적 정의와 인권의 언어로 승화시킨 사례들입니다. 이러한 운동은 과거의 상처를 복수의 논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의 확장으로 연결시켰습니다.
반대로 집단적 굴욕감과 피해의식을 적대적 공격성으로 전환하여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 배제, 응징의 정치로 조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피해의식은 더 이상 치유와 정의의 언어가 아니라 권위주의와 폭력의 연료가 됩니다. 한나 아렌트, 테오도어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움베르토 에코등은 상처받은 대중심리가 권위주의 정치세력에 의해 조직될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붕괴할 수 있는지를 거듭 경고했습니다(The Atlantic, 2024.8.2 / The Guardian, 2025.2.6). 이 방식은 현대 정치에서 놀랄 만큼 강력합니다. 사람들은 강자의 언어보다 피해자의 언어에 더 쉽게 마음을 엽니다. 그래서 많은 권력집단은 스스로를 지배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세계 최강국 시민에게도 당신은 빼앗겼다”고 말하고, 다수 종교 신자에게도 당신은 박해받고 있다”고 말하며, 군사강국 시민에게도 당신은 포위당했다”고 말합니다. 이때 정체성 정치는 더 이상 해방의 정치가 아닙니다. 현실의 불평등 구조를 바꾸는 대신 집단 감정을 동원해 타자를 적으로 만드는 정치가 됩니다. 경제적 불안을 이민자의 탓으로 돌리고, 사회 변화의 불편함을 소수자의 탓으로 돌리며, 국제정치의 갈등을 절대적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합니다. 복잡한 현실은 사라지고 오직 우리와 그들만 남습니다. 선민의식은 이 과정에서 자주 결합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공동체이며 동시에 위협받는 공동체라는 이중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특별하다는 믿음은 우월감을 만들고, 피해자라는 감정은 공격성을 정당화합니다. 이 둘이 결합하면 민주주의는 빠르게 흔들립니다. 평등은 공동체의 순수성으로 대체되고, 법치는 생존 논리 앞에서 밀려나며, 타협은 배신으로 규정됩니다.
오늘 미국에서 MAGA, 정치화된 복음주의, 강경 시온주의가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이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역사에서 출발했지만, 자신들이 특별한 공동체이며 동시에 위협받는 공동체라는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오늘 극우 정치는 바로 이 감정을 가장 정교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공항 터미널 내부에서 제복을 입은 ICE 또는 연방 요원들이 배치된 장면. 여행객들이 이동하는 일상적 공간 한가운데, 무장한 국가권력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 피해자는 어떻게 지배자가 되는가
— 현대 극우 정치의 가장 강력한 기술
피해자 정체성 정치는 이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 정치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중동에서 우리는 같은 구조가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이미 충분한 권력과 자원을 가진 집단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그 상처의 서사를 통해 더 큰 권력을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빼앗겼다”, 우리는 박해받고 있다”, 우리는 포위당했다”는 말은 사실보다 먼저 감정을 움직이고, 현실보다 더 큰 정치적 힘을 발휘합니다.
가장 선명한 사례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입니다. 이 흐름의 핵심 서사는 단순합니다. 미국은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일자리를 빼앗았고, 이민자가 국경을 무너뜨렸으며, 자유주의 엘리트가 전통문화를 파괴했고, 선거제도가 승리를 도둑맞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보다 상실감의 조직입니다. 러스트벨트의 쇠퇴, 지역 공동체 해체, 문화적 불안을 하나의 피해 서사로 묶는 순간 분노는 정치 동원이 됩니다(Reuters, 2024.10.31 / AP, 2024.11.2).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의회 난입 사태는 선거 패배가 어떻게 도둑맞은 승리”라는 피해 서사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BBC, 2021.1.7 / Reuters, 2021.1.7).
정치화된 복음주의도 비슷한 구조를 보입니다. 미국 보수 개신교의 일부는 오랫동안 사회·문화적 다수의 영향력을 누려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을 박해받는 공동체로 묘사합니다. 성소수자 권리 확대, 낙태권 논쟁, 종교와 국가의 분리 원칙, 공교육의 세속화는 곧바로 기독교 탄압”으로 번역됩니다. 실제 박해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지위 변화에 대한 감정입니다. 오랫동안 우위를 누려온 집단이 경쟁 사회의 변화를 곧 박해로 해석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타협 질서는 적으로 규정됩니다(The Washington Post, 2024.6.25 / The Atlantic, 2024.9.12).
미국 내부에서 이 논리가 민족주의와 종교정치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국제정치에서는 안보와 역사 기억의 형태로 등장합니다. 강경 시온주의는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대 민족이 겪은 홀로코스트는 인류사가 기억해야 할 절대적 비극입니다. 그 기억은 다시는 어떤 민족도 학살당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 윤리의 토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스라엘극우 정치의 일부는 그 기억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과거의 피해를 현재 국가권력의 면책 근거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안보 위협은 언제나 예외조치를 정당화하고, 군사행동 비판은 반유대주의로 몰리며, 국제법적 비판은 현실을 모르는 도덕주의로 치부됩니다. 피해의 기억이 현재 권력의 방패가 되는 구조입니다(Financial Times, 2025.11.18 / The Guardian, 2026.2.9).
최근 가자지구와 레바논, 이란을 둘러싼 군사 충돌 속에서 유럽 사회 내부에서도 이러한 면책 구조에 대한 피로와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민간인 피해가 누적되고 전쟁의 비례성이 무너졌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과거의 연민과 오늘의 정치적 지지가 더 이상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BBC, 2026.4.16 / Financial Times, 2026.4.14). 역사는 이와 비슷한 교훈을 오래전에 남겼습니다. 13세기 알폰소 10세 시기 스페인은 종교 공존과 개방 속에서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1492년 이후 순수 가톨릭 국가를 추구하며 유대인을 추방했고, 펠리페 2세 시대에는 네덜란드까지 탄압했습니다. 결과는 역설적이었습니다. 배타적 제국 스페인은 쇠락했고, 관용과 상업을 택한 네덜란드는 부상했습니다. 배타성은 결집을 만들었지만 번영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The Economist, 2023.8.19).
이 모든 사례는 하나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피해자 정체성 정치는 약자의 정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처의 기억을 동원해 현재의 권력을 강화하는 정치 기술입니다. 우리는 피해자다”라는 말이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가장 위험한 문턱에 들어섭니다. 피해의 기억은 공동체를 지키는 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이 타인을 지배할 면허로 바뀌는 순간, 피해자는 새로운 지배자가 됩니다.
■ 독일은 왜 침묵하는가
— 기억의 윤리와 현재의 역설
독일이 이스라엘 문제에 특별히 민감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독일 현대사가 짊어진 가장 무거운 죄였습니다. 전후 독일 민주주의는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 위에서 다시 세워졌습니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은 그 상징이었습니다.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강렬한 참회의 장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BBC, 2020.12.7). 그 이후 독일 정치권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안전을 독일이 특별히 책임져야 할 역사적 책무로 여겨 왔습니다. 이러한 태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역사적 책임이 오늘의 현실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느냐입니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장면.
가자 전쟁 이후 독일 정부와 지방 당국은 친팔레스타인 집회를 제한하거나 금지했고, 경찰의 강경 대응도 국제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등 일부 도시의 공공 공간과 건물에는 이스라엘 연대 메시지와 국기 조명이 등장했습니다. 정부가 먼저 도덕적 정답을 선언하고 사회 분위기를 이끄는 듯한 장면이었습니다(Reuters, 2024.4.26 / The Guardian, 2024.5.3).
이에 대한 비판은 독일 내부에서도 제기됐습니다. 일부 법학자와 시민단체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행사 취소와 자기검열 논란이 이어졌고, 친팔레스타인 입장을 밝힌 예술가와 학자들이 배제되거나 초청이 취소되는 사례도 잇따랐습니다. 독일 언론 내부에서도 국가가 특정한 도덕적 입장을 앞세우며 공론장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습니다(Financial Times, 2025.12.9 / Deutsche Welle, 2026.4.15). 독일 밖에서도 비판은 거셌습니다. 국제 인권단체와 해외 언론은 독일이 역사적 책임을 이유로 현재의 인권 원칙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관계자들의 행사나 발언이 제약받는 일도 논란이 됐습니다(Reuters, 2024.4.12 / Amnesty International, 2024.6.7).
더 깊은 문제는 지식인 사회의 위축이었습니다. 독일 내부에서도 일부 학자와 예술가들은, 이스라엘 정부 비판과 반유대주의를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민간인 피해와 인도주의 위기를 우려하면서도 공개 발언을 주저했습니다. 이 침묵은 단순한 개인의 비겁함만으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그 배경에는 홀로코스트 가해국이라는 역사적 원죄의식, 반유대주의 낙인에 대한 두려움, 이스라엘 비판이 자칫 독일 극우세력의 배외주의와 결합될 수 있다는 우려, 공공기관과 문화재단의 지원 구조, 사회적 고립에 대한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결과가 정당하다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The Guardian, 2025.11.9 / Financial Times, 2025.12.9).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현재의 민간인 학살과 인권유린을 말하지 못한다면, 지식인의 공적 책임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책임이 현재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순간, 기억은 윤리가 아니라 침묵의 장치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침묵과 달리,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분노가 보다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2026년 4월 14일 폴란드하원에서 의원 콘라트 베르코비치는 이스라엘 국기의 다윗별을 나치 문양으로 바꾼 깃발을 들어 보이며 이스라엘을 새로운 제3제국”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 방식은 과격했고, 나치 비유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비판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장면이 보여준 정치적 감정은 분명했습니다. 가자 전쟁 이후 유럽 곳곳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폭력에 대한 분노와 피로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Notes from Poland, 2026.4.14). 독일의 역사적 참회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참회를 이유로 오늘 피해자가 가해자의 위치에서 저지르는 인권유린과 학살 행위에 침묵한다면, 그것은 보다 본질적인 인권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로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특정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면책이 아니라, 누구의 생명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보편적 기준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과거 유대인의 고통을 기억한다면, 오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고통 앞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살아 있는 윤리로 만드는 길입니다. 역사는 과거를 기억하라고만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함께 묻습니다. 독일 역시 이제 원죄의식에 머무는 나라가 아니라, 국제적 인권 연대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최근 유럽 각국에서 확산되는 비판적 여론은 독일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과 현재를 말하는 것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가. 오히려 지금 독일이 해야 할 일은, 과거 책임을 이유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보편 인권의 언어로 확장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기억은 과거를 위한 의식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책임이어야 합니다.
2026년 4월 14일 폴란드 하원 본회의장에서 콘라트 베르코비치 의원이 다윗별 대신 나치 문양이 삽입된 이스라엘 국기 팻말을 들고 연설하는 장면. 가자 전쟁 이후 유럽 내부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군사행동에 대한 분노와 상징정치가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으로 국내외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했다.
■ 피해의 기억을 미래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가
그렇다면 피해의 기억은 반드시 침묵과 면책으로 귀결되는가. 한국 현대사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수많은 고통의 장면 위에 서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참혹한 진압, 일제강점기의 만행, 제주 4·3의 국가폭력, 민혁당 재건위 사건과 사법살인, 5·18민주화운동당시 자행된 학살,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한겨레, 2024.4.3 / 경향신문, 2024.4.16). 대한민국 현대사 자체가 피해의 기억으로 가득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억을 단지 피해자의 권리 회복과 보상 요구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은 지역의 비극을 넘어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보여주듯, 현재가 과거를 구하고 과거가 현재를 구하는 일은 기억이 연대의 언어가 될 때 가능합니다. 과거의 희생을 단순한 비극으로 남겨두지 않고, 오늘의 우리가 그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이어받을 때 비로소 역사는 살아 움직입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 또한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특정 지역과 특정 시대의 비극에 가두지 않고, 인간 존엄과 폭력, 기억과 치유라는 인류 보편의 언어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Reuters, 2025.10.10 / BBC, 2025.10.10). 다시 말해,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의 의미를 더욱 깊고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피해의 기억은 자신만의 상처에 갇힐 때 원한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편적 인권의 가치로 확장할 때 민주주의의 자산이 됩니다. 여기서 한 사회의 품격이 갈립니다. 과거의 고통을 자기 집단만의 면책 근거로 삼는 사회는 폐쇄와 배제로 기울고, 그 기억을 타인의 고통까지 이해하는 윤리로 넓히는 사회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갑니다.
오늘 미국의 문제는 자기 상처를 직시할 용기도, 냉정하게 판단할 지성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비전도 약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MAGA, 정치화된 복음주의, 극단적 시온주의는 피해자 정체성을 공동의 미래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권력 자산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습니다. 피해의 기억이 연대가 아니라 지배의 언어가 될 때, 국가는 강해 보일 수는 있어도 존경받기는 어렵습니다(Financial Times, 2026.4.14 / The Guardian, 2026.4.16).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은 분명합니다.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고통을 함께 응시하고, 피해의 기억을 보편적 인권의식으로 승화시키며, 그것을 인류 공동의 의제로 만들 수 있는 시민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외침, 식민지 저항의 기억,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촛불집회와 광장의 경험은 우리에게 그 가능성이 결코 추상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진정한 문화강국은 경제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공감 능력,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윤리로 바꾸는 시민의식, 힘보다 인간의 존엄을 먼저 말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강한 민주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사력이나 GDP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증오가 아니라 책임으로 바꾸는 나라만이 오래갑니다.
기억은 과거를 붙드는 일이 아닙니다. 미래의 인간을 지키는 힘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한 사회는 파시즘으로 기울 수도 있고 민주주의로 성숙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