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유럽 600대기업 10년치 보고서 분석해보니 [뉴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개하는 양은 10년 동안 50% 이상 증가했지만, 공급망과 노동·보상 분야의 실제 성과는 그만큼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뮌헨대(LMU)와 쾰른대학교 공동연구팀은 유럽 600대 상장사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발간한 연차보고서와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AI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 7일(현지시각) 공개했다.
분석 대상은 연차 및 지속가능보고서 9173건, 167만8551쪽이다. 연구팀은 대규모 언어모델인 라마 3.1 70B 인스트럭트(Llama-3.1-70B-Instruct)와 검색증강생성(RAG) 기술을 이용해 ESG 분야 501개 세부지표를 탐색했다. 지표 탐색 건수는 약 288만건이었고, 이 가운데 84만7835건에서 실제 수치를 추출했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개하는 양은 10년 동안 50% 이상 증가했지만, 공급망과 노동·보상 분야의 실제 성과는 그만큼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공시 지표 117개에서 180개로…오염·생물다양성은 여전히 공백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유럽기업들의 ESG 정보 공개량은 평균 52.4% 증가했다. 기업 한 곳이 공개한 ESG 지표는 2014년 평균 117.8개에서 2023년 179.7개로 늘었다. 기후변화 관련 지표는 125%, 수자원 지표는 83%, 순환경제 지표는 73% 늘었다.
ESG 평가가 낮은 기업들도 공시 경쟁에 합류했다. 2014년에는 ESG 평가 하위 10% 기업이 상위 10%보다 공개한 지표가 39.4% 적었지만, 2023년에는 격차가 6.8%까지 줄었다. 지속가능성 보고가 일부 선도기업의 차별화 수단에서 일반적인 기업 업무로 바뀌면서 후발기업들이 빠르게 따라붙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2023년 기준 자체 임직원 관련 지표의 공시율은 54.7%, 지배구조는 48.9%, 순환경제는 42.3%였다. 반면 오염 관련 지표는 5.6%, 생물다양성은 8.3%에 그쳤다. 측정 기준이 비교적 명확하고 평가기관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탄소·인력·지배구조 정보에는 공시가 집중됐지만, 생태계 훼손이나 오염처럼 측정과 사업 연계가 어려운 분야는 여전히 보고서의 사각지대로 남았다는 의미다.
스코프1·2는 감소…스코프3는 5.6배 증가
환경 성과에서도 보고 기업들의 스코프1 직접배출량 중앙값은 2014년보다 66.8%, 전력·열 사용에서 발생하는 스코프2 배출량은 76.4% 감소했다. 에너지 소비량과 물 사용량도 각각 37.7%, 38.1% 줄었다. 반면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스코프3 배출량은 2020년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2023년까지 5.6배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공동 연구팀인 빅터 와그너(Victor Wagner) 스톡홀름 경제대학 회계학 조교수는 실제 배출량이 늘어났다기보다는, 과거에 누락했던 간접 배출 항목을 더 꼼꼼하게 측정하고 공시하는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일부 스코프3 항목만 공개하던 기업들이 구매 상품, 자본재, 운송, 출장, 직원 통근, 판매 제품 사용과 폐기 등 더 많은 배출 항목을 새로 포함하면서 보고된 총량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는 100개 기업만 배출 데이터를 냈다면 현재는 500개 기업이 발표하면서 전체 총합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구조적 착시가 있다 며 진정한 지속가능성 성과를 파악하려면 데이터의 단순 양적 증가와 실제 감축 성과를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스코프1·2 감소 역시 전적으로 기업의 감축 노력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고배출 사업 매각, 생산시설 해외 이전, 배출량의 스코프 간 재분류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장기 추세를 보여주는 기술적 연구이며, 변화의 원인을 입증하는 인과관계 연구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여성 임원 늘었지만 직원 이탈·소득 격차 악화
사회 분야에서는 일부 다양성 지표를 제외하면 성과가 정체되거나 악화됐다. 고위 경영진 가운데 여성 비율은 10년 동안 9.2%포인트 증가했고, 성별 임금 격차는 4.7%포인트 축소됐다. 그러나 성별 임금 격차는 2021년 이후 다시 0.5%포인트 확대됐다.
직원 이직률은 2.6%포인트 상승했다. 단체협약 적용을 받는 직원 비율은 7.1%포인트 낮아졌고, 업무상 부상과 질병·사망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40.4% 증가했다. 직원들이 제기한 고충과 민원 건수도 39.1% 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경영진과 직원 사이의 보상 격차였다. 최고경영진을 비롯한 임원 보수와 일반직원 중위 보수의 격차는 2014년 이후 1325.9%, 즉 12배 이상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임원 비중 등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관리해 온 일부 지표는 개선됐지만, 소득 분배와 노동 안정성까지 함께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토르스텐 셀혼(Thorsten Sellhorn) LMU 회계 및 감사학 교수는 기업들이 특정 환경·사회적 아젠다에서는 진전을 보였을지 몰라도, 동시에 다른 중요한 지표들은 오히려 나빠지거나 방치되었다 며 지속가능성이 모든 영역에서 균형 있게 발전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 이라고 설명했다.
오픈소스로 공개된 데이터... 그린워싱 감시 체계 작동할 것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AI 기반의 지속가능성 보고 내비게이터 데이터셋과 소스코드를 오픈 사이언스 이니셔티브를 통해 대중에 무료로 개방했다.
그동안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데이터는 수백 페이지짜리 보고서 속에 파묻혀 있거나, 글로벌 평가 기관들의 고가 유료 데이터 서비스를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유통되어 왔다. 주저자인 케르스틴 포스터(Kerstin Forster) 연구원은 이번 오픈소스 공개를 통해 감독 당국과 투자자, 시민단체(NGO)가 비용 장벽 없이 기업의 ESG 성과를 체계적으로 비교하고 검증할 수 있게 되어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보고서가 기업의 자체 작성 자료이고 조사 기간 상당 부분에서 제3자 검증이 제한적이었다는 점, AI가 기업의 전략적 비공개나 누락을 판별하지 못한다는 점은 한계로 제시됐다. 분석 대상 역시 유럽 대형 상장사에 한정돼 중소기업이나 비유럽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