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논의 막는 삼성 파업 보도…생산차질 만큼 큰 손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과급 배분을 둘러싸고 사측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거세다.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 15% 성과급 지급과 성과급 상한제 폐지 등이 수용되지 않으면 5월에 18일간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에서는 맹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기술 개발과 생산 역량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성과급을 더 받겠다며 파업하는게 웬말이냐는 것이다. 생산 차질로 인한 손실의 크기를 강조하면서 노조 대 회사 의 대결 구도를 중계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300조 원의 이익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이익은 누구에게 어떻게 귀속돼야 하는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원칙과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은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 언론들, 특히 경제신문들의 삼성 노조에 대한 공격은 거의 노골적이다. 등의 기사들은 글로벌 기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엄중한 상황에서 노조의 파업 예고를 ‘위협’으로, 성과급에 대한 논의 요구를 ‘생떼’로 규정해 몰아붙인다.
조선일보의 24일자 사설.
국민의힘의 비판적 논평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한다. 등의 기사들인데, 직접적 관련이 없는 노란봉투법까지 무리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들 언론의 보도는 노조를 때리기만 할 뿐 노조 측의 입장이나 주장은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다. 노조는 초과이익 성과급 상한 폐지와 연간 영업이익 15% 성과급, 성과급 제도 투명화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호황기에 이익을 창출한 기여자들이 그 과실을 나누자는 것은 생떼가 아니라 정당한 교섭 행위라는 것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더구나 성과급 제도의 투명성 요구는 지난 2019년부터 일관되게 제기된 사안이다. 일회성 포상안만을 고수하며 협상을 난항에 빠뜨린 사측의 책임도 함께 조명돼야 한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특정 액수가 아니라 투명하고 상한 없는 초과이익 성과급 제도로의 개선인데도 파업으로 인한 피해 규모만 부각되고, 정작 그 원인은 조명되지 않는다”는 노조 측의 주장은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나아가 이번의 성과급 갈등 격화의 배경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 역사, 노사협의회를 통한 노조 탄압이 누적돼 왔다는 점은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기도 하지만 축적된 문제 의 한 표출이다. 축적된 불만이 파업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왔다고 볼 수 있지만 언론은 그 문제와 불만의 원인을 해명하는 것보다 파업 자체를 봉쇄하려 한다.
조선일보는 사설 에서 모든 일은 도를 넘어선 안 된다. 반도체 산업은 노동 투입량보다 기술력과 자본 투자가 성과를 좌우한다”면서 앞으로도 대규모 투자와 해외 전문 기업 인수가 불가피하다. 직원들이 성과급을 받는 것보다 더 중대한 사활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파업에 대해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오늘의 파티를 위해 미래를 갉아먹는 최악의 선택을 할 때가 아니다. 다가올 진검승부에 대비해 내실을 다지고 체력을 키우는 데 사활을 걸어야 할 시점”이라고 썼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큰 함정이 있다. 성과의 배분이 곧 투자와 상충한다는 전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과의 배분은 투자와 상충되는 게 아니다. 정당한 성과의 배분은 곧 투자일 수 있다. 정당한 성과 배분은 오히려 인재 유출을 막고 노동의욕을 높이는 투자가 될 수 있다. 또 오늘의 파티가 곧 내일을 희생하는 것이랄 수는 없다.
나아가 이 사안에 대해서는 삼성전자라는 한 기업을 넘어선 시야가 필요하다. 반도체 업종의 초호황은 전적으로 기업의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사업의 거대 성과는 상당 부분 전사회적 지원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가는 수십 년에 걸쳐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인프라 투자를 쏟아부었다. 불황기마다 조세 지원으로 버팀목을 제공한 것은 국민의 세금이었다. AI 특수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한 것 역시 글로벌 기술 환경의 변화, 즉 개별 기업의 전략적 성과이기 이전에 시대적 조건의 산물이다.
따라서 특정 기업의 초과이익이라는 점을 넘어서 이의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요청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호황을 이끈 이 막대한 이익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기여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누는 것이 정의로운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 에서 노조 깃발이 입장하고 있다. 2026.4.23 연합뉴스
그 점에서 노조의 요구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요청된다. 영업이익의 15%, 최대 45조 원에 이르는 성과급 요구가 삼성전자 종사자들을 넘어 수많은 하청 노동자와 협력업체, 그리고 사회 공동체로 열려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점 역시 언론이 제대로 짚었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 같은 여러 질문들을 단순한 파업 손실 프레임 속에 묻어버렸다. 언론 보도는 기껏 갈등 당사자를 노조와 회사(혹은 주주)의 대립으로 설정할 뿐이다. 이 구도 속에서 노조는 기업과 국가경제를 위협 하는 존재가 돼버린다.
삼성전자 노조 활동에 반대하는 ‘주주운동본부’의 주장도 ‘맞불집회’라는 이름으로 주요하게 소개됐다. 노동자 대 주주의 갈등을 부각시키며 ‘주주 우선주의’를 내세운다. 물론 자본을 제공하고 위험을 감수한 투자자에게 합당한 배당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주주이익 극대화가 최고의 경영 목표라는 신화는 이미 2019년 미국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선언 등에서 모든 이해관계자에 장기적 가치 제공해야 한다 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은 무시된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익은 이렇듯 한 기업의 성취를 넘어선 사회적 성과라는 점에서 언론에 폭넓은 논의의 장을 제시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노동자의 노고와 함께 전국가적 지원, 사회 인프라 위에 세워진 성취라는 점에서 그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물음은 삼성 내부의 노사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답해야 할 질문인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그 같은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질문을 잘못 던짐으로써 오히려 논의를 막아버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삼성전자 보도에서 언론이 지운 것은 단지 노조의 주장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더욱 본질적인 질문들을 지워버렸다. 파업 손실을 염려하는 언론이 초래한 그 손실은 파업 손실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손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