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장정민의 지속가능경영 스토리】한국 기업지배구조, 선언 을 넘어 책임 의 시대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지형이 역사적인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를 명시한 상법 개정안 통과라는 두 가지 거대한 흐름이 만나면서 게임의 규칙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모범 규준 으로 여겨지던 사항들이 이제는 시장의 기대와 법적 의무의 영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번에는, KRX에서 제공한, 2024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분석 데이터를 활용해, 2024년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에 대해 분석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사실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현주소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데이터다. KRX가 집계한 2024년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은 일부 영역에서 개선이 있었음에도, 이사회의 독립성과 실효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여전히 심각한 결함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KRX의 2024년 데이터를 보면 주요 사항에 대한 평균 준수율은 54.6%로 전년 대비 +5.5%p 개선됐다. 그러나 핵심 견제·균형 장치를 묻는 지표들은 여전히 바닥권이다.
2024년 기업지배구조 핵심 KPI 준수율 하위 지표
- 집중투표제 채택: 3.1% (전년 2.9, +0.3%p)
- 사외이사 의장 분리: 13.4% (전년 13.0, +0.4%p)
- CEO 승계정책 운영: 34.8% (전년 31.8, +3.0%p)
- 주총 4주 전 소집공고: 38.6% (전년 28.7, +9.9%p)
- 배당 예측가능성 제공: 42.1% (전년 15.5, +26.6%p)
반대로 제도화가 진전된 영역, 전자투표 실시(80.9%), 감사위원회의 회계·재무전문가 포함(88.0%), 내부통제정책 마련·운영(76.8%), 주총 집중일(빅배치) 회피(71.5%) 등은 준수율이 높다. 요컨대 법·규정으로 뒷받침되느냐, 자율·관행에 맡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이사회가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사회 독립성의 허상
데이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 중 하나는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지표의 준수율이 13.4%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이사회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감독 기능을 수행하기보다, 사실상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추인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한다.
이사회의 일차적 책무는 경영진에 대한 독립적 감독 과 책임성 확보 에 있다. 이사회는 경영진의 비전을 신속하게 집행하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 모든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여 경영진의 전략을 검토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독립적 기구여야 한다.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는 이러한 감독 기능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이유로 독립성을 희생하는 관행은 이사회가 감독 기구가 아닌 경영의 하위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리더십의 블랙박스
최고경영자(CEO) 승계정책 마련 및 운영 준수율이 34.8%에 그친다는 사실은 한국 기업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을 드러낸다. 정형화된 승계정책의 부재는 단순한 절차적 누락이 아니다. 이는 지배주주 일가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재량권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기반한 이사회 중심의 승계 프로그램은 잠재적으로 가업 승계라는 기존 관행에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소액주주 입장에서 미래 리더십의 자질과 방향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어 키맨 리스크(key-person risk) 를 증폭시킨다. 결국 이는 기업 가치를 억누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굳게 닫힌 이사회실의 문
소액주주가 이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집중투표제 채택률은 3.1%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소극적 부작위를 넘어선다. 대부분의 미준수 기업들은 비고란에 정관으로 배제 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수의 기업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이는 소액주주의 이사회 참여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려는 적극적이고 구조적인 저항을 의미한다. 다른 지표들이 자원 부족이나 인식 부족으로 미준수될 수 있는 반면, 정관을 통한 배제는 지배주주 중심의 현 이사회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명백한 의도의 발현이다. 이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전체 주주가 아닌 지배주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비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로 활용된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여, 상법개정안에 집중투표 배제 금지(상법 제 542조의 7 제3항)가 포함됐다.
불투명한 환원과 외면받는 목소리
이사회 기능의 부실은 곧바로 주주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주주환원의 예측가능성 부재와 주주제안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한국 기업들이 주주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금 배당관련 예측가능성 제공 (42.1%)과 배당정책 및 배당실시 계획 통지 (46.5%) 지표의 준수율이 모두 50% 미만이라는 점은, 투자자들이 여전히 깜깜이 배당 을 위해 투자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는 주주환원이 자본 배분 전략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 경영진이 투자와 비용을 모두 집행하고 남은 잉여자원에 대한 시혜적 처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행은 정부가 선(先)배당액 확정, 후(後)배당기준일 지정 제도를 도입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다. 투자자가 배당액을 알고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려는 이 변화에 발맞춰, 일부 기업들이 정관 변경을 통해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여전히 준수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거절의 벽
주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설 때, 그 목소리는 대부분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한 기업의 주주들이 제안한 주주가치 제고 계획 수립 의무화 안건은 높은 반대율로 부결됐고, 다른 기업의 자기주식 소각 관련 주주제안 역시 높은 반대율로 부결됐다. 기관투자자의 공개서한 역시 비슷한 운명이다. 한 자산운용사가 특정 기업에 중장기 주주환원정책 수립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적절한 시점에 발표하겠다 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회피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내부적인 주주 행동주의가 번번이 실패하는 현실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과 같은 외부적 촉매제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기존 지배구조는 주주의 압력으로부터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러한 시장 실패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세제 혜택, 신규 ETF 출시 등 외부 인센티브와 시장의 압력을 동원하여 내부에서 해결되지 못한 교착 상태를 깨려는 시도인 셈이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라는 게임 체인저
기업들이 데이터로 확인된 지배구조 취약점을 방치해서는 안 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법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를 명시한 상법 개정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 을 미래의 법적 책임 으로 전환시키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개정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 에서 회사 및 주주 로 확대했다. 또한, 이사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 고 명시하여, 더 이상 지배주주의 이익이 회사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한국 기업 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조항이다. 과거에는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합병 비율이나 계열사 간 자산 거래 등이 회사 전체의 장기적 이익 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사들은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특정 주주 집단이 아닌 전체 주주 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했음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된다.
지배구조 결함이 법적 책임으로
이러한 법적 변화는 앞서 데이터로 분석한 지배구조의 취약점들을 잠재적인 소송 리스크로 변모시킨다. 결과적으로, 매년 제출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더 이상 단순한 공시 의무이자, 서류가 아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주주대표소송에서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미준수 사유를 기재하는 비고 란에 ‘효율성을 위해’ , ‘검토 중’과 같은 안일한 문구를 기재하는 것은, 이사회가 개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도 의도적으로 의무를 방기했다는 증거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ESG 및 법무 담당자들은 이제 지배구조보고서를 단순 공시가 아닌, 잠재적 소송에 대비하는 법적 기록물로 관리해야 한다.
KRX의 데이터는 새로운 상법과 밸류업 프로그램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볼 때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지배구조를 형식적인 준수 항목으로 취급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무대응은 심각한 법적·시장적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기업들은 최소한의 규제 준수라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선진적 지배구조를 기업가치 제고와 경쟁 우위 확보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 대전환에 나서야 한다.
☞ 김형주 엠케이전자(주) 팀장은
김형주 팀장은 2006년 보광그룹에 입사하여, 현재 엠케이전자(주)에서 IR, M&A, ESG를 담당하는 미래전략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엠케이전자는2020년 ESG 선포를 했으며, 2022년 환경부 스마트 생태공장 구축 사업 운영, 업계 최초 POST 100% 재생제품 UL인증을 취득했으며, 현재 LCA One cycle시스템 구축을 진행하고 있는 반도체 소재 기업이다. 실무형 관리자로서 업무 관련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ESG Track MBA 과정을 마쳤으며, ISO37301인증심사원 활동도 하고 있다.
☞ 장정민 매니저는
장정민 매니저는 2008년 동아제약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이크레더블과 금호석유화학을 거쳐 현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이크레더블에서 공급망 ESG 평가 사업을 준비하며 지속가능경영과 ESG라는 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금호석유화학 ESG경영관리팀에 입사해 본격적으로 ESG 관련 업무를 시작했으며 현재 지속가능경영 관련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다. 실무자로서 업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한양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ESG Track MBA 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