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왜 김구 선생이? 국내 최초의 전화기 이름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상업광고 없는’ 곳이라고 못을 박아두었다. 그동안 당연히 매체의 성격을 감안해 기사를 썼다. 지난해 뮤지컬 소개 기사를 쓸 때도 ‘우파본색 극복’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골랐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탐방을 꽤 다니지만, 내란에 맞서는 현 정국에 별 보탬이 되지 않는 듯해 식민지역사박물관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회를 제외하곤 기사로 쓰지 않았다.
당연히 많은 민들레 독자들도 빛의 혁명 5관문 사회대개혁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이론적 무기와 실천적 모범을 요구할 테다. 이를 잘 알면서도 감히 민들레 독자들에게 대기업 홍보로 비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우리가 어떻게 공간을 기록하고 장소를 기억해 오늘 사회대개혁의 불쏘시개로 쓸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이다.
전화 덕분에 사형선고를 받고도 살아난 분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지인의 초대로 광화문에 새로 생긴 KT 온마루를 다녀왔다. 시민기자임을 얘기한 적도 없고, 기사화할 생각도 없었다. 둘러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고민하던 공간의 기록, 장소의 기억에 대해 한 걸음 들어가 성찰할 수 있었다. 대기업이 세운 통신박물관? 뭐 별거 있으려고? 기업 홍보관이겠지, 처음엔 선입견이 많았다.
통신 관련 전시물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일부러 첨부하지 않았다. 이 전시물은 아트 작품인데, 재료에 한 번 놀랐고, 액정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또 놀랐다. 직접 확인해 보세요.
후자는 옳은 판단이었지만 전자는 맞지 않았다. 기업 홍보관이 맞긴 했지만, ‘별거’는 많았다. 박물관은 전시품을 어떤 나래이션으로 스토리텔링 하는가에 따라 수준(?)이 달라진다. 도슨트의 설명 중에 김구 선생의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기업이 김구 선생의 일화를? 김구는 한국 사회에선 민주개혁 진영의 뿌리와도 같은 상징 인물이기에 반대 진영에서 충분히 색안경을 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에 도입된 통신 관련 일화 중에 김구 선생을 콘텐츠로 담은 점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대기업이 설립한 기업홍보관이 김구 선생의 일화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으니, 대기업이 김구를 다루고 있으니, 고마운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광화문을 엉뚱한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이 시내버스 광고로 부착돼 있다. 2025년 7월 촬영. 진정 참전용사에게 감사한다면 다수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광화문 장소를 기록해야 한다.
함께 간 일행 중에는 학생들의 진로와 연결해 이 공간을 봐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곱씹을수록 설득력이 있었다. 통신은 IT와 AI 시대의 바탕이고, 이 전시는 기술이 어떻게 사회와 사람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공학을 지망하는 학생에게는 기술의 실제 쓰임을, 콘텐츠와 홍보 분야를 고민하는 학생에게는 기술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됐다.
대기업이 의도한 관점과 상관없이 보기 시작하니, 김구 선생의 일화도 다르게 다가왔다. 첨단 통신기기 하나가 역사를 바꾼 순간이 아닌가? 그저 과거의 감동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오늘의 미래 세대는, 오늘의 최첨단 기술을 통해 어떤 역사적 선택에 개입하게 될까? 과연 누군가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오늘의 최첨단 기기를 통해 과연 어떤 역사가 새로 쓰일까,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그런 면에서 온마루는 오늘 우리 아이들의 진로 감각을 깨우는 공간으로 격상할 수도 있어 보였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빛의혁명 집회. 2025년 3월 촬영. 깃발이 떠난 자리, 광화문이라는 공간과 장소는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까?
그렇다면 더 나아가 오늘 사회대개혁을 고뇌하고 길을 찾는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있겠구나 싶었다. 최첨단 기술을 익히는 공간으로, 최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는 장소로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다.
전시는 과거를 보여주지만, 시선은 줄곧 미래를 향하고 있다. 기술은 늘 먼저 등장하고, 다음에 사회가 따라 적응한다. 누군가는 기술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기술을 설명하고, 또 누군가는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질문한다. 이 모든 역할이 모여 하나의 역사를 만든다.
KT 온마루가 기업 홍보관이자 체험학습 장소임은 분명하다. 또 직접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 해도 미래 세대에게, 오늘의 우리에게 충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 어떤 오늘의 기술도 강자의 도구가 될지 약자의 반격 무기가 될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기업 홍보관에서 과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첨단기술의 사용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음의 역사 장면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대기업이 만든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가진 성찰은 작지 않았다.
우리나라 첫 전화기는 영어 telephone을 한자식으로 바꾸어 표기했단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면 좋겠다.
우리나라 첫 전화기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을 찾는 것이 이 단락의 핵심은 아니다. 인간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언어와 사고를 고안한다. 새로운 기술은 늘 낯설고, 이름부터 다시 붙여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과 플랫폼, 알고리즘 앞에서 느끼는 어색함과 불편함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을 테다. 바깥의 것을 받아들일 때 어려움은 더 크지 않은가.
전시 콘텐츠는 상당히 훌륭한 편이었다. 대기업에서 작정하고 기업 홍보 차원에서 기획했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통신의 시간 여행이라고 해도 좋고, 세대 공감의 연결 고리라고 이해해도 좋을 만했다.
우리나라 통신의 발달사가 아주 잘 정리되어 있고 아이들이 직접 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나름 박물관을 많이 다녀봤기 때문에 좀 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KT 온마루는 약간 별천지 같기도 했다. 온통 디지털 체험이었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최첨단이다.
어떤 세대에 속하더라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기자는 50대 중반이라 80년대 다이얼 전화기와 공중전화 이후는 뻔했지만, 그 이전 전보 시대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아이들은 전화기라는 사물 자체를 처음 보는 경우도 많다는 도슨트의 설명이다.
개인적으론 디지털 방명록이 인상적이었다. 방명록은 젊은 세대에겐 좀 어려운 말일 수 있는데, 행사를 할 때 방문자들의 이름을 받는 양식이다. 보통 표지는 파란색으로 되어 있고 굵은 펜으로 이름을 남기는, 가로로 된 넓은 용지를 묶어놓은 제품을 쓴다. 이름은 굳이 세로로 쓰도록 되어 있다. 소규모 기념관에서는 칸이 인쇄된 가로 쓰기 방명록을 쓰는 경우도 있다. 온마루 방명록은 작성하는 순간, 마치 우주에 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광화문 공간을 기억하는 대표 안내문의 하나. 2026년 1월 촬영. 그래도 광화문우체국 안내문은 ‘일제에 강제 인수’되었다는 점이 명기되어 있다. 광화문을, 여의도를, 대법원 앞을 빛의 혁명 공간으로 기록하고 장소로 기억하도록 하는 과제 또한 오늘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