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수사 받다 두 사람이 죽어나가도 사형 구형 [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이재권(李在權, 1928~1990) 항목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보안사가 수사한 남해 거점 간첩단사건에서는 수사단계에서 피의자 1명이 의문사, 또 다른 1명이 자살했으며, 재일한국인 진두현 등 간첩사건에서는 2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수사 단계에서 두 명이 의문사하거나 자살했다. 그런데도 검사 이재권은 멈추지 않았다. 사형을 구형했고, 그 사형은 집행됐다. 책은 냉정하게 적었다.
두 건의 사망사고에 대한 이재권 등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의 관리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관리책임. 이 절제된 표현 뒤에 숨은 것은 죽음과 죽음, 그리고 또 다른 죽음이다.
이재권(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이재권은 1928년 12월 1일 경상남도 진양(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51년 진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경남 해인대학(현 경남대) 법정학부를 졸업했다. 같은 해 12월 제9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고시 동기로는 전 헌법재판소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관 조승형, 그리고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나란히 수록된 전 사법연수원장 허정훈이 있다.
1961년 5월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그해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잠시 군 복무 문제로 휴직했다가 곧 복직했다. 1967년에는 부산지검 검사로 일본인 골동품상의 대규모 문화재 밀수사건을 수사해 신라시대 청동검과 구리거울 등 465점을 압수하는 공로를 세우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평범한 수사 검사였다.
이재권(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관리책임 으로 면죄 받는 사람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사례가 떠오른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영국 보안군의 심문과정에서 피의자가 사망하거나 자살한 사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기소를 담당한 검사들 가운데 형사책임을 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사기관의 행위였고 검사는 단지 기소했을 뿐 이라는 논리가 작동했다.
이재권의 경우도 비슷하다. 보안사가 불법구금하고 고문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 검사는 그 결과물을 받아 기소했을 뿐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소권을 가진 검사가 수사과정의 인권침해를 알면서도 묵인하고 기소를 강행했다면, 그 책임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는 것이다.
1974년 고병택 사건, 부모 병문안 갔다가 간첩으로
이재권의 반헌법 행위 첫 번째 장면은 1974년 재일한국인 고병택 간첩 조작사건이다. 고병택은 부모님이 위독해 고향 제주도를 방문했다가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고문과 가혹행위로 조총련 공작지도원과 회합해 북한을 찬양했다 는 혐의가 씌워졌다. 1974년 5월 이재권은 국가보안법, 간첩죄,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항소심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이 확정됐다. 고병택은 1981년까지 약 7년 4개월을 복역했다.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과정에 더 참담한 일이 있었다. 검찰과 기무사 조사관들이 일본으로 가서 파킨슨병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고병택과 부인을 만나 혐의사실을 대부분 시인해놓고 이제와서 부인하느냐 며 사건 신청을 취하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고병택은 그들의 뜻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2012년에야 재심이 결정됐고, 무죄가 선고됐다. 검사가 공소사실 입증을 위해 제출한 증거가 중앙정보부의 가혹행위로 작성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고병택 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기사가 실린 2013년 한겨례 신문을 들고 있다.(‘39년만의 무죄’ 고병택씨, 남은 것은 병든 몸뚱어리뿐 - 민중의소리)
1975년 남해 거점 간첩단사건, 두 명이 죽었다
이재권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것은 1975년 남해 거점 간첩단사건이다. 보안사가 발표한 이 사건에서 유재인에게 간첩죄를 적용해 사형을, 박종우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런데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수사과정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 주모자로 체포됐던 강갑영은 1974년 10월 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 수사 중 자살했다. 같은 사건으로 검거된 김욱동도 보안사 수사 도중인 1974년 8월 의문사했다. 두 사람의 사망장소가 검찰의 감독권이 미치지 않는 보안사 서빙고분실이었다는 점, 그리고 민간인 수사권이 없는 보안사가 민간인을 불법구금해 의문사하게 한 것은 막대한 책임이라고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적시한다.
그런데도 이재권은 이 사건을 그대로 받아 기소를 강행했다. 1975년 10월 대법원은 유재인에게 무기징역을, 박종우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1974년 일본 거점 간첩단사건, 사형 집행
이재권이 담당한 사건 가운데 사형이 실제로 집행된 사례도 있다. 1974년 11월 보안사가 발표한 재일거류민단 동경본부 부단장 진두현 간첩사건이다. 진두현, 박기래, 김태열에게 사형이 구형됐고, 군무원 강을성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76년 9월 16일, 강을성의 사형이 집행됐다. 진두현은 1988년 감형돼 1990년에야 가석방됐고, 박기래는 17년을 복역하다 1991년에야 풀려났다. 한 사람이 형장에서 죽었고, 두 사람은 청춘을 감옥에서 잃었다.
선교자금 횡령 조작, 판사 동향 정보기관에 알려
이재권의 반헌법 행위 가운데 사법부 독립을 직접 침해한 장면이 있다. 1975년 수도권 선교자금 횡령 조작사건이다. 중앙정보부가 유신반대 운동의 핵심인 박형규(1922~2016) 목사 등을 파렴치범으로 낙인찍으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재권은 종교인들을 선교자금 유용혐의로 기소하고 징역 3~5년의 무거운 형을 구형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이재권이 곽동헌 판사가 무죄를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중앙정보부에 보고해, 중앙정보부가 곽동헌 판사에게 온갖 압력을 가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검사가 재판부의 동향을 정보기관에 알려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된 것이다.
남산 부활절 예배사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형규(오른쪽) 목사와 한승헌(왼쪽) 변호사(故 박형규 목사는 누구인가? 에큐메니안.)
유신헌법 국민투표 대리투표, 부정선거를 은폐
1975년 2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에서 대리투표 사건이 발생했다. 이재권은 이를 폭로한 교사를 오히려 기소해 부정투표를 축소·은폐하려 했다. 부정을 폭로한 사람을 처벌하고 부정 자체는 덮는 전형적인 권력보위 수사였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보안군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사건들에 대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진상조사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블러디 선데이 사건의 진상조사는 2010년에야 공식 발표됐다. 늦었지만 책임을 묻는 작업이 계속됐다.
한국에서 이재권은 1990년 6월 사망했다. 그가 기소한 사건들이 재심에서 줄줄이 무죄로 뒤집힌 것은 그가 세상을 뜬 뒤였다. 보안사 수사 중 죽은 두 사람에 대한 책임도, 사형이 집행된 한 사람에 대한 책임도, 그는 살아서 전혀 지지 않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이재권을 떠올렸다. 수사기관에서 사람이 죽어도 검사가 멈추지 않는 구조, 검사가 정보기관에 판사의 동향을 보고하는 구조. 그 구조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